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상고하는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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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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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네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사랑합니다’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코로나와 여름 무더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 금요일에는 중고등부 수련회가, 오늘부터는 대학부 여름 수련회가 시작이 됩니다. 또 유치, 초등1,2부는 오늘까지 여름 성경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여름은 말씀과 함께 보내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고, 수고하시는 교역자들과 부장들, 그리고 교사들을 위해 뒤에서 든든한 기도의 동역자들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들이 지난 한 학기 동안 힘든 중에도 말씀을 배우고 여름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귀한 기회를 주시도록 힘써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2. 본문의 주제 제시

우리는 지난 시간에 경우적 묵상이라는 것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삶의 모든 경우, 자신의 직업, 목적, 도구, 어려운 시절, 성공하여 벌이는 잔치 상의 많은 요소들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이지만 성도는 삶 그 자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풍성하게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적 묵상에 더하여 성경은 우리에게 엄숙한 묵상, 즉 말씀을 읊조리며 상고하는 묵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에서 사도 바울은 특별히 베뢰아 지역의 선교를 통해 만났던 그곳의 성도들을 소개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일어난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급히 그곳을 떠나 밤에 베뢰아로 이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도행전 17장 10절을 같이 봅시다.
사도행전 17:10 NKRV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그리고 바울은 베뢰아에서 회당을 찾아 강론을 했는데 그는 이곳 사람들의 반응에 감동을 하게 됩니다. 11절을 봅시다.
사도행전 17:11 NKRV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바울을 통해 말씀을 전해들은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집에 돌아가서는 그 설교가 정말 그런가 해서 성경을 상고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성경을 상고했다는 말은 아나크리노라는 말인데, 아나라는 전치사와 크리노라는 동사의 합성어입니다. 크리노는 재판한다, 혹은 판결한다는 뜻을 말하고, ‘아나’라는 전치사는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만 severally, 혹은 every 등의 의미도 가집니다. 그러니까 상고한다는 우리말 항상 생각한다는 말의 원어적 의미는 여러 번 반복해서 그 말씀에 대해 생각하고 다시 반복해서 떠올려 판단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처럼 베뢰아 성도들은 설교를 들을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집에 가서는 성경을 반복하여 읽으면서 그 말씀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묵상을 하기 위해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찾는다고 하면 좋은 것인 줄은 알겠는데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경우적 묵상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훈련과 특별히 주변의 신앙의 선배들이 꾸준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성경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꾸준하고 인내심이 있는 말씀을 묵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니 영적인 일이니까 저절로 되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하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우리 사도 바울 같은 이도 바리새인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라바 사막에서 3년 정도의 세월은 보낸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그가 사역자가 되어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은 약 13, 4년이 지난 후에야 가능했습니다. 우리 역시도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서는 깊은 인내와 훈련, 그리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가져서 구원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이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게 죽으셨고, 승천 이후에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주의 사역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새 백성으로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우리들은 이 모든 과정의 단번에 급격하게 일어나는 은혜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저절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는 그 일은 짧은 시간에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성도의 삶은 그로부터 영적인 성장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낳아도 태어난 것으로 전부가 아닙니다. 태어나게 하는 데도 뱃속에서 10달을 자라게 해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나서도 말하고 걷고 할 때까지, 그리고 공부하고 스스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립이 될 때까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룰 때까지, 또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여전히 부모는 자녀들을 돌보고 지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성숙한 사회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또 교회에서도 귀한 일군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출생이 있으면 영적으로 자라는 자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내가 필요하고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태어나게 하는 것보다 자라게 하는 이 일이 더 힘이 들고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일 수 있습니다.

J2, 3. 예수님의 신성/인성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신성으로만 본다면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시고 이루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어떤 말씀을 연구하고 훈련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성을 가지신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도 유대인의 가정에서 태어나셔서 아버지의 지도 하에 말씀을 배우고 예배를 익히셨을 것입니다. 아버지 요셉의 기도와 유대인으로서의 삶은 예수님에게 매우 중요한 교육의 과정이 되셨음에 분명합니다. 실제로 우리 예수님은 사역하실 때마다 하늘 아버지와 의논하셨고, 설교하실 때도 구약의 내용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단과의 시험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인용하여 말씀하셨고,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시편과 율법의 가르침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다 아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이시기에 30년의 사생애 동안에 이 모든 것에 대해 준비하시고 훈련하셨다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시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훈련받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W1. 예수님은 성도가 태어날뿐만 아니라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중생하는 데 머무는 자들이 아니라 영적 훈련과 성장을 통해 자라가야 합니다. 묵상은 바로 이 성도가 자라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과정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뒤를 이어 백성을 이끌어 가야할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 여호수아 1장 8절의 말씀을 읽어 봅시다.
여호수아 1:8 NKRV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그 기록된 말씀을 삶에서 지켜 행하는 것, 그것이 영적 지도자의 가장 소중한 자질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묵상을 통해 성숙한 성도로 자라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도인 우리 모두가 설교를 듣고, 시간을 내어서 그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들을 반복하여 생각하고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겨 삶에서 행하는 자가 되는 것, 묵상이야말로 성도들이 힘을 써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입니다.

