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긍휼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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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네 반갑습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가는 6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함께 앉으신 분들과 ‘성령님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6월은 가까운 근세사로 6.25 한국 전쟁이 있었던 달입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이념으로 인해 나누어진 역사적 현실 앞에서 동족상잔의 큰 상처를 남긴 사건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기도를 통해 이 나라를 지켜 주셔서 나라를 위해 헌신한 많은 분들을 허락하시고 오늘에 이르러 눈부신 성장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6월이 되면 하나님께, 그리고 나라를 위해 피흘린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은혜 안에서 우리 모두는 코로나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는 소망을 견지하고, 우리 교회가 참 복음으로 부산과 대한민국을 넘어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에게도 복된 은혜를 전수하는 일을 헌신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의 본질이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더 깊이 마음을 두고, 힘든 이웃들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주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한 해의 절반을 보내며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맥추 감사절입니다. 보리 추수의 첫 수익을 감사로 드리는 이 절기는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또 신약 교회에 있어서는 성령님이 오신 날로 기념하고 지킵니다. 지난 한 해가 비록 여전히 코로나로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성령님을 기억하고 감사의 예물들을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한 주간 지금까지 주신 은혜들을 기억하고 마음으로 먼저 감사의 삶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S2. 본문의 주제
오늘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깨우쳐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가르침을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요나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이 없는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큰 불평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이 오히려 불만이었습니다. 심판을 되돌이키시고 재앙을 거두시는 하나님은 결코 정당한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그렇게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린 것 같은 데도 그의 인격과 마음은 여전히 선악을 판단하고 구원과 심판을 행하는 일에 자신이 기준이 되고 자신의 생각이 중심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넝쿨의 교훈을 주셨고, 요나는 이 일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자신의 조국에 돌아와 하나님이 주신 이 큰 깨달음을 기록하여 오늘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물론 우리 중에는 이런 요나를 용납하기 어려운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작정하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은혜를 부정하는 요나를 하나님이 왜 살려 두시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지자라면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해야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불평하는 사역자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뭐하시는 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처음에 요나가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겠다며 다시스로 향해 갔을 때 하나님은 요나를 그냥 죽이시ㅈ던지 아니며 버리시고 다른 사역자를 부르시면 됩니다. 북 이스라엘이 망하기 40여 년 전의 그 악한 시대를 살던 그곳에 무슨 소망이 있다고 이런 인간을 선지자로 부르셔서 사용하시느냐 말이에요. 그냥 풍랑을 보내셨을 때 확 죽이시던가, 바다에 던져졌을 때 물고기가 와서 그냥 삼켜서 소화시켜 버렸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인간을 살려 두셔서, 오히려 하나님이 비난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폄하를 받게 하시는가 말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물론 우리 하나님은 심판주이시지요. 또한 복수자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악인에게 복수하십니다. 성도들이 직접 복수하지 않고 다 용서하면 하나님은 그 악에 대하여 회개하지 않는 자를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을 내 생각의 논리 범주 안에 가두어 내가 악이라고 여기는 것에 하나님이 동의하시고 심판자로 서 주시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참여하기를 원하시지 하나님께서 죄인의 마음에 참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혹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의라고 하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뜻에 참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내 뜻을 이루시고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5-9절까지는 하나님이 요나에게 주신 박넝쿨 교훈이고, 10-11절까지는 이를 통해 요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기록하면서 요나는 당시 자신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봅시다.