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왕상 1:11-14, 22-31(구약 p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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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이 시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곤고한 마음을 긍휼히 여기사 이 시간 부드러운 마음으로 지경하여 주셔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이 온전히 심기워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세파에 찢기고 상한 심령 그대로 주 앞에 나왔사오니 상한 심령들을 치유하사 예배를 통해 온전한 회복의 복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량없는 은혜로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으로 친히 안수하여 주사 깨끗하게 나음을 입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기를 원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환경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안주하게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나태와 게으름, 때로는 교만함으로 신앙의 성장을 방해하는 온갖 세력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우리의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감동에 순복함으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성도로 하루하루 살아감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로 바로 서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피치 못한 사정으로 이곳에서 함께 예배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넘치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사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좇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임마누엘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양」 342장 너 시험을 당해
「교회소식」
1. 2021년 계획된 사업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2. 제한받는 모든 예배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3.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는 빛고을 교회가 되도록
읽을 말씀: 왕상 1:11-14, 22-31(구약 p509)
11 나단이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말하여 이르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음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 이제 내게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을 구할 계책을 말하도록 허락하소서
13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아뢰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여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이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하실 때에 나도 뒤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확증 하리이다
22 밧세바가 왕과 말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23 어떤 사람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왕께 절하고
24 이르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25 그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사령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그들이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였나이다
26 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사오니
27 이것이 내 주 왕께서 정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왕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
28 다윗 왕이 명령하여 이르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그가 왕의 앞으로 들어가 그 앞에 서는지라
29 왕이 이르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하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라
30 내가 이전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반드시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왕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 그대로 행하리라
31 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니라
「들어가는 말」
지금까지 예수님 계보에 언급된 세 명의 여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오른 이 여인들은 유대인들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저마다의 처한 현실에서 신실한 방법으로 믿음을 지켜낸 여인들이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역에 이바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또한 저마다의 개인의 특성과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상황에 적합한 믿음의 삶을 살아내야 됩니다.
때로는 라합과 같은 결단이 필요하고, 때로는 룻과 같은 우직한 순종이 필요할 것이며, 때로는 다말과 같이 막다른 길에 도달 한 상황에 처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오직 약속을 붙들고 순종의 길을 가는 모습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만나는 밧세바와 같은 믿음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행동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응 수위가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결점과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도 결점이 있었습니다.
나사렛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러한 한계에 제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보란 듯이 그러한 한계를 뛰어 넘어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약점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각 사람들에게 열등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러한 열등감에도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왼손잡이들은 다른 아동들과 교류가 생기는 시점부터, 다른 아이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회 부적응을 극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른손을 더 많이 사용하고, 그 결과 양손을 다 사용하게 됨으로, 뇌신경 발달을 더 활성화 시키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어릴 적에 피아노 등의 악기를 가르쳐 양손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동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보다는 그 약점을 잘 알고, 그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열등감은 자기 발전을 자극하는 중요한 동기유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약점을 수치스럽게 여기기보다는 직면하여 극복하면 오히려 약점으로 인해 장점이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이야기]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될 예수님의 계보에 오른 네 번째 여인 밧세바는 죽음의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여차하면 어린 솔로몬과 아들들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밧세바 본인도 다윗 왕 사후에는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밧세바를 둘러싼 이 위기가 밧세바 혼자서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밧세바는 결코 주저 앉아 포기하며 낙담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밧세바는 권력에 희생당한 비운의 여성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시선은 다윗 왕을 미혹한 팜므파탈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라고 정죄하였습니다. 밧세바는 수천 년 동안 음란한 여인, 권력에 대한 탐욕 때문에 남편을 죽인 여인이라는 선입관에 희생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선에도 밧세바는 세상의 시선을 피해 숨어 있거나 권력을 추종하기 위해 비굴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장부와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는 다윗의 모사 아히도벨의 손녀였습니다. 따라서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덕분에 밧세바는 정치적 감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인으로서 한계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보력도 부족하고, 추종하는 사람들도 적었습니다. 특히 할아버지 아히도벨이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이후로는 반역자의 집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밧세바를 둘러싼 상황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왕위 계승 구도측면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밧세바의 아들들 중에 누구 하나도 다윗의 총애를 받아서 다음 왕위를 이을 계승자로 내정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왕자들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힘을 비축한 호족들과 예루살렘 신흥 호족들의 지지를 받는 자들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기록된 인원만 따졌을 때, 19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헤브론에서 태어난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를 포함한 여섯 명의 아들이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밧세바의 네 아들을 포함한 13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은 나이가 어려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헤브론을 중심으로 한 호족들의 지지를 받는 왕자들이 차기 왕권 계승에 유력하다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위를 계승하는데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던 장자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제로 범함으로서 왕위계승의 결정적인 결격사유를 만들었고, 압살롬에 의해서 살해당했습니다.
