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이끄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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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장마로 인해 굳은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함께한 주님의 백성들 모두가 마음 문을 열고 귀를 열어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성도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사정이 있어서 함께 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대신하는 성도들에게는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와 그 말씀을 붙들고 하루하루 씨름하면 살아가는 ‘열심’이 있도록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오른 손으로 안수하여 주셔서 나음을 입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직면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고, 나아갈 바를 알게 하여 주셔서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디딤돌 삼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각 목장 별로 섬기며 기도하고 있는 VIP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이 목장에 나와 함께 나누며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주관하시는 임마누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양」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교회소식」
1. 2021년 계획된 사업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 주일 예배 후 진행 될 운영위원회를 위해서
2. 제한받는 모든 예배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3.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는 빛고을 교회가 되도록
읽을 말씀: 누가복음 1:41-50(신약 p87)
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들어가는 말」
여러분! 행복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행복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성취되어 만족함을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언제 행복을 느끼십니까? 어느 때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까?
여러분!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레고가 수백만 원 수천만 원짜리도 있다는 것 아셨습니까? 한정판 레고의 경우는 비싸기도 하지만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막상 구하기 어려운 고가의 레고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그 흥분과 기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싼 레고를 어떻게 잘 보관할지 없던 근심이 생깁니다.
제가 언제 가장 설레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는지, 돌이켜 보니 학창 시절 수학여행이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 수학여행을 간다고 할 때, 무척이나 설레고 가기 며칠 전부터 기대감 때문에 이미 수학여행을 가있는 것처럼 흥분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아직 가지도 않은 수학여행의 기쁨을 미리서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설레며 손꼽아 기다리던 수학여행이지만 막상 다녀오면 그 흥분은 온대 간대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영원할 것 같은 기쁨이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듯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하여 주었던 것들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심지어 전에는 그만하면 행복하다 할 수 있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변함없이 기쁨을 누리며, 행복을 찾는 방법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다 찾으시는 귀한 시간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이야기]
성경은 수 많은 성경 구절에서 행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만 성경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시편 40편 4절에서는 행복의 조건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잠언 16:20에도 주님을 믿는 사람이 행복하다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하다 말씀하십니다. 특히 행복과 믿음의 관계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세상이 말하는 행복 조건과는 다른 기준에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듯이 나이가 많아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엘리사벳이 부르짖는 행복의 조건도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이 말씀은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린 상황을 고려하면 꼭 그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엘리사벳이 노래한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이라는 구절에 품고 있는 의미는,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 되었으며, 그녀를 통해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하였다지만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약혼한 여인이 임신을 하였는데 혼인을 파기한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파혼당한 마리아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추궁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마리아 입장에서는 아이의 아버지가 요셉임을 증명할 길이 없음으로 마리아의 목숨은 결코 보장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약혼한 상황에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간음을 행한 것으로 당시 법에 따르면 돌에 맞아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마리아에게 행복한 꽃길만 보장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리아가 이런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당연히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그렇다면 찬양과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 마리아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48절에 그 이유를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낮고 천한, 보잘 것 없는 자신을 기억하시고 돌보셨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며 기쁨이라고 마리아는 말하고 있습니다. 고통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시고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하나님이 마리아를 통해 행하실 일을 말씀하실 때, 손톱만큼이라도 갈등이 없었을 까요? 아무리 마리아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을 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여도 천사의 말은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이 잉태한다는 것은 비상직적일 뿐만 아니라 비논리적이고 마리아의 입장에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저 말고도 다른 수많은 마리아들이 있는데 왜? 하필 저인가요? 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이 사명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을까요?
성경에 기록은 없지만 왜 자신이 않되는지에 대한 수백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 천사와 씨름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했던 질문에 이러한 마음들이 녹아져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복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위기 속에서도 기쁨으로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읽다 보면,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양인 무화과 나무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라고 부르는 찬양을 가장 먼저 부른 하박국 선지자는 조국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상황에서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사무엘상 1장과 2장에 보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 놓고 나서 한나는 하나님이 이루실 일과 하나님이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람을 넘치도록 받고 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또 다른 아내 브닌나가 임신하지 못하는 한나를 괴롭혔습니다.
브닌나의 이러한 언행은 한나의 마음에 화병이 생기게 할 정도였습니다. 분통이 치밀어서 음식에 입을 댈 수도 없고, 그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그 억울함을 토해 내는 것만이 한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뒤집어 놓은 그 날도 한나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억울한 마음을 내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가서 이렇게 서원합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1)
한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18절에 보면,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한나는 아직 이루어진 일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불임인 자신에게 아이를 주실 것을 믿고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환경이 변화된 것도 아닙니다.
