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을 도둑질 하지 말라 (159-165, 204-216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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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Deuteronomy 5:11 NKRV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내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하지 아니하리라
Deuteronomy 5:19–21 NKRV
19 도둑질 하지 말지니라 20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21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서론

나봇의 포도원

열왕기상 21 에 보면, 나봇의 포도원이라는 타이틀이 달린 이야기가 하나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의 장르는 미리 말씀드리면 이 이야기는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장르 입니다.
사마리아지역의 왕이었던 아합의 궁전 근처에는 아주 큰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밭의 주인은 바로 나봇이었습니다.
하루는 아합이 궁전의 발코니에 서서 바라보다가 나봇의 포도밭을 사서 거기에 예쁜 정원을 가꾸고, 그 정원을 바라보며 힐링을 해야 겠다생각했고, 이에 그 포도밭 주인인 나봇을 불렀습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너의 밭을 팔면 내가 다른 아름다운 포도원을 너에게 주거나 혹은 당신이 원한다면 네가 그 밭에 상응하는 값을 현금으로 주겠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이 밭은 하나님께서 나의 조상을 통해 나에게 주신 유산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를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히 거절한 후 나봇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아합은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고 그 포도밭의 포도들을 다 제거한 후 자신이 원했던 정원을 예쁘게 꾸몄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아합은 어떻게 나봇의 포도밭을 자신의 것으로 빼앗았을 수 있었을까요?
이 모든 사건은 나봇이 집으로 돌아간 뒤부터 계획되고 실행되어 졌습니다.
나봇으로부터 거절 당한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한 마음에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나봇의 포도밭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아합이 그 밭을 포기하지 못하고 그 밭에 예쁜 정원을 가꿀 생각을 포기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죠.
그렇게 왕이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으니까, 아합의 아내인 이세벨이 아합에게 와서
“왕이여 도대체 무슨 일이길레 밥도 안먹고 근심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세벨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왕으로서 나봇에게 정중하게 나봇 자신의 밭을 팔것을 권했고, 또 그 밭보다 더 아름다운 밭이나 나봇의 밭의 시세보다 더 후하게 쳐서 현금으로 주겠다라고 말했음에도 나봇은 나의 정중한 부탁을 거절하고 돌아갔소"라고 말이죠.
아합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이세벨은 아합왕에게 “왕이여 제가 그 밭을 왕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서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라고 대답한 후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떠난 이세벨은 곧장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들 쓰고 왕의 반지를 가지고 인장을 찍어 봉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었습니다.
무슨 내용의 편지일까요?
바로 이 편지가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을 가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너희들은 너희 지역에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상석에 앉힌 다음, 건달 둘을 맞은편에 앉혀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욕하였다고 고발하게 하라!, 그리고 나서 너희는 나봇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서 죽여라!”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이 살았던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은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고, 나봇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나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아합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왕이여 이제 나봇이 죽었으니, 그의 포도밭을 차지하소서"라고 말이죠.
그렇게 나봇은 아무런 죄없이 이세벨의 음모에 휩싸여 죽었고, 아합은 아무런 대가없이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나봇의 포도원이 아합의 손에 들어가는 모습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론

십계명 8-10계명 설명

나봇의 이야기를 잘 기ㅇ이제 우리는 십계명의 8-10계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실 십계명의 8-10계명은 하나의 계명으로 압축되고, 연결됩니다.
무엇으로 압축될 수 있을까요?
바로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입니다.
도둑질한다는 것은 사실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드러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도둑질이라는 결과가 나타나기까지의 과정과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 누군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았는데 굴뚝에 연기가 날 수 있겠는가? 라는 말과 같이 도둑질이라는 결과가 생기기 위해서는 원인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도둑질하다 라는 8계명이 있기 까지 9계명과 10계명이 원인과 과정을 보여준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논리적인 순서에 의해 십게명 8-10계명을 다시 배열하면,
10계명의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는 그 순간 사람은 9계명의 이웃의 것을 빼앗기 위해 거짓 증거를 하게 되고 결국 8계명의 도둑질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봇의 포도원과 8-10계명

나봇의 포도원이 아합의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면, 이것이 아주 잘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보며 가지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다음으로, 나봇이 자신의 밭을 팔지 않겠다라고 거절하자 아합은 가지고 싶은 욕심에 끙끙 앓았고, 이를 본 이세벨은 아합을 위해서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나봇은 결국 그 음모에 휩싸여 죄가 없음에도 죽임 당했고, 결국 그 나봇의 포도밭은 나봇의 손을 떠나 아합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십계명 해설

