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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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네 청년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렇게 교회당에 앉아서 청년 모임으로 예배를 드리니까 또 새로운 느낌이 듭니다. 우리 옆에 누가 왔는지 한 번 쳐다보면서 ‘반가워! 안녕’ 하고 인사 한 번 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그동안은 설교보다는 강의에 초점을 두고 구약과 신약의 개략적인 구성을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졌다면 중요한 시간이 되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면 다소 어려운 시간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는 것은 여러분들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S2. 본문의 주제 제시
S2. 본문의 주제 제시
오늘부터는 이제 1단계 상황이라 전체 모임을 조금씩 정상화해 나가는 것이 좋겠다 싶어 말씀을 전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시편 1편은 2편과 함께 시편 전체의 서론이 됩니다. 1편은 율법을 이야기하고 2편은 인자이신 메시야를 소개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율법의 주제이신 그리스도를 항상 묵상하는 것이 복된 삶을 가져오는 통로라고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율법을 묵상하는 삶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율법을 묵상하는 삶이 어떻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는 지 함께 살피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우리는 종종 삶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 그래서 지식이나 기술, 혹은 스펙 등을 쌓고 개발하는 것은 중요하고 급한 일들입니다. 이것을 위해 다른 덜 중요한 것들은 희생을 하면서라도 이런 것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에서 신앙은 뒷 전이 되고, 믿음의 삶은 나중에 고민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할일도 많고 바쁜데 어떻게 내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의 양식을 말할 수 있느냐? 당장 발 앞에 떨어진 취업이 급하고 결혼이 중요하고 태어난 애 신경 쓰는 게 우선이지 다른 것은 좀 여유가 생기면 해야 하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방법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만 생각해보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사는 것이 중요하고 우선이지 무슨 영의 일을 앞에 두고 서둘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우리만 사는 세상이 아니며 또한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세상을 지으시고 만드신 하나님, 나를 지으신 참 내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내게 대해 어떤 계획과 꿈을 가지시고, 내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기를 원하시는 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목적과 내용과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까지도 다 세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는 관심없이 기계처럼 그냥 돌리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삶 하나 하나가 정말 아버지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기 위해 성경을 주셨습니다. 특별히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삶의 규범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규범을 실패했을 때를 위해 제사의 의례로 알려 주십니다. 제사를 통해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더구나 그 제사는 단순히 형식이 아니라 오실 예수님의 보혈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이 세상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1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1절에는 복있는 사람을 유혹하는 내용들을 말해 줍니다. 악인들의 꾀, 죄인들의 길, 오만한 자들의 자리는 항상 성도를 유혹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사롭잡아 우리가 항상 그것들을 생각하고 그 혜택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미혹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항상 마음에 꿈꾸고 묵상하는 것이 어떤 것입니까? 가만 보면 악인의 꾀를 나도 생각하지 않습니까?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하게 살기를 꿈꾸고 있지는 않으냐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복있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버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묵상이나 소원을 내려 놓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지요. 오히려 복있는 사람은 무엇을 묵상합니까? 우리 2절을 봅시다.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참 복을 소유한 사람은 율법을 기뻐하고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오늘 우리가 공부한 대로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즐거워서 그것을 아침과 저녁에 묵상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QT를 아침과 저녁에 한다는 뜻이지요. 하루 두번은 QT를 하는 생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 좀 광신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복있는 자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왜 그렇습니까? 아니 구약책은 옛날 책이고 율법하면 법이고 규칙인데 그것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좀 특이한 사람이 아니면 그런 부류의 책을 기뻐하고 그것을 아침, 저녁으로 읽는 데 어떻게 그게 좋을 수가 있냐 말이죠. 그래도 역사 이야기 부분은 좀 덜하고 시같은 것이라면 몰라도 율법을, 아니 십계명을 어떻게 즐거워하며 주야로 두번씩 큐티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모든 부분이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고, 나아가 오실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과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글자를 읽거나 문자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타내 보이는, 혹은 계시하는 예수님,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고 보고 그래서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연애 편지를 쓴다거나 문자를 보낸다고 하면 우리가 그 편지와 문자를 글자로 보고 그 글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그 사람이 보낸 것이라는 점에서 그 편지는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편지고 지울 수 없는 문자겠지만, 편지 자체나 문자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죠.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한다는 것은 그 문자를 혹은 그 문학을 좋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죠. 우리가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인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통해 삼위일에 하나님, 창조주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이런 까닭에 여러분, 성경을 통해 율법과 선지자와 시가서,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셔서 그 분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생각하면서 참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풍성하게 만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그러므로 성도의 묵상은 우리에 육신을 입고 오신 사람되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묵상한다는 말은 중얼거린다는 뜻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묵상한다는 것을 명상한다거나 생각한다고 하는 복잡한 말로 이해하기보다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중얼 중얼 거기면서 내 귀에 그 말씀을 들려 주어서 그 말씀이 증거하는 예수님, 나아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 묵상이라는 말이 사색이나 깊은 명상으로 이해되고 있어서 그렇지 실제로 유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중얼 거리면서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합니다. 우리말 묵상이라는 것은 말없이 생각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실 성경이 가르치는 묵상이 아닙니다. 성경은 중얼거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두고 묵상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사자가 고기를 앞에 두고 어르렁 거리며 먹을 때 내는 소리에서 나온 의성어라고도 합니다. 이는 집중력을 가지고 다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딱 막아서서 어릉어릉 하면서 먹는 모습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얼 거린다는 표현으로 인해 가벼운 묵상을 생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의 묵상은 집중력과 방해받지 않는 독립성을 강조한 중얼거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묵상할 때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또 기도할 때도 소리내어 기도하기도 하면서 오직 집중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묵상은 기도이기도 하고, 더하여 성경 암기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소리내어 내 귀로 들으면서 그것을 소원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묵상인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말씀의 내용이십니다.