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는 성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보려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대적했던 1-4절까지의 말씀, 특별히 2절과 3절의 말씀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재앙이 니느웨에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회개였다면 이미 일어났으니 이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의 사역이 구원의 사역이 아니라 심판의 사역이라 여겨 재앙이 임하기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읍 동쪽에 나가서 초막을 집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재앙이 어떻게임하는 지를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요나에게 큰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 한 일을 시작하십니다. 6절을 봅시다.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박넝쿨 사진
http://www.kdbl.org/web/board.php?board=zoomB&page=553&sort=subject&sortorder=1&command=body&no=6534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는 사막의 한낮 뙤약볕에 앉은 요나에게 하나님은 박넝쿨을 주셔서 그늘을 만드시고 그로 하여금 기쁨을 누리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박넝쿨은 보시는 대로 박의 잎으로 볼 수도 있고, 최근에는 이 박넝쿨을 의미하는 키카욘을 아주까리나 피마자 잎으로 보는 입장들도 있습니다. 보시는 그림은 피마자 잎이라고 올려 놓은 자료를 참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곧 이어 벌레를 준비하셔서 이 입을 다 먹어 버리게 하십니다. 7절을 봅시다.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뙤약볕 아래에서 하나님이 주신 이 박넝쿨로 인해 괴로움을 면하고 큰 기쁨을 가졌던 요나는 벌레 먹은 박넝쿨이 너무 아쉽고 이게 없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푸념합니다. 8절을 봅시다.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그는 하나님 앞에 박넝쿨이 없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좋겠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히려 요나에게 그게 뭐라고 박넝쿨 하나로 성까지 내며 죽겠다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9절을 봅시다.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설령 성내다 죽어도 자신은 이 방넝쿨을 아끼고 아쉬워하겠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박넝쿨이 없으면 안된다고 죽은 박넝쿨에 대한 아쉬움과 애착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의 박넝쿨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의 박넝쿨이신 예수님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요나에게 있어 자신이 기르거나 수고하지도 않은 그 박넝쿨이 그렇게 소중하고 귀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고 지금까지 길러오신 니느웨의 사람들이 얼마나 귀하겠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10, 11절 말씀을 봅시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여기 하나님이 사용하신 단어가 아낀다는 말씀입니다. 네가 아낀 것처럼 나도 아낀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아끼고 소중히 여기고 불쌍히 여긴다는 후스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하룻밤에 있다고 하룻밤에 사라진 박넝쿨을 준비하셔서 요나에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큰 사랑 때문에 자신의 독생자도 아낌없니 보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고작 박넝쿨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까운데, 죄인이라고 할지언정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낳으신 피조물을 하나님께 얼마나 아까워하시겠는가 말입니다. 그 긍휼의 마음이 아들까지도 보내시고 성령을 통해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돌이키신 것입니다.
J3. 고난 받으시고 구원하신 예수님
J3. 고난 받으시고 구원하신 예수님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심판이 아니라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기에 죽게 하시고 그 믿음 안에서 회개의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박넝쿨 아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을 아끼십니다. 요나는 그저 한낮의 뙤약볕을 피하게 해 주고 자신에게 평안을 주는 그 도구성 때문에 박넝쿨을 아꼈고, 그것으로 인해 누린 평강과 기쁨때문에 박넝쿨을 아겼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며 은혜를 베푸신 그 피조물을 온 인격과 마음으로 아끼셨기 때문에 아들을 죽게 하실 만큼 그렇게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긍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요나의 박넝쿨이 한 일보다 더 큰 일을 우리를 위해 해 주신 것입니다. 낮의 뙤약볕을 막아준 박넝쿨 정도가 아니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거두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사랑의 통로를 열어 참된 구원의 박넝쿨이 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아끼셨기 때문에 참 믿음과 회개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우리 가운데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W2. 참된 긍휼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옵니다.
W2. 참된 긍휼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옵니다.
그저 나한테 좀 유익한 박넝쿨 하나 아끼는 마음이 자비의 마음이 아닙니다. 죄인의 자리에 떨어져 심판 외에는 아무것도 주어질 것이 없는 그 죄인을 위해 아들을 주셔서 십자가에서 죽게하시고, 성령을 보내셔서 주님을 믿고 회개하여 참 구원의 자리에 불러주신 그 은혜의 하나님만이 참 긍휼의 아버지시고 자비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이 크신 긍휼로 니느웨만이 아니라 요나도 구원하셨습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이 크신 긍휼로 니느웨만이 아니라 요나도 구원하셨습니다.
