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자를 묵상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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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네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말씀과 함께 하세요’ 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삶의 많은 것들이 제한되는 이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여름이 무르익고 휴가철도 지나가는 중인데 모두가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구함으로 주님과 더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경우적 묵상에 이어 엄숙한 묵상을 살펴보았습니다. 성도는 삶의 모든 경우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를 통한 묵상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엄숙한 묵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도는 종교개혁자들이 물려준 묵상, 곧 루터의 묵상을 내 삶에 잘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와 말씀을 읽고 깊이 상고하는 묵상과 더하여 삶에 주시는 교훈들을 적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 모두가 기쁨으로 힘써야 할 소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번 여름을 보내며 주님을 묵상함으로 큰 위로와 평강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오늘 우리는 묵상의 적용으로 특별히 고난 중에서 죄인된 자신을 발견하고 인생의 대속자를 만난 욥의 묵상을 통해 고난을 통해 대속자를 묵상하는 삶을 살피고자 합니다. ‘욥기’하게 되면 저는 권사님이셨던 어머니께서 제게 들려주신 욥기의 소감을 항상 기억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성경을 읽어보면 제일 두려운 부분이 욥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잘못한 삶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무섭다’라고 말씀을 해 주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렇죠. 욥기의 인과응보는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사람의 잘못을 심판하시고 죄를 용서하지 않는 분이시기에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욥이 고난을 통해 자신의 대속자를 만났다는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그것을 기록으로라도 남겨 두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 본문 23, 24절을 봅시다.
욥기 19:23–24 NKRV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이처럼 욥 자신의 결백을 책으로라도 남겨 후대의 누군가가 자신을 변호해 주면 좋겠다는 간절함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욥은 책이 아니라 자신을 변호하고 대속해 줄 대속자은가 계심을 알게 됩니다. 우리 25절을 봅시다.
욥기 19:25 NKRV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자신의 결백을 책을 써서라도 주장하고 싶다던 욥은 놀랍게도 자신의 삶을 대속해 주실 대속자가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여기 대속자는 ‘고엘’이라고 해서 이는 기업을 무르는 자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기업 무르는 자는 형제나 가까운 친척으로서 다른 형제의 빚을 자신의 재산으로 대신 갚아 주고 그것을 잃은 자에게 돌려주는 이를 말합니다. 욥은 책보다 자신을 증언하는 고엘이 계심을 기억하고, 그가 땅 위에 오실 것임을 소망합니다. 비록 지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이 아니신 것 같고, 친구들의 억울한 비난과 정죄들이 이기는 것 같지만, 마침내 이 땅에 오실 영원한 고엘되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서시는 날 그는 자신의 모든 결백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발견하고 감사하게 된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사실 우리 모두는 고난 앞에서 무기력합니다.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은 우리의 믿음도 연약하게 만듭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신앙생활하는 것이 잘되고 잘 살기 위함인데 그런 내가 고통을 겪고 질병에 시달리는데도 하나님이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신다면 신앙생활을 왜 해야 하지?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영도 잘되야 하지만, 물질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내 삶이 안전하고 잘살게 되는 것, 그게 신앙의 목적이고 이유이지 어떻게 고난이, 혹은 죽음이 우리의 신앙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말입니다. 욥과 같이 의롭게 살고 하나님 두려워하며 바르게 살았는데도 사탄에 의해 자녀가 죽고, 재산은 다 강탈당하고 그 자신은 죽음의 질병 안에서 허덕이게 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계속해서 믿고 의지할 수 있겠는가 하고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다는 사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회피하고 성도의 삶에서 고난이 찾아오면 뭔가 그 사람이 잘못되었고, 뭔가 죄가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는 고난은 죄의 열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인간에게는 질병과 전쟁, 그리고 온갖 형언하기 어려운 고난이 찾아옵니다. 성도인 우리들도 세상에서 고난을 겪으며 온갖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지고 고난을 두려워합니다. 질병도 그렇게 나를 두렵게 하지만, 사람들의 비난이나 혹은 몰이해, 나를 알아주지는 않는 것, 잊혀지는 것 등등 세상에는 엄청난 모습의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고난들을 죄의 결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 중에는 오늘 욥과 같이 사탄의 시기로 인하여 찾아오는 시험도 있습니다. 모든 고난의 원인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만은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난을 다 막아주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탄과는 다른 관점에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고난과 무관하셔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죄가 만든 모든 결과로서의 고난을 예수님께 직접 격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모르시고 몰이해하시기 때문에 고난에 무관심하신 분이 아니라 그 고난을 온몸으로 겪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 고난을 이기게 하셨던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볼까요?
히브리서 12:2 NKRV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은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잘 살아내라고 말씀만 하시는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그 고난을 먼저 참으셨고, 인내로써 부끄러움을 견디시면서 고난을 이기신 본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겪으신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그 고난을 겪으시고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고난을 남겨 두시고 고난을 통해 온전한 삶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고난을 겪으시거나 죄의 열매로서의 질고와 질병을 지셔야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고, 그 온전한 생명 안에는 연약함이나 고난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은 만물을 다스리는 온 땅의 통치자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대한 신성이 거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아들의 위격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을 계시하신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1:14 NKRV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J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이렇게 죄가 없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대속자로, 죄인의 죄를 대신하시는 기업 물러주시는 분으로 세상에 오십니다. 구약 성경에는 오실 메시야의 사역을 보여 주는 많은 비유들이 있는 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고엘’이라고 하는 기업 무르는 자에 대한 규정입니다. 우리는 룻기를 통해 이 고엘을 잘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룻기 4장 9, 10절의 말씀을 봅시다.
룻기 4:9–10 NKRV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여기에 보면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르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판 땅을 다시 구입하여 나오미에게 돌려주었고, 나오미의 며느리 룻을 아내로 맞아 아이를 낳아 죽은 엘리멜렉의 집안을 이어가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고엘이고, 오늘 욥이 말하는 대속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고엘이 되시기 위해 죄에 팔려 사탄 아래에서 죽음의 심판을 겪고 있는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손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져야 할 죄의 값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 고난을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이사야 53장 3, 4절을 봅시다.
이사야 53:3–4 NKRV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W1. 예수님은 고난을 지심으로 죄인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고난이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욥이 당하는 그 고통과 괴로움은 사탄이 주는 악한 궤계의 열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고난을 통해 욥이 인생의 대속자를 깨닫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고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우리의 대속자가 되심으로 고난을 통해 거룩과 회복을 이루신 것처럼 욥은 고난을 통해 참 구속자 예수님의 오실 날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W2. 그러므로 고난은 성도를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선하신 작정 혹은 뜻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죄인 됨을 아시기 때문에 욥이 스스로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알 수 없음을 아십니다. 욥도 다른 사람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알았고, 그의 율법을 올바르게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의로운 자, 세상 누구보다 선한 지혜자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고난 속에서는 그는 자신을 구속하여 ‘고엘’로서 자신의 기업을 물러줄 대속자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겸손을 통해 우리에게 참된 회개의 인생을 가르치십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자라갑니다. 물론 우리는 교실 안에서의 교육과 구역을 통해 교제 속에서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교육과 교제에 힘을 써야 하고, 우리 교회도 앞으로 이 부분에서 잘 준비를 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다루실 때 고난도 사용하십니다. 고난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근본을 알게 되고,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됨으로써 우리는 참된 회개의 믿음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T1. 욥의 복

