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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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임재로 모으시는 하나님
성전 특강 두 번째 시간입니다. 첫 번째 시간에 에덴성전에서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건 곧 하나님의 임재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은혜의 자리, 예배의 자리에서 점점 멀어지는 거예요. 이번 시간에는 임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시 임재로 모으시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처해서 임재를 버리고 욕망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를 출애굽기 1장에서 잘 말해주고 있는데 이집트, 애굽의 노예로 살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임재, 예배를 떠난 삶의 모습은 마치 노예 생활과도 같다는 거예요. 이집트의 왕을 파라오라고 하죠. 이 파라오가 엄청 끔찍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기를 낳으면 아기를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아기가 있었습니다. 모세죠. 모세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집트 공주의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모세가 커서 청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집트 관리자를 봤어요. 화가 나가지고 그 자리에서 그 이집트 사람을 살해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좀 고마워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어요.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개인적인 문제로 다투고 있을 때 모세가 말리려고 하니까 뭐라하느냐면 “애굽 사람 죽인 것처럼 우리도 죽이려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사람을 죽인 걸 알게 된 이집트의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고 합니다. 모세는 파라오를 피해서 미디안이라는 곳으로 피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장가를 들어서 사는데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합니다.
어느 날 모세가 양떼를 몰고 서쪽으로 움직입니다. 출애굽기 3장 1절에 정확하게 광야 서쪽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서쪽은 동쪽의 반대죠? 아까 에덴 성전 이야기 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진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갔습니까? 동쪽으로 갔죠? 동쪽은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반대인 서쪽은 뭘까요? 드디어 하나님의 임재로 점점 가까이 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모세는 왕자로서 힘이 있을 때 하나님의 임재 가까이 간 것이 아니라 도망자 신세일 때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일 때 하나님의 임재에 가까이 가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힘없는 자, 나약한 자 이런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가까이 하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서쪽으로 갔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산이라고 표현하는 호렙산이라는 곳에 갔어요. 거기에 떨기나무가 있는데, 그 떨기나무가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어떤 명령을 내려주시는데 어떤 명령입니까? 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해서 광야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노예 생활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불러 오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힘들게 노동을 하니까 이 노동으로부터 이들을 해방시키려고 하시는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겠죠?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를 모세가 이야기합니다. “백성들이 광야에 예배 드리러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임재로 부르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해서 먼저 모세를 하나님의 임재 떨기나무로 부르셨습니다. 성경에서 불이나 빛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임재로 모으시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파라오한테 광야에 예배드리러 가야 합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멀어진 백성들을 다시 임재 가운데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 했습니까? 모세가 파라오한테 이스라엘 백성들 보내주라고 이야기 했는데 파라오가 보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강물이 피가 되고 개구리와 이와 파리가 들끓고 전염병이 돌고 하늘에서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가 농작물을 다 뜯어먹습니다. 이집트는 태양신을 섬기는 나라인데 낮에도 깜깜해집니다. 나중에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첫째로 태어난 생물은 다 죽게 됩니다. 파라오의 첫째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제서야 파라오가 이스라엘을 내보내줍니다. 이집트에 생긴 이런 무서운 일들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 하나님이 진짜 계시는구나 이집트에는 다 가짜 신들을 섬겼고 하나님만이 진짜 신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느꼈을 거예요.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거예요. 그렇게 이집트에 심판이 쏟아지고 나서 드디어 이집트를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를 나서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여주셨습니까?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게 성경 만화 책 같은 것을 보면 낮에 구름기둥 따로 밤에 불기둥 따로인데, 사실 불기둥을 구름기둥이 감싸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그게 낮에는 구름처럼 보이고, 밤에는 불빛이 보입니다. 불과 구름은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군할 때 그 불구름 기둥을 보면서 행군을 했어요. 그 불구름 기둥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구나 한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불구름 기둥을 따라서 광야를 걷다가 어디로 도착합니까? 삼개월 동안 걸어서 시내산에 도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구름이 빽빽하게 드리우고 온 산이 진동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만 불러서 시내산에 올라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임재하셨고 거기로 이스라엘을 모으시고 모세를 대표로 그 임재의 중심으로 부르셨습니다.
애굽에서부터 시내산까지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계속해서 하나님의 임재로 부르고 계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내산에서 모세는 율법을 받고 그리고 성막을 이렇게 이렇게 지으라 한 지시를 받습니다. 에덴 성전을 잃어버린 후로 이스라엘에게 예배를 드리는 구체적인 장소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짓도록 하신 거예요. 불타는 떨기나무나 시내산은 이스라엘이 두고 두고 경험할 수 없는 임재입니다. 하지만 성막은 주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마주할 수 있어요. 여기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인류의 첫 번째 죄로 에덴동산, 에덴성전이 폐쇄되고 나서 하나님이 처음으로 허락하신 성전이 바로 이동식 성전인 이 성막입니다. 애굽에서 떨기나무에서 시내산에서 성막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임재 가운데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반역하며 죄 가운데 종노릇하고 살지만 하나님은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끊임없이 다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데리고 오려 하시는 거예요.
(3) 성막과 그리스도
이제 성막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띄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성막의 요소들은 그리스도와 연관이 있습니다. 광야에 세워진 성막이랑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점령 후에 건축한 성전이랑 구조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신 성막은 이동식, 조립식 건물이고 성전은 완전한 건축물입니다.
성막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뜰, 성소, 지성소로 나뉩니다. 성전의 입구는 동서남북 중에 어디에 있을까요? 동쪽에 있습니다. 왜 동쪽에 있어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이 자꾸 동쪽으로 가잖아요? 그래서 기다리는 거예요. 임재에서 멀어진 사람이 들어오도록 기다립니다.
