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통해 누리는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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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함께 하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세요’하고 인사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요즘 우리 성도들 가운데 ‘은혜’라는 찬양이 자주 불려지는 것 같습니다. 가사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취할 수 있을만큼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주는 찬양으로 보입니다. 이 찬양은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당연한 게 아니고, 모든 것이 다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걸어왔던 길, 변하는 계절, 숨쉬고 사는 것, 찬양하고 예배하며 전도하는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더라는 고백입니다. 코로나의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우리에게,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일상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는 찬송은 큰 공감을 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음을 깊이 묵상하고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을 올려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묵상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우량이 증가하고, 온도도 높아 온 몸이 끈적거리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이 계절에 묵상에 힘쓰다 보면 이 더위도 우리에게 은혜가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우리는 시간에 쫓겨 살면서 묵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책 갖추고, 큐티 책 한 권 들고 다니면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 말씀을 묵상하여 내 심정에 그 말씀이 자리하게 할 만큼 여유가 없습니다. 안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묵상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묵상을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따금씩 하는 경우적 묵상이고, 다른 하나는 엄숙한 묵상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엄숙한 묵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말씀을 따라 주제를 묵상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의 바쁜 현실에서는 경우적 묵상을 훈련하는 것은 우선 필요해 보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갑자기 마음에 찾아오는 경우적 묵상은 말씀보다는 자연적인 소제들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묵상 시편 23편의 말씀을 차근차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시편 23편은 그 자체로 말씀이긴 하지만, 이 말씀을 이루고 있는 많은 일상의 소제들 때문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을 하늘의 소제들을 통해 구성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의 삶에서 만나는 것들을 통해 기록합니다. 그래서 이 시는 성도인 우리가 경우적 묵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내용이라 여겨집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어린 시절 양을 치던 것, 지금으로 보면 어린 시절의 직업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직업에 대입하여 묵상합니다. 우리 시편 23편 1절을 같이 봅시다.
시편 23편 1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을 가만히 읽고 있노라면, 이 시는 다윗이 자기 생애 전체를 돌아보면서 지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먼저 어린 시절을 떠올리죠. 그때 자신은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여기 목자라는 말은 ‘로에’라고 해서 양치기라는 말입니다. 우리 기독교 문화에서 ‘목자’는 예수님께서 인용하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가 아주 고상하고 대단한 용어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구속사의 진리를 드러내는 이 단어가 사실은 다윗이 어린 시절 자신의 목동 때를 생각하며 그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직업인 양치기에 오실 예수님을 비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구속의 특별 은혜가 세상의 일반적인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깨달음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나의 세상에서의 직업을 통해 얼마든지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경영하시거나 어떤 회사에 다니시는 분들은 ‘여호와는 나의 사장님이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여호와는 나의 선생님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학생들은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떠 올릴 수 있고, 내 인생의 길을 밝히시고 도우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묵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라고 터부시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시면서 병중에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나니까 하나님 묵상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의사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하나님을 묵상하는 좋은 소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니, 여호와는 나의 어머니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나의 직분과 역할을 통해 항상 우리 예수님을 묵상하시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다윗은 목자의 사역 목적을 통해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2절을 볼까요?
시편 23편 2절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목자의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목자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목자는 양 떼를 푸른 풀밭에 앉게 하고, 쉼이 있는 물가로 인도해 줍니다. 목자로 인해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해결되는 것입니다. 양은 시력이 약해서 스스로 먹고 마시는 것조차 스스로 공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기지로 우리는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 그분들의 도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청진기나 의사의 처방전 발급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회복을 위한 치료제를 주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을 위해 가르치는 그 모든 수고들 속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지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목자가 양 떼를 위해 수고를 열거하면서 그것이 자기에게 주는 놀라운 혜택이 무엇인지를 3절에서 고백합니다. 우리 3절을 봅시다.