고난 중에서 욥은 자신의 대속자를 만납니다. 욥은 이 시련 속에서 자신이 살 수 없다는 절망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죽음 이후에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욥기 19장 27절 말씀을 봅시다.
욥기 19:27 NKRV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사실 하나님은 욥을 다시 살려 주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요. 그러나 고난 중에서 욥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시련 속에서 비록 자신이 죽어도 반드시 다시 부활하여 대속자를 만나게 될 날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를 보리니,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성도의 최고의 복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 중에서도 소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자신이 죽을 줄 알고, 너무 억울해서 자신의 결백을 책으로라도 남겨야 겠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대속자를 발견하고는 그를 다시 만날 부활의 날을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T2. 세상의 복
오늘날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깊은 코로나와 같은 이 고난이 지금 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고난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살아야 할까요? 원망, 하소연, 그래서 비난과 저주성 발언이 난무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물론 고난 속에서 우리는 이런 삶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욥은 자신을 저주하는 친구들을 향해 이런 경고를 합니다. 우리 28, 29절을 봅시다.
욥기 19:28–29 NKRV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의인 욥을 지속적으로 비난하는 그 친구들을 향해 욥은 경고합니다. 이 고난의 원인이 욥에게 있다고 그렇게 다시 욥을 치려고 하면 하나님의 칼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심판장이 계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고난 속에서 나의 죄인 됨을 깨닫지 못하고, 고난을 통해 타인을 비난하고, 조금 나은 내 형편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비난하고 산다면 그의 삶에는 심판장이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고난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대속자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될 것입니다.

T3. 성도의 복

우리 성도는 말씀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되는 복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먼저 고난을 통해 나의 죄인 됨을 깊이 알게 하십니다. 내가 죄인인 줄 깨닫고, 나의 대속자, 나의 기업 무르실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회복의 기쁨과 위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고엘’이신 예수님이야말로 내 모든 고난을 온몸으로 지시고, 저 십자가에서 우리의 회복과 영원한 영생을 위해 대신 죽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야말로 십자가의 주님이시고 고난의 주님입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주님의 이 은혜의 십자가를 체험하고 누리고 새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묵상하는 엄숙한 묵상은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상고하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욥은 엄청난 질병의 고난, 상실의 고난과 함께 끊임없이 신앙적인 거짓 공격들 속에서 고통해야 했습니다. 병도 억울하고, 상실도 마음이 아픈데 멋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생긴 심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다 섬기고 있는데 사람들은 나를 질병 때문에, 자녀를 잃었기 때문에, 혹은 가난해졌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진정으로 자신의 구세주를 깨닫게 하고자, 사탄을 심판하시고 악한 짐승의 세력을 마침내 파괴하신 예수님의 죽으심의 영광을 깨닫게 하시고자 고난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을 경험하면서 깊은 은혜의 길을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고난은 두려운 것입니다. 질병과 가난과 상실은 너무도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저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생의 참 길을 알게 하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구원주 되신 예수님을 더 깊이 믿고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그러나 우리라 알 수 없는 영원하신 은혜의 작정이신 것입니다.

L6. 성도 여러분!

우리의 묵상이 고난을 회피하는 묵상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도 허락하십니다. 고난은 저주고 성공은 축복이라는 도식은 부분적으로는 틀리지 않았으나, 우리의 삶의 모든 고난을 설명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난도 사용하십니다. 사탄도 하나님 손안에 있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고난도 주님을 깨닫게 되고 주님을 알게 되는 놀라운 은혜의 과정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을 봅시다.
로마서 8:28 NKRV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우리의 고난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을 기대하고 살 수 있습니다. 고난을 앞에 두고 두려움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붙드는 믿음의 삶을 붙들고, 부활의 새생명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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