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와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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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어떤 부분은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되고 감사한 부분이 있는 반면, 어떤 부분은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고 마음을 후벼파는 것 같은 그런 아픔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런 말씀의 대표적인 구절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에 답답함과 아픔을 주는 말씀이기에 그렇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입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아멘. “그 안에 거하는 자” 즉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푹 찌르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9절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즉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즉, 지금 함께 예배 드리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혈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자녀들은 아버지의 피를 받아 태어나기에 아버지와 가문의 씨앗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보면 생김새도 비슷하고 골격도 비슷합니다. 그 가문의 혈통을 이어 받으면서 조상의 씨가 다 자녀들에게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적에 집에 있으면 집 전화로 전화가 많이 걸려왔습니다. 핸드폰이 상용화 되기 전에는 전화를 하면 다 집으로 했었는데 다들 기억이 나시리라 생각합니다. 전화를 받으면 아버지를 찾는 분들은 열에 아홉은 제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바로 인사를 하고 용건을 말하곤 했습니다. 변성기가 되고나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와 어조가 아버지와 다를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명절에도 친척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때면 그 모습들이 별반 다를 것 없이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다 비슷한 사람들이 앉아있는데 이렇게 혈통이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명절 때면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씨를 우리 안에 심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습도 하나님을 닮아가고, 마음가짐도 비슷해지게 됩니다.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여전히 죄를 짓는 나의 모습이 떠오르니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고통을 느끼고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워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약해서 죄를 짓는 자신의 입장을 말씀 앞에서 합리화 시켜볼 수 있을지 이런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본문에서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할 때 이 죄는 일반적인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용납할 수 없는 고약한 죄라고 말합니다. 살인이나 간음과 같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런 죄를 가리키는 것이지, 인간이면 흔히 범할 수 있는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느 죄는 무겁고, 어느 죄는 가볍지 않습니다. 바다에 작은 모래를 던져도 가라 앉고, 무거운 돌을 던져도 가라 앉는 것처럼, 고약한 죄와 가벼운 죄는 구별되지 않고 모두 죄일 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자아가 있고 옛 자아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잘 믿어도 옛 자아가 여전히 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새로운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고, 실제로 예수님을 믿으면서 범죄하는 것은 옛 자아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생긴 새 자아가 아니라 옛 자아이기 때문에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뭔가 심오한 해석 같이 느껴지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무책임한 해석이 없습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짓든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되니 이것처럼 무서운 생각이 없습니다.
이런 해석들이 잘못된 해석이라고 한다면 말씀의 중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분명하게 찾고 확인해야 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이 본문의 문제를 해결하는 키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의를 행하는 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의를 행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6절이나 8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범죄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어느 정도 죄를 짓고 있고, 얼마나 거룩하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6절 중반에서 “범죄하는 자”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범죄하는 자, 즉 마귀의 자녀는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은 마귀의 자녀는 “죄를 짓는 자”라고 말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의 자녀는 죄를 짓는 사람인데, 그냥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마귀와 같이 죄를 짓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면 다 같은 죄지 마귀처럼 짓는 것은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마귀처럼 죄를 짓는 것이 무엇인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마귀의 자녀는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불법을 행한다’는 말 속에는 고의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깨뜨리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빨간 신호로 바뀌면 우리는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설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하다가 실수로 신호를 보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이 두 사람 모두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나 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로 지나친 사람과 몰라서 실수로 지나간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한 명은 고의로 빨간 신호를 위반하여서 나라의 법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이런 사람을 불법을 행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신호를 어겼지만 실수로 신호를 보지 못하고 지나친 사람은 법을 어기기는 했지만 불법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고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법 질서를 무너뜨리고 무법한 상태로 살아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실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사탄이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와 다 죽는 시늉을 하면서 엄살을 부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내가 얼마나 따분한지 사는 낙이 없습니다. 세상을 돌아다녀도 할 일이 없습니다.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지 아십니까?”하고 엄살을 부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네가 할 일이 왜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죄를 짓도록 적극적으로 유혹하는 것이 네 일인데 왜 할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대답에 사탄이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라고요? 하나님도 정말 잘 모르시네요. 제가 가서 몇 마디 말도 하기 전에 벌써 사람들은 죄를 짓는데 무슨 유혹을 하라는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마귀의 자녀는 불법을 행하는 사람인데 이처럼 자연스럽게 죄를 짓는 사람입니다. 마귀가 유혹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과 별개로 본성으로 죄를 마음대로 범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불법을 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죄를 짓기는 하지만 마귀의 자녀가 불법을 행하는 것처럼 죄를 범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결코 마귀의 자녀들과 같이 불법을 저지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습니다. 5절에 그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아멘.