둘째 길르압은 일찍 사망하였음으로 그 다음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은 셋째 압살롬이었지만, 암논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제 다음 순위는 넷째 아도니야로 형들의 죽음으로 장자의 명분을 이어받았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 왕에게 한번이라도 책망 받은 적이 없는 엘리트였으며 용모도 무척이나 준수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력한 아도니야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군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도 아도니야를 지지하였습니다.
이런 아도니야에 비하면 솔로몬은 경쟁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자랑스럽지 못한 출신 배경으로 인해서 궁중 안에서 별다른 활동이 없었으며 나이도 어려서 특별한 전공을 세우지도 못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왕위 계승에 후보에서 한참 후순위라고 생각되는, 존재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문무 대신들을 모으고 요압과 동생들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도니야는 압살롬이 했던 것처럼 스스로 호의병 오십명과 병거, 기병 등의 군사력을 갖추었습니다(5절). 이것은 명백한 반역 행위입니다. 아도니야의 행위는 압살롬의 행위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윗이 늙어, 기력이 없어 아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아버지 다윗 왕이 기력이 없어 열조에게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군사령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여 반란을 위한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자기의 모든 동생들과 다윗 왕의 신하들을 초청하였지만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예루살렘 출신으로 헤브론 출신인 아도니야와는 대립 관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는 호족들의 힘은 막강하였습니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수도를 옮겨와 여부스 사람의 성 예루살렘에 왕궁을 세웠지만 여전히 헤브론 호족들의 영향력은 막강하였습니다. 헤브론은 자신들의 성읍이 유다의 중심이었다가 예루살렘으로 그 중심을 빼앗김으로 인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헤브론 지역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지금도 헤브론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헤브론 지역에 속한 막벨라 굴에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 부부가 잠들어 있습니다. 또 이곳은 갈렙이 기업으로 받은 땅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중요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심이었던 헤브론이 변방이 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었고 이 반감은 압살롬의 반역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었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등에 업은 아도니야를 밧세바가 이겨낼 수 있을까요?
심지어 군사령관 요압 조차도 아도니야를 지지함으로 막강한 군사력으로 구테타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종교적으로도 아비아달의 지지를 받음으로 인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밧세바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위기의 순간 나단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서 밧세바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밧세바는 나단의 조언에 따라 다윗 왕의 침소로 나아가 다윗 왕이 자신에게 맹약한 언약을 상기시켰습니다. 밧세바가 얼마나 긴박하게 다윗 왕에게 나아갔던지, 정상적인 출입절차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밧세바가 두 번째 다윗왕의 부름을 받을 때나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나아 갈 때 정상적인 궁중의 법도에 따라 입장 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행동으로 밧세바의 단호한 믿음을 옅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침소에 정당한 절차 없이 출입하다가 여차하면 밧세바는 다윗 왕을 헤칠 수 있다는 이유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왕에게 나아갔던 것처럼 밧세바는 다윗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밧세바가 다윗 왕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다윗 왕이 약속한 언약과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 뒤를 이어 왕의 침소로 들어와서 아도니야의 반란을 보고합니다. 더 이상 다윗 왕이 후계자를 세우는 일에 망설이거나 지연할 시간이 없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기력이 다해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후계를 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이 왕위 계승을 지연함으로서 아도니야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다윗의 말년에 왕위 계승을 위해 아들이 둘이나 잃었다는 것은 다윗의 뼈아픈 실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나단 선지자의 충언으로 다윗은 결단을 내리고 왕위를 솔로몬에게 계승하도록 합니다. 다윗 왕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친위대장 브나야를 불러서
‘너희는 너희 주의 신하들을 데리고 내 아들 솔로몬을 내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고 거기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고 너희는 뿔나팔을 불며 솔로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하고 그를 따라 올라오라 그가 와서 내 왕위에 앉아 나를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내가 그를 세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통치자로 지명하였느니라’(33-35절) 명령합니다.
