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10] 증거궤와 속죄소

출애굽기, 성막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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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4 수요기도회
찬송 295 151
기도 정수미 권사
본문 출 25:10-22 (구p.120)
제목 증거궤와 속죄소
오늘은 그간 10주 동안 해오던 성막 설교의 마지막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성소, 특별히 그 안에 있는 성막 기구들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비대면 예배로 전환됨에 따라서 오늘은 인쇄물을 나누어드릴 수 없어서 참 아쉽다. 그래서 교회 홈페이지 ‘은헤의나눔터 게시판’에 따로 파일을 올려두었다. 나중에라도 자세하게 정리하고자 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건축하라 하시는데, 이 때에 가장 먼저 증거궤를 만들 것을 명하셨다. 이는 증거궤가 성막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왜 증거궤가 성막의 핵심인가? 바로 이곳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살펴볼 증거궤는 성막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은 증거궤와 속죄소를 다루고 있다. 사실 증거궤와 속죄소는 붙어있기 때문에 하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둘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는 먼저 증거궤를 살펴보고, 그 이후에 속죄소에 대해 다룰 것이다.

1. 증거궤의 여러 명칭들

성경 속에서 증거궤를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법궤’ 라고 부르면서 이 궤가 하나님의 율법을 넣어둔 궤임을 의미하며, ‘’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상자 모양임을 의미하며, ‘증거궤’ 라고 부르면서 이 궤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말씀을 넣어둔 궤임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궤’ 라고 부르면서 이것이 하나님께 속한 궤임을 의미하며, ‘여호와의 궤’라고 부르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궤임을 의미하고, 또한 ‘권능의 궤’라고 부르면서 이 궤를 통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남을 의미하고, ‘이스라엘 신의 궤’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는 궤라는 사실을 드러내시고, ‘여호와의 언약궤’ 라고 부르며 여호와의 언약 말씀을 담은 궤라는 의미를 나타내시고, ‘나무 궤’ 라고 부름으로 이 궤가 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성경은 아주 다양하게 증거궤를 묘사한다.
성경속에서 동일한 증거궤를 이처럼 다양하게 부르는 이유는 그 증거궤가 담고 있는 의미들 때문인데, 그 수식하는 단어들을 추려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 여호와, 법, 능력, 함께 하심’ 바로 이 단어들이 증거궤의 주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2. 증거궤의 규격과 재질과 모양과 위치

출25:10-11 말씀을 보면, 이 증거궤의 길이는 2.5규빗, 너비는 1.5규빗, 높이는 1.5규빗이며,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구체적인 모양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11-15 의 말씀을 참고하시면 되겠다. 또한 증거궤는 지성소에 보관하게 하셨다.

3. 증거궤를 만든 목적

그렇다면 증거궤를 만들라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오늘 본문 출25:16 을 보라.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라고 하셨다. ‘증거판’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의 의미는 ‘증언된 것’ 이라는 뜻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십계명, 계시, 율법, 율례’ 등 하나님의 다양한 계시의 말씀을 가리키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계시의 말씀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거한다. 하나님께서 증거궤를 만들게 하신 일차적인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을 보존’하는 데에 있었다.

4. 증거궤와 예수 그리스도

모든 성막의 기구들이 그러하지만 증거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증거궤 위에서 증거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증거하셨다. 증거궤는 다 만든 후 사용하려 할 때 거룩한 기름을 발랐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증거궤는 어디로 이동하든지 언제나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에 두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부활승천하셔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늘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 증거궤가 가는 곳마다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물러갔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곳마다 귀신들이 물러갔다. 매년 대속죄일에 증거궤 위에 피가 뿌려짐으로 대속죄가 이루어졌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택하신 백성들의 영원한 대속죄가 이루어졌다. 증거궤는 언제나 이스라엘 진영의 가장 중앙에 위치해 있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항상 계신다. 증거궤는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 언제나 이스라엘 진영보다 3일 길을 먼저 가면서 쉴 곳을 찾았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이처럼 증거궤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5. 속죄소의 명칭의 뜻

