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심을 거두고 스스로 굳세게 하십시오.

성전 건축 이야기(학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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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는 우리들에게 성공하는 사람들이 갖는 시간 관리법을 4가지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 중요하지 않은 일, 급한 일, 급하지 않은 일로 나누었는데, 일을 함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정해서 중요하고 급한 일부터 해결함으로 일의 효율을 높이는 법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고, 급하지 않은 일을 우선순위에 둔다면 반드시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중요하고 급한 일에 몰두하여 완성도를 높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일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현재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가장 급한 일로 여겨 우선순위로 두십니까?
저희는 지난번 학개서의 말씀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모든 것이 어긋남을 나누었습니다. 백성들의 우선순위는 성전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고난과 건축의 와해로 인해 그들은 우선순위를 성전건축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삶에 치중하는 삶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선지자는 성전은 황폐한데, 너희의 집은 판벽한 집(집의 구조를 완전하게 갖춘 집)에 살고 있다고 그들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황폐한 한재였습니다. 성전의 황폐함은 그들의 삶과 판벽한 집에 한재(황폐)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무엇을 하든 거두는 것은 기준 이하의 삶이었습니다. 우선순위가 바뀐 백성들의 삶은 처참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그들의 우선순위가 성전건축이 되어야 했던 것일까요? 하나님이 성전건축을 하지 않아서 그들에게 황폐함과 한재를 가져다주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벌을 주시는 분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됩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성전건축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일로서의 우선순위인 성전건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우선순위는 바로 하나님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있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집에 있었고, 귀환 후 살아갈 안녕에만 있던 것입니다.
적용 : 우리에게 정말로 무엇이 중요합니까? 이 사실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에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자녀-백성들을 근근히 징계하시며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하나님, 우리의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을 우리의 우선순위를 삼는 영동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 그런데 이들의 우선순위는 왜 바뀌었을까요? 귀환 후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건축에 열심이었던 그들이 마음이 떠나게 된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 성전건축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 낙심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낙심은 하나님의 일에 큰 지장을 줍니다. 일을 중간에 포기해 버리거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방향을 맞추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역에 있어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마귀를 섭섭 마귀, 낙심마귀라고 하죠. 사단은 성도(하나님의 사람)를 낙심-낙담으로 넘어 트립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하나님 앞에 날마다 나아가 힘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넘어질 만한 일들이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인 엘리야도 심지어 요나도 낙심하여서 하나님께 따지기도 합니다. 바울도 낙심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과 기도를 했습니다. 날로 쇠약해져가는 자신의 육신과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본문 속의 성전건축을 재개한 백성들에게도 낙심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경험했던 노인들은 성전의 모습이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어서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학개 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이 보잘 것이 없다는 말은 ‘seem to like NOTHING’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과 동기를 아시는 분이였습니다. 그래서 낙심에 가득 찬 백성들에의 마음에 가득한 낙심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두 번째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학 2: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적용 : 사실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면 마음이 상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할 때 사단은 성도를 낙심시키고 사역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에베소서는 영적인 전쟁을 할 때 사단의 불화살이 날아올 것을 대비하라고 합니다. 이 화살이 어디로부터 날아봤는지, 화살을 쏜 것이 상황이 아닌 사단의 소행임을 알고 그것을 믿음의 방패로 소멸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단이 우리의 마음에 낙심을 심는다 해도 믿음으로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낙심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순식간에 우리의 마음을 휘감는다해도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낙심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굳세게 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
낙심하지 않는 바울의 비결 :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좋지 않은 상황이 올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자신들이 세운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상황이 올 때, 자신은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고후 4: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가 낙심하지 아니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직분을 맡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하나님이 직분을 맡기셨기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일을 맡기셨는데 그 사역자를 버리시겠습니까? 긍휼히 여기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자는 충성하고, 하나님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사역의 원천, 동기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대개 우리가 원하는 성공과 성취를 하지 못할 때 낙심합니다. 나 자신의 열심을 증명하지 못할 때 우리는 마음에 실망합니다. 사람에게 섭섭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였을 때 실망합니다. 오늘 성전건축에 앞서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학개는 솔로몬의 성전을 비교합니다.(학개 2: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이는 지금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 모습이기 때문이었습니다. 16년간 성전 건축을 했던 자신들의 노력이 초라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태도는 학개서 1장에 너무나도 잘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보이려하는 우리의 증명은 보잘 것이 없는 아무것도 아닌 건축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빚으신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적용 및 예화 : 선교사로 짧은 사역과 짧은 인생을 살았던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은 전능자의 그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분이죠. 그는 에콰도르 아우카 족을 위한 선교사로 갔다가 1956년 29세의 나이로 4명의 다른 선교사들과 아우카 족에게 살해를 당했습니다. 짐 엘리엇은 20세쯤에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주님, 제 길을 번영케 하옵소서. 제가 저의 높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삶이 하나님을 아는 것의 가치를 드러내는 전시물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드린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실로 엘리엇은 하나님의 영광을 너무나 순수하게 추구했고, 또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높이셨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이 다시금 선교사로 들어가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우카족은 죽인 4명의 선교사를 기억했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복음전도에 부족은 복음화가 되었고, 빌리그레함이 열었던 복음운동대회에 참여하여 간증을 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금방 끝이 났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어도 지난 60여년동안 그의 삶이 그 일기에 나타난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역사를 드러내는 만인의 전시관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짧은 그의 인생이었지만, 빠르게 불타올랐던 장작처럼 그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두가 주목했습니다. 그 일기와 그에 관한 책을 읽는 이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질그릇임을 아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처럼 질그릇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합시다.