아도니야가 먹고 즐기기를 마치고 개선하려는데 갑자기 예루살렘 성 안에서 뿔나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와서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 소식들 듣고 혼비백산 흩어지고 아도니야는 성막으로 달려가 제단 뿔을 붙잡고 자신을 죽이지 말아 달라 애원합니다.
순식간에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주목 받지 못하던 솔로몬은 왕이 되고 누구나 다 왕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유력한 아도니야는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일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적용]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이 살면서 접하게 되는 어려운 난관조차도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에 있는 것이라면, 그 고난도 기쁘게 맞이해야 합니다. 그 고난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상급을 담을 수 있도록 우리를 빚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11:40에는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7:11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절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고난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해도 낙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광야 학교를 통과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전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위치로 나를 이끄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밧세바는 남편 우리야가 죽은 이후에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후손이 없이 죽었습니다. 당시 아들이 없이 남편이 사망한다는 것은 아내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사망 선고였습니다.
물론 다윗이 왕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행한 일이었지만, 밧세바는 ‘남편 우리야를 죽이고 간음한 여인으로 평가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다윗 왕을 유혹하여 권력을 향한 야욕을 채운 여인으로 비난 받았습니다.
이렇게 손가락질 받는 여인 밧세바가 궁중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특히 할아버지 아히도벨의 역모 가담과 죽음 이후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투명인간처럼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었지만 다윗이 나이가 많아 기력이 없어 궁중의 권력 다툼의 피비릿내 나는 전장 속에서 매번 보호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밧세바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다윗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성도들이 어려운 일에 처해 있을 때 부르짖어도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듯 , 위기의 순간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밧세바가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밧세바가 낳은 솔로몬 만이 유일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의 뜻을 가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것을 보아도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2:24-25절을 보면,
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여러분!
다윗의 아들들 중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통과한 사람은 솔로몬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정에서 어머니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동포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어머니가 유대인인가?입니다.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유대인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버지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인정 받게 됩니다.
따라서 솔로몬의 신앙의 모습에 어머니 밧세바의 영향력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밧세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감각과 할아버지 아히도벨에게 전수 받은 전략,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순종을 끊임없이 솔로몬에게 강조하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육 덕분에 마치 사무엘이 기름병을 들고 이새의 아들들을 찾아가서 외모가 출중한 형들이 아닌 보잘 것 없이 들에서 양이나 치고 있던 다윗에게 기름 부었듯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존재감 없는 솔로몬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밧세바의 헌신적인 교육과 담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 밧세바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침묵은 곧 내가 나서야 할 때, 내가 움직여야 할 때라는 메시지 일 수 있습니다. 밧세바 역시 다윗의 침묵을 밧세바 자신이 행동해야 하는 사인으로 받아드렸고 나단 선지자의 계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믿음을 인정받는 여인이 되었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왕자의 난 중에서 존재감 없이 미약한 솔로몬이 당당하게 싸움에서 이기고 왕위를 계승함으로 최종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밧세바를 둘러싸고 있었던 상황은 어떻게 보면 단점투성이고 밧세바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해서 밧세바와 아들 솔로몬을 빚으시고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가심으로 그 한계를 뛰어 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침묵하고 있는 동안 밧세바가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시고 계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잘 표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편 소개하려합니다.
