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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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네 반갑습니다. 수요 기도회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풍성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같이 계신 분들에게 ‘평강하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코로나 확진 상황이 계속해서 안심하기에는 이른 것 같습니다. 모두가 건강에 유의하시고 움직임을 절제해야 하는 이런 시간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주제 제시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는 세상에 악이 이기고 선이 지는 것 같은 일들로 인해 마음 아파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악을 막아주지 않으시고 선한 이들, 약한 이들이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은 성도인 우리들을 몹시도 피곤하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같이 읽은 시편 10편은 9편과 함께 같은 제목의 시가 아닐까 생각되는 시편입니다. 실제로 9편의 제목을 보면 이렇습니다.
9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랍벤에 맞춘 노래]
여기에 나온 뭇 랍벤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뜻으로 시편 9편은 본 시를 이런 애가로 부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9편은 그렇게 애곡이 아닙니다. 오히려 10편에 와보면 안타까운 세상 형편을 통곡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노래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10편의 제목 역시도 9편과 같이 뭇랍벤에 맞추어 읽으면 적절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삶이 이처럼 우울하고 힘든 절망의 시간에 성도가 가져야 할 소망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하고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문제제기
사실 성도인 우리들도 삶의 순간순간을 지내다 보면 억울한 한숨과 하소연이 입에서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악한 자가 오히려 이기는 듯하고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노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시편 10편의 저자와 같은 외칠 때가 있습니다. 우리 1절을 한 번 봅시다.
시편 10편 1절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그렇죠. 우리도 삶을 살다 보면 도대체 세상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며, 내 인생은 정말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안전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악한 자의 교만한 삶은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고,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고 탐욕을 부립니다. 심지어 이들은 대범하게 하나님까지 멸시하고 당당하게 자신은 결코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 칩니다. 4-6절을 같이 봅시다.
시편 10편 4-6절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이처럼 악인의 성공하는 모습 못지 않게 우리를 좌절케 하는 것은 이들의 악한 말입니다. 시인은 악인의 입에 있는 악한 잔해들과 죄악들을 분명히 고발합니다. 7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7절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악인이 이기는 것만 해도 억울한데 그 악한 말들은 성도의 마음을 더 찌르는 창과 같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웅크리고 앉아 남을 괴롭히고도 하나님은 앞을 못보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안전하다며 교만한 입을 함부로 놀리기도 합니다. 10, 11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10, 11절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사실 성도는 이런 억울한 삶을 만날 때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게 되고, 이로 인한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우리 삶에 존재하는 이 모든 억울한 일들 속에서 우리는 하늘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해야 할까요?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내 삶을 지키시는 나의 참 왕이 되시고, 나의 진정한 보호자가 되실 수 있을까요?
J1. 하나님의 성품과 심정, 그리고 방법
물론 이런 질문은 나름 정당해 보이긴 하지만, 그러나 한가지 간과하지 않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숨어 계신 것 같이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내가 느끼는 나의 감정이지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악인이 이기고, 그래서 그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며 하나님까지도 멸시하는 듯해 보이는 상황들에 우리가 처한다 할찌라도 그 모든 것들은 아직은 내가 느끼고 내가 겪는 힘듦이지 하나님이 무능하시거나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나, 어느 때나 변함없이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임마누엘로 우리에게 오셔서 내 옆에 계신 분이십니다. 다만 아직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기에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내가 절망한다고 세상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낙심한다고 땅이 꺼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때가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J2.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세상에 악이 넘치고 여전히 악이 이기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현실은 아직 종말의 성취가 아닙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 이 땅에 다시 오실 영광의 주님이 가져오실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과정에 있고, 결코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은 여전히 악이 넘치고 세상은 하나님의 일반 은혜마저도 잊어버리고 항상 자고하며 악을 범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도 과정에서 악을 만납니다. 불의로 인해 낙심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 땅을 악에게 맡기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은 결코 악에게지지 않으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 자신이 아들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고, 아들의 승천 이후에 성령님을 통해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심으로 우리는 낙심하나 무너지지 않고, 절망하나 포기하지 않는 소망의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시는 날, 성도는 반드시 주님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시편 10편의 저자로 여겨지는 다윗도 이 절망의 이유를 밝힌 후에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2, 13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12, 13절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시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무너지지 않으시며, 악인의 멸시와 