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이야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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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전이란 무엇인가?
중고등부 수련회에 오신 친구 여러분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쁘고 반갑습니다. 이번 수련회 주제가 뭔지 혹시 오면서 보셨습니까? 이번 수련회 주제가 뭔가요? 네 이번 수련회 주제는 바로 성전과 예배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바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추측한 것처럼 결국 예배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성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낌은 굉장히 거룩하고 뭔가 범접하기 힘든 그런 건물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이라는 것도 생소한데 우리가 성전이라고 하고 있어요. 성경 어디서 그렇게 말씀합니까?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전이라는 거예요. 그것도 여기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나오는 성전은 지성소를 말합니다. 성전이 원래 헬라어로 ‘히에론’인데 여기 나오는 성전은 ‘나오스’라고 되어 있어요. 우리가 성전인데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방인 지성소라는 거예요. 지성소의 위치는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쨌건 성경이 우리를 성전이다. 지성소다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성전이 뭔지, 뭐하는 건지, 왜 필요한지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되겠죠? 성전이 뭔지 알게 되면 이 땅 가운데 살아있는 성전으로 존재하는 우리가 왜 존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아까 읽은 성경본문 시편 27장 4절에 보면 다윗이라는 사람이 쓴 시가 나오는데 이 시에서 다윗이 바라는 것이 한 가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것도 해주세요. 저것도 해주세요. 바라는게 굉장히 많은데 다윗은 바라는 것이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게 뭐냐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이 있을 당시에는 성전이 없었죠. 텐트식의 성전인 성막이 있었어요. 아마 후대에 이 시편이 성전에서 불리면서 성막을 성전으로 바꾼 것 같아요. 어쨌든 요점은 다윗의 소망은 한 평생 성전에 머물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거예요. 적어도 다윗의 인생에서는 하나님의 집, 성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만나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거예요. 우선 성전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에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좀 더 교회에서 쓰는 표현으로 표현하자면 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제는 어울리는 것이죠. 이 교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뭘까요? 하나님의 선하심, 빼어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하는 표현이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시는데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이게 바로 성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2- 성전이 있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굳이 하나님께서 왜 성전에서 그분의 영광을 보여주셔야 하고 굳이 왜 성전이라는 곳에 한정해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하셔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굳이 성전이라는 장소가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번거로워 보여요.
원래 하나님은 이 세상 자체를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설명하는 성경이 있죠. 바로 창세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최초로 주신 성전이 있는데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드신 사람들의 이름이 아담과 하와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담과 하와가 살게 될 장소로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이 에덴동산은 마치 성전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걸 에덴성전이라고 합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이 에덴성전을 경작하면서 에덴동산을 확장해서 이 세상 전체가 성전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걸 우주적인 성전이라고 그래요. 에덴성전은 되게 특별히 구분된 예배장소가 아니라 아담과 하와가 거기서 먹고 자고 살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일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사는 거예요. 아담과 하와는 그렇게 에덴동산으로부터 흐르는 4개의 강을 중심으로 해서 에덴동산을 점점 확장시켜나가는 사명을 부여받았어요. 하나님이 이 세상 자체를 성전 삼으시기 원하셨고 어딜가나 성전에서 지내시도록 한 거예요. 특별한 공간을 딱 제한하신게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성전 세우기 프로젝트가 이런 식으로 진행됐어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죠. 그래서 성전 짓기 프로젝트가 중단됩니다. 아담과 하와 때문에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거룩한 에덴 성전이 죄로 오염됐어요. 이 에덴성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사람에게 알레르기가 생겼어요. 무슨 알레르기가 생겼냐면 하나님 알레르기가 생겼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알기도 싫은 그런 알레르기가 생깁니다.
알레르기가 뭐예요? 내가 어떤 음식물을 먹거나 냄새를 맡거나 하면 몸에서 막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그걸 못 받아들이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무슨 알레르기가 생깁니까? 하나님 알레르기가 생깁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이 에덴동산에 대한 알레르기가 생깁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하고 같이 있고 예배하고 이게 이상한 거예요. 하나님을 피하고 싶어요. 실제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을 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사람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하냐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하는 존재는 사람 밖에 없어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건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라는 거예요. 유일하게 하나님과 어울릴 수 있는 급의 피조물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사람만 그렇게 지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존재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하나님 알레르기에 걸렸어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에덴성전에 있지를 못합니다. 에덴성전을 온 세상으로 넓혀야 하는 사람이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이 죄 때문에 하나님 알레르기가 생기고 에덴성전을 더 넓히는 성전 짓기 프로젝트를 못하게 됩니다. 잠시 성전 짓기 프로젝트가 중단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먼저 성전을 주십니다. 죄인이 되어서 하나님 알레르기, 하나님 거부반응에 걸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합니다. 에덴 성전은 없어졌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 제한된 장소를 마련하셨어요.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게 우리가 아는 성전입니다.