다섯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아들이 유독 병약하고 총명하지도 못하여 형제들 속에서조차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아들 때문에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느 하루, 아버지는 다섯 그루의 나무를 사 왔습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자식들에게 한 그루씩 나누어 주며 1년이라는 기한을 주었습니다.
가장 잘 키운 나무의 주인에게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데리고 나무가 자라고 있는 숲으로 갔습니다. 놀랍게도 유독 한 그루의 나무가 다른 나무들에 비하여 키도 크고, 잎도 무성하게 잘 자라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였던 바로 그 아들의 나무였습니다.
약속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지만, 예상대로 그 아들은 자기가 딱히 원하는 것을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아들을 큰 소리로 칭찬하면서 이렇게 나무를 잘 키운 것을 보니 분명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것이며 그렇게 되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모두 앞에서 공표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로부터 명분 있는 지지와 성원을 한 몸에 받은 이 아들은 성취감이 고조되어 식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얗게 지낸 새벽 잘 자라준 나무가 고맙고 하도 신통하여 숲으로 갔습니다. 어스름한 안개 속에 움직이는 물체가 그의 나무 주변에서 느껴졌고 곧이어 물조리개를 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아들의 깊은 두 눈에 오랫동안 새겨졌습니다.
그 후 이 아들은 훌륭한 식물학자는 되지 못하였으나 미국 국민들의 가장 많은 지지와 신뢰를 받은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으로서, 국내적으로는 1930년대의 대공황 타개를 위하여 뉴딜정책을 추진했고, 대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을 지도함으로써 이후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을 탓하고 있을 때, 어려움에 직면하여 낙망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가 모르는 그 모든 시간 중에도 하나님의 물 조리개는 우리를 향해 뿌려지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믿음은 크고 푸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가 막힌 반전 카드를 우리 각 사람을 위해 이미 준비해 두고 계십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광야 사관학교를 졸업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 예비하신 섭리에 따라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기에 따라 동일한 상황이지만 극복하지 못할 한계가 되기도 하고, 한 단계 성장 할 수 있도록 돕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결론」
여러분 오늘 밧세바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감동을 받으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까?
밧세바는 자신을 둘러싼 여건을 보고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처해진 여건 속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할 때면 먼저 여건을 따져보고 가능성이 있는지를 따져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건이 불미한 경우 낙담하고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밧세바는 자신이 가진 핸드캡과 결점에 매이지 않고 그 결점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 입어 그 한계를 극복하였습니다.
밧세바가 목숨을 걸고 솔로몬의 왕위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모든 허물과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여디디야’ 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성도들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환경이 순탄하거나 여러분의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열악한 중에 하나님께서 밧세바에게 은혜를 베푸셨듯이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이제 밧세바처럼 우리도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어떤 대적들이 우리를 우겨 싸더라도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십니다. 또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원한 승리를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우리들 또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밧세바처럼 담대히 일어나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한계를 뛰어 넘어 하나님이 뜻하신 일들을 이루어 내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을 통해서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에 대해 알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서 상급을 준비하시고,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시간 동안에도 우리를 위해서 일하시며 우리를 돌보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시시때때로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때로는 절망하고 낙심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이겨내려 결심하였다가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고 침묵의 시간이 길어짐에 절망하고 포기하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시간들이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바로 내가 믿음으로 행동해야 할 때였음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이 감동을 잊지 않고 언제나 주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있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흔들리지 않고 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후로 이 땅에서 성도로 살아가는 동안에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우리를 둘러싼 한계를 뛰어 넘는 성도들이 다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승리하는 삶을 누리도록 도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오늘 말씀을 마음에 품고 믿음의 결단을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부르짖음에도 하나님이 침묵하시고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나를 향하여 그 눈길을 떼지 않으시고 나의 한걸음 한 걸음을 응원하시고 내가 모르는 순간, 내가 낙심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하심을 기억하며 “주가 일하시네”를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폐회 기도」
우리 함께 주기도문 하심으로 수요 예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