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를 부르시다

주일예배/묵상설교/C-syyle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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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태의 부르심, 그의 삶을 통하여 주님의 부르심의 의미를 살펴보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사는 성도가 되자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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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마태복음 9:9–13 (NKRV)
9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10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1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12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13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제목 : 마태를 부르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선택받아 부르심을 입은 성도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부르심의 은혜에 대하여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 본문 9절에서 10절까지를 함께 읽어볼까요?
주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한 사람을 보십니다.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세관 앞에 앉아있는 마태라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밑도 끝도 없이 딱 한마디 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주님께서 마태라는 사람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는요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는 세리였습니다. 당시의 세리라는 직업은 지금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배한 로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들였는데 그일을 세리에게 맡겼습니다. 로마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둘 때 1년에 거두어 들일 금액을 정하고 그 금액을 세리에게 거두어서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세리에게 월급을 따로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세리에게 로마가 정해준 세금만 바치면 그 외에 얼마를 더 거두어 들이던지 상관하지 않았고 그것을 세리가 가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서 일부는 로마에게 바치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습니다. 세리는 로마가 정해준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두어 들여서 자기의 재산을 축척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세리 삭개오 이야기를 아실겁니다. 세리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서 변화된 이후에 머라고 했죠? 자기가 부당하게 거두어 들인 돈을 갚을 것인데 갑절로 갚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주님을 만나서 변회된 삶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세리가 부당한 방법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들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세리는 말하자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적에게 붙어서 자기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였고, 자기 동족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사람이었고 로마의 앞잡이고, 민족의 배신자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일제 시대의 일제 앞잡이, 친일파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동족들에게 많은 원망과 미움과 분노를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종교적인 죄인으로 여겨진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마태라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자기들의 생각대로 해석했죠 그래서 율법의 해석에 따라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고, 밥도 같이 먹지도 않고 상종조차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인 주님께서,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온전하신 주님께서, 로마 제국의 앞잡이고, 자기 동족의 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는, 종교적인 죄인에게 말을 걸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행동은 당시의 상황에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마태와 같은 직업을 가진 세리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낙인 찍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식사를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교제의 중심은 식탁의 교제였습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가족과 같이 여기고,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죄인과 함께 식사를 하면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부정하게 된다고(죄에 물든다고) 여겨서,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인이나 이방 사람들과는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키는 율법, 하나님께서 순종하라고 하신 율법을 어기고 계시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과 거리낌없이 함께 식사하시고, 교제하시고, 인정해주시는 겁니다.
우리 본문 1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경건한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을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생각대로 율법의 기준에 따라, 주님의 행동을 강하게 공개적으로 비난합니다. 율법이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적용하라고 주신 것인데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차나요 주님이 율법을 어기든 지키든 그것은 주님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남의 문제를 내가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데 사용해서, 죄인으로 만들고,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상종조차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라고 드러내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율법이던, 도덕이던 간에 완전하게 지키고, 죄된 생각 조차도 하지 않고 완전한 존재로 살수 있나요? 결코 그럴수 없습니다. 성경은 로마서 3장 10절에서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목양은혜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정죄하는 것, 그것도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정죄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비난하고, 상종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겸손함으로 성경의 말씀에 따라 함께 살기를 권면해야 합니다~~ .