이어서 살펴볼 것은 속죄소이다. 히브리어 ‘카파르’는 ‘가리다, 덧칠하다, 겉을 덮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한글성경의 ‘속죄소’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카파르’의 명사형이다. 따라서 번역하자면 ‘가리개, 덮개’ 등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적인 덮개와 다른 점은 ‘카파르’ 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 주로 죄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속죄소는 ‘죄를 가려줌, 죄를 덮어줌’ 이라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다. 한글 번역에서도 이 단어를 ‘속죄소, 속죄판, 속죄 덮개’ 등 다양하게 번역하고 있고, 영어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자비의 보좌’ 혹은 ‘구속의 덮개’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다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6. 속죄소의 재료와 형태

본문 출25:17-21 까지를 보면 속죄소의 길이는 2.5규빗, 너비는 1.5규빗이다. 증거궤 규격과 가로세로가 일치한다. 왜 일치할까? 쉽게 말해서 증거궤가 나무 상자라고 한다면, 속죄소는 그 나무 상자의 뚜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대로 증거궤 위에 얹는 식이다. 속죄소를 이러한 규격으로 만들되 마찬가지로 순금으로 만들라고 하신다.

7. 두 그룹

그런데 속죄소의 중요한 특징이 있다. 속죄소 상단에는 그 양 끝에 한 그룹씩 총 두 그룹을 세공하여 넣되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되게끔 만들고, 그룹의 날개를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게하며, 그 얼굴은 속죄소 아래로 향하도록 만들라고 하셨다. 여기서의 그룹은 히브리어 케루브의 복수형인 케루빔의 음역이다. 히브리어 케루브는 하나님께 수종드는 천사를 가리킨다. 그들이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되고, 또한 날개를 들어 속죄소를 덮은 것은, 그들의 사명이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를 호위하며, 밤낮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화로우심을 찬양하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이 아래를 향하는 이유는 그들의 얼굴을 가리는 것을 의미한다. 왜 얼굴을 가리는가?
이사야가 환상을 본 것을 기록한 사6 장을 보면, 성전에서 그룹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서 있는 광경을 아주 신비롭게 묘사한다. 여섯 개의 날개 중 둘로는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둘은 그들의 발을 가리고, 둘은 날개짓을 하며 날고 있다. 그러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노래한다. 그들은 왜 얼굴을 가렸을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감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사조차도 하나님을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너무나도 영광스러우시기에 도저히 그 영광을 마주 대할 수 없어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다시 속죄소로 돌아와서, 지금 그룹들이 그들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그 자리에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속죄소가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신 곳임을 보여준다.

8. 속죄소의 기능

그렇다면 속죄소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지성소를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좌정하셔서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 오늘 본문인 출25:22 의 말씀을 보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여기에서 속죄소의 두 가지 기능을 엿볼 수 있는데, 첫번째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곳, 속죄소에서 이스라엘이 행할 모든 명령을 선포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실 것을 말씀한다. 여기에서 ‘명령할 모든 일’ 이란 좁게는 언약백성들에게 삶의 원칙이 되는 십계명이고, 넓게는 언약백성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다. 그리고 ‘네게 명령할’ 이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명령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왕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명령을 지켜 순종해야 할 백성들의 관계가 드러난다. 따라서 속죄소는 택하신 백성들 가운데 좌정하시어 말씀을 주시고, 백성들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기능을 담당한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라고 말씀하신다. 지정된 시간과 지정된 장소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사용하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고, 정확한 장소를 지정하는 ‘거기서’ 라는 부사를 사용하시는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지정된 장소에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장소가 바로 죄를 용서해 주시는 자비의 보좌, 택하신 백성들을 구속하시는 바로 그 은혜의 자리, 속죄소이다. 따라서 속죄소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좌정하시어 공의로 다스리시고, 말씀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함께 엿볼 수 있다. 마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가장 극적으로 일어났던 자리, 골고다 십자가 처럼 말이다.

9. 속죄소에서 행하는 일

예배자는 속죄소에서 무슨 일을 행하는가? 첫번째는 속죄소 안을 향을 피워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리는 일이다. 레16:12-13 말씀에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라고 하셨다. 죄인된 인간의 눈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지 못하게 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도록 향연으로 속죄소를 가리라는 것인데, 이는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속죄소에 실재적으로 임재해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피를 뿌리는 행위이다. 레16:14-15 의 말씀에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피뿌림, 이것이 속죄소에서 행하는 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히9:22 말씀을 보면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셨듯이 피 흘림이 없이는 속죄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0. 속죄소와 예수 그리스도