왜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의 자녀처럼 죄를 범하고 살 수 없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 이유가 나의 죄를 없애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창조주이신 그 예수님께서 죄로 물들어 살아가고 있는 나의 죄를 없애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마귀의 자녀처럼 불법을 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진홍과 같이 붉은 우리 죄를 양 털 같이 희게, 주홍 같은 나의 죄를 눈과 같이 희어지게 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로 나의 더러운 죄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6절의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씀과 9절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잘못되거나 지나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로 죄를 범하는 일이 없게 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장 8-10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당신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될 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2장 1절 말씀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아멘! 하나님의 자녀가 죄를 범하면 우리의 대언자, 쉽게 말해 우리의 변호사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 아브라함도 죄를 범했습니다. 자기 혼자 살아보려고 거짓말을 해서 아내를 왕에게 빼앗기는 비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국기에 그를 상징하는 마크를 넣을만큼 존경하는 다윗은 간음하는 죄를 범했고, 이를 덮기 위해 계획적으로 살인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렇게 따라다니며 사도 중의 사도라 불렸던 사람이지만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자신처럼 예수님을 닮는 자가 되라고 했던 바울도 바나바와 싸우고서는 그를 다시는 보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하고 존경받는 인물치고 죄 짓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이 말씀이 우리가 죄를 전혀 범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를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마음에 둔다면 ‘내가 때론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일도 있지만 나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때론 죄를 범하지만 마귀의 자녀처럼 불법을 행하는 사람은 아니야!’라고 말하는 긍지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사기를 쳐서 경찰에서 아버지에게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개가 사기죄로 잡혀왔는데 당신 아들인 것 같습니다”라고 경찰이 전화로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아들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내 아들이 아닐 겁니다. 나는 자식을 그렇게 키우지 않았어요. 내 아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내 자식은 그런 식으론 살지 않아’, ‘내 자식은 불법을 행하면서 살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당당하게 욥을 자랑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고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긍지를 가지고 말씀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고된 하루를 보내 피곤하지만 말씀듣고 기도하러 나온 대구청구교회 성도들을 네가 보았느냐? 이런 사람이 세상에 없어’라고 사탄에게 말씀하고 계실 것입니다.
작년 5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드린 첫 예배의 설교를 기억나십니까? 최근 신호등 말씀으로 나가서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하나님의 삶,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맹세하시는 것은 우리의 입술이 고백한 대로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는 고백을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나는 언젠가 예수님을 만날 사람이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마귀의 자식들처럼 불법을 행하고 살 수 있겠어. 나는 그렇게는 못 살아’라고 매일 매일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이런 고백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반드시 도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입니다. 어쩌다 실수할 수는 있어도 마귀의 자녀들처럼 불법을 저지르며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대언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찬송가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의 가사를 기억하십니까. 3절 가사가 이렇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보혈을 날마다 입으로 간증해. 담대히 싸우며 나가세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예수는 우리를 깨끗게 하시는 주시니 그의 피 우리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네”
우리는 날마다 나의 죄를 깨끗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입으로 간증하며 나아갑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담대하게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죄와 담대하게 싸울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그 십자가 보혈이 우리의 주홍 같은 죄를 눈보다 더 희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자녀와 다른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입으로 간증하며 담대히 이 세상 속에서 승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