교만하고 완고한 심정을 가진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가 나왔지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긍휼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를 보고도 구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런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죽이거나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 박넝쿨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그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존재였는지, 또 그와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서 니느웨와 다를 바 없는 죄인들임을 깊이 깨닫게 하심으로 요나가 마침내 하나님의 뜻과 자신을 향한 그 큰 사랑을 알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T1. 이런 까닭에 요나는 4장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T1. 이런 까닭에 요나는 4장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단순히 니느웨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구원의 과정에 요나를 깊이 참여시키셔서 그 자신이 얼마나 악한 죄인인가를 보게 하셨습니다. 박넝쿨 하나 가지고 사니 죽니 말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판단하며 하나님의 의에는 전혀 이를 수 없는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회개하는 니느웨는 예수님께서 시대의 표적이라고 인용하신 대상들입니다. 그들에게 직접 가서 그들을 직접 회개의 자리로 이끈 요나도 그 회개 속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회개없이 앉아 다른 사람이 심판 받는 것을 보겠다며 버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넝쿨을 주시고 그의 마음에 생긴 그 아끼는 마음을 통해 죄인을 아끼시고 세상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교만한 눈으로 보니 니느웨가 심판 받아야 할 대상이었는데 그 말씀 앞에서 요나는 자신이 심판받아야 하는 자인 줄 안 것입니다. 결국 회개 없는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가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그는 우리에게 더 넓은 역사적 묵상과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T2. 오늘 현대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T2. 오늘 현대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는 타인을 보며 다른 사람의 죄를 볼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오늘날 신문 기사나 뉴스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죄를 고발하며 살아갑니다. 서로 비난하는 양자를 싸잡아 ‘내로남불’ 한다면서 이를 보는 나는 쏙 빼놓고 그렇게 하는 모든 타인은 다 악하다고 고발합니다. 타인의 죄와 타인의 악에서 나의 악과 죄를 보지 않고, 나는 어떤 경우에도 선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오늘 우리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세상의 죄와 타인의 악을 보고 있습니까? 요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서 판단의 대상이 안되지만, 다른 모든 이들은 다 부정과 심판의 눈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 요나를 회개케 하시기 위해 지금도 박넝쿨을 보내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깨닫도록 은혜를 주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T3. 성도들은 회개함을 통해 의로움을 얻는 은혜의 사람들입니다.
T3. 성도들은 회개함을 통해 의로움을 얻는 은혜의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보며, 타인의 타락과 실패를 보며 정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죄를 깨닫는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 그 사람의 죄가 아니라 바로 나의 죄인 줄 알고 내 속에 있는 것들을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범하고도 완고하고 죄인 줄 알지조차 못하는 주변의 악인을 볼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을 정죄하고 돌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그 악이 내 속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회개하고 새롭게 하는 참된 은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까? 성도는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의를 누리고 죄를 떠날 수 있는 영적인 큰 능력을 얻은 자임을 기억하고 감사합시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긍휼로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모시고 사는 자들임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얻은 자신의 신분을 가지고 스스로 의로운 자기의 나라를 만들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과 자기 민족은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언제나 옳고 정의롭고 복되다고 믿었던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교만하고 악한 마음이 만드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박넝쿨을 보내시고 그가 이 박넝쿨을 아끼는 마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끼는 마음으로, 그 긍휼의 마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요나는 자기가 만든 나라가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와 먼 나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에 긍휼이 없고 스스로를 높이는 오만의 나라를 건설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으로 그 아들을 보내시며 우리에게도 그 낮아짐과 겸손과 긍휼의 마음으로 살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요나의 나라와 같은 완고하고 견고한 진을 무너뜨러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오늘 요나에게 주신 이 박넝쿨의 교훈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세상 것에도 그렇게 아끼고 사랑하며, 하룻밤 있다 없어지는 것에도 그렇게 온 열정을 다하고 사는 내 삶의 박넝쿨들을 통해 죄인을 아끼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깊이 깨닫고 간직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죽게 하시기까지 긍휼과 헌신의 은혜를 보여 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긍휼의 은혜를 붙들고 내 형제들과 내 신앙의 친구들을 그렇게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 믿음의 친구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복음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 긍휼의 사랑이 흘러 넘처 참된 회개의 열매가 아름답게 맺히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진실함 마음으로 섬기는 주의 귀한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