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성장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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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
무더위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중에도 우리 성도들을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품 안에 모으사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지키고 상한 심령으로 오직 주님의 위로를 받고자 나온 심령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옵시고, 광야와 같은 그들의 마음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 주시옵소서.
또한 듣는 귀를 허락하셔서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또한 삶 속에서 들은 말씀에 순복하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코로나 19 확진자 급증으로 국민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그에 따라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 또한 두려움에 묶이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담대한 믿음 주셔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서는 세상과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피치 못한 사정이 있어서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대신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부어주셔서 두 귀에 들려주신 말씀을 붙들고 하루하루 씨름하면 살아가는 ‘열심’이 있도록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성도들에게는 전능하신 주님이 오른 손으로 안수하여 주셔서 깨끗하게 나음을 입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질병이 더 이상 예배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역사하여 주시고, 오히려 이러한 어려움을 디딤돌 삼아 더 단단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각 목장 별로 섬기며 기도하고 있는 VIP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이 목장에 나와 함께 나누며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예배를 주관하시는 임마누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양」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교회소식」
1. 내일 15일 자정부터 25일(넷째 주일)24시까지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됩니다. 공 예배 참석인원은 50%로 변함이 없지만, 교회 내에서 공 예배 이외의 모임, 식사, 숙박이 금지됩니다. 타지역 교류 및 초청행사도 금지됩니다. 실외행사는 100인 미만에서 가능합니다.
사적모임도 지금과 같이 8명까지 가능합니다.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에 9명 부터 예약 및 동반입장 금지되니 참조하셔서 목장 모임을 진행하시면 좋겠습니다.
2. 코로나 19로 인해 제한받는 모든 예배와 활동이 정상화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배자의 자리를 지키는 빛고을 교회가 되도록
3. 2021년 계획된 사업들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그리고 2020년 사역 계획이 잘 수립되고 준비될 수 있도록
제목: 흔들리며 성장하는 믿음!
읽을 말씀: 사무엘상 3:10-14(구약 p412)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하루에 어떤 소리를 가장 많이 접하고 살아가고 있나요?
인체의 신비는 매우 경이로울 정도입니다.
수많은 소리가 섞여 있는 중에서도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여러 명의 아이들이 떠들고 있지만 그 속에서 내 아이의 목소리는 정확히 가려낼 수 있습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들이 신병 교육대 수료식에 참석하셔서 이런 말을 하십니다. 모두다 빡빡머리라 해도 내 아들 뒤통수는 명확히 가려낼 수 있고, 수십, 수백 명이 부르는 군가 소리 속에서도 아들의 목소리를 찾아 들을 수 있다.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에서도 듣는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전 가구 중에 항상 켜 놓아야 하는 냉장고에서는 지속적인 소음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냉장고의 소음에 관심을 집중하면 평상시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던 소리가 들립니다. 이런 점을 이용하는 치료법이 이명 환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제가 교통사고 이후로 이명 현상이 더 심해져서 병원에 갔더니, 항상 귀에 들리는 ‘삐~’하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려면 다른 곳에 관심을 두고 이명을 무시하라 처방합니다. 과심을 다른 곳에 두어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동일한 말씀이지만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면 들리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허공에 흩어지는 공허한 소리로 전락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를 골라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말씀의 권능을 실종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디션 프로에 나오는 가수의 노래를 감상하듯이 목사님의 설교를 감상하며 감동적인 부분이나 공감되는 부분이 있으면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삶에 들어가서 열매로 드러나는 일은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콩밭에 가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수많은 설교가 울려 퍼진다 할지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생명력이 있는 말씀이 되기도 하고 금방 사그라지는 소음과 같은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은 현대에 와서 생긴 것일까요?
아모스서 8장 11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를 막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3:34에 보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부터 복음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수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들으라” 명령하시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들의 귀를 닫고 듣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백성이라 듣지 못 한다’ 라고 한탄하였겠습니까?(렘6:10).
우리는 오늘 본문과 앞 뒤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두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중에 우리는 어느 쪽에 가까운지 자평하여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빠지지 않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본문 이야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 제사장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홉니와 비느하스는 백성들 사이에 불량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지만 정작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경시여기고 멸시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회막 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를 지적하며 훈계하는 아버지 엘리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25절에 보면,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엘리 제사장의 말만 듣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12절과 17절을 보면,
12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멸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전쟁터에서 같은 날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갈취하여 세우려하였던 그들의 가문도 하나님께서 치심으로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눈이 어둡고 비대하였던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의 죽음과 함께 언약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에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왜?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제사장으로서 예배를 집전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그들의 두 귀를 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게 하였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행동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힘으로 가문을 튼튼히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교만의 대표적인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교만의 특징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교만은
세상에 뿌리를 둔 욕심입니다.
마음의 중심을 재물(세상의 것)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요1서 2:16) 그들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으로 재물을 손에 꼽습니다(잠 18:11).
사람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눅16:13). 따라서 재물을 섬긴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모두 다 우상입니다.
삼상 2:29을 함께 읽겠습니다.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 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 들을 살지게 하느냐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보다 자신의 두 아들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엘리 제사장에 있어서 두 아들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우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엘리 제사장이 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은 어떠했겠습니까?