이 문은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9절에 예수님께서는 그분 스스로가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만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없습니다.
이 입구를 지나면 뜰이 나옵니다. 뜰에 처음 들어가면 제단이 보입니다. 이 제단은 아시는 것처럼 제물을 태워서 죄를 없애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제물을 가지고 와서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그러면 그 죄가 제물에게 옮겨집니다. 그리고 제물을 죽이면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제물을 태웁니다. 이 제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 사건을 미리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번제단을 지나고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이 물두멍은 손을 씻어서 거룩하게 하도록 하는 용도입니다. 성막에서 섬기던 여인들이 가진 거울을 녹여서 만든 것이라 해요. 거울은 무슨 역할을 해요? 자신을 보는 역할을 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하고 죄를 씻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뜰을 지나서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소는 거룩한 자 장소라는 뜻입니다. 성소 안에 들어가면 왼쪽에 촛대가 있었습니다. 이 촛대는 금을 두드려서 만든 건데 마치 나무처럼 생겼어요. 이 촛대는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이 에덴성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에덴동산의 성전개념이 성막의 개념과 똑같은 거예요. 그리고 이 나무 모양의 촛대에 촛불을 피우면 마치 모세가 호렙산에서 봤던 떨기나무를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일시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계속 있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촛불의 역할은 뭐예요? 어둠을 밝히는 역할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분 스스로를 어둠을 밝히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빛이 되셔서 영적인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을 보면 뭐가 있습니까? 떡상이 있습니다. 떡상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숫자에 맞춰 12개의 떡이 진열되어 있어요. 이걸 한글 성경에 진설병이라고 하는데 원어 그대로는 얼굴의 떡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 식탁의 제일 기본적인 역할이 뭐예요? 식탁의 제일 기본적인 역할은 밥 먹는 거예요 그쵸? 이 떡상은 생명의 양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어떻게 먹고 살겠어요. 믿을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라는 양식을 내려주세요. 예수님은 이걸 두고 뭐라고 하셨냐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또 떡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냐면 교제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 중에 제일 대표적인건 함께 식사를 하는 거예요. 이 떡이 얼굴의 떡이라고 했잖아요? 얼굴은 성경에서 교제를 의미하는 거예요. 떡이 12개라고 했는데 이 특별한 떡상이 성막 안에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면서 식사하듯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촛대와 떡상 사이를 지납니다. 이제 성소라는 공간을 다 지나가는 거예요. 지성소에 들어가는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뭐가 있습니다. 뭘까요? 분향단입니다. 여기에 소합향이나 나감향 같은 것을 피웁니다. 상상을 해봅시다. 지금 성막 밖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있죠? 그런데 성막 안에도 이거랑 비슷한게 있습니다. 이 연기가 구름기둥입니다. 그리고 촛대의 불이 불기둥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줍니다. 분향단에서 향을 피울 때의 연기는 마치 구름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나약한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향단의 연기는 인간이 감히 마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사들이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아서 이 향연이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분향단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분향단을 지나면 드디어 지성소가 나옵니다. 아까 대략 설명했는데 성막이 공간이 구분되어있습니다.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어요. 뜰에서 성소 성소에서 지성소로 갈수록 거룩해지고 있는 거예요. 뜰에는 이스라엘 일반 백성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허락되지 않는 공간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이 지성소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라는 뜻인데, 여기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 뚜껑은 속죄소라고 하는데 여기 두 그룹이 있습니다. 그룹이란 천사를 생각하면 됩니다. 주로 하나님의 초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존재로 성경에 나타납니다. 이 언약궤 안에는 법궤가 들어있고 만나가 든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이 언약궤는 하나님의 특별 임재의 상징입니다. 초월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인데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법궤는 임마누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성막은 입구부터 지성소 언약궤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다양한 역할과 사역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분의 임재로 불러 모아주시는 것을 약속하는 증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치 신혼 집에 결혼사진도 있고 예물도 있고 신혼부부가 함께할 식탁과 침대가 있는 것처럼 성막 안에는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함께 있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4) 성막의 발전과 쇠락
이스라엘은 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믿음의 훈련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왕국을 세웁니다. 초대 왕이 사울, 2대왕이 다윗 3대왕이 솔로몬입니다. 솔로몬 대에 성막이 아니라 제대로 된 건축물인 성전을 짓습니다. 성전을 웅장하고 짓고 여기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전이라는 건물을 잘 지었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믿음이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해야 성전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은 거대하게 잘 지어놓고서는 믿음 생활은 똑바로 안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다른 나라의 우상을 들여와서 거기서 우상숭배합니다. 심지어는 성전 안에 우상을 들여오기도 합니다. 예배도 제대로 안 드리고 성전이 낡아도 부서지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씁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성전 예배를 회복하려는 왕도 있었지만 결국은 불순종하고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있어도 이 성전에서 말씀에 근거한 예배 생활을 안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결국 성전은 파괴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나중에 포로 생활을 끝내고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짓지만 그 성전도 파괴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 짓기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계획이 신약 시대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게 뭐냐면 참된 성전이신 에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는 거예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성전으로 지어지도록 하는 거예요. 이제 건물이 성전이 아니라 사람을 성전으로 삼는 시대를 만드실 거예요.
이 내용은 다음 시간 고신대 신학과 교수인 주기철 목사님의 특강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기도로 이 시간을 마칠 텐데요.
1. 임재로 우리를 모으시는 하나님께 반응하도록
2. 우리를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상에게 엎드리지 않고 예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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