거짓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지 않으심을 확십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여호와의 일어나시고, 손을 드셔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말아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이 땅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주님은 세상의 가난과 아픔을 아시고자 먼저 인간의 몸을 입고 처녀의 태를 빌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과정을 생략하지 않으시고 몸소 체험하시며 인생의 연약함을 다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주님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부질없는 인생이 하나님을 무시하며 이웃을 함부로 해하는 그 행위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시인의 고백대로 우리 주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직접 보셨고 경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고난을 지는 이들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심판까지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14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14절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온 몸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며 연약한 죄인의 모든 고뇌를 다 아신 주님은 외로운 자, 고아로 버려진 자들 같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지셨고, 사탄의 죄 아래에서 겪는 모든 재앙과 원한도 두 감찰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자가 되신가 동시에 또한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15, 16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15, 16절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우리 예수님은 악인의 모든 죄를 다 찾아내셔서 그 팔을 꺽고 심판하시며, 그 백성의 참 왕이 되셔서 이방을 백성의 땅에서 다 물리쳐 그 자녀들을 평강하게 보호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 ‘이방’을 두고 존 칼빈은 이들은 단순한 열방이 아니라 이스라엘 내에 존재하는 거짓 성도들을 말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나 종교 개혁 시대나 또한 우리들의 시대에도 교회 내에 성도 아닌 가짜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항상 복음을 방해하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다른 백성들을 괴롭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런 악한 자들까지도 반드시 처벌하십니다. 다만 나의 때가 아니고 아버지의 때, 그 시간까지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만, 마침내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심판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W1.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은 악을 심판하심으로 우리에게 소망이 되십니다.
구세주는 또한 악을 심판하는 심판주로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악이 성도를 넘어 뜨리지 못하도록 보호하시는 보호자가 되십니다.
W2. 심판은 악한 세상에서 성도에게 참된 희망이 됩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말없이 계시고, 보고만 계시고, 그래서 성도는 답답하고 억울한 삶을 겪어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내가 가서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내 마음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그 분의 심판주 되심을 신뢰할 때 성도에게는 인내와 소망의 빛이 부어집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심판주로 보내셔서 성도에게 참된 소망을 허락하십니다.
다윗은 시편 10편, 우울한 뭇레벤의 곡조의 노래를 이렇게 소망으로 마감합니다. 우리 17, 18절을 봅시다.
시편 10편 17, 18절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성도는 심판주 앞에서 소망을 가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주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회복하시고 구원의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T1. 다윗의 복
우리는 다윗이 어떤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시편 10편을 지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심판의 주님으로 인해 큰 위로를 얻고, 절망 중에서도 놀라운 소망의 회복을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T2. 오늘의 현대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여기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항상 자신이 모든 원한에 복수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 갑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웃을 잃어버리고 참된 안전을 빼앗긴 새로운 불안 속에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T3. 성도의 복
그러나 성도는 이제 우리의 참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낙심과 절망의 심판자가 되심으로 복수에서 벗어나 참된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모든 엉어리와 복수의 마음을 심판주되신 주님께 맡기고 참 왕이신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안전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이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답답하고 울분이 치솟는 삶이라 할지라도 성도는 나의 느낌과 정서로 사는 자가 아님을 마음에 잘 붙드시기 바랍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는 순간까지도 성도에게는 심판주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감정과 나의 절망이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성도의 감성은 여전히 타락의 부패 속에 존재하고 있는 영의 기능입니다. 그러하기에 나의 감정이 아니라 오직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왕되신 그리스도의 시간과 때를 기다리며 회복의 때를 향한 소망 가운데 성도는 살아야 합니다. 잠시 악이 이길 수 있고, 잠시 아니 좀 길게라도 세상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시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참 구주이신 예수님 앞에서 악과 세상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세주가 심판주가 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시인은 아들을 잃은 슬픈 노래의 곡조에 세상의 절망과 아픔을 담아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노래를 절망의 가사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의로운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참 왕이 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답답한 현실들과 억울한 삶의 자리를 지나는 우리 모두는 이 모든 삶을 이미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리고, 반드시 심판하여 악을 도말하시고 그 자녀를 돌보실 우리 구주 예수님을 믿고 참된 기쁨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절망 중에도 낙심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우리 주님을 붙들고, 혹 힘든 삶의 자리에서 반드시 소망을 누리고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