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사람들

야고보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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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에서 의인들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놀라운 일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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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4단계로 넘어가자 예배도 모두 비대면으로 바뀌었고, 2명이상 저녁에 모이지 못하니 자영업자들도 큰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모두다 코로나 변이종인 델타변이 바이러스 때문입니다.
그런데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지게 된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서로 돕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원래 델타변이 바이러스는 인도에서 크게 번졌습니다.
그때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선진국들은 다른 나라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인도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나오는데도 자기 나라 창고에는 백신이 넘쳐났지만 그들에게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도에서 델타변이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좋아지고 있던 미국도 다시 안 좋아지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이유때문에 뒤늦게 미국도 자기들만 생각해서는 이 문제가 끝나지 않을 것을 깨닫고 다른 나라들을 도우려 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나라들은 코로나 검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미국과 몇몇 선진국들만 좋아진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죠.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나만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남이 살아야 나도 살고, 남이 죽으면 나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교회 안에 돌아다니는 시기와 질투, 원망과 불평을 가만 둬 보십시오.
분명히 그것이 내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라는 게 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니라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다른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본론]
먼저 우리는 당시 교회의 상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교회는 종교적 이유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사회, 경제적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밖에서의 핍박과 고난보다 더 위험했던 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적인 가치관이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눠졌고, 서로 말을 함부로 하고, 불평과 비방이 난무했습니다.
이렇게 안 밖으로 여러가지 시험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 해결책을 제시한 게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난이란 피할 수 없는 시험과목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그 과정을 이겨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냥 힘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힘입니다.
그 힘을 얻기 위한 도구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2002월드컵에서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국민들이 엄청나게 응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의 때에 기도는 하늘로부터 격려와 위로의 힘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괴로울 때 기도했다면, 즐거울 때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즐거울 때 기도하는 게 바로 곡조붙은 기도인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때에는 힘드니까 주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자연스럽게 기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즐거울 때에는 주님을 잊어버리기가 매우 쉽습니다.
인간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자기가 힘들 때는 주님을 의지하지만, 그 어려움이 지나가고 나면 주님을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가 힘들때뿐만 아니라 기쁠 때에도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곡조붙은 기도인 찬송입니다.
찬송은 주님이 내게 하신 일을 기뻐하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기도가 필요할 때가 또 있습니다.
바로 병들었을 때입니다.
당시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받는 각종 차별과 핍박으로 인해 병이 들기도하고 심신이 매우 약해졌습니다.
이렇게 약해지면 스스로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리더들인 장로들입니다.
장로들은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병들어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찾아가 기도해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서론에서 말했던 중보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도 해주었지만 기름도 함께 발라줬습니다.
기름을 발라준 이유는 기름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름은 성경에서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에게 붓는 하나의 의식입니다.
여기서도 그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그 사람이 하나님께 구별된 사람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이 사람 특별히 관심을 가져주십시오”하는 의미로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위해 기름을 바르는 것도 기도해주는 것도 모두 주님을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결국 병을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동력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간혹보면 기독교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중에 병에 걸렸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거나 약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의술의 힘이나 약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마치 믿음없는 사람이 하는 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약이나 의술없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약과 의술도 크게 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혜로 그러한 약과 의술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의술로 고쳤다고, 약 먹고 나았다고해서 하나님의 능력이나 은혜가 아닌 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해서 낫는 기적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의술과 약으로 낫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 하나님의 손을 잘 움직일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을 ‘능력있는 기도’라고 부릅니다.
15절은 그 능력있는 기도의 비결 첫번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로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병을 낳게 하는 것은 기도 그 자체가 아니라 기도 속에 들어있는 ‘믿음’때문입니다.
기도의 효력은 기도의 시간이나 기도의 형식에 달려있는 게 아닙니다.
기도의 효력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도 병을 치유받는 데 있어 ‘믿음’을 매우 강조하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이란 하나님이 내 기도를 통해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점이 한가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모든 사람이 치유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치유받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병은 치유받는 게 무조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여기지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결정의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믿음입니다.
또한 병과 죄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병이 죄로 인해 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15절 후반부를 보면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무분별하게 살면 여러가지 병에 걸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으면 여러가지 성인병에 걸립니다.
