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세요.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1 views
Notes
Transcript

1 도입

다시 코로나가 악화되었습니다. 정말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인 것 같습니다. 주식과 코인에 돈이 이렇게 묶여 있을거라 우리가 어떻게 예상 했겠습니까? 한 마디로 앞을 볼 수 없는 맹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맹인이 두명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이 따르는 무리가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을 때, 눈이 보이지 않은 이 맹인들이 예수님이 지나 가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으니 따라 갈 수가 없어 소리를 지릅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Matthew 20:30 NKRV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만나고 자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지요.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라고 꾸짖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욱 더 큰 소리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는 한마디로 기도입니다. 제가 기도 하는 방법 중 단문 기도에 대해서 말씀 드렸죠. 이렇게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기도 훈련에 매우 유익합니다.
예수님은 맹인들은 이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을 하시지요.
32절 3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32–33 NKRV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그들은 예수님앞에서 더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을 뜨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기도대로 34절에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눈을 만지시고 곧 그들이 보게 하였습니다. 보게 된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눈을 떠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맹인은 절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맹인 되었을 때,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따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 지 성경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모두는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똑 바로 보아야합니다.
<전환문> 그럼, 우리는 눈을 뜨고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2. 눈을 뜨고 하나님의 공평을 보십시오.

1절 부터 16절까지는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오늘 날 우리 나라의 일력 시장 같은 곳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품꾼을 만납니다. 포도원 주인은 아침 6시에 만난 일꾼들과 임금 협상을 합니다. 하룻동안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을 하면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을 고용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포도원에는 일꾼이 많이 필요 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9시에도 일력 시장을 나가 또 품꾼을 고용합니다. 그렇게 정오에도 나가서 품꾼을 데려오고 오후 3시에도 품꾼을 데려와도 여전히 포도원에는 일이 많고, 품꾼은 더 필요 했습니다. 이제 오후 5시에 다시 나갔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6 NKRV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제 십일시는 이스라엘의 시간에 따르면 오후 5시를 말합니다. 오후 5시에도 여전히 일력시장에는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하루 종일 일도 하지 않고 일력시장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무도 그들을 고용해 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7절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7 NKRV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왜 오후 5시에 만난 사람들을 아무도 고용해 주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품꾼으로 쓰기에 능력이 모자란 사람이어서 하루 종일 눈군가가 고용해 주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을 포도원 주인은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루는 해가 뜨는 시간이 1시 입니다. 그것을 아침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눕니다. 즉 오늘 날 우리 시간으로 따시면, 해가 뜨는 아침 6시가 1시가 됩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저녁 6시가 이스라엘 시간으로 12시가 됩니다. 그럼, 마지막에 11시 즉 5시에 고용한 사람은 12시 즉 6시에 퇴근하게 됩니다. 단 1시간만 일하는 것이지요.
이제부터 더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들에게 일당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같으면, 1시간만 일한 사람에게는 얼마를 주어야 할까요? 시간당으로 계산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들은 1시간 일한 시급을 주는 것이 정당 하겠지요.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한시간 일한 품꾼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9 NKRV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한 데나리온은 아침 6시에 고용된 품꾼들과 약속한 일당입니다. 그런데, 아침 6시부터 꼬박 12시간을 일한 품꾼은 1시간 일한 품꾼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분명히 자신들은 더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10 NKRV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그들은 더 받을 것이라 기대 했는데, 1시간 일한 품꾼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불만이 생기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주인을 원망합니다. 이에 대해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13절 14절 말씀입니다.
Matthew 20:13–14 NKRV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주인은 아침부터 12시간 일한 품꾼과도 한 데나리온을 약속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 대로 주인은 12시간을 일한 품꾼이든 6시간을 일한 품꾼이든 심지어는 한 시간을 일한 품꾼이든 모두 같은 일당을 주었습니다. 또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모두 같은 일당은 주는 것은 포도원 주인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세 가지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12시간 일한 품꿈의 마음입니다. 아침부터 뙤약볕이 한창인 오후를 지나 하루 12시간을 일한 품꾼이 서늘한 오후 시간 단 한시간을 일한 사람과 같은 일당을 받는 것을 보면, 얼마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 12시간 일한 품꾼이 불평하는 것 이해할 만합니다.
둘째, 포도원 주인의 마음입니다. 사람을 고용하고 일당을 주는 것은 포도원 주인의 마음입니다. 주인은 먼저 아침에 고용된 사람이나 1시간을 일한 사람이나 다 동일한 일당을 주는 것은 그 주인의 마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셋째, 1시간을 일한 품꾼의 마음입니다. 그는 하루 종일 일력시장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고용하기를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품꾼으로 아무런 매력도 능력도 가치도 없어 기다리고 기다려도 아무도 자신을 고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선한 포도원 주인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부족한 자신을 고용하고 단 1시간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먹고 살 수 있는 일당을 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님 12시간 일한 사람과 동일한 임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 불평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셋의 입장 모두가 다르게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떤 입장에 동조 하십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포도원 주인의 마음입니다. 주인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 했으면, 일한 사람은 한 데나리온만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공평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한 데나리온이란 천국입니다. 이 비유가 1절에서 천국의 비유로 되어 있지요. 하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약속된 것 그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그 천국은 먼저 믿는 사람이나 나중에 믿는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합니다.
이 비유에서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당시에 이스라엘 민족들 특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성경에 전문가들입니다. 반면에 오후 5시에 만난 사람들은 그 이스라엘 민족들이 무시하고 멸시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교회에서 거부한 세리들과 창녀들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먼저 선택받고 믿은 이스라엘 민족 뿐만 아니라 죄인이라 차별 받는 세리들과 창녀들도 하나님의 포도원에 들어오면, 공평하게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런 공평하신 하나님을 악하다고 누가 말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노력과 선행으로 천국을 얻을 수 있다 여기는 자들만 공평하신 하나님을 악하다 말합니다. 그들이 맹인입니다. 눈을 뜨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십시오. 만일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면, 우리는 여전히 천국을 선물로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전환문> 그럼, 또 우리는 눈을 뜨고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3. 눈을 뜨고 하나님의 뜻을 보십시오.

