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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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수요예배 설교
본문 : 사도행전 3장 1-10절
제목 :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는 있다.
도입
2010년 1월부터 2월까지 학원에 다녔습니다. 그 학원은 학원에 등록한 사람들을 그룹으로 묶어서 한 조로 공부를 하게 하는 유명한 학원입니다. 거기서 참 특별한 사람을 만났는데요. 바로 그 조에서 팀장을 맡은 친구였습니다. 한 사건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제가 빵을 샀는데,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면서 빵이 한 개가 모자란 거죠. 그걸 보면서 그 친구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겠다.” 그러면서 자신은 먹지 않을 테니 다른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런 양보를 오병이어 기적과 연결해서 말하냐고 했더니 이와같은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성경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어떻게 생각하냐면 우리들이 군대에서 들었던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 있지 않습니까? 한 개의 물병만 남았는데 전 대원이 물병을 들고 마셨는데도 물병의 물이 그대로였다. 그런 것처럼 오병이어의 기적도 바로 어린 아이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를 가지고 온 것에 감격하여 서로 양보하여 모든 사람들이 마치 먹은 것처럼 놀랍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스스로 너무 감동적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굉장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더라구요. 물론 그 친구는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은 믿지 않는다고 밝힌 친구였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를 다니냐고 했더니 미국에 유학을 가면 교회를 다녀야지 사회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여자 친구는 자신은 중학교까지 열심히 성당을 다녔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자신이 성당에서 신부님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서 이런 가르침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갑자기 떡과 물고기가 생겨난 것 아니라 어린 아이가 떡과 물고기를 내놓으니 어른들이 부끄러워져서 스스로 자신들이 챙겨왔던 도시락을 꺼내 들어서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참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설명은 참으로 치졸하고 참으로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천주교의 어떤 신부님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유럽의 신학교에서 이와 같은 것을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꾸며지고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할찌라도 그 뼈대가 되는 일에 살이 붙여져서 그렇게 기적의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물위를 걸었다고 하는 이야기, 병자들이 치유됐다고 이야기는 모두 제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남자와 관계를 맺지 않은 동정녀에게서 낳다고 하는 이야기 또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제자들의 머리 속,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할 때 이렇게 생각했겠죠. 아... 나는 참으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야.
하지만 그와 같이 성경의 말씀을 가위로 자르고, 칼로 도려내면서 결국 그들은 교회를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교회에 예수 믿는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만든 것이죠. 유럽의 교회에 가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것처럼 교회에 나이가 많은 노인들과 신학을 공부하는 목사들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찾기가 어렵게 된 것이죠. 바로 이런 결과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으로 성경에 나오는 진리들은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린 사람들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교회에서 쉽게 기적에 대해서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단들이 가장 많이 쓰는 것이 바로 기적을 통한 병고침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에 나왔던 많은 이단들, 기도원들에서 행하는 것이 바로 병고침 사역입니다. 병을 고친다고 말하면서 막 손을 몸 속에다 넣어서 암 덩어리를 꺼내는 것 같은 쇼를 하고, 반은 정신이 나간 것과 같은 모습으로 무당과 같이 굿을 하는 것과 같은 기도를 하면서 병자를 고친다고 하는 모습들은 많이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교회 안에 이와같은 기적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들도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 그것만 있으면 되지 기적과 같은 것은 우리 삶에 있을 수는 없을 거야. 이러한 생각으로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들을 외면하고 우리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죠. 저도 사실은 이와 같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이 보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모임 가운데, 또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사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기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하나님, 그와 같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기적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적이며, 성경적인가? 그것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은 우리들에게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어떠한 기적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인가? 어떤 기적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유익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1. 먼저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합니까?
한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오늘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사람들이 기도하러 올라오는 시간에, 사람들이 가장 성전에 붐비는 그 시간에 사람들의 손이 이끌려 남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성전으로 가는데 홀로 성전에 가장 아름다운 문, 미문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구하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따라 하나님이 계신다고 약속하신 성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신세, 가장 아름다운 문에 앉아는 있으되 그 아름다운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그러한 불쌍한 존재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러한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아 태어나서 스스로 한 번도 일어서지도 걷지도 못한 사람이 걷고 뛰면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보좌인 성전에 들어가서 행복해하는 모습. 바로 이러한 변화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한 번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희망도 없고 소망도 없었던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통하여 고침을 받고 자신을 고쳐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그러한 삶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그 병자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감사의 말을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성경은 그러한 고백은 전혀 담고 있지 않고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행하시는 기적 가운데 고치는 사람과 고쳐진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찬양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예수의 이름을 말한 사람을 통해서,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한 그 행위를 통해서 고쳐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디 어디에 가면 신통방통한 목사님이 있어서 기도만 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데, 어느 기도원에 가서 기도만 받으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데 하는 이런 말을 듣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찬양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높여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기적입니다.
2. 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다고 말합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 아니다”고 말합니다.
병고침을 하고 놀라운 기적을 행했다고 말하는 목사님들, 그러한 장로님들, 권사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은근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지만 이와 같은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 금식기도와 철야 기도를 어떻게 해야한다.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말은 하지만 은근히 자신들에게 그와 같은 일을 행할 수 있는 어떤 조건들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는 것이죠.