3- 구약의 성전 이야기
이제부터 구약과 신약에 나온 성전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성경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으로 나뉩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의 이야기고,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성경은 대략 시간이 흐르는 순서로, 역사 순으로 기록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첫 이야기가 세상이 만들어지고 에덴성전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말하잖아요? 이 성전 이야기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성전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의 역사는 성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전 이야기, 성전에 연관된 이야기가 계속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후에 이 세상에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이 계속 생겨납니다. 그래서 인류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아까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 했잖아요? 아담과 하와 이후로 세상이 계속 악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가인과 아벨이라는 자식이 나왔는데 형님인 가인이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아벨은 죽지만 가인은 계속 살아서 에녹이라는 성을 짓고 그 안에 사는데 하나님과 상관없는 문명을 이룩하며 삽니다. 사람들이 가면 갈수록 악해져서 하나님께서 리셋 버튼을 한 번 누르는 사건이 생깁니다. 바로 홍수심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같이 악해져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십니다. 물론 유다서에 나오지만 에녹 선지자를 통해서 이 홍수 심판이 있기 전에 사람들에게 회개하게 하시고 기회를 주셨는데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노아라는 사람과 그 가족 8명만 결국 방주라는 큰 배에 타게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노아의 가정을 제외한 8명 외에 세상 사람들이 다 죽고 세상이 리셋이 됩니다.
그리고 노아의 후손들이 이 세상에 퍼져 나가는데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고 바벨탑을 짓습니다. 보세요. 창세기 3장에 에덴 성전을 잃어버리고 나서부터 살인하고, 죄 짓고, 바벨탑 짓고 이러고 있어요. 성경이 지금 보여주는 거예요. 이 세상에 성전이 생길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세상이 악하다는 거예요. 그걸 창세기 3장부터 해서 11장까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한 민족을 선택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죠.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민족인데 이 민족을 선택하셔서 이 민족에게 성전을 주십니다. 바로 성막이라고 하는 이동식 성전입니다. 성막은 일종의 텐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 하는 걸 하나님께서 모세라는 사람을 통해 기적적으로 구원하셨어요. 그리고 성막까지 짓게 하셔서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에덴동산, 에덴 성전에서만큼 자유롭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지켜야 할 규정과 율법들이 세세하게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 알레르기를 그나마 극복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벗어나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이 40년 광야생활 동안 성막에서 하나님 만나기, 하나님과 교제하기 연습을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하게 만들어져 갔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입니다. 이 가나안 땅에는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알 수 있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요. 수백년동안 하나님이 참아줬는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은 죄와 우상으로 완전 썩을대로 썩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시기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타락한 가나안 땅에서 성전 짓기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길 원하셨어요. 아담이 에덴 성전을 확장하는 프로젝트에 실패했는데 이제 이스라엘이 그 프로젝트를 다시 이어 받아야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을 합니다. 노예출신인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는데 변변찮은 무기도 없고, 군사 훈련도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나름의 체계적인 도시국가 형태를 이뤘습니다.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에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성막을 설치했습니다. 성막에서 예배드리다가 이스라엘의 3번째 왕인 솔로몬이 성전을 짓습니다. 이걸 솔로몬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이 성전을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을 드리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여기서 회개하고 절기에 맞춰 와서 예배드리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착각한 게 있었어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믿기 위해서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성전에 하나님의 자리가 없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성전이라는 건물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게 아니라 거기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핵심이 없는 거예요.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믿고 살기위해 만든 거잖아요? 그런데 성전은 있는데 성전 안에 중요한 알맹이인 믿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성전은 내팽겨쳐두고 이스라엘이 우상을 들여와서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랑 상관없이 자기 맘대로 살아요. 이렇게 하는데 성전이 뭐가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것처럼 바벨론이 쳐들어와서 성전을 다 파괴합니다. 성전 기물을 다 빼앗아가서 자기들 식기로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갑니다. 포로로 끌려갔다가 7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보내려고 하십니다. 70년 동안 세대도 바뀌고 정신도 좀 차렸겠죠? 다시 돌아옵니다 다시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뭘까요? 성전 먼저 지었습니다. 다시 돌아오면 성벽도 세우고 집부터 짓고 밭도 갈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성전을 제일 우선으로 하고 성전을 지었어요.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지 보여주는 거예요. 솔로몬 성전은 파괴됐고 포로 생활 이후에 지은 성전은 스룹바벨 총독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서 굉장히 볼품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더 큰 영광으로 이 성전에 나타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후에 스룹바벨 성전이 어떻게 됐습니까? 성경에는 안나오지만 역사에는 나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더렵혀지게 됩니다. 에피파네스라고 하는 그리스의 굉장히 정신나간 왕이 있습니다. 에피파네스라는 뜻이 신의 강림이라는 뜻인데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에피파네스가 이 성전을 돼지 피로 더럽히고 이 성전안에 제우스 우상을 같다 놓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폼페이이우스 장군이라는 사람이 이 성전을 파괴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의 지배를 받다가 또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성전을 잃어버렸어요. 왜 성전을 잃어버렸을까요? 말라기라는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스룹바벨 성전을 짓고 난 이후에 좀 잘하면 될건데 또 예배 대충 드리고 엉망진창으로 살아서 이렇게 된 거예요. 성전이 또 파괴되었어요. 그래서 성전이 없는채로 구약 성경의 이야기는 끝나고 신약성경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4- 신약의 성전 이야기