W1. 예수님은 말씀의 내용이십니다.
이렇게 묵상할 때 말씀을 읽는 것이든 암송하는 것이든 묵상의 중심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 안에는 하나님이 드러나 계십니다. 동시에 말씀 혹은 율법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예수님을 뜻하고 드러내는 용어들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기에 말씀하는 성경은 구약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시가서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체 구약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기에 정작 예수님이 오셔서도 예수님을 못알아 봤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혹은 문학적으로만 보아서 정작 그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묵상해야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야 하고 예수님을 묵상하게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성경 묵상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온전한 묵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의 내용이 되시는 에수님을 성경을 통해 깊이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W2. 묵상은 바로 그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W2. 묵상은 바로 그 예수님을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상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야기 안에서, 혹은 주신 율법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면 이 말은 일차적으로 우리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는 말씀이구나 하고 적용을 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율법으로서 주신 말씀이지만, 그 의미는 빛이 바로 주님 자신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 빛이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묵상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빛됨을 적용하기 이전에 먼저 빛이신 에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알게 해 주시기를 구하고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이신 예수님 안에 내가 들어가서 나도 빛이 되게 해 주실 것을 적용하는 것이 참된 묵상인 것입니다.
구약을 읽을 때도 우리가 지난 번에는 사무엘상을 통해 사무엘, 다윗, 그리고 사울 등을 살폈는데 이런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내게 적용부터 시작하면 그것은 윤리적, 혹은 교훈적 내용을 찾는 것이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물들이 그 독특한 상황에서 보여주고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예수님을 묵상할 때 우리의 묵상은 참된 묵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 안에 들어가서 내 삶에도 그 주님의 삶이 드러나기를 적용할 때 온전한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묵상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W3. 하나님은 묵상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성도는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나아가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자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나아가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기록하신 그 말씀을 우리에게 조명해 주시고 그 조명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뜻을 알아 순종하며 사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묵상하는 자가 복을 누린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 묵상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시고 묵상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T1. 묵상하는 사람은 하늘의 복을 누립니다.
T1. 묵상하는 사람은 하늘의 복을 누립니다.
시인은 묵상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 뜻을 행하며 살 수 있기에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은 은혜의 사람이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3절을 봅시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묵상하는 사람만이 나무가 시냇가의 흐르는 물로부터 양분을 공급받듯 하나님으로부터 양분을 공급받아 많은 열매를 맺는 복의 사람이 될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사람만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T2. 말씀 묵상이 없는 현대인은 위기의 삶을 삽니다.
T2. 말씀 묵상이 없는 현대인은 위기의 삶을 삽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이는 위기에 봉착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말씀을 묵상하는 대신 악인의 꾀, 죄인의 길, 나아가 오만한 자의 자리만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공동체에서 버림을 받는 자가됩니다. 4, 5절 말씀을 봅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그는 삶의 뿌리가 깊지 못하고 바람과 시류에 날려 다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는 심판을 받은 인생이 되고, 의인들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이것이 묵상이 없는 인생의 운명힙니다.
T3. 성도는 묵상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묵상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고 묵상을 통해 주님을 만나 영생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 안에는 생명이 있고, 나아가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모든 경건의 능력을 공급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 주님을 묵상하고 그 뜻을 알게 된 자는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6절 말씀을 봅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하나님은 의인의 길을 인정하시기에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삽니다. 그러나 말씀 묵상없이 홀라사는 자는 그 길이 망하게 되고 죽음의 자리에 않게 되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L5. 그러므로 청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세상의 것들을 묵상하는 데 젖어 살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서 벗어나고, 오만한 자리를 박차고 겸손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묵상하고 소망하다가 잠시 이 길에서 성공을 얻게 되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 망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겸손히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십자가에 죽으신 그 은혜를 만나게 되면 우리의 묵상은 우리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로 나가게 됩니다.
L6. 청년 여러분!
L6. 청년 여러분!
이제 여름의 치열한 시간들을 앞에 두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 더위 속에서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데에 마음을 집중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삶의 습관들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되 그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내 삶에 적용하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만날 때 복이 있고, 은혜가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말씀 묵상을 회복하여 주님을 만나고 거룩한 은혜의 길을 누리는 청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