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을 회복하는 길: 회개 (128-130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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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오늘 본문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서론
서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이 말은 사람이건, 물건이건 속이 비어 있는 것이 더 화려하게 꾸미고, 더 요란한 소리를 낸다라는 의미입니다.
유퀴즈 온더 블럭에 백승권 전 청와대 행정관이 나왔었습니다.
청와대 행정관을 지낸 정도라면, 행정에 있어서는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말과 한 나라의 소식을 대변하는 말들이 글로 표현될 때, 바로 이 청와대 행정관을 통해서 글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 백승권 전 청와대 행정관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보고서를 볼 때, 화려하고, 지나치게 아름다우며, 디자인적인 보고서는 그 내용이 부실한 보고서일 확률이 100%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승권 전 청와대 행정관은 보고서는 디자인적 요소보다는 그 내용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되어야 하기 때문에 간단하고 담백한 형식을 따라 작성될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본론
본론
본문배경
본문배경
1. 하나님의 편지다.
1. 하나님의 편지다.
오늘 본문으로 와서 오늘 본문은 계2:1 에 기록된 것처럼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사도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먼저,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말씀하셨음을 말합니다.
어떤 하나님이 말씀하셨냐면,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하며, 이 편지의 권위를 나타내 줍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7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있다는 것은 오른손에 일곱 별 그러니까 모든 은하와 우주를 손에 잡고 계신 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금색은 가장 아름다움 혹은 강력한 왕권을 드러내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힘을 나타내는 것이죠. 따라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라는 것은 곧 완전한 권력과 힘을 가지신 왕이시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에배소 교회에 편지를 보내신 하나님은 온 우주를 오른손에 잡고 계신 분이시며,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왕이시다라는 것이죠.
그런 하나님께서 지금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2. 편지의 내용: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사랑
2. 편지의 내용: 에베소 교회가 잃어버린 사랑
하나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의 내용을 살펴보면,
2-3은 에베소 교회가 잘 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 줍니다.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가 했던 일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은 것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사도가 아님을 드러낸 것
박해 속에서 참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
입니다.
그러니까 다르게 표현하면,
에베소 교회가 굉장한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아주 잘 아는 자들이었고, 또 그들은 삶에서 드러나는 모습에서도 아주 완벽한 사람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런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신다라는 것이죠.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바로, 그들 안에 사랑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교회의 보이는 모습은 아주 완벽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지식에 있어서도, 행동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칭찬을 들을만큼 아주 좋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 좋은 모습은 계 2:4 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부족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타의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학교나, 회사에서 우리의 속마음은 하기 싫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행하는 그 일들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는 사랑을 통해서 지식에 있어서도, 행동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그 사랑이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혹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다르게 이야기하면, 지금 계 2:2-4 의 내용은 결국 에베소 교회의 잘 했던 모습과 그러나 그들의 근본적인 동력이 배제되어 있음을 드러냄으로 허울뿐인 상태다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마치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말과 같이 말이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돌이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이죠.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늘 본문은 빈 수레와 같아진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그러니까 열심이 있고, 또 그들의 행동에 있어서 의로워 보이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회개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란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이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는 길: 회개
처음 행위를 가지는 길: 회개
지난 주 저는 가볍게 살아가는 방법,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서 회개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자신을 비우는 방법으로서, 가볍게 살아가는 방법으로서 왜 회개를 말씀드렸는지 그 이유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계2:5 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회개’의 의미는 바로 떨어졌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즉, 원래 붙어 있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원래 붙어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오늘 본문은 처음 사랑을 가지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즉, 처음 사랑을 버린 행위와 원래 붙어 있던 곳에서부터 떨어지는 것을 같은 행위로 본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회개하여서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은 곧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은 우리의 원래 상태, 우리가 원래 소속되어 있던 곳, 혹은 우리가 원래 있던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래 모습: 에덴 동산에서의 모습 (창세기 1:26-28)
인간의 원래 모습: 에덴 동산에서의 모습 (창세기 1:26-28)
우리의 원래 상태, 우리가 원래 소속되어 있던 곳, 혹은 우리가 원래 있던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그 개념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하셨던 그 모습, 그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모습, 즉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다스리고, 정복하며, 그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여서 충만하게 거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처음 행위를 가지는 모습, 바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은 바로 창세기에서 드러나는 “에댄 동산"에서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니시는 그 동산에 우리가 부끄러움 없이 거하던 그 모습,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나무를 먹으며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누리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을 누리며,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그 삶을 지칭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계 2:7 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쓰인 회개라는 단어는 다르게 표현하면, “회복"으로 바꾸어 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라서 떨어지기 전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 그러니까 에덴 동산에서 살아갔던 그 사람들의 모습,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본래의 모습으로 말이죠.