W2. 특별히 성도의 자람은 말씀과 성찬을 묵상하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 중 청교도 성도들은 말씀과 성찬을 묵상하는 삶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들은 설교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항상 묵상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에 어떻게 드러나고, 나타나시는지를 깊이 상고하는 일에 힘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어떤 분으로 오셔서 무슨 말씀을 주시는지 항상 생각했습니다. 주시는 명령은 무엇인지, 교훈과 책망은 무엇인지 찾고 발견하면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영과 육을 정결하게 추스려 가는 데 온 힘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 시대의 스코틀랜드 장로교회 성도들이나 잉글랜드의 청교도 성도들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항상 가까이 했고, 나아가 삶의 경건을 이루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대교리 문답에서 우리는 당시 장로교인들이 성찬을 앞두고 어떤 묵상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교리 문답 171문을 보면 이렇게 성찬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문171 성찬의 성례를 받는 사람들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어떻게 자신들을 준비해야 합니까?
답 성찬의 성례를 받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성찬을 위해 다음과 같이 자신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에 대해(1), 자신들의 죄와 부족함에 대해(2), 자신들의 지식과 믿음과(3) 회개와(4) 하나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5) 모든 사람에 대한 긍휼과(6) 잘못한 이들에 대한 용서의(7) 진실성과 분량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향한 자신들의 갈망과(8) 자신들의 새로운 순종에(9) 대해 스스로를 살펴야 합니다(10). 또한, 이 덕목들을 반복적으로 실천함과(11), 깊은 묵상과(12) 뜨거운 기도로(13) 성찬을 준비해야 합니다.
당시 성찬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드리고 있었습니다. 칼빈은 매주 예배의 요소로서 성찬이 있어야 하지만, 혹 게을러져서 오히려 영적 의미를 상실할 수 있다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성찬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매달 있는 성찬을 항상 기억하면서 이렇게 성찬을 묵상하는 삶을 살도록 훈련을 했던 것입니다.

W3. 이처럼 하나님은 성도가 묵상을 익히는 과정에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성도는 말씀과 성찬을 통해, 또한 기도의 삶을 통해 묵상을 행하고 실천할 때 하나님을 발견하고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묵상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묵상은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 줄 알고, 하나님의 그 속성을 깨달아 앎으로 하나님과 더 친밀함을 누리고, 내 속에 있는 죄의 잔재들을 깨닫고 회개하며 거룩을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묵상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묵상하는 사람은 경건해 지는 것입니다.

T1. 성도는 묵상을 통해 은혜를 누립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상고한 베뢰아 교회가 누린 은혜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도행전 17장 12절을 함께 봅시다.
사도행전 17:12 NKRV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헬라의 귀부인들과 적지 않은 남자들이 말씀을 상고한 가운데 예수님을 깨닫고 믿는 역사들이 일어나는 좋은 열매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모세는 율법을 묵상함이 주는 유익을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여호수아 1장 9절입니다.
여호수아 1:9 NKRV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모세는 율법을 묵상하고 행하는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될 것임을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과 모세의 사역은 성경, 곧 율법을 묵상하는 것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실로 큰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T2. 오늘날 현대인들도 묵상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묵상이 필요합니다. 베뢰아 교인들도, 여호수아도, 바울과 모세도 모두가 다 묵상하는 사람이었고, 묵상과 사역, 묵상과 행함, 묵상과 하나님과 동행은 항상 같이 하는 항목이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데 훈련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주제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는 신앙 고백서를 공부하고 익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읽긴 읽지만 깊은 묵상이 잘 안되는 이유는 성경의 의미와 성경이 전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큰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럴 수가 있습니다. 퍼즐 맞추기를 생각봅시다. 📷 조각조각 난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전체 그림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전체 그림을 모르면 부분부분의 조각들이 어디에 배치하는 것이 좋을지 전혀 전략을 세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성경의 전체 그림을 보여 주는 신앙 고백서를 양육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 때 꼭 함께 하셔서 성경의 전체 그림을 한 눈에 보시고 말씀을 묵상하는데 더 깊은 지혜를 얻으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L5.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도의 삶은 묵상의 삶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에서 머문다면 그것은 참된 묵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에 알려진 모든 진리들은 영적인 묵상을 통해 우리의 내면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깊은 은혜의 감동을 누리고, 그 감격과 은혜 속에서 영적인 결단과 거룩한 삶을 사는 삶을 통해 묵상이 행함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 부분에서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개혁파 진영에 속한 분은 아니지만 그의 묵상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교훈이 됩니다. 당시 카톨릭에는 네 단계 사다리 묵상법이 있었습니다. SLide 1) 이를 두고 요즘은 ‘렉치오 디비나’라고 해서 ‘거룩한 책읽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먼저 읽고, 다음으로 묵상하고, 그것으로 기도하고 마지막으로 관상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마지막 관상은 환상이나 영적 체험을 겸한 기도를 말하는데 영성주의자들은 이때의 기도가 진짜 기도라고 강조하여 당시 중세의 많은 수도사들이 이 기도법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Slide 2) 영적인 체험이 있는 것은 좋으나 그것이 묵상의 목표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읽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 다음에는 말씀을 읽되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하여,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이제는 나가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에게 있어 묵상은 관상과 같은 신비적 체험이 목표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신비적 체험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고 행하는 묵상, 이것이 사실은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묵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성찬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설교를 듣고 그 말씀을 알려주고 있는 성경을 깊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설교의 멧세지 속에서 내가 발견한 하나님, 우리 주님을 마음에 깊이 그리시고 그 주님과 교제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찬을 마음에 항상 되시기고 주님의 살과 피의 은혜를 내 마음 깊이 간직하는 묵상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더하여 성경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항상 교리를 가까이하고 말씀을 교리를 통해 깊은 통찰로 나아가도록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묵상을 신비적 체험의 수단으로만 여기지 말고, 말씀을 행하고 사는 과정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물론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영적 신비를 우리는 체험하게 됩니다. 당연히 묵상은 우리를 그리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마시고, 묵상을 통해 내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도록 행함을 통해 주님을 체험하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찬송가 44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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