우리 본문 12절부터 13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주님께서 공개적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바리새인들 뿐만 아니라, 함께 있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의인과 죄인을 비교하시면서 주님은 병든자를 고치러 온 의사이시며, 죄인을 긍휼히 여겨 부르시기 위하여 오신 분임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의미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참으시지 못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죄가 있는 존재는 하나님께 갈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 서서 예배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제사법을 주시고 그 제사를 통하여 죄를 용서받은 후에 하나님께 나아와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도 없으시지만 죄에 영향을 받거나 죄에 물들지도 않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을 긍휼히 여기셔서 인간의 육체를 입으시고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러분 우리는 모두가 병자입니다. 죄로 물들어서 영적으로 병이들어 있습니다. 영적인 병이 육적인 삶속에 나타나서 건강한 상태가 아닙니다.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 병자를 부르신다는 것은 죄라는 병에서 회복시키시고 구원해 주셔서 의인으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회복시켜서 결국은 하나님께 인정받고 쓰임받는 인생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의 인생이 그것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주님께 부르심을 받을 때는 최악의 죄인이었습니다. 탐욕으로 가득했고, 부당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로 풍족하게 살고 있었고,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었고, 비난의 대상이었고, 민족의 배반자였고, 종교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르신 이후에는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열두제자가 되었고, 남은 인생을 복음을 전하는데 바쳤고,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마태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여러분 마태복음은요 마태가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쓴 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은 로마시대의 언어인 헬라어가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히브리 방언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마태복을 읽다보면 다른 복음서와 다른 부분이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있지요 이것은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주님에 대하여 믿도록 하기 위해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겁니다.
여러분 당시에 마태가 복음을 전한 이 유대인들은요~ 율법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고, 율법을 지키는 것을 최고로 여기고, 율법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태를 죄인으로 규정하고, 비난하고, 상종조차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마태에게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기고, 전도해서 주님을 믿음이 구원을 받는 다는 복음을 전해서 구원케하는 임무를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가 전도했을 때 유대인들이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였을까요? 세리였던 사람이, 자기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기나 했을까요? 만약에 제가 마태와 같은 입장이었는데 주님이 명령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저에게 왜그러세요? 저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저의 변화된 모습만을 보고, 인정하고, 칭찬해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그래야 복음 더 빨리, 효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을까요? 이렇게 원망하듯이, 편한 것을 원하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요 마태는 주님께 순종합니다.
마태는 먼저 세관에 앉아있을 때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팽개치고 바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아닌 주님의 가치관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피 흘려 죽으시면서까지 해주신 죄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자신에게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신 사역에 순종합니다.
마태는 마태복음을 쓰면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세리 마태라고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이 그 부분입니다. 자기의 과거를 숨기지 않고 밝히는 것입니다. 자기가 복음을 전할 때 마다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여길 것이고, 어떤 비난을 할 것인지 뻔히 알았지만, 숨기고 싶은 과거를 공격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힘들고 아프게 할 것을 알았지만, 마태는 자기의 과거를 밝혀가면서까지 주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나의 것보다 주님의 것이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이나 상처보다, 주님이 더 소중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나같은 죄인을, 나 죄인 맞는데, 그런데, 그런 나를 용서하시고 변화시키신 주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나처럼 변화되고, 구원의 은혜속에 사는 것이 더 우선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르심 은혜를 받은 우리는 이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신앙 생활의 훈련을 받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의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으로 변화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의 삶이 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이 주님의 가치관으로 변해서,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복음을 전하는 삶이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목양은혜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 공동체를 통한 신앙 생활에 충실하시기륵 주님의 이름으로 권면드리며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마태가 쓴 마태복음은 이제 신약 성경 제 일권이 되었고요, 마태복음을 쓴 날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오늘날에도 살아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마태를 비난하고, 죄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의 인생은 어찌되었는지 알수도 없고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마태는, 자기보다 주님을 우선시 한 마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요~~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도 없고 실패도 없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증거합니다.
우리 롬 11장 29절부터 32절까지 함께 읽어볼까요?
로마서 11:29–32(NKRV)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우리의 과거가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를 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자체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 자체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긍휼과 사랑으로 부르시기에, 그래서 후회하심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심에 반드시 결과를 이루시고 완성하십니다.
여러분 지금의 우리의 삶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구원 받고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주님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 나의 연약함과 과거의 모습 때문에 주저앉아 있고, 주님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는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어떠한 모습인지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목양은혜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버리며서까지, 이 땅에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가시면서 까지 구원해 주고 부르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는 후회도 없고 실패도 없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영원하고 반드시 결과를 이루어내십니다. 마태와 같이 주님을 최우선을 여기시며,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찬양할까요 나는 가리라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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