시편 23편 3절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인간 목자가 양들을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양 떼를 인도하는 것을 통해 여호와 목자는 사람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특별히 다윗은 양치기들이 하는 일을 양 떼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인도하심은 육신의 음식을 먹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을 소생시키고 풍성케 하시는 것임을 고백합니다. 성도의 묵상은 묵신의 것을 통해 영의 것으로 나가고 나의 필요의 채움을 통해 영의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임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직업을 통해 나는 어떤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사실 종교 개혁자들이 밝힌 놀라운 진리는 모든 성도들은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섬기는 사역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만나러 수도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직업의 현장으로 나아가 그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들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고 성공한 뒤에야 왕으로서의 하나님을 묵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어린 시절 양치기 소년의 그 직업 속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치기들이 해야 하는 최고의 목적, 양 떼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그 일이야말로 성도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의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여호와를 묵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묵상이 교회당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기억하시고, 내 직업과 그 직업의 목적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만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다윗은 양치기의 목적만이 아니라 양치기의 도구들도 하나님을 묵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양들을 인도하는 중에 양치기는 죽음의 골짜기로 양을 인도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양치기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4절을 볼까요?
시편 23편 4절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이 부분에서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통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녔던 자신의 젊은 날을 떠 올립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그로 인해 성령이 임하셔서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로 죽이는 엄청난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던지 당시 사람들은 사울은 천천을 죽였으나 다윗은 만만을 죽였다고 찬양했습니다. 천천하면 백만 정도이고 만만하면 일억 정도가 됩니다. 이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은혜로 그는 이런 엄청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오히려 잘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죠. 그것은 당시 왕이었던 사울이 그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왕이 군대를 동원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그 순간들은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이런 골짜기에서는 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죽습니다. 길은 가야 하는데 어디를 밟아야 안전한 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처음에 다윗은 블레셋으로 도망갔습니다. 무작정 갔더니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바로 그 만만을 죽인자라고 하던 사람이라며 오히려 죽여서 없애야 안전하다는 블레셋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다. 얼마나 노랬겠습니까? 그래서 미친 척하고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해서야 겨우 위기를 피할 수 있었고, 결국 블레셋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시편에는 이때의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했는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 34편은 표제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시편 34편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시편 34편 1-4절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은 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고 합니다. 4절은 그가 간구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미친 체하라는 지혜를 주셔서 그가 아비멜렉 앞에서 쫓겨나 도망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위기의 순간, 절체절명의 사망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양치기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갈 길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이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다윗이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시를 지을 때 그는 양치기의 막대기와 지팡이를 떠 올렸습니다. 양치기 소년 시절 양들을 이끌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가야 했던 그 시간에 자기 생각으로, 자기의 본능을 따라 움직이는 그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사용했던 그 막대기와 지팡이야말로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묵상하게 하는 최고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양치기는 곁길로 가는 양들을 막대기로 톡톡 쳐서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도자였던 것입니다. 그 인도자의 도구였던 막대기와 지팡이야말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은혜를 알게 하는 가장 소중한 묵상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목자의 막대기만 그렇겠습니까? 내가 직업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많은 도구들은 그보다 더 풍성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문명의 이기들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 도구 아닙니까? 이 코로나 시절에 우리 교회는 인터넷을 사용해서 영상 성경 공부를 하쟎아요. 그걸 응용하셔서 가족회의도 하시고 멀리 있는 자녀들과 구역 모임처럼 함께 교제도 나누는 분들이 계십니다. 얼굴을 보고 함께 교제할 수 있게 하신 이 모든 도구들은 다 하나같이 보이지 않는 중에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하는 장치들 아닙니까? 주님은 기도의 인터넷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시고, 말씀의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을 알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신 모든 것들로 주님을 묵상하고 감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다윗은 자신의 대관식을 떠올리며 그것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을 같이 봅시다.

