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 (134-135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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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서론

사람의 인생 : 세월의 흔적

사람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세월의 흔적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 경이로움을 느끼도록 합니다.
발레리나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강수진이라는 분이 생각납니다.
이 분은 아시아인 최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했던 분입니다.
그리고 강수진이라는 분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되었고, 자신이 활동할 수 있을 때 까지 평생 일할 수 있는 종신 단원으로서 활동하다 은퇴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강수진 발레리나는 바로 ‘발'입니다.
강수진 발레리나의 발은 굉장히 유명합니다.
오랜 시간 연습하고 또 연습했기에, 그녀의 발은 모양도 흉측하고, 바닥과 맞다아있게 되는 부분은 굳은살이 베어 있어 발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호수 위에 아름답게 도도하게 떠있는 백조가 물 밑에서는 분주히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발레할 때 보여주는 그 아름다움은 바로 그녀의 발에 베인 굳은살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세월의 흔적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곳에 베이는 굳은살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쌓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감에 따라 수많은 상처들을 받게 됩니다.
이별의 상처, 배신의 상처, 실패의 상처, 비교의 상처 등 수많은 상처들이 우리의 마음을 칼로 찌르듯 베고, 우리는 그 상처를 평생 동안 치료하며, 부등켜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버티고 견디다 보면, 우리의 모습은 풋풋하고 젊으며, 생기가 가득하던 모습에서 점점 피부가 거칠어지고,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가며,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의 진시황제는 젊음을 주는 묘약인 불로초를 찾는 일에 자신의 평생을 바쳤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습은 아니, 모든 인간의 모습은 “늙어”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늙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의미들을 함께 떠올리게 되는데, “예전 같지 않다.”, “닳아간다", “지나간다" 등의 의미를 함께 연결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세월의 흔적을 가져간다는 것은 우리가 나이가 들어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상태가 점점 지나고, 닳아서, 예전 같지 않아 지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이고, 삶이라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반대의 인생,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새로운 물건을 샀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의 흔적을 지니게 되었을 때, 그 물건이 낡고 닳아 버려진다는 것에서도 동일하게 보여집니다.

연결하기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말합니다.
Colossians 3:10 NKRV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새것에서 헌것으로 새로운 생명에서 점점 희미해져가는 죽음으로 걸어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고, 우리의 삶인데, 성경은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힘을 얻어 살아가는 인생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죠.
어떻게 가능할까요?
제가 제목에서 힌트를 드린 것처럼 그 방법은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손상되어진 물건을 예전과 같이 100% 새로운 상태로 복원할 수 있을까요?
내 몸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관절도 아프고, 몸의 기력도 약해지는데, 이것을 다시금 100% 처음 태어났던 그 상태로 돌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의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방법들을 연구하고 시도합니다.
사람의 몸이 100% 이전의 것으로 회복되고, 복원될 수 없기에 사람들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뇌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교체해버리자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아주 큰 맹점, 단점이 있는데, 바로 뇌도 늙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컴퓨터에 기록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고,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들이 과연 사람과 같이 발전하고, 정보를 생성하며,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뇌를 가지고 정보를 습득하고, 분류하고, 판단하는 그 능력을 컴퓨터가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머신러닝 즉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됩니다.
오랜 시간 연구했고, 오랜 시간 기술과 투자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인공지능의 상태는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우리의 모든 정보를 뇌에서 추출해서 컴퓨터에 저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진행해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고, 사람에 의해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프로그램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새로워 진다는 것, 사람이 새로운 생명을 누리고, 새로운 희망을 꿈구며,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다르게 이야기하면, 굉장한 희대의 악마라 불리는 조두순 혹은 얼마전 n번방으로 유명했던 조주빈과 문형욱이 과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

본문해설

사도 바울의 모습!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이 쓴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조두순, 조주빈, 문형욱과 같이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죽였던 악마같은 존재였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는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며,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 했던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금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쓴 편지의 일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죠.
Galatians 2:20 NKRV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제가 앞에서 던졌던 질문, 조두순과 조주빈, 문형욱이 과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바로 “죽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이 새로운 사람, 그러니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비결로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향해 쓴 편지인 로마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며, 자신의 말을 좀 더 상세하게 다루어 줍니다.
Romans 6:6–8 NKRV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말입니다.
바로 사도바울은 우리가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망가지고 깨어진 것이 100% 완전하게 회복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무릎이 다쳐 수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릎은 100% 회복되지 않는 것처럼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 죄를 지었고, 그 죄의 맛을 본 사람이 100% 완전한 사람으로 회복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죽음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것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그 사건이 바로 내가 죽는 사건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나서 어떻게 되셨나요? 네, 바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생명을 지닌 자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로, 새로운 삶을 영위하며, 그 삶을 맛보는 자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악마와 같았던 사도 바울도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6:6-8 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Romans 6:6–8 NKRV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라고 말입니다.
바로, 우리가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길 : 율법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새로운 생명을 누리는 죽음을 어떻게 맛보고,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악마와 같던 사도 바울이 얻었던 그 생명의 삶, 그 놀라운 기적의 삶을 우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3:6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 Corinthians 3:6 NKRV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바로 우리는 율법의 조문으로 인하여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십계명의 요약은 바로 우리를 죽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완전한 계명이 우리에게 주어짐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과 우리의 연약함을 보게 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게 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율법은 악한 것인가요? 아니요. 우리가 암이나 기타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때, 우리는 살기 위해 팔이나 다리 같은 신체 부위를 절단해야 하는 것처럼 율법이 우리는 죽이는 것은 바로,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죽어야 하기 때문이죠.
바로 사도 바울이 악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았던 비결, 그 비결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된 비결"이 바로 율법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빠삭했고, 모든 율법을 주문처럼 날마다 외우며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살아가려고 힘썼던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중에 가장 학식이 있고, 권위가 있으며, 모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았던 랍비에게서 배웠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악마로 살아갈 때는 자신이 알고,배운 율법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았기에 그는 율법의 참된 기능,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제대로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율법을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그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사도 바울은 율법의 참된 기능을 깨닫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역할을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새로운 삶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론

그리고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앞으로 살펴볼 십계명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죽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존재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었고,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새로운 삶을 꿈 꾸는 그런 새로운 존재로 여러분들이 재창조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여전히 나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이 시간 율법 앞에서 처참히 난도질 당하여 맞이하게 되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망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존재로,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인생으로 살아가는 유일한 길입니다.
오래되고 낡고, 닳아버린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상태가 새롭게 재창조되는 유일한 길,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했던 그 사도바울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새로운 삶을,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회복, 안식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죽고 새롭게 부활하는 삶,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회복이고, 성경이 말하는 안식입니다.
오늘 이시간 주일을 지키며, 예배드리러 오신 여러분, 예배 가운데 죽음과 부활이 있으시기를 소원합니다.
한 알의 밀아이 떨어져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한 알의 밀알로 죽기를 각오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될 것이요. 그리스도 없이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로운 존재가 되며, 새로운 삶을 살아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귀한 기적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인생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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