하나님은 누구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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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1. 도입
2. 하나님은 우리의 어버이가 되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의 어버이가 되십니다.
예전에 이런 저런 사업과 관련있는 일로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기독교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과 믿음에 대한 작은 토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종교를 다 믿어보고 기독교를 선택해야 정확하고 확실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종교를 믿어 보지 않고 오직 기독교만 믿는 제가 잘 못 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마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는 아직도 기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독교인이 되도록 선택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8절에서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인종들을 나누시고, 그 인종과 민족들이 그 땅에서 살도록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인종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 하나님이 자신의 기업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기업이란 말은 “몫, 영토, 이득, 분깃"이란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인종을 창조하시고 나누시고 그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 민족만 자신의 소유와 몫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기업으로 선택하신 이후 무엇을 하셨을까요?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삶의 고단함 가운데 함께 하시고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눈동자 같이, 즉 마치 부모가 걸음 거리를 처음 떼는 아이가 넘어질까바 눈을 떼지 못하는 것 처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걷고 날 수 있도록 뒤에서 눈을 떼지 않으십니다. 마치 독수리 처럼 그렇게 하십니다.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독수리는 자신이 돌보는 새끼가 여전히 둥지에 가만히 있어 가져온 먹이만 먹고 살도록 하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자신의 새끼가 스스로 날 수 있도록 나는 법을 가르칩니다. 자신의 새끼를 높은 둥지에서 떨어 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지요. 그러다 날개의 힘이 빠질 때쯤 어미 독수리는 그 지친 새끼를 자신의 큰 날개로 받아 냅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새끼가 스스로 날 수 있도록 어미 독수리는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마치 어미 독수리처럼 우리에게 스스로 날 수 있도록 고난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 홀로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쯤 하나님께서 자신의 등을 우리에게 내어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 그 어려운 길을 헤쳐 나가도록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선택하시고 스스로 보호자 역할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스스로 이 세상을 헤쳐나가도록 가르치지요. 그리고 뒤에서 자신의 자녀가 가는 길을 지켜 보십니다.
13절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부모 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가 스스로 밭의 소산과 꿀과 기름과 젖과 밀, 포도즙을 먹도로 하십니다. 자녀가 부모가 땀 흘려 벌어다 주는 돈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돌보면서 무엇을 합니까? 교육도 시켜 주지요. 학교도 보내 주고, 학원에서 공부도 시켜 주고, 편의점에서 간식도 사 먹도록 용돈도 줍니다. 왜 그렇게 하지요.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녀가 자라서 독립해서 직장을 다니고 결혼도 하고 자기 가정을 꾸리도록 부모는 힘을 다해 뒷바라지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장성한 독립한 자녀를 걱정하고 신경쓰며, 여전히 장성한 독립된 자녀가 어려움에 처하면 기꺼이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의 부모와 같은 분이십니다. 그것도 매우 좋은 부모가 되십니다.
<전환문> 그런데, 좋은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이 자녀가 잘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벌하십니다.
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벌하십니다.
주변에 나쁜 자녀들을 보면,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희생과 봉사와 노력에 대해서는 당연하다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고아 같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아버지가 되어 주신 것 만으로도 은혜가 넘치는 것인데, 잘 안되면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거에요. 왜 어려울 때, 힘들 때 도와 주지 않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가 아무 어려움도 모르도록 모든 것을 일일이 옆에서 다 처리 해 주지 않지요. 어미 독수리가 새끼가 스스로 날 수 있도록 하듯이, 좋은 부모가 물고기를 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의 자녀인 우리를 훈련 시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절대 어렵고 힘든 상항을 만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믿을 수록 더 어렵고 힘들 수가 있습니다. 왜요. 그렇게 해야 자녀의 맺집이 더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날, 툭하면 어렵다고 절망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부모들은 대학생인 자녀의 학점 때문에 교수한테 전화해서 따집니다. 나이가 20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부모 품안에 있는 거에요. 군대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아들의 군대 생활에 간섭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군대에서 제 후임 중에 한명의 부모가 아들 군대 생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제가 영창을 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후임병이 당시 저한테 구타 당했다고 자신의 부모에게 말해서 그 부모가 연대장에게 제 이름을 고발했습니다. 연대장이 직접 저희 부대에 방문해서 제 이름과 소속을 콕 집어서 말하며 영창 보내라고 했었습니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스스로 힘든 일을 극복하도록 해야지, 왜 부모가 나서서 뒷 처리를 다 합니까? 그렇게 자라면, 나이가 50이 되어도 직장도 없이 집에 틀어 박혀 게임만 하고, 폐지 주어 오는 팔 순 노모의 노령 연금을 쪽 쪽 빨아 먹고 살게 됩니다.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성균관 대 수석으로 졸업해서 그렇게 살고 있지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인 우리가 적당히 어려움도 격고 견디고 참아 내어 잔 근육들이 붙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에 처하여 캄캄할 때, 아무리 기도하고 기도해도 하나님은 마치 듣지 않는 듯이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부모 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시고,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죠.
