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과 간음, 그리고 우상숭배 (143-165, 196-203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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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Deuteronomy 5:8–10 NKRV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Deuteronomy 5:17–18 NKRV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서론

트루먼쇼

혹시 트루먼쇼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음, 이걸 아시면 적어도 1998년에 10살이었으니까 지금 저랑 비슷한 나이이거나 더 많으신 겁니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일생과 관련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트루먼은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크게 고안된 드라마 세트장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즉, 그의 일생 일대가 전 세계게 방영되는 드라마였던 것이죠.
그는 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기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고, 결혼도 하는 그런 가상의 세계를 살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는 그것이 진짜이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직업, 그의 가족, 그의 친구 등 트루먼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다 가짜였지만, 트루먼은 그것이 진짜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트루먼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자녀를 낳고 살고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는 돈을 벌 수 있는 직장도 있고,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가짜라는 것이죠.
우리는 트루먼쇼라는 영화를 통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가 아닐 수 있다라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내 인생도, 내가 지금 만나고 지금 함께 하는 이 사람들도 가짜일 수 있다.라는 것이죠.
실제로 우리는 이것을 느낍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나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나를 배신하고, 내 뒤에서 다른 사람과 나를 흉보는 그런 상황들을 통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바로 트루먼쇼라는 영화도 이것을 지적한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가지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서 멋있어보이는 모습, 괜찮아 보이는 모습, 무엇인가 여유있고, 만족하는 듯한 모습과, 실제로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서 멋있어 보여야 하고 괜찮아 보여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억눌림, 그렇게 보이기 위해 쫓기듯 살아야 하는 분주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겉모습을 통해서 그 사람을 판단하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속은 여기 치이고 저기 치여 찌그러지고 깨져있는데 말이죠.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는 것의 한계입니다.
트루먼쇼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눈에 보인다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상태를 다 드러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1%의 진실을 믿겠다라는 것과 같은 것이고, 어쩌면 그 보다 더 적은 퍼센트의 진실을 믿겠다라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을 살펴봄에 있어 6-7계명과 관련된 본문을 먼저 살펴보고, 그 후에 2계명과 관련된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6-7계명

본문해설

먼저, 6-7계명에 관한 본문인 신명기 5:17-18 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Deuteronomy 5:17–18 NKRV
17 살인하지 말지니라 18 간음하지 말지니라
아주 짧고 강렬합니다.

단어 의미(표준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살인하다, 간음하다 라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살인하다: 사람을 죽이다.
간음하다: 부정한 성관계를 하다. 주로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의 성관계 따위를 이른다.

공통점 : 배려와 존중의 결여

이 두 단어의 의미 속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두개의 부정적인 명령문을 긍정적인 명령문으로 만들면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바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문장은 사람을 살려라!라는 긍정적인 문장으로 만들어 집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문장은 배우자만을 사랑하고, 배우자와만 성관계를 해라라는 긍정적인 문장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와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한다는 것의 공통점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모습이 바로 살인하다, 간음하다라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상대방의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상대방이 생명을 영위하고 삶을 살아가며 느끼게 될 그 즐거움과 행복함, 만족함을 존중한다면 과연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배우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다면, 배우자를 두고 다른 사람을 향해 눈을 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라는 것이죠.
바로, 살인이라는 것이 타인의 생명을 배려하지 않고, 타인이 누릴 그 권리들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게 되고, 그 결과 상대방을 죽이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라는 것입니다.
간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배우자를 존중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생명과 순결,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결여된 것이 바로 살인하다, 간음하다라는 행위로 나타난 것이죠.
그렇다면, 이것과 우상숭배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2계명

이제 2계명에 관한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해설

오늘 본문 신명기 5:8-10 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Deuteronomy 5:8–10 NKRV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오늘 2계명과 관련된 본문을 3 가지로 요약하자면
첫째, 우상 숭배는 자기를 위한 것이다.
둘째, 우상 숭배는 하늘, 땅, 바다 속에 있는 것의 형상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셋째, 우상 숭배 그러니까 우상 앞에 절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위다.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2계명에서 6-7계명에서 보았던 공통점,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계명과 6-7계명 연결하기

