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43:1-
Notes
Transcript
1.
애굽에서 가지고 온 식량이 다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유다가 나섭니다. 유다는 베냐민을 잃어버릴까 전전긍긍하는 늙은 아버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됩니다.
9-10절,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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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제안은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닙니다. 르우벤이 자기의 두 아들을 담보로 했던 것과 달리 유다는 자기 자신을 담보로 청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베냐민을 아버지께 데려오지 못한다면 유다는 상속권을 박탈당하하고 스스로 벌을 받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야곱은 유다의 이런 희생적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지만, 꾸물거리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두 번은 갔다 왔겠다'라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베냐민을 데리고 가도록 허락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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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적인 야곱의 모습은 아들들에게 내린 지시를 보면 잘 드러납니다. 11-13절입니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첫번째, 애굽의 통치자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다고 오랜 가뭄으로 메말라 버린 땅에서 겨우 자라난 열매를 선물로 갖다 바칠까 생각해보면, 아곱의 이런 지시는 어떻게든 좋은 선물로 이집트 통치자의 마음을 달래보겠다는 억척스럽고 약삭스런 기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두번째, 앞에서 베냐민을 '나의 아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고 했다면 야곱이 이제는 베냐민을 가리켜 '너희 아우'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아들들에게 형제로서 책임을 지게 하려는 셈이었습니다. 나이 어린 동생을 형들인 너희에게 맡기니 책임지고 데리고 갔다가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집념의 인간 야곱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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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언제 움켜쥐려고 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야곱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둘째가 되기가 싫어 먼저 세상에 나가려는 에서의 발을 움겨쥐었고 눈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의 축복을 받아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무려 14년이란 긴 세월을 마다하지 않고 견뎌내었던 야곱에게 체념이란 단어는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식을 잃으면 잃어야 한다면 잃었지 별 수 있겠느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베냐민에게 어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5.
여기서 창세기 설화자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자식을 잃어야 한다면 잃었지 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동안 하나님과 상관없이 인간적 의지와 집념만을 내세우면 살아 갈때 사용되는 이름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에 순종해서 살아갈 때 사용되는 이름입니다.
사실, 야곱은 얍복강 체험 이후 더 이상 야곱으로 불려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32장 28절에서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그렇지만 인간의 변화와 성숙은 한 번의 영적 체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필요하며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얍복강 체험 이후에도 야곱이라는 이름은 계속 불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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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제 야곱이 창세기 43장에 와서 이스라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솔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집념의 야곱으로서가 아니라 신앙의 인간 이스라엘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는 이스라엘의 말은 단순한 체념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깊이 의탁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먼저 '잔능하신 하나님'을 부른 후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7.
야곱은 노년을 맞게 되면서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뻐저리게 느꼈습니다. 라헬과 요셉, 시므온을 잃고 이제는 굶주림으로 식솔들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서 하나님의 전능을 더욱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께 자신의 운명을 내어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베냐민의 운명을 결정짓는 존재는 자기 희생을 약속한 유다도 아니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애굽의 '바로'도 아니며,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8.
이러한 인식과 함께 그는 마지막으로 집착하고 있었던 베냐민을 놓아버림으로써 야곱은 비로소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림으로써 비로소 자유의 체험, 비상의 체험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인생 말년에 들어선 야곱에게 유일한게 움켜쥘 영원한 대상은 하나님 한분 뿐이셨습니다.
9.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 모두는 두 주먹을 꼭 쥐고 태어났습니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세계, 일등만을 기억해 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두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운명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조금씩 움켜쥐었던 손을 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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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언젠가는 영혼 이외에 우리가 움켜쥘 것은 더이상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두 손을 펴고 떠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가 그동안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요셉의 형제들과 야곱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로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시절을 통해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만 붙잡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어떠한 고난을 만나더라도 잃으면 잃으리라! 하지만 하나님을 붙잡으리라 라고 결단하며 그 기회로 사용하는 우리가 됩시다.
기도
우리 고단한 인생 여정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외에 얼마나 다른 것들을 붙잡고 집착하며 살아가는지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붙잡고 있는 것들이 비록 사라진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꼭 붙잡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 잃으면 잃으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잃지 아니하리라라는 이스라엘의 믿음처럼 우리가 처한 상황을 통해 이런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셔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