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을 기다리며 인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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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7 토요일 새벽기도회
찬송 : 179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본문 : 약 5:7-11 (신p.376)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럽고 추악한 우리를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붙드시어그 아들의 피로 우리를 값주고 사심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공로 없으나 주의 공로로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이러한 주의 은혜를 기억하며 날마다 사랑하는 주님을 닮아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신 열처녀 비유를 기억합니다. 신랑이 오실 날을 예비하며 늘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리던 다섯처녀처럼, 우리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현실에 안주하며 마치 이 생이 전부인것처럼 살아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신랑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오실 것과 그 날에 가장 복된 상태로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을 누리게 될 그 날을 고대하며 살아가는 우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께서 말씀 가운데 함께 하셔서 친히 깨닫는 지혜를 부어주시고, 말씀붙들고 기도할 때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본문의 표제처럼, 본문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인내’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고 인내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7절에서도 ‘길이 참으라’ 라고 시작하며, 마지막 11절에서도 ‘인내하는 자’에 대해 언급한다. 이처럼 야고보는 인내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데, 사실 당시 야고보서를 받던 1차 독자들은 쉽게 인내할 만한 상황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읽은 7절의 말씀은 ‘그러므로’ 라고 시작하는데, 이는 앞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 본문의 내용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앞의 내용들을 보면, 부자들에 대한 경고가 나온다. 정황상 그들은 신앙이 없던 자들로서 성도들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4-5절에 기록된 것처럼 추수한 품꾼에게 마땅히 지불해야 할 삯을 주지 않았고, 평소에도 사치하며 방종한 삶을 살았다.
반면 야고보가 염두에 두는 청중은 거의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다. 이들은 부자들로 인하여 억울한 일들을 종종 당하던 약자들이었다. 부자들은 자기 배를 채우는 동안 성도들은 자주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그들이 저지르는 불의한 일들 때문에 힘든 마음을 누르고 그냥 지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야고보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서도 본문 7절에서 ‘길이 참으라’고 말한다. 부자들 때문에 고통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데도 왜 길이 참아야 하는가? 내가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억울한 고난을 당하는데 왜 길이 참아야 하는가? 요즘처럼 권력에 대항하여 투쟁을 하거나 저항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왜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길이 참으라고 권면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7절에서 보듯이 주께서 이 세상에 강림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우리도 믿고 고백하는 바와 같이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길이 참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되새기길 바란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말이다. 이 땅에 살아가다가 언젠가는 죽게 될 날이 올 것인데, 우리가 알다시피 죽음은 우리의 몸과 영혼의 하나됨을 다시 분리시키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몸은 썩고 영혼은 하나님 계신 곳으로 옮겨가게 될 터인데, 그것이 우리의 최종적인 단계인가? 그렇지 않다. 영혼만 있고 몸은 아직 없는 상태에서 장차 완전한 영광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그 상태를 신학적인 용어로 ‘중간 상태’ 라고 부른다. 사도 바울은 고후12:2,4 에서 그곳을 ‘낙원’ 또는 ‘셋째 하늘’이라고 불렀다. 우리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셨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이 땅이다. 왜냐하면 주께서 이 땅에 강림하시기 때문이다. 살전3:13 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낙원에 있는 영혼들을 데리고 주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강림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 천국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부른다. 아직 주께서 강림하시기 전이기 때문에 이 천국은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완성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천국에 우리가 살고 있다. 주께서 천상의 성도들과 이 땅에 강림하실 때에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잠자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주께서 나팔소리 가운데 이 땅 가운데 재림하실 그 날에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야고보는 우리에게 ‘길이 참으라’ 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보다 더욱 마음 아파하시며 바라보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 중에 조금 힘든 순간을 만나면 주님이 자꾸 나를 외면하신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주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그냥 바보처럼 살다가 마냥 죽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부자들이 성도들을 억압하고 착취할수록, 세상 권력이 성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할수록, 우리는 더욱 큰 소망을 가질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우리 주께서 반드시 재림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코 복음의 진리대로 바보처럼 살아가다가 이 세상에서 인생을 끝낼 비참한 존재가 아니다. 애냐하면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바로 이 세상에서 마지막 대반전이 일어날 것을 우리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십자가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세상의 눈에 그야말로 미련하게 보인다. 복음의 진리를 위해 때로는 나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 내게 남아있는 아주 적은 물질을 가지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왜 길이 참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참을 수 있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8절을 보라.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왜 길이 참을 수 있다고 말씀하는가? 주의 강림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강림하신다는 사실을 과연 우리는 얼마나 실제적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현재 내 삶의 고통과 환난을 능히 견디게 할만큼 주의 강림을 생생하게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우리가 죽어서 들어가게 될 낙원보다 더 영광스럽고 복된 상태인 주의 재림의 날을 간절하게 사모하라.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야고보 사도는 계속해서 권면한다. 9절 초반부를 보시면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밖에서는 부자들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교회 안에서도 그 힘겨운 마음 때문에 서로 원망하는 일들이 잦았던 것 같다. 일상을 살아내는 고달픔과 괴로움과 배고픔이 교회 안에서 다른 상황들과 맞물려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분노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원망과 분노를 잠재우기 위하여 야고보가 뭐라고 말씀하는가?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성도들간의 원망과 분노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편이 무엇인가? 바로 주의 강림이다.
조금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그 날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지를 깨닫고, 서로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잠재우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초대교회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는지 잘 아실 것이다. 외부에서는 제국의 핍박이 항상 있었고, 내부에서는 신앙이 흔들리는 교인들과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었다. 여러 억압과 착취, 불의한 상황 속에서 성도들은 점점 지쳐가는 상황이었다.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견딜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다고 야고보는 말하는가? 갈수록 임박해지고 있는 주의 강림이다.
10절에서도 동일한 맥락으로 참고 인내하라고 권면한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주의 이름 때문에 극심한 고난을 당한 선지자들이 어떻게 끝까지 견딜 수 있었는가? 십자가의 복음 때문에 한결같이 비참한 삶을 살았던 사도들과 주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죽기까지 인내할 수 있었는가?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약속하신 재림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성도 여러분, 그렇기에 결론이다. 11절 말씀처럼, 우리도 우리의 마지막을 복되게 생각하고, 실제로 그 가장 복된 상태가 임하게 될 그 날을 간절히 소망하며 지금을 인내해야 한다.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마주하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 신앙으로 인한 핍박들이 있다. 물질적인, 시간적인 손해들도 있을 것이다. 예수 믿는 것으로 인해 관계의 마찰이 있을 수 있고, 때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 당장 변종코로나로 인해 대면으로 모이기 어려운, 참으로 가슴 먹먹한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그럴지라도 이 힘겹고 괴롭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거룩하신 주께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수고를 그치고 주의 품에 안식을 누리게 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영원한 천국에서 마음껏 기뻐하며 주님을 찬송할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가? 주께서 천상의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 재림하실 바로 그 날이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그 날을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오늘을 인내하자. 비록 지금 어렵고, 궁핍하며, 억울하고, 힘겨울지라도 그 날을 소망하며 인내하자. 현실이 너무나 괴로워 그 괴로운 마음들이 형제들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심을 기억하며 서로 원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지자들이 주의 강림을 사모하며 당한 고난을 오래참음으로 인내하였던 것을 기억하며 우리도 인내해야 한다. 길이 참아야 한다.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한다. 주의 강림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자비하시고 긍휼히 무한하신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지금의 고난을 넉넉히 인내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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