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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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 설교 / 2021.06.16
본문 : 잠언 23장 15-26절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자
오늘 본문의 저자는 ‘어느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잠언 22장 17절에서부터 24장 22절까지는 ‘어느 지혜로운 자의 30개의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13번째에서 18번째까지의 지혜의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가 아들에게 이야기합니다. 15-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아들의 마음이 지혜로우면 아버지의 마음이 즐겁겠고,
아들의 입술이 정직하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유쾌하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흔히 생각하는 효도는 부모님께 이것도 해드리고, 저것도 해드리고, 가끔 여행도 보내드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부모님들도 감사하겠죠.
그런데 부모님들이 바라는 진짜 효도가 그런 것들일까요?
저는 최근에 잠을 자고 있는 자녀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나에게 잘해주고, 노후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이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신앙도 건강하게 잘 자라서, 각자의 삶에서 선한 열매들을 맺는다면, 그걸로 기쁘고 즐겁겠다. 그것으로 충분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의 최고의 효도는 자녀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바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지혜로우면 내 마음이 기쁠것이다.”
여기서 지혜는 단순한 세상적인 처세술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입니다.
크리스천의 부모의 기쁨 중에 하나는 자녀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입니다. 또한 이 구절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된 나에게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받는다면,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에게 엄청 대단한 것을 바라시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것도 해드릴게요. 저것도 해드릴게요.” 할 수 있고,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필요하다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 내가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길을 기쁨으로 따라갈 때 하나님은 즐거워하십니다.
14번째 지혜의 말씀은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미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모든 부모는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형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 없는 세상적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로도 “부럽다”하지 말아야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례] 아내가 첫째 하연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킬때, 자주 만나는 분이 있습니다. 건너집에 사시는 분이신데 자녀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다보니 오가면서 교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분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하연이는 내년에 유치원을 어디로 보내나요?” 저희는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하니, 그 분이 더 나서서 이것도 알아봐야 되고 저것도 알아봐야 하고 이야기하시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교육비를 더 들이더라도, 더 좋은 유치원을 다녀야 한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내가 이야기해주어, 그 날 밤에 유치원들을 찾아봤는데 신세계가 열리더라고요.
유치원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영재 유치원 / 자연숲 유치원 / 영어 유치원 등 엄청 다양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유치원에 갈 아이의 모습을 한 번씩 그려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지금 당장이라도 찾아가서 상담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하연이가 이 유치원에 꼭/절대로 다녀야 하는 이유들이 주르륵 생기더라고요. 그러다가 말씀을 보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무엇이 우리 아이를 위한 진짜 좋은 일일까? 우리 아이가 어떻게 될 때, 나는 진짜로 기쁘고 즐거울까? 이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진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저보다는 매일 세상 속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매순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신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자주 무너지는 지점이 어디일까요?
다른 사람들의 삶과 나의 처지를 비교할 때입니다.
저도 무너졌던 지점이 바로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때였더라고요.
예전에 웬만한 집에는 백과사전들이 세트별로 한두개씩 책장에 꽂혀있었습니다. 백과사전들을 파시는 분들이 방문판매를 하신 것이였는데 그 분들만의 영업스킬이 있었다고 합니다. 우선 백과사전을 읽고 자녀에게 일어날 유익에 대해 말합니다.
“이 백과사전을 읽으면, 자녀들이 창의성이 향상될 겁니다.”
그러면 부모의 마음이 조금 열린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도 창의적인 아이로 자라고 싶다.’
그 때 결정타를 날리는 것입니다. “이 아파트의 누구누구도 샀습니다.”
다른 아이들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들의 마음이 확 쏠려서 각 집마다 백과사전들이 꽂혀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쉽게 무너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것들, 나에게 펼쳐놓으신 이야기들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이들의 겉으로 보여지는 형통함을 부러워하게 되어질 때, 우리는 감사보다는 불평하게 되고, 하나님께 불만을 갖게 됩니다. 우리를 조급하고 성급하게 만듭니다.
교회 밖의 사람과 비교할 때 뿐만 아니라 교회 안 다른 이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을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셔서 다시금 제자들의 사명을 재확인하게 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삶의 존재 이유를 상실해버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여 주심으로 다시금 그들의 삶이 생기를 되찾고 삶의 목적을 되찾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과 감격의 순간에 베드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라는 사명의 순간에 감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서 있는 평소에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이뻐하셨던 요한은 어떤 사명을 받게 되는지 궁금해했다. “예수님, 저 요한은 어떻게 되어집니까?”
예수님은 따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이 어떠한 은혜를 받고, 사명을 받는지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바라보고, 나의 말을 듣고, 나의 길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지는 않으신가요?
예수님이 눈 앞에 계신데, 그 분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데 나는 오히려 다른 이들이 가진 것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모습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진짜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무엇이 진짜 형통함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선한 길은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세상적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남들이 잘 나가는 것들을 부러워하면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진리를 팔아버려서는 안됩니다. 오직 세상적 형통함을 쫓느라,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오직 나의 장래와 나의 가정의 유익함과 나의 사업의 형통함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잠언 말씀은 말합니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미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형통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형통함을 바래서도 안된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형통함을 바라보고 부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통함을 부러워할 그 순간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뜻에 귀를 기우리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장래와 소망이 되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께서 내 미래가 되어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께서 나와 가정과 공동체의 소망이 되어주십니다.
