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5)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9 views
Notes
Transcript
중학교 시절, 친구가 나에게 노량진에 있는 속독학원을 다니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친구에 이끌려, 상가건물 오층에 창고와 같은 속독학원에 같다. 학원선생은, 펼친 책 두 페이지를 한 눈길로 모두 파악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모두 뇌에 저장되는 비법을 가르쳤다. 물론 거짓말이었고, 나의 독서습관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독이 되었다. 책은, 천천히, 되도록 다시 읽어야 자신의 지식과 지혜가 된다. 독서는 자신의 마음에 거룩한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다. 나는 농부가 되어, 내가 심은 종자가 마음속에서 잘 자라나는지 인내를 가지고 지켜봐야한다.
하루는 내게 선별한 책의 할당된 분량을 깊이 읽고, 그 깨달음을 글로 옮기는 제한된 시간이다. 좋은 글쓰기는 깊은 독서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하는가? 시중에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베스트셀러를 읽을 것인가? 아니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직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고전을 읽을 것인가? 혹은 더 나아나 독자의 삶을 읽을 때마다 변화시키는 그런 고전 중에 고전인, 경전을 읽을 것인가? IT와 SNS시대, 고전은 유물이 되었고 경전은 잊혀졌다. 인간의 욕심을 부추기는 책들이 우리를 점점 단세포 동물로 만들고 있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오늘의 삶을 가치가 있게 만들 것인가? 사람마다 자신이 선호하는 책이 다르다. 나도 매년 몇 권의 책을 선정하여 그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 동일한 책을 수개월 혹은 1년에 일독씩 일생동안 읽는 재독再讀은 내가 책을 대하는 방식이다. 작년에 읽었던 책이지만, 올해 다시 정성스럽게 읽으면, 그 책은 나에게 자신이 품고 있던 다른 진주를 보여준다. 그 진주를 찾아 나서, 한 문장, 한 단어에 천착하여 오랫동안 이리저리 읽으려는 기술을 만독再讀이라고 한다.
나의 하루 독서는 재독이며 만독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내가 쓴 책들을 포함하여, 신문과 같이 한번 읽고 치워버려도 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저자가 자신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쏟아 부은 정성과 실력에 비례하여, 책의 수명이 정해진다. 우리가 아는 책들의 수명이 기껏해야 몇 달이다. 그런 책은 우리의 생각을 고양시키지 못한다. 마치 인스턴트 음료처럼, 더 목마르게 만들고 그런 류의 책들에 중독되게 만든다.
철학자 니체는 그런 다독과 속독의 폐해를 지적해왔다. <여명>이란 책의 서문에서 천천히 읽고 천천히 쓰는 사람이 되라고 충고한다. 그는 바빠서 서두르는 사람에게 절망감을 안겨주는 글만 쓰기로 작정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을 피롤로지philology, 즉 고전 문헌학을 통해 수련한 글읽기와 글쓰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고전문헌학은 존경받을 만한 예술입니다.
그것은 추종자들에게 한 가지만을 요구합니다.
한 곳으로 진입하여 순간을 구별하여 조용하라고,
느릿느릿하게 되는 것,
그것은 마치 금세공인이 여유를 요구하는 기술을 언어에 적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예술은 천천히 진행되어 세련된 결과를 도출시킵니다.
그것은 느림이 아니라면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문헌학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됩니다.
....
고전문헌학은 서둘러 작업을 마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잘 읽는 것을 가르칩니다.
잘 읽기는 천천히, 심오하게, 세심하게, 현명하게 읽는 것입니다.
잘 읽기는 내면의 생각으로,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놓고 신중한 손가락과 눈으로 읽는 것입니다.”
니체는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추적하여,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한 반면, 고대 로마시대 스토아철학자 세네카는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기술했다. 그는 인생말년에 남긴 루킬리우스에 보낸 편지들 중 두 번 째 편지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몇 권의 책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당신은 주요한 사상가들에 남긴 몇 권에 머물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합니다.
어디나 있는 것은 아무 곳에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Nusqam est, qui ubique est)
어떤 사람이 외국여행으로 모든 시간을 보내면, 많은 사람을 알게 되지만 친구는 없습니다.
한 저자와 긴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여러 저자들과 만나기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입니다.
그는 급하게 서둘러 책을 읽습니다.
그것은 몸에 들어간 음식이 바로 위를 떠나 소화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약을 자주 바꿔 치료를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상처도 여러 약을 자꾸 바른다면 아물지 않습니다.
자주 옮겨 심는 나무는 튼튼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나는 속독과 다독을 자랑하는가? 이제 인생의 책 한권을 정해 재독하고 만독 할 시간이 왔다. 그 훈련을 통해, 인생 자체를 심오하고 감동스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2021.6.27. (日曜日) “만독漫讚”|작성자 매일묵상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