바로 우상을 만든다는 것이 오늘 본문이 말해주는 것처럼 “자기를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살인하다, 간음하다의 근본적인 공통점으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결핍된 상태임을 말했습니다. 자기의 욕심을 따라 자기의 것만을 생각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었기에 우리는 상대방을 가볍게 여기게 되고,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무겁게 여기지 않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간음하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적 특징: 보이지 않음

요한복음 1:18 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본 사람이 원래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라고 말이죠.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러니까 형체를 가지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 사람의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오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으심으로 하나님은 어디에든지 거하실 수 있고, 또, 어디에든지 거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아실 수 있으시며, 이는 곧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시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든다는 것의 의미: 살인, 간음

그런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하늘에 있는 어떤 것의 형상으로, 땅에 있는 어떤 것의 형상으로, 바다 속에 있는 어떤 것의 형상으로 만든다?
그것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수치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화가가 우리를 그려주겠다라고 했는데, 누구는 바퀴벌레로, 누구는 개미로, 누구는 지렁이로 그려서 우리에게 주었다? 굉장히 화가나고 굉장히 수치스러울 것입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시간과 공간 속에 가두어 버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게 됨으로 인하여서 전지전능할 수 없고, 여기 계시면 저기에 있을 수 없고, 저기에 계시면 여기에 있을 수 없는 그런 한계를 지닌 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지 않게 만드는 행위, 그러니까 하나님의 존재적 특징을 무시하고, 나 자신을 위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시간과 공간 속에 제한되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도록 만들어 버림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위치에서 끌어내려서 유한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가두어 버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드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살인하는 행위고, 하나님을 제외하고 다른 신을 만들어버려서 다른 신을 섬기며 절함으로 간음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미워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배려하지 않은 결과가 바로 하나님은 원래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분이심에도 나를 위해서, 나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시간과 공간의 제한 속에 거할 수없는 분을 시간과 공간 속에 가두어 버려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 이야기

이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금송아지 사건"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고통당하며, 괴로워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 시키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부터 탈출 시켰고,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위해 하나님 앞에 올라간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Exodus 32:1 NKRV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이 부분을 다른 번역본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Exodus 32:1 NCTB
1 백성은 모세가 오래도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몰려와 청하였다. “어서 우리를 앞장설 신을 만들어주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온 그 어른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만들다라는 동사는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되었던 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각 속에, 계획 속에 있던 것들을 말씀을 통해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 내셨던 것처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을 자신들의 눈 앞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라고 아론에게 요청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신들을 구원하여 낸 하나님, 애굽에서 자신들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보고 들어서 자신들을 애굽에서부터 구원하여 낸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늘 말씀하셨고, 모세를 통해서 늘 자신들을 인도하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모세가 40일간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자신들을 눈 앞에 자신들을 인도하여 낸 하나님을 만들어라 라고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결여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을 그저 풀을 뜯어먹으며 사람을 위해 일하는 그런 송아지로 바꾸어 버렸다라는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 모든 사람의 신음소리와 고통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시는 그 하나님을 시간과 공간 속에 가두어 버림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소리와 고통 소리를 들으실 수 없는 하나님이 되고,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지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알게 모르게 무의식 적으로 하나님을 살인하고, 하나님을 버려둔채 다른 신들 혹은 다른 것들과 간음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증명하라 요구합니다.
하지만, 본래 하나님이 볼 수 없는 존재라면,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셔서 어디에서든지 계실 수 있고,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존재로 제한하고, 깍아내려서 눈에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살이하는 일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를 만들고 그 존재로 간음하는 일에 아주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코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일이 아님은 우리 스스로가 잘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나,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가 말해줍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난 꽤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남들이 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해야하고, 가져야 하며,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야 해!라는 마음이 있고, 그 것을 따라 실천하며 살아가고 계시다면, 여러분들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존재적 특징을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하기 보다는 왜곡된 시선을 통해서 여러분들 자신을 살인하고, 여러분들을 본성의 모습은 외면하고 다른 모습을 쫓아 간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저와 여러분들은 나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해 회개하며,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처음 모습을 회복해가며, 우리를 완성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바로 2계명과 6-7계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각, 즉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는 곧 나에게 적용되고, 나를 넘어 이웃에게 적용되며, 무엇보다 중요하게 하나님께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난 주에 살폈던 1계명과 5계명을 통해서 배운 “공경하다"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날마다 회개하심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며, 배려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자신을 넘어 이웃을,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들이 되셔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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