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12 새벽기도회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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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0:1–11 NKRV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죄 때문에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 결과가 우리의 삶에 있음을 우리는 모두 느낍니다. 우리는 모두 압니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 때문에 삶에서 온전치 못한 영역이 있고 때때로는 그 결과의 쓴맛을 보고 있다는 것을요. 개인의 영역에서, 가정의 영역에서, 공동체의 영역에서 죄로 파괴된 삶의 파편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낙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어떨 때는 ‘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가정이 더 나아지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이대로 사람들과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 아닌가?’ 한 없이 낙심이 되는 순간이 죄인된 우리의 인생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시는 분이실까요?
“너는 너의 죄 때문에 고통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다"라고 정죄하실까요?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로하고 위로한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상황을 해결해줄 능력이 없이 단순히 ‘괜찮다, 괜찮다'하는 인간적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반드시 회복되는 역사를 함께 가져다주는 능력이 담긴 사랑의 음성입니다.
이 위로의 음성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바벨론 포로백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 않고 계속 죄를 지음으로써 남편이신 하나님께 버림받았고, 거주민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아내로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모든 높은 방해물을 낮추고 패인곳을 평탄하게하여 여호와의 구원의 길을 여실 것이다! 모든 육체가 그 영광을 볼 것이다!”
분명히 백성들은 이렇게 반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바벨론과 같은 두렵고 강한 세력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실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6절에서 대답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방해하는 세력은 오늘 있다 내일 사라질 들꽃의 생명력과 같습니다. 7절 ‘여호와의 기운’으로 번역된 여호와의 ‘루아흐'는 여호와의 바람 또는 성령이라는 뜻도 있는데, 곧 성령이 불면 방해의 세력은 완전히 말라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대로 바벨론 포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위로의 말씀은 죄의 노예로 살고 있는 온 인류에게 다시한번 이루어졌습니다. 세례요한이 길을 예비하고, 예수님은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류를 건져내셨으며, 성령님은 인류 안에 남아있는 옛 본성의 어떠한 방해도 말려버리고 계십니다. 위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지금도 영원히 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위로가 필요한 우리에게 계속해서 회복의 능력과 함께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며 믿는자의 심령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세상은 왜 이런 잘못된 결과를 내었냐고 우리를 추궁하고 책임을 묻고 매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을 주시고 회복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기에 가장 합당한 때입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의심케하는 모든 영적인 걸림돌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위에 우리를 세운다면 오늘날 반드시 회복의 영광이 믿는 자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는 마침내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겨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로 회복될 뿐 아니라,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놀라운 위로와 회복을 우리만 누려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위로의 하나님을 보라고 외쳐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복음은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입니다. 위로하시는 주님 자신이 우리의 복음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을 전할 뿐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로를 소개하고 보여주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위로를 깊이 경험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케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사용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낙심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하나님의 위로로 살아가는 우리되게 하옵소서.
- 또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고 이웃에게 그 위로를 소개할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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