15번째 지혜의 말씀은 19-21절입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얻으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을 이야기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이 거대한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그 큰 줄기 안에서 작은 가지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져있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술, 결혼, 정의, 말, 가족, 용서, 직장, 우정등의 수십가지의 주제들이 있습니다. 삶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중심은 우리의 마음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까지 뻗어나옵니다. 주일 예배만 드리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아니라 매일의 삶이 예배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다루고 있는 주제는 술입니다.
제가 목사로서 자주 듣는 질문이 무엇일까요?
최근에도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에게 들었던 질문은
“교회 다니면 진짜 술을 마시면 안되나요?”입니다.
여러분에게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나요?
교회 안에서도 술에 대해서는 절대 마시면 안된다 / 조금 마셔도 된다 / 술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다라는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
술에 대한 성경의 본문들을 찾아보아도, 얼핏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술은 쳐다보지도 말아야 할 것으로 말합니다.” 쳐다보지 말라는 것은 마시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언의 대부분 술에 대한 말씀은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시편이나 다른 본문은 긍정적입니다. 포도주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라는 본문이 있고,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시셨습니다.
이처럼 성경 안에서 긍정적이고 / 부정적이고 / 중립적인 의견들이 섞여있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만해도 초기 선교사님들은 처음부터 술과 담배를 금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술 문화의 폐해로 인해 교회에서의 금주 문화가 만들어졌다.
한국 술문화의 나쁜 풍속은 ‘먹고 죽자’라는 마인드처럼 언행이 거칠어지거나 가정 안에서 아내와 자녀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들이 나타남을 보고 금주 문화가 생겨졌다.
29-30절도 술을 절제하지 못한 좋지 않은 결과들에게 대해 경계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어디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술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가정과 사회에 충실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또한 술은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며, 술을 의존하게 합니다. 35절입니다.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을 한 잔 마시면 어떻게 되나요?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따뜻한 기운이 쓱 들어오고요. 그러면 기분이 일시적으로 좋아집니다. 알딸딸해지면서 왠지 걱정과 근심이 사라진다.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하다. 계속 마시다보면 이성과 감각이 마비가 됩니다. 때리면 아파야 하고, 다치면 쓰라려야 하는게 당연한데, 마비가 되어 감각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술이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술에 의존하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술은 죄야! 이야기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술을 절제하지 않으면, 죄된 삶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핵심은 술을 마시냐 / 안마시냐의 행위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가 입니다.
그 방향성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의 모습과 태도도 점차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받은 이들이 사람들을 향해서 술취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도 얼핏 보기에는 술취한 사람처럼 보인다.
성령 안에서 담대하게 행동하고 말합니다. 성령에 취한 사람은 지금의 현실과 상황이 아닌 현실 너머를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현실은 바뀐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영적인 감각이 깨어나고,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으로 말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상황을 이미 아시고, 나와 함께 하시며,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기에 우리는 담대하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은혜에 취해서 살아가시길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더 와닿는 이유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비추어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해라! 하지마라!의 딱딱해보이는 계명이 아니라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부모의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4-26절입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된 우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 속에 담긴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해야 합니다.
단순히 ‘해라/하지마라’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진심이 우리에게 와 닿을 때 우리의 삶의 방향들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여러가지 세상적인 가치관들속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 없는 형통함을 부러워하기도 하며, 조급해져서 그 자리에 나와 가정, 다른 이들을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언 23장 17-19절은 말합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바른 길로 나아간다고 하는 것은 단숨에 / 한순간 결심한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학습을 할 때, 작은 성공들을 경험하게 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합니다.
작은 성공들을 통해서 확신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말씀도 하나의 진리입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인도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또한 이 진리가 진실됨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올바른 선순환이 더 큰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게 되고 순종의 길로 인도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 - 경험을 통해서 더 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여러가지 시행착오와 연습 가운데 나아가는 일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생각해볼까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어떻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어렸을적부터 수없이 연습하고 던져본 돌팔매질에 바탕을 두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어릴 때부터 양들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야생짐승들을 상대해보았기에,
그리고 긴급한 상황들 속에서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을 경험해보았기에,
그는 야생짐승보다 더 큰 골리앗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삶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매일마다 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
때로는 우리의 삶에 유혹과 시험이 올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붙들고 있다면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쉽지 않지만, 신앙으로 이 모든 상황들을 돌파해나갈 때, 하나님께는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정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과 즐거움에는 분명히 우리들이 세상적으로 형통해지는 삶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 더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의 의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일입니다.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눈을 드리는 것
오늘도 하나님의 의의 길 /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시길 소망합니다.
그 길 가운데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아가시길,
그 길의 끝에 있을 우리의 소망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시는 복된 인생들, 가정과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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