브닌나의 충동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이제 브닌나로 인해 마음에 격동이 일어날 일도 없습니다.
여러분!
한나가 이렇게 다시는 그 얼굴에 근심 빛이 없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이라 믿은 그 믿음이 한나의 마음에서 근심과 걱정, 분노를 깨끗이 제거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 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 기도하고 기도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은 믿음이 한나의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비천한 여종을 볼 보셨다는 마리아의 고백은 단순히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부분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임마누엘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 믿은 믿음이 마리아로 하여금 찬양을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행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적용]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우리를 둘러싼 생활환경과 조건은 분명 마리아 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의 콧노래가 마리아만큼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말씀 말고도 마음을 쓰는 곳, 관심을 가지는 곳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실 때,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서 가시덤불은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1서 2:16 참조)에 막혀서 감사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니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도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서 과자 한 조각 손에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여러분 이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서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어린 아이의 부모가 돈이 많아서 일까요?
아니면 이 어린 아이의 엄마의 미모가 뛰어나서 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 아이의 아빠가 좋은 집을 가지고 좋은 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린 아이들은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님의 품이 중요합니다. 아이의 관심은 엄마, 아빠 그 존재, 그 자체에 있습니다. 이 포근한 부모의 품 안에 있기 때문에 손에 들린 작은 과자 하나에도 만족하고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어른이 되면 이것저것 행복의 조건들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좀처럼 감사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행복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아가서 2:15에 보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말씀하십니다.
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안에 일어나는 작은 의심들, 그리고 육신의 만족을 채우려는 욕심들, 불쑥 불쑥 되살아나는 옛 사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죄일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여우는 우리 마음 밭으로 들어와서 성도들의 믿음에 의심을 심어주고 신앙을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변질시킵니다.
그래서 감사와 찬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제거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 말씀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면 아닌 줄 아는 아주 단순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말씀에 따라 살지 않으면 의심이 생기고, 결국은 믿음을 잃어버리는 상황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행복은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믿음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시편 119:56에 보면, 법도를 따라서 사는 삶에서 내 행복을 찾습니다. 라고 증거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어떤 경우에도 그 말씀대로 성취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 믿음으로 인해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의심 없이 말씀이 반드시 성취 될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을 가지려면 반드시 주님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요한 복음 15:10-11에 보면,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며 하나님 안에 거함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라고 확증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야 됩니다. 이러한 삶을 우리는 믿음의 삶이라 표현합니다.
「결론」
여러분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갓난아이가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순간은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을 때입니다. 어린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울타리입니다.
수십 만원하는 변신 로봇이나 수천 만원하는 비싼 레고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세속적인 욕심을 채워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줄로 믿게 되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곳이 가장 행복한 곳이 됩니다. 성도들에게 있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 즉 임마누엘입니다.
당시 천사의 수태고지를 받을 때 마리아의 나이는 12살에서 많아야 18살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 마리아가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었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임마누엘 하신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였고 지금까지 살펴본 다섯 명의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이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이바지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복음의 증인으로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담대히 나아가는 복음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행복을 누리는 가장 확실한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기쁘게 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이성과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하심으로 반드시 성취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마리아가 살아가던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체세포 복제 기술을 통해서 처녀의 잉태가 과학적으로 가능한 시대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음으로 인해 의심을 품는 일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1,000년이 지난 후에 지금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의심하는 성경 말씀들이 충분히 과학적이라는 증거를 찾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신뢰하는 과학과 이성, 그리고 논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대해 여전히 의심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설사 믿는다 할지라도 죽음의 위기가 찾아오면 유리와 같은 믿음은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앞에서 믿음을 팔아 버립니다. 여전히 가시덤불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믿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 될 것이라는 믿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마리아와 같이 순복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치는 순수한 사랑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순종의 길로 인도하며 우리가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보장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담대히 떨쳐버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아시고 우리의 필요를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경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임마누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은 믿음으로, 다시는 얼굴에 수심을 찾을 수 없는 행복한 삶,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날마다 콧노래를 부르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주 여호와로 말미암아 찬양하겠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들 또한 그 어떤 경우에도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우리 각 사람을 꼭 붙잡아 주시옵소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복을 찾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에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이 기쁨으로 참여하여 열매 맺는 삶을 누리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겨 쌈을 당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하여 주시고 뜻하신 일들을 이루실 것을 믿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며 우리에게 더 좋은 것으로 채우시며 도우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본, 성도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마음에 되새기며, 고백하는 마음으로
“행복”을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폐회 기도」
우리 함께 주기도문 하심으로 수요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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