증거궤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보았던 것처럼, 속죄소에서도 아주 극명하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러난다. 속죄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적인 구속 사역을 잘 묘사해주는 완전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히9:12 의 말씀을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하셨다. 구약의 짐승들의 피로 인한 속죄는 일시적이었다. 그래서 예배자들은 매번 속죄를 위한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속죄는 완전하여서 더이상의 다른 속죄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만족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만일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 만으로 뭔가 부족했더라면, 내 죄가 완전히 사함을 받는데에 예수님의 십자가만으로 뭔가 부족하다고 가정해보라.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온갖 더 나을 법한 제사를 고안해 내어야 하고, 혹 이 제사도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할까 하여 늘 불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죄사함을 위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짐승들이 대신 희생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희생제물로 자기 자신을 십자가 위에 단번에 드리셨고, 그 속죄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가 되어 우리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담대히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당시 고대근동 지방에 다양한 민족들이 각기 자기들만의 신을 만들어 제단에서 그 신들을 섬겼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속죄소는 오직 하나 뿐이었던 것처럼, 그 속죄소가 가리키는 우리의 대속자도 오직 한분이시니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주님께서 요14:6 을 통해 말씀하셨듯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던 것처럼, 또한 행4:12 의 말씀처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신 것처럼, 또한 딤전2:5 말씀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대속자는 오직 한분 예수님 뿐이다.

11. 결론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자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날은 1년 중 오직 단 하루, 대속죄일 뿐이다. 그것도 향연으로 속죄소를 덮어야 했고, 염소와 송아지의 피를 뿌림으로 속죄소를 거룩하게 해야 했다. 이 모든 규례들은 모두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희생제사를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만든다. 염소나 송아지 피로 하는 속죄는 유한하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로 이루신 속죄는 무한하여 시대와 장소와 민족과 혈통과 방언과 족속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창세 전부터 성부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모든 택하심을 입은 자들을 단번에 속죄하셨다.
성막의 울타리, 유일한 동문, 그 동문을 따라 안뜰로 입장했을 때 만나는 번제단, 물두멍, 그리고 성소 안에 들어왔을 때 진설병과 그 상, 등잔대, 분향단과 분향, 그리고 휘장을 지나 속죄소와 증거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이것들이 우리의 구원에 어떠한 효력을 주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성막과 기구들을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지키셨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오늘날 말씀대로 만든 모형들은 볼 수 있지만 당시 사용했던 원본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스라엘이 포로기를 맞으며 훼손되었을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것들이 더이상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 모든 것들은 그저 그림자에 불과했다. 모형일 뿐이다. 진짜가 아니다. 이것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불필요한 이유는, 이 모든 기구들이 가리키던 오리지널, 진짜가 오셨기 때문이다. 말씀이신 그분이 육신을 입고 낮고 천한 이 땅가운데 내려 오셨기 때문이다.
참 성막이자 참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자기 백성을 찾아주시고, 그 백성들을 만져 주시며,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시고, 질병을 고치시고, 자기 자신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드리사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더이상의 번제단도, 희생제물도 필요없다. 더이상의 물두멍도, 더이상의 진설병과 그 상도, 더이상의 금등잔대도, 더이상의 분향단과 분향도 다 필요없다. 다 필요없는 것을 왜 우리는 10주동안 살펴보았던 것일까? 이것들이 우리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아니지만, 이것들을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들이 있기 때문이다. 성막을 통해 우리가 얻는 유익들이 있다. 먼저는 성막의 의미들을 통해 우리가 받아 누리는 복음의 광대함과 영광을 깨닫게 되고, 또한 이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에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아름다우신 분이신지를 깨닫게 되어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10주간 성막 설교의 결론이다. 우리가 성막을 다루면서, 증거궤와 속죄소를 비롯하여 모든 성막의 기구들이 하나같이 향하고 있는 바로 그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자신의 피로 허무시고, 우리에게 새롭고 산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시길 축복한다. 성막 기구들이 담고 있는 의미들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 누리는 이 복음이 얼마나 아름답과 광대한 것인지를 깨달아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이 자리의 여러분들과 영상을 통해 예배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원한다.
성막의 의미들을 통해 우리가 받아 누리는 복음의 광대함과 영광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보이사,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코로나 확진자가 1,600 명을 돌파했는데, 주께서 이 땅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속히 코로나를 잠재워 주시기를, 특별히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성도들과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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