적용 : 그러므로 우리가 증명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아무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직분을 맡기신 하나님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기신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 하며, 능력 베푸셔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힘을 얻으시고, 무엇으로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 낙심하였던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셨던 힘과 동기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언제나 역사가 일어났고, 힘을 잃었던 백성들은 용기를 내었고, 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입니다. 임재의 약속은 학 1:13절에도 동일하게 주어졌고, 백성들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학 1:13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위임을 받아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니라) 이로 인해 모든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이 말씀으로 16년간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이 시작되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두 번째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동행, 임재의 약속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냥 모든 것이 잘 될거야, 힘내라고 하는 단편적인 말씀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책속에만 갇혀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절망의 상황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하겠지만, 그때에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험할 때입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고 경험할 때에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험과 믿음의 하나님이시죠. 그 창세전부터 우리를 향해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동행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시겠다는 말씀이 백성들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용기의 근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은 몇 사람에게만 전해진 것이 아닌 3절의 말씀처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졌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힘내라고 하십니다.
적용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다 낙심케 된 모든 영동제일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낙심에서 스스로를 굳세게 하시는 믿음가지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낙심에서 일어서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고, 성령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스룹바벨에게 아직 남아있는 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슥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다윗의 왕권을 통해 오게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스룹바벨을 통해 완권을 다시금 세우실 것이었습니다. 그를 막는 모든 대적을 물리치시고, 다시금 그를 막을 장애물을 평지로 바꾸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직분을 맡기신 분께서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으며 끝까지 섬깁시다.
두 번째로 백성들에게 낙심을 이기게 한 힘과 동기는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 역사를 내다보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낙심을 극복하게 하는 최고의 요소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모든 삶의 현장에서, 낙심을 뛰어 넘어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믿고 말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최악의 문제들 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침내 당신의 광대하고 선하며 거룩한 목적을 이루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기실 것이라는 확신이며, 이런 확신이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모든 형태의 낙심을 물리치게 됩니다. 학개 선지자는 4절에서처럼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용사이신 하나님, 왕과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285회 사용되었는데 그중 91회가 포로후기 선지서(학개, 스가랴, 말라기)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 6~9절에서도 5번이나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에 대한 신앙이 약화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동기로 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지는 것이며, 이것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것을 좀 더 정확하게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7a). 이것은 세계적인 심판의 날이 임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는 온 세상, 모든 열방의 하나님이시며, 모든 세상 모든 열방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에 너무나도 합당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세계가 다 내게 속했다”고 말씀하시며(출 19:5),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사 40:15~17). 하나님의 관심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은 성전의 건축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작은 일’을 통해서 온 세상을 바라보시며 이 ‘작은 일’을 통해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7b). 모든 나라의 보배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능한 해석이 있지만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이 구속론적이고 기독론적으로 가장 합당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결국 모든 나라를 진동하게 하는 분은 모든 나라의 보배이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 전을 충만하게 채우시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이 짓는 성전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이 없어서 거의 없는 것(nothing)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모형일 뿐입니다. 모든 나라의 보배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존귀함은 결코 금이나 은 같은 고가의 장식물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자신만이 성전을 성전 되게 하시며, 이들이 짓고 있는 이 작은 성전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십니다. 그것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8). 금이나 은 같은 것 가지고 하나님의 집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만이 모든 나라의 보배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성전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너무나 보잘것없어 보여서 힘이 드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과 용기의 근원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보잘 것이 없어 낙심하는 우리에게도 만국의 보배되시는 그리스도가 임하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시는 일을 멈추지 마십시오. 때로는 뭔가 대단한 결과가 내가 기대하는 만큼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서 낙심할 때가 오지만, 모든 자기 중심의 생각과 비교의식을 내버리고, 나를 존귀하게 하시는 보배이신 그리스도를 주목하십시오. 만국의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시기에 내가 존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여러분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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