신앙의 기준으로서 회개하는 삶
신앙의 기준으로서 회개하는 삶
어떤 회복이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는 관계로의 돌이킴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져라 라는 것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며 우리에게 부여하셨던 모습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것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요약하시면서 주신 두 계명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라는 그 계명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 바로 처음 행위를 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이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처음 상태로의 회복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있어서 회개라는 것이 신앙의 척도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계명을 요약하며 주신 두계명이 증명해주는 바와 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을 날마다 회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날마다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내 이야기
내 이야기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월화수목금퇼 가릴 것 없이 매일 교회에가서 친구들과 놀고, 교회에서 친구들과 숙제도 하고, 교회에서 밥먹고 자는 것빼고는 거의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유초등부 보조교사를 시작했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성가대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교회에서 드럼도 쳤습니다. 물론 중학교 1학년부터 중고등부에서 서기, 총무, 회계, 회장, 부회장 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며, 교회 성도님들은 항상 “이야~! 너 믿음이 참 좋구나!”라고 저를 칭찬했습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교회에서 보내고 20살이 되던 해, 저는 마음의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교회를 가는데, 그렇게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실까? 과연 나는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과연 믿음이 뭘까? 라는 궁금증들로 저의 마음은 가득 채워졌습니다.
한 십수년을 교회에서 살다시피 해보니 이제는 신앙이 아닌 그저 습관으로, 또 교회 어른들의 관심과 칭찬과 인정에 목이 말라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수많은 봉사를 하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쳐가던 저는 교회를 떠나야 겠다!라는 다짐을 하며 겨우 겨우 버티고 또 버티며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교회 성도님들은 항상 저를 볼 때마다 “이야~ 주안이 믿음이 참 좋다"라고 칭찬했고, 저는 의아해 졌습니다.
왜요?
제가 교회 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들은 마지 못해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기 보다는 그저 교회에서 책임감으로, 교회에서 마지 못해 봉사하고 있는데, 내 믿음이 좋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과 함께 저는 교회 봉사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길로 교회 봉사를 하나 하나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유초등부 보조 교사를 그만두고, 성가대도 그만두고, 청년부에서 어떤 역할도 맡지 않았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회 봉사를 거의 다 내려 놓았을 때쯤 저는 “기도 좀 열심히 해라, 니 믿음이 너무 부족하다"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바로, 저의 모습이 에베소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열심은 있고, 열심히 했는데,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랑은 전혀 없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을 깨닳았을 때, 저는 그 자리에서 꺼꾸러져서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는 바로 회개였습니다.
그 동안 봉사를 많이 하면서 교만해 져있는 저의 모습, 쟤는 봉사도 안하고, 맨날 예배도 지각하고, 맨날 예배 시간에 졸고 저 믿음없는 것들 이라 정죄하며, 항상 바른 길을 고집했던 저의 모습이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제 모습을 뒤돌아 보니 제가 욕하고 비판하고 정죄했던 사람들과 저도 똑같더라구요.
이것을 회개하면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여러분 회개한다는 것은 나의 낮음을 보는 것이고, 나의 연약함을 인식하는 것이며, 나의 없음을 보는 것이며, 나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다는 것은 우리를 만드신 그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주는 길이고, 우리로 하여금 천국 백성으로서 완벽하게 만들어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라는 것은 믿음의 척도 입니다.
우리가 부족함을 알고, 연약함을 인식할 때 우리는 나보다 강한 존재,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를 찾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시는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거? 아무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스펙과 학력? 다 쓸모 없는 것들 입니다.
여러분들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신을 비워내는가, 얼마나 가볍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닮아가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라고 말입니다.
바로, 회개를 통해서 날마다 자신을 비워내고,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깨닳아서 그리스도를 경외하고, 그리스도의 그 말씀 앞에 복종하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에 회개의 삶이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그 모습으로 회복하도록 인도하시는 그 길,
우리의 신앙의 척도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만드는 그 길,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이웃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그 길,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며, 믿고 따르도록 하는 그 유일한 길이며, 유일한 능력이며, 유일한 힘, 그 길을 알고, 그 힘을 지니신 자들 답게 날마다 회개하시며 여러분들의 참 존재 앞에 바로 서시는 귀한 인생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