앞서 생각해 본 천국비유와 연관된 사건이 20절부터 시작되는 세베데 아들의 어머니의 요구 입니다. 세베데의 아들들은 예수님과 사촌 형제지간입니다. 세베데 아들의 어머니의 이름은 살로메인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자매지간입니다. 이 살로메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마리아와 함께 있었고, 빈 무덤을 확인한 세 여인 중에 하나입니다.
이 예수님의 이모인 세베데의 아내가 두 아들을 위해서 자신의 조카인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 여인의 요구는 예수님과 사촌 형제간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한 마디로 한 자리씩 달라는 것입니다.
20절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Matthew 20:20–21 NKRV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조카가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독립시킨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아들들에게 높은 자리에 앉혀 달라고 청탁하는 것입니다.
이 세베데 아내의 청탁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Matthew 20:22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있는 사촌 형제들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묻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는 가입니다. 이 잔을 마시다라는 표현은 죽음을 이야기 합니다. 이에 대해 두 형제는 당연히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이겠지요. 실제로 제일 먼저 순교를 당한 사람이 야고보입니다. 후에 요한은 밧모 섬이라는 곳에 유배되어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정말 예수님과 함께 죽고 고난을 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23절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Matthew 20:23 NKRV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즉, 예수님도 아셨던 것이지요. 두 형제가 예수님을 위해 죽고 고난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다만 그들이 보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의 자리는 예수님이 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비하셨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 천국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12시간을 일한 사람들은 1시간을 일한 사람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것을 기대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친 인척 관계인 야고보와 요한 역시 예수님과 인천 관계이고, 제일 처음부터 예수님을 따라 다녔고,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의 상급이 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2시간 일한 사람이나 1시간 일한 사람이나 동일한 임금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이듯, 아무리 예수님과 인척관계이며, 예수님을 정말 열심히 믿고 따라 다녔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공평함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줄 것을 미리 예비 하셨습니다. 욕심 많은 우리들과 다릅니다.
우리 인간들의 본성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혜택과 이득을 얻기를 원합니다. 특히 자신이 무엇인가 공헌을 많이 했으면, 그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인지 상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상식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식은 하나님의 뜻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세속적인 상식과 다릅니다.
26절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Matthew 20:26–27 NKRV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세상은 큰 자가 되어 다른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말합니다.
또 으뜸, 즉 통치자 혹은 주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가장 낮은 자리의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통념과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다릅니다. 26절 27절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이 바로 16절 말씀입니다.
Matthew 20:16 NKRV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6절의 수수께끼 같은 표현의 의미가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바로 가장 큰 자이고 권력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렇습니다.
얼마 전에 벨기에 영사 부인이 또 한번 환경미화원을 대상으로 갑질을 해서 본국으로 소환되었죠. 소위 상류층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어 국민들의 공분들을 많이 샀습니다. 미스터 피자 회장의 갑질이 언론에 오르자 미스터 피자는 결국 사옥을 매각해야 했습니다.
그들 모두 큰 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섬김을 받으려고 하다 망한 케이스들이지요. 만일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그들이 보았더라면, 그들이 매장의 점원을 오히려 섬기고, 자신의 회사의 직원들을 위해서 봉사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었고, 사옥을 매각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존경을 받았을 것입니다. 큰 자가 되려고 했던 모든 사들은 맹인입니다. 앞을 보지 못합니다.
맹인이 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일반 상식과 다르게 보이지만, 오히려 우리의 일반 상식이라는 것은 악한 우리의 마음에서 나온 왜곡된 가치관입니다. 왜곡된 가치관은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눈을 크게 뜨시고 무엇이 옳은 지 보십시오. 나중된 자가 먼저 됩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그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보고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결론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