그런데, 스스로 고기잡는 법도 익히고, 어려움도 자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 극복해서 독립하게 되어 이제는 먹고 살만 해 집니다. 고생도 끝나서 이제 제법 살집도 붙었습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못된 자녀는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살 만하니까 이제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다른 신을 찾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기름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비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업신여겼도다
이런 신앙인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그렇게 찾다가 좀 잘 되고 먹고 살만 하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의 그간의 은혜를 다 잊어 버리고, 다른 신을 찾아 다닙니다. 새로운 것들을 찾아 다닙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것 좋아하잖아요. 정보라는 이름으로 여지껏 나도 몰랐고 남들도 모르는 그러한 돈이 될 만한 것들 우리 모두 좋아하지 않습니까?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라는 예전에 없던 신을 숭배하지요. 애급의 종 되었던 곳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탈출한 이들이 광야 40년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하나님의 도움심을 경험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나서 그들이 배가 부르니까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새로운 신을 찾고 경배합니다.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귀신들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근래에 들어온 새로운 신들 너희의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것들이로다
이러한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잊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매우 싫어 하십니다.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하나님앞에 다른 신을 두는 행위는 죄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질투하시며 가증한 것으로 여기시며 격노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벌하십니다.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이 왜 자신의 자녀의 죄에 대해서 격노하시며 벌하실까요?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하나님의 길은 정의롭고 공의로우시며 바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죄를 용납하시면, 정의롭지도 공의롭지도 바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냥 우유부단한 한 신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매우 단호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벌 하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놀랍고 큰지 보십시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스올의 깊은 곳까지 불사르며 땅과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불타게 하는도다
하나님의 분노가 어떤 모습으로 터져 나옵니까? 바로 화산이 터지는 모양입니다. 실제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을 벌하실 때 화산을 이용하십니다.
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재앙을 그들 위에 쌓으며 내 화살이 다할 때까지 그들을 쏘리로다
코로나 같은 전염병같은 재앙을 마치 화살처럼 계속 해서 쏘신다는 것입니다. 현재도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해서 언제쯤 마스크를 벗을 지 알 수가 없지요.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주리므로 쇠약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질병에 삼켜질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기근이 오고 심한 더위가 오며, 각종 질병들이 생기고, 들짐승의 이 그리고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보내십니다. 들짐승의 이 그리고 티끌의 기는 것의 독이란 요즘 말로 하면, 바이러스이지요. 코로나가 원숭이로부터 전염된 것이지요. 풀의 진드기가 호흡기 장애를 일으키지요.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밖으로는 칼에, 방 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젊은 남자도 처녀도 백발 노인과 함께 젖 먹는 아이까지 그러하리로다
밖으로는 칼, 즉 외세의 침략과 전쟁이지요. 방 안에서는 놀람 이란, 전염병 같은 것이지요. 그러한 것을 아무도 피해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하나님의 다른 신을 섬기는 행위에 대한 진노는 매우 무섭고 놀랍습니다. 코로나 보다 더 무섭고 놀라운 질병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매우 무섭게 벌 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아주 없애지는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가 약해 있을 때 그 자녀를 공격하는 다른 백성을 하나님이 친히 벌하시고, 그 손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4.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혹시 내가 원수를 자극하여 그들의 원수가 잘못 생각할까 걱정하였으니 원수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수단이 높으며 여호와가 이 모든 것을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함이라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가 죄를 범해서 징벌하시려고 잠시 이웃 백성을 사용하시는 것인데, 이 이웃 나라가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단이 높아서, 즉 자신이 전쟁을 잘 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이 내부에서는 전염병과 짐승들의 공격으로 상하고, 외부에서 자신들은 칼로 공격하여 승리하고 나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별 수 없다고 이 이스라엘 백성의 원수 나라가 착각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비일 비재하게 우리는 많이 만납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왜 그렇게 하는 일마다 안되고 망하나, 저기 불공 열심히 드리고 점집을 뻔질 나게 다니는 저 사람의 자녀는 좋은 대학을 가고 인생이 쑥쑥 풀리는데, 교회만 쫓아 다니는 너희 집은 왜 그 모양이냐 하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신명기 32:39 (NKRV)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며, 살리시기도 하시며, 상하게도 하시며 낫게도 하십니다. 모든 생사화복이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는 일마다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징계하시거나 아니면, 자녀가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도록 잠시 침묵하신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하나님을 불신하는 대적자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 거립니다. 그리고 자신은 자신의 힘으로 이렇게 성공했다고 자와 자찬합니다. 그렇게 비아냥 거리고 자와 자찬하는 그 불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 지 아십니까?