하나님께서 성전을 주시고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주시려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이 없어서 성전을 제대로 간수를 못하니까 하나님이 절대 파괴할 수 없는 성전을 준비합니다. 바로 사람 자체를 성전으로 삼으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마리아라는 사람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살던 당시에 성전이 있었어요. 로마 황제를 대신해서 로마의 식민지가 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헤롯입니다. 이 헤롯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성전을 지어줍니다. 이 성전을 헤롯 성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헤롯 성전 앞에서 성전이 무너진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성전이 무너지고 3일 만에 성전을 일으킨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말도 안되죠. 성전이 엄청난 대규모 건축물인데 그게 쉽게 무너질리도 없고 3일만에 세우는건 더더욱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말뜻은 뭐였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이 성전으로 세워지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왜 예수님이 성전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는 거예요. 헤롯 성전은 AD70년에 유대로마전쟁에서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파괴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성전이 되셨습니다. 이 땅의 어떤 군대가 와도 절대 파괴불가한 절대적이고 강력한 성전이 되신 거예요.
5-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성전인 나
예수님이 성전이 되셨지만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면서 우리도 성전이 됩니다. 아까 설교를 시작할 때 고린도전서 3장 16절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 21절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딱 예수님만 성전이 되는게 아니라 성전이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누가 성전이 되냐 하면 20절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하고 나오죠? 사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할 때 우리가 성전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전의 모퉁잇돌, 그러니까 건축물의 가장 기초가 되는 주춧돌이 되십니다. 22절에 보면 이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됩니다.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이 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체가 성전이 된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돌로 된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며 제사 드리며 예배했는데 지금을 우리 자체가 성전이 되었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우리 자체가 성전이기 때문에 전쟁이 나고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성전을 빼앗을 수 없어요. 조금 보태서 극단적인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가 죽더라도 성전이 없어지거나 빼앗기는 게 아니에요. 왜냐면 성전 모퉁잇돌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은 완성되었을까요? 짓고 있는 상태일까요? 에베소서 말씀에 의하면 짓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 될 사람이 점점 생기겠죠? 복음이 전파될수록 그리스도 안에서 점점 성전이 확장되는 거예요. 성전이 지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을 통해 선교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아담을 통해 진행하셨던 우주적 성전 만들기 프로젝트가 우리를 통해서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으로 불리고 세상 만민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리고 성전 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만 손들고 찬양하고 할렐루야 이러는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잖아요? 우리의 몸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성전으로 살 때 우리의 터가 견고해야 합니다. 우리의 터가 뭐예요? 사도와 선지자의 터죠?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여서 성전으로서 우리 터를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전인 우리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도록 하고 성전인 우리를 통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전의 역사를 보면서 성전이 더렵혀진 사건들을 봤습니다. 솔로몬 성전 때 성전 안에 우상을 들이고 성전이 낡아져서 부서지든 말든 신경도 안 썼어요. 스룹바벨 성전 겨우 다시 찾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피파네스가 돼지 피로 성전을 더럽히고 제우스 신상을 가져다가 더럽힙니다.
성전은 거룩함과 타락함 이 중간 상태가 없습니다. 성전은 거룩하든지 더렵혀졌든지 둘 중 하나의 상태만 있어요. 성전이 더럽지 않으려면 우리는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우리 몸인 성전을 늘 거룩한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성전이 거룩할 때 능력이 있습니다. 성전이 타락하면 그때부터 영적인 쇠퇴기와 포로 생활이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서 성전인 우리가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성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한 번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성전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내용으로 기도회를 하려 합니다. 다함께 찬양 한 곡 부르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기도제목
1. 나에게 있는 하나님 알레르기 반응이 사라지고 다윗처럼 하나님과의 교제를 사모할 수 있도록
2. 하나님께서 나라는 성전을 짓기를 원하시는데 말씀과 기도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건축되어가는 성전이 될 수 있도록
3. 역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성전다운 거룩함을 유지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나를 통해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