저도 항상 이와 같은 설교를 할까 항상 두렵습니다. 이번 주일 오후 설교 후에도 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주일 오후 설교를 통해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이야기 했지만 제가 어떤 조건이 있어서 그것을 행한 것은 아니거든요. 오직 하나님께서 다 행하신 것인데, 혹시라도 그와같이 생각될까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잠이 안와요. 타락한 것 같아서.
무슨 말입니까? 정말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어떤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 앞에 담대하게 설교를 합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5천명이나 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성도님들 한명의 영혼이 전도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계시죠. 그런데 단 한차례의 설교를 통해서 5천명이나 되는 놀라운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것이죠.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기적은 어떤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고 그 사람이 마치 신인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복음의 사역과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rusks다는 것이죠.
이것은 오늘의 말씀 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온 많은 기적들 가운데 대부분의 기적들은 바로 기적과 예수님의 복음이 확장되는 것이 연결되어있습니다. 그 기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9장에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린 사건, 14장에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친 사건, 16장에 빌립보 감옥의 문이 지진으로 열린 사건, 20장에 바울이 유두고를 살린 사건, 27장에 파선된 배에서 276명 전원이 구출된 사건, 이러한 놀라운 기적들,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들은 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는 복음의 역사가 함께 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지난 기도회 때 그와 같은 설교와 기도를 했는데요.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일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저희들은 누군가 한 명이 기도를 해서 놀라운 일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보기도팀이 함께 기도를 하고, 교회 성도들의 함께 기도제목을 공유하고 기도함을 통해서 놀라운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죠. 우리의 이러한 기도의 놀라운 기적들이 계속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운데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복음의 사역과 연결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제가 꿈꾸는 것 중 하나인데요. 제가 목회를 하면서 특별히 설교를 하면서 이와 같은 기적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너무 연약해서 제가 만약에 안수를 해서 사람이 낳으면 그 자리에서 놀라서 기절하거나 스스로 지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착각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꿈꾸는 것은 설교를 할 때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병자들이 낳고, 심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치유를 받고, 깨질 위기의 가정들이 다시 사랑을 되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모르겠죠.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고치신 것이니깐요.
이러한 놀라운 역사가 주가행 교회 예배때도,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도 있기를 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들이 주목해야 하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와같은 놀라운 기적들이 무엇을 통하여 일어났는가 하는 점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될 때 일어난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힌 베드로의 그 온전한 선포를 통해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보니깐 오늘 본문에 이와같은 제목을 붙인 글이 있었습니다. 그 글의 제목은 “세 거지의 만남”입니다. 세거지의 만남.
맞습니다. 오늘 베드로는 자신에게 무엇을 줄까 기대하는 거지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맞습니다. 만약 가지고 있는 돈으로 어떤 사람을 평가한다면 분명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중에 상 거지가 맞습니다. 다른 성도들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사람, 다른 성도들의 도움없이는 먹을 것 조차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아닙니까.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세 거지가 만난 것이죠.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무엇이 틀립니까? 세상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한 사람인 것이죠.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고,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며,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함께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실하게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이 장애인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만드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정말 그들이 말한 것처럼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그 거지에게 줄 것은 예수 이름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예수 이름의 능력은 그 거지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그 사람이 평생토록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그 사람이 상상했던 그 이상의 일, 자신의 힘으로 혼자 일어나는 일만 일어났어도 엄청난 일이었을 텐데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서 성전에 뛰어 들어가 뛰어다닐 수 있게 된 것이죠.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능력입니다. 이와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에 온 인생을 내어 맡기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삶으로 바꾸어주실 줄 믿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 삶은 돈이 풍성하게 넘쳐서 돈을 벌지 않아도 평생 요트나 타고 다니면서 낚시나 하는 그러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인생, 축복의 인생, 우리에게만 있는 축복이 아니라 그 축복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흘러 넘치는 축복, 복음의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에 다녀온 신학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중국에는 정말 못 걷는 사람들이 일어나는 기적들이 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이 진짜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에서는 어떠합니까? 선교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나라, 하나님을 아직 듣지 못한 그러한 나라에서는 그러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서 복음이 확장되지만 일단 복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기적들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혹시 우리들이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 은이나 금, 돈, 집을 의지하는 그러한 불신앙 때문에 있는 것이라면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론.
우리들이 소망할 수 있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한 인생이, 한 가정이, 한 교회가 완전히 뒤바뀌는 기적입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하나님을 찬양하지도 못하는 인생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통하여 변화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이혼의 위기까지 몰렸다가 다시 회복되는 그러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만이 영광 받는 그러한 놀라운 기적입니다.
또 소망하는 기적을 통하여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그 기적을 통하여 교회의 성도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는 슬픈 현실 가운데 다시 우리 나라의 교회가 부흥하는 놀라운 일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러한 일에 주가행 교회가 중심이 되어 우리 교회의 기도를 통한 일들을 통하여 김포 땅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늘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기적을 위해서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빈손입니다. 우리들에게 은도 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전부라고 말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하는 굳센 믿음입니다.
우리의 모든 인생을 돈이나 다른 어떤 것에 맡기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맡기어 기적의 삶을 매일 매일 경험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바꿔서 391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