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느냐 가리느냐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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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앞선 본문과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맹인을 보시고 예수님이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드사 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에 순종하여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어두움 가운데 거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찾았고 그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 것이라고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 평생에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기에 아직은 자신을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며, 죄인이 아니라 선지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육신의 눈만 떠진 것이 아니라 영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평생토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보았고, 율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기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급급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일이 안식일에 있었는데, 안식일을 어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일리 없다며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육적인 눈은 평생토록 뜨고 살았지만, 영적인 눈은 맹인과 같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을 가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영의 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자칫 잘못하면 관성이라는 것이 생겨서 종교적인 형식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이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눈으로 보면서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선한 일을 하시는데 나의 영적 시야가 어두워져서 그 일들을 깨닫지 못하거나 오히려 가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앞을 볼 수 있고, 육적인 눈의 도움으로 어두운 새벽 시간에도 이 자리에 안전하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혹시 우리의 영적인 눈은 앞을 잘 보고 있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리새인들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았고, 암송했으며, 말씀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누구에게 물어도 종교적 열심이 있었던 사람들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영적 시야는 어두워져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새벽기도까지 나왔으니 한편으로 볼 때 종교적 열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열심이나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사실은 바리새인처럼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보다 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고, 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 예수님을 높이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햇수나 나의 직분이 방해물이 되지 않게 조심하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 예수님 앞에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솔직한 마음을 가지셔서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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