시편 23편 5절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왕의 대관식 날은 온 나라가 경축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대통령 취임식 날도 온갖 축하가 넘치는데 왕의 대관식이야 어떻겠습니까? 다윗은 크신 은혜를 그 날에 있었던 많은 일상적인 것들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기름, 그리고 은 왕의 대관식을 상징하는 일상적인 단어들입니다. 이런 일상의 단어는 다윗이 자신이 왕이 되기 이전까지의 그 고난의 눈물을 씻겨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케 합니다.
대관식에 있는 상이니까, 얼마나 크고 많은 음식들이 놓여 있겠습니까? 양치기 소년으로 살다가 이제 왕이 되어 이 엄청난 상을 받고 보니 그 마음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했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은 기름을 부어 한나라의 왕을 삼아 주셨습니다. 기름은 아무나 바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람들, 하나님이 세우신 왕들이나 선지자, 혹은 대제자상에게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선택받은 자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그는 기름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잔은 넘치고 있습니다. 흘러 넘치는 풍성함은 그의 마음에 주신 큰 은혜겠지요.
특히 다윗은 원수의 목전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이 원수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울이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을 중심으로 하는 베냐민 지파는 항상 다윗을 비난하고 공격했지요. 사위가 장인이 가진 왕권을 앗아 갔다고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대관식은 원수들이 보는 가운데 베풀어진 하나님의 큰 은혜였던 것입니다.
비단 대관식만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임직식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세우신 영광의 직분을 받기 이해 주신 대관식의 음식들이나 그 풍성함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도구가 됩니다. 우리는 결혼식이나 입학식, 취업 축하연, 아이 돌, 칠순 잔치 등등 요즘은 환갑 잔치를 잘 안하신다고 하시던데 그런 모든 잔치의 시간들은 다 여호와의 은혜를 묵상하는 좋은 시간들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큰 기쁨의 날을 주시면서 우리에게 감사와 축하를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게 하신 것인 줄도 모릅니다.

그리고 끝으로 다윗은 이 모든 묵상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결심합니다.

6절을 봅시다.
시편 23편 6절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하나님을 묵상하다 큰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그를 쫓아 올 것을 안 것입니다. 여기에 ‘따른다’는 말은 ‘쫓아온다’는 ‘라다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영어로 보면 run after, chase, 혹은 persue 등의 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아있는 한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항상 자신을 따라 다닐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표현은 미래적 표현인데, 인상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따라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요?
목자가 양을 따라가는 경우는 양이 다른 길로 갔을 때입니다. 나머지는 양이 목자를 따라갑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는 내가 범죄하거나 어떤 잘못된 길에 있더라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반드시를 나를 쫓아온다는 것입니다. 그게 다윗의 인생을 통해 본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심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하고 결심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산다’고 하는 말은 원어를 보면 슈브라는 말을 씁니다. 슈브라는 말은 turn back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선지자들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할 때 주로 사용한 동사입니다. 돌이키라 회개하라 이런 뜻입니다. 그렇게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 길에 있을 때라도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를 반드시 쫓아오십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내 삶을 돌이켜 하나님의 집에 있겠다고 결심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생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묵상하다보니 나는 누구라구요? 나는 범죄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따라 오셨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성전에서, 임마누엘 하나님과만 살겠다고 결심하며 묵상을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23편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시는 우리가 언제나 무엇으로나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보여 줍니다. 나의 직업, 직업의 목적, 직업을 이루기 위한 도구들, 나의 일생의 중요한 날들, 그 날을 장식한 모든 도구들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묵상은 내가 죄인이었구나, 하나님이 나를 따라오셨던 거구나, 그렇다면 나는 회개하며 하나님의 집, 임마누엘이신 주님과 동행해야 하겠구나 하는 결심으로 이어지게 됨을 보여 줍니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이 놀라운 구원의 노래를 이루어 가는 아름다운 소제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도 신앙의 선배들이 물려주신 일상을 통해 하나님을 묵상하는 삶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삶의 경우들마다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모든 일에 새롭게 결단하고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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