교만은, 사람들로 하여금 욕심에 이끌려 살아가게 하며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나를 통치하는 보좌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지하고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통치합니다. 입술로는 주님! 이라고 호칭하면서 기도드리며, 찬양도 하지만, 실제로 자신을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 아니라 자기 자신 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미약한 인간이 인생을 통제함으로 여러 가지 일들에 가로막히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뜻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엘리와 두 아들들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신들의 집을 세우는데 힘을 모았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집을 섬기고 세우는 일은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들의 욕심에 이끌려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함으로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제 갈 길로 간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잘 기울여 경청하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본문에 홉니와 비느하스와 대조되는 인물은 사무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시기로 작정한 순간에도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26절)
어린 사무엘은 세마포 에봇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hearing)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 말 잘 들어라! 라고 말할 때는 엄마 말을 듣고 엄마 말에 따라 행하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여 순종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리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서 행동하는 충실한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안을 세우기 위해 따로 힘을 쓰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그 집안을 손수 세워주심으로 후손들이 왕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적용]
우리들의 마음에도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엘리 가문을 멸망에 이르게 한 ‘교만’이 찾아옵니다.
이 교만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흔들어 댑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우리를 찾아오는 교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교만에 넘어지지 않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마치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듯이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미리 방지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교만을 떨쳐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교만을 극복하려면,
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관심을 기울이고 언제든지 하나님이 부르시면 반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밤중에 그것도 한참 잠에 취해 있었을 때, 하나님의 목소리에 즉각 반응한다는 것은 그의 두 귀가 하나님께 집중하며 긴장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간혹 알람을 맞추고 잠을 자도 알람 시계소리를 듣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에 일정이 잡혀 있으면 그 부담과 긴장감으로 잠을 설치거나 알람 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일어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잠을 자면서도이제나 울리나 저제나 울리나 알람에 귀를 기울이듯이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라도 내게 하시는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긴장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또 말씀하실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는 경청의 자세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또한 성도들이 교만에 들지 않으려면,
하나님이 주인 된 삶을 살아가야 됩니다.
말로만 주님! 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주의 종” 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종은 그저 주인이 명하는 것을 잘 듣고 순종하면 됩니다.
성도들이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종이 주인이 지시한 일이 이해가 되지 않고 자신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께 종속된 삶, 주님만이 내 삶의 견고한 성이며 높은 성벽이 되시는 삶, 내가 의지하고 신뢰할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잠언 18:10).라고 결단하고 오직 하나님께 내 마음과 내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교만함의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③ 죄악 된 옛 습관을 완전히 단절하여야 합니다.
내 옛 사람이 수시로 되살아나서 나를 지배하려 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광야 시험을 이기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 없이 잘 살 수 있다 말하는 교만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야 여전히 내가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게도 반드시 회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엘리 제사장 가문에도 죄악으로 인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습니다.
사무엘의 입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자복하고 회개하였다면,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요엘 2:13b)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돌이키사 내리시려고 작정하셨던 징계를 내리지 않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한 시간이 흘러 사무엘이 성장하여 선지자로서 활동을 할 때까지도 엘리 제사장 가문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죄를 단절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죄악 된 습관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 집안이 그들의 죄를 몰라서 회개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보면,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엘리 제사장이 알고 있는 죄입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의 집안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또 알고도 회개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패망하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예외 없이 회개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교회 잘 다닌다고 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엘리도 홉니와 비느하스도 제사장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도이기 때문에 우리의 대적들은 우는 사자와 같이 기회를 옅 보고 틈만 생기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 댑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잘 활용하여 회개하고 죄악의 사슬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죄악된 옛 습관을 단절 시킬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4장 8절 하반절에서 9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라 성도들은 죄악 중에서 살면서 나를 웃음 짓게 하고 나에게 콧노래가 나오도록 하였던 모든 악한 것들은 깨끗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그동안 내가 세상에서 거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으로 삼았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복하는 삶을 겸손한 삶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며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교만하다 평가합니다. 잠언 18:12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교만을 이겨내고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성도가 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는 경청의 자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흔들리는 우리를 굳건하게 붙잡아 주는 세 겹줄이 될 것입니다.
「결론」
성도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야합니다.
흔들리며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면,
도종한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잠시 제가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여러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습니다.
마찬가지 흔들리지 않고 성장하는 믿음도 없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성도들을 흔들어 댑니다.
그 흔들림에 굴복하면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처럼 사그라지고 말지만, 그 흔들림을 극복하면 보다 든든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죄악들을 이겨내고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믿음의 선진들은 ‘성화의 과정’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자동으로 성화의 과정이 수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기 전에 행하던 옛 사람의 악한 습관을 단절시켜 나가는 신앙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고 단련시킬 광야의 길은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치 천로역정처럼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달게 지고 광야를 지나고 나면, 그 길 끝에서 예수님의 환한 미소와 그 따뜻한 품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문론 광야의 길을 통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외롭고 힘든 길을 가야합니다. 광야의 길을 걷다보면, 하나님이 더 이상 나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귀를 열고 집중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은 감정적인 느낌에 의존하여 성립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매일 하나님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성취되도록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훈련의 과정을 통해 성도는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거룩한 삶은(카도쉬: 구별됨과 잘라냄(언약의 의식))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명령하신 삶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려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는 자세로 말씀을 경청하는 상태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경청의 자세가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악한 것은 모두 제거하고 말씀에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구별된 삶, 즉 거룩한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사무엘과 같은 경청의 자세를 마지막 날까지 유지함으로 대적들이 우리를 흔들어대는 삶 속에서도 말씀으로 이겨내고 승리의 면류관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을 다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귀한 말씀을 통해서 흔들릴 지라도 믿음을 잃지 않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연약함으로 인해서 날마다 흔들리지만, 오직 주님의 말씀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감으로서 마침내 승리를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매한 우리들은 흔들릴 때마다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망발을 서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들으시고도 은혜와 자비를 베푸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심으로 우리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 인애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를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따라 하루하루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흔드는 대적들의 공격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성장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를 주님의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양」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성도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모든 흔들림을 말씀으로 극복하고 오직 주님의 길을 따라 가겠다는 결단의 마음을 담아서 “그 길 따라”를 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폐회 기도」
우리 함께 주기도문 하심으로 수요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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