41절부터 42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내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이 정의를 붙들고 내 대적들에게 복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할 것이라
내 화살이 피에 취하게 하고 내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우두머리의 머리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비아냥 거리는 이들에게 칼을 빼시고 보복하십니다. 그들이 기독교인이 잘 못 될 때 비아냥 거렸지만,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일을 그들은 모랐습니다.
28절에서 29절 말씀까지 보겠습니다.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
어려움을 겪고있는 기독교 인들을 비아냥 거리며, 하나님이 없다 하는 이들은 분별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잘 살고 그의 자녀들도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다니며, 아파트 분양도 잘 되어 부동산 값이 두배가 넘게 되지만, 하나님이 없이 잘 사는 그들의 종말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지옥으로 가는 것이지요. 그들은 100년도 못 사는 이 땅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원한 것 처럼,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도 영원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힘으로 이 땅에서 살았다고 하는 이들은 100년도 못 되는 이 세상의 삶에서 편안히 살다가 영원히 지옥 불에서 고통받고 살게 됩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이 땅에서 살면서, 때로는 고난이라는 훈련을 받고, 때론 하나님을 배신하는 죄의 벌을 받고 살지만,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고치시고, 구원하셔서 영원이라는 시간동안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그럼으로, 이 땅에 사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영원한 시간을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46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이는 너희에게 헛된 일이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말미암아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 차지할 그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힘을 다해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을 지켜 행하십시오. 우리의 일이 잘 될 때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우리의 일이 잘 안 될 때도 역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100년도 못 사는 이 땅의 짧은 삶을 마친 후 영원이라는 시간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5. 말씀을 맺겠습니다.
5.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모세가 죽기 전 유언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애급의 왕자로 살았다가, 자신의 민족을 구하기 위해서 애급사람을 죽이고 나서 40년동안 광야에서 목동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애급에서 종 사리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내고 하나님과 유일하게 얼굴을 처다보녀 독대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했던 선지자이며,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40년동안 인도한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정작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고 느보 산에서 죽음을 맞이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 하지 않앗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50절과 5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지난 시간에 아말렉과 전쟁을 했던 장소에 대해서 말씀 드렸습니다. 바로 르비딤입니다. 그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 모세가 바위를 두 번 쳐서 물을 냈습니다. 그 때 모세가 잘 못 한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물 때문에 하나님과 다툴 때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을 헤메었지만, 정작 목적지인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어기는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모세라 하더라도 죄의 값은 받게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세를 주목해야 합니다. 비록 모세는 죄의 댓가로 그토록 바라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는 죽기 전에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기를 명령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우리는 종종 모세와 같은 경우들을 만납니다. 모세처럼 죄의 징벌을 받기도 합니다. 또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고, 마치 우리 주변에 안 계신 것 처럼 우리가 그 고난을 믿음으로 잘 버텨내고 지나가도록 지켜 보십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믿음의 내적 근육을 키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런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은 캄캄한 인생 길을 걸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