이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각각의 계명을 굵고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8계명에서 도둑질하다 라는 단어는 빼앗다, 몰래 가져가다, 기만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즉, 8계명은 도둑질함에 있어서 물리적인 힘에 의한 빼앗음도 말하지만, 물리적이지 않은 기만으로 인한 빼앗음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도둑질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힘으로 빼앗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 습득하게 되는 것도 도둑질로 보겠다 라는 것입니다.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9계명에서 거짓 증거하다라는 단어는 3계명의 망령되이 일컫다 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비어있는 것, 혹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단어가 쓰이는 장소적 의미입니다.
거짓 증거라는 단어는 법정적 진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허위적인 사실을 통해서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죄가 있는 사람을 두둔하고 감싸주어서 죄가 없는 것으로 만드는 모든 행위가 다 거짓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는 아론의 모습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서 40일간 있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론에게 찾아가서 자신들을 위해서 눈에 볼 수 있는 하나님을 만들어 달라라고 요청했고, 이에 아론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금을 가져오라고 하여 금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빨리 내려가라 라고 명령하시고 그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내려온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던져버리며 이스라엘 백성과 아론을 꾸짖었습니다.
그때 아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서으이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론의 진술에 대해 출애굽기 32:25 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Exodus 32:25 NKRV
25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
바로 거짓 증거하다라는 말의 범위가 단순히 법정에서 거짓된 사실을 통해서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아론과 같이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타인의 죄를 부각시키는 것 그것도 거짓 증거라는 것입니다.
10계명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라
10계명에서 탐내다라는 단어는 원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무엇인가 보았을 때,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거나 매우 원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리고 성경은 이 원하다라는 단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쓰일 때 그것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반면, 하나님과 사람 혹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쓰일 때는 마땅한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1:4 에 보면,
Numbers 11:4 NKRV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탐욕을 품으매"라고 기록하며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반면,
이사야 26:9 에 보면,
Isaiah 26:9 NKRV
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사모하였사온즉”이라고 기록하며 긍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 탐내다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쓰일 때만 그 의미가 긍정적이고, 이를 벗어난 모든 관계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는 것입니다.
종합하기
이렇게 각 계명의 의미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사실 9-10계명은 8계명을 드러내는 것뿐만아니라 7계명과 6계명 과도 연결됩니다.
즉, 살인이라는 것과 간음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들은 결과적인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살인과 간음, 그리고 도둑질 하도록 하는, 원인과 그 과정이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이라는 결과가 만들어졌다라는 것이죠.

3, 8-10계명의 의미

그렇다면, 8계명과 3계명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다 라는 것이 곧 도둑질하는 행위이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본문 해설

오늘 본문 신명기 5:11 을 원문에서 살펴보면,
“너는 너의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비어 있는 것 혹은 허망한 것 혹은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지 말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여호와의 이름을 비어있는 것, 허망한 것, 쓸모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가지고 있는 그 존재적 특징과 능력들을 빼앗아서 없는 상태로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돈이 많은 부자를 거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탕진하게 하거나 혹은 모든 돈을 한번에 빼앗아서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출애굽기 3:14 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며 그에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Exodus 3:14 NKRV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여기서 소개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바로 하야 아쉐르 하야 입니다.
이는 짧게 축약되어 여호와 혹은 야훼로 불려지고, 그 의미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은 그 누구에 의해 창조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은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곧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는 존재 바로 신 중의 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스스로 있는 자에 대한 존귀와 영광을 돌려야 함을 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있는 자를 거짓된 존재로 만든다?, 한계를 지닌 쓸모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져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그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빼앗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다 라는 것이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는 것을 넘어서 남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고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그 능력을 거짓된 것,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바로 도둑질한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능력과 영광을 도둑질해서 없는 상태로 만드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고 그 포도밭을 가지기 위해 나봇에게 죄가 없음에도 그를 법정에 세워 그를 모함하고 고발하여, 그를 돌로 쳐죽였던 것처럼 말이죠.

결론

사실 우리는 도둑질하다 라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헌법과 형법은 도둑질에 대해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죄라 정의합니다.
타인의 제물을 강압적으로 빼앗고,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을 죄라 정의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십계명은 이를 넘어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것을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는 행위자체를 도둑질이라 정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마땅한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리지 않는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이고, 이는 곧 하나님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도둑질하는 행위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을 돌아보실 때,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마땅한 것들을 얼마나 돌려 드리고 계십니까?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땅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어라라고 우리를 부르시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부여해 주셨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가 주어졌습니다.
십계명을 연구하고, 연구하면 할 수록 우리는 나의 나약함, 나의 부족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빈 존재만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십계명이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하기 때문이고, 십계명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날마다 회개의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것 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행해서?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돌려드려서? 아니요.
그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기적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행하신 희생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저 감사하며, 노래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평과 불만을 내뱉으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선포했던 모세의 말,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라는 이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를 참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더디 심팜하심으로 날마다 죄인인 우리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가만히 서서 지켜보시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시며, 그 사랑을 누리시는 믿음의 삶, 증인의 삶을 살아기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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