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찢겨진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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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비전이 있으십니까? 꿈 말입니다. 이제는 꿈을 이룬다는 것은 그저 낭만적인 말이 되었습니다. 삼포세대(三抛世代)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합니다. 요즘 코로나 변이 델타 감염자가 증가하는 이와과 같은 상황은 이 모두를 포기해야할 것 같은 좌절과 절망이 밀려 오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입니다. 비전의 공동체 공동체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비전이라는 것은 상황과 관계 없이 하나님이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을 뜻습니다. 비전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의 품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무엇이라 합니까? 야망이라 합니다. 야망은 자기 욕망에서 나온 것이라서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경건! 언행일치! 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자기 위치, 자기 자리, 자기 명성 밖에 챙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전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토대로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함께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망은 그것을 지닌 사람이 죽을 때 사라지지만, 주님이 주신 비전은 그 사람이 죽어도 영원히 이어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창세기 37장부터 등장하는 요셉은 하나님의 꿈을 품었습니다. 37장 2절에 보니 요셉이 하나님의 꿈을 품기 시작한 나이가 17세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누구입니까?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특별히 4명의 부인들 중에 가장 사랑했던 라헬로부터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아들과 달리 특별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특별히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 옷은 적어도 야곱에게는 그냥 단순한 옷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지어준 채색 옷은 아버지의 영광과 권위가 들어 있는 옷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마음에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신의 권위와 영광으로 옷을 지어서 요셉에게 입혀 기뻐하신 것입니다. 다른 아들들이 바깥에서 일할 때에 야곱의 "참 아들" 요셉은 아버지의 꿈이 담긴 그 옷을 입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채색 옷은 야곱의 사랑과 기대와 꿈이 담긴, ‘옷 이상의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이와 같은 행동이 요셉의 형제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를 일으켰습니다. 흔히들 사람사이에, 혹은 가족 안에 존재하는 ‘관계역학이라는 것이, 파워게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곳이나 존재하지요. 예를 들어, 회사에서 후배가 열심히 하고 조금 잘하면 선배는 칭찬하고 격려하거나, 선의의 경쟁을 하던지 해야 하는데, 뒷담화를 하고 어떻게든 끌어 내리려고 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나 봅니다. 결국 형제들은 동생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수습하기 위해 요셉이 입고 있던 옷을 찢어서 숫염소 피를 묻혀서 아버지 야곱에게 보이면서 ‘요셉이 짐승들에 의해서 찢겨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찢겨진 옷은 굉장한 의미와 상징(심볼리즘)이 담겨져 있습니다. 찢겨진 꿈, 찢겨진 소망, 이것이 찢겨진 옷에 담겨있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찢겨진 옷은 두 사람의 꿈의 좌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요셉 본인의 꿈의 실패입니다. 본문 앞쪽을 읽어보면 요셉의 꿈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 내용은, 온 집안 식구들이 자기를 향해서 절을 할 정도로 높아진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노예로 팔려가게 되면서 그 꿈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둘째는 아버지 야곱의 꿈의 실패입니다. 당시에 채색 옷은 귀족들이나 입을 수 있는 그런 귀한 옷이었습니다. 야곱은 요셉의 인생이 이 채색옷처럼, 귀인이 되라는 바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에 의해서 채색옷이 찢겨지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면서 요셉과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꿈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의 좌절감을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34-35절입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세기 37:34-35
야곱은‘ 자기의 옷을 찢습니다. 그리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애도할 때 취하는 행동 중 하나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며 애통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모든 자녀들의 위로도 거부하며 말했습니다. 내가 아들 요셉을 따라 죽겠노라 !! 이후로 야곱은 요셉을 잃은 깊은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 중에도 이러한 꿈이 좌절될 때 찾아오는 깊은 상실감, 좌절과 실패의 고통을 체험한 분들, 혹은 체험하고 있는 분들이 있지요? 야곱의 눈물 말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도 야곱도 그의 형제들도 모든 사람들이 이제 ‘채색옷의 꿈은 끝났어’라고 낙심하고 좌절했지만,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좌절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 심오한 방법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 36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채색옷이 찢겨지고 난 후 수 년이 지난 후 요셉은 하나님의 큰 구원의 계획과 오묘한 섭리를 발견합니다. 45장 7,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셔서, 이 땅에 살아남은 민족이 있게 하시고, 놀라운 구원의 행위로 형님들의 목숨을 구하도록 준비하셨습니다. 보다시피,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45:7,8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일이 계획에 없던 일이고, 당한 일의 결과가 실패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일어난 것이 나에게는 악몽같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그 일이 형제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놀라운 축복의 사건이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주님의 구원의 큰 그림이 지금 우리에게 까지 전해졌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꿈쟁이 요셉을 시기해서, 그를 구덩이에 던져서 이 사건을 감추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사건을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하는 참 아들이 죽임 당하는 사건을 인류 역사와 영원에 새겨 두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후 2000년 정도 지나서 하나님은 참 아들,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옷 입은 자로서, 타락한 백성들을 구원하여 자신의 형제로 삼으시려는 놀라운 비전과 꿈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이 땅에 왔을 때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멸시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벌거벗겨서 처형시켰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그 옷을 찢어 제비 뽑아 가져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영광의 옷이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우리 주님은 골고다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찢겨진 옷, 그분의 생애는 그렇게 찢겨진 채로 실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실망하여 그 실패의 십자가의 현장을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님의 옷과 몸이 찢겨짐을 당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오히려 수치와 조롱의 그 실패처럼 보이는 그 일을 통해서 온 인류의 죄를 구원하는 대속의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단지 유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수많은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엘리 위젤’이라는 작가는, 그는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많은 유태인들을 죽인 것은 가스실이나, 독일군, 교수대가 아니라 절망'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수용소를 점령한 연합군이 한 감방벽에 손톱으로 쓴 다음의 글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태양이 구름에 가리어져서 그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지 못하나 나는 믿네. 구름 너머에 있는 태양의 존재를. 지금은 비록 침묵하고 계셔서 그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지 못하나 나는 믿네. 하나님의 존재와 그 사랑을.”
엘리 위젤
여러분, 나의 야망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래서 나의 야망의 나라는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비전의 나라는 확장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은 우리의 야망이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꿈이 좌절된 상황에서도 너무 좌절하거나 그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요즘 같이 코로나와 같은 상황에서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과 동행하시는 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계획은 고난의 사건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싹이 트고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어제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오늘 나에게 무너진 꿈이 영원한 실패가 아님을 믿습니다. 나를 향한 그리고 우리의 형제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나는 여전히 신뢰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영혼구원의 꿈과 비전을 삶 가운데 끝까지 이루어가실 줄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이 아름다운 봄날, 나귀 등에 앉으신 채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제 고난과 좌절의 구덩이에서 일어나 주님의 영혼 구원의 꿈과 비전을 이루어드리는 주의 사랑받는 자녀들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