무분별한 성적행위도 성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혹시 죄를 지은 게 있다면 고백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병의 치유를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여기서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남에게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죄를 하나님께만 고백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죄를 서로 서로 고백하고 서로 서로 용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그들을 치유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이어 능력있는 기도의 두번째 비결을 소개하겠습니다.
그것은 ‘의인이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16절 마지막 부분을 보십시오.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냅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특별한 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위대한 성인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품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길로만 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지뮬러라는 사람은 ‘고아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이신데 그분은 평생 5만번 하나님의 기도응답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 구하지 않고 고아들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구하자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러한 의인으로 ‘엘리야’를 들고 있습니다.
먼저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가장 타락한 시기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대부분 ‘두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지만 우상도 함께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 흐름에 대항하며 하나님만 섬기며 살았던 예언자가 바로 엘리야입니다.
세상 흐름에 물들지 않고 타락한 이스라엘에게 경고를 날렸던 의인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그는 혼자서 수백명의 우상숭배자들과 대결을 했습니다.
누구 신이 진짜 신이냐 대결을 한 것이죠.
그 대결에서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열심히 빌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그 기적으로 인해 그는 수백대 일로 싸워서 이겼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일을 다 마치자 죽지도 않고 바람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정도로 그는 사람들에게 매우 능력있는 예언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 엘리야가 그렇게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로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난 게 아닙니다.
17절에 보시면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특별한 점은 그의 육체적 능력이나 영적인 능력이 아니라 그의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하도 우상숭배를 많이 하고 하나님을 배신하자 하나님께 이 땅에 가뭄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냐면,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던 신들이 모두 비를 내려 농사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들이었습니다.
바알, 아세라 신들이 대표적인 우상들입니다.
그럼 그 신들이 가짜신이고 아무 능력도 없는 무의미한 신이라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요?
방법은 그 신들에게 백성들이 아무리 기도해도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스라엘땅에 가뭄이 오기를 기도했는데 정말로 3년6개월동안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고 극심한 가뭄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아세라 신에게 기도해도 비가 내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뭄으로 인해 너무나 고통당하자 이번에는 엘리야가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열왕기상18장 41절부터 보면 엘리야가 무릎꿇고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넣어가며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손바닥만한 구름이 생길 때까지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무려 7번을 기도하고 구름이 생겼나 확인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손바닥만한 구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큰 구름이 되어 비를 내리기 시작했고, 땅에서는 수확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비가 오지 않게도 하고, 비가 내리게도 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간절한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믿음의 기도를 드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우리처럼 연약한 자입니다.
엘리야는 수많은 우상숭배자들과 대결해서 승리했지만 그 뒤 이세벨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비겁하게 도망쳤던 사람입니다.
한때, 그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 주님께 죽여달라고 구했던 사람입니다.
다 타락한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한다며 원망과 불평을 털어놨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무엇때문일까요?
바로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연약하고 실수 많은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엘리야와 같이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제 19,20절 마지막 결론입니다.
시작이 ‘나의 형제, 자매 여러분’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담아 마지막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밖의 시험으로 인해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을 서로 서로 돌보아 돌이키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릇된 길로 가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마음 속에는 세상기준이 들어와 있어 믿음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재물, 학력, 지위같은 세상기준으로 사람을 차별대우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불평과 원망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하나님만 계신게 아니라 세상 신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마음을 품은 것’ 입니다.
그런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을 위해 교회가 중보기도한다면 분명 그들도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 설교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중에 수석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그는 성격이 ENFP였을 것 같습니다.
열정은 있지만, 뭐든지 급하고, 불같고, 실수도 많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님을 배신하여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비겁한 사람입니다.
그는 아마 제자들중에 가장 연약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예수님의 수석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왜일까요?
왜냐하면 그가 연약할 수록 주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사도바울을 보십시오.
기독교를 뒤집어놓은 사람아닙니까?
그가 없었다면 아마 기독교는 전세계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누구였습니까?
원래 그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죽이는 열성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삶을 바꿔주셨고 그는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과거 너무나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었기에 오히려 위대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 강함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그런 주님을 움직이는 유일한 길은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의 능력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손을 움직일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위대한 기도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을 위해 기도한 게 아니라 남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하나님이 더 잘 들으시는 기도는 그리스도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주위에 병든자, 힘겨워하는 자가 있다면 믿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의인의 기도를 드립시다.
그러면 주님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런 저와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모두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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