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우리의 모든 탄식까지도 들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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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63 내가 깊은 곳에서
본문 시5:1-2 (구p. 806)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 하루가 시작하는 이 시간에 주님께서 베푸신 큰 은혜들을 묵상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던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 안의 죄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품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여 그 품을 떠났던 우리를 찾으시기 위하여 이 땅 까지 내려오심에 감사합니다. 매순간 넘어지고 실패함에도, 우리의 자격 없음에도 우리의 구원을 취소하지 않고 날마다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들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날마다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는지를 늘 묵상하게 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그래서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입술들이 변화하여 하나님을 송축하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구원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복된 입술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주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몇 년 전 대구에서 사역할 때, 매주 금요일마다 철야기도하러 기도원을 갔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교역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교회 소유의 기도원 뒷산에 올라가서 때로는 서리가 내리고, 이슬도 내리지만, 때로는 비바람이 불고 해도 거기서 포대를 뒤집어 쓰고 새벽까지 기도하고 내려왔었다. 그러던 어느날 철야기도를 하고 새벽녘에 산에서 내려오다가, 어두운 조명 때문인지 발을 헛딛어서 크게 접질러 넘어진 적이 있다. 함께 내려가던 성도님들이 괜찮냐고 물으시며 ‘처음 온 교역자분들은 한번씩 다 넘어지시더라 괜찮다' 말씀하시더라.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괜찮냐고 연신 물어보는데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아픔이 너무나도 커서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때에는 입에서 말이 안나오더라.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러분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집에서 집안일을 하시다가, 혹은 뭔가 무거운 짐을 옮기시다가 정강이를 탁자나 책상과 같은 모서리에 부딪혔던 경험들 있으신가? 그럴 때 어떠셨는가? 순간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오고, 뭐라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죽겠고, 아픈 와중에도 조금 더 조심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화도 나고, 아무리 문질러도 통증이 가시질 않고… 이 때 옆에서 누군가 ‘괜찮아?’ 하고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다. 너무 아파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입 밖으로 어떤 말도 내뱉기가 어렵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 인생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그 괴로움 속에서, 그 아픔 속에서 신음할 때, 그 상황이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워 어떤 말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기도는 커녕 탄식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찾아와서 이 상황을 조목 조목 다 아뢰어야지 하고 기도의 자리에 나아왔다가 그저 울기만 하고 돌아갈 때가 있다. 이처럼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가 선한 의도로 찾아와서 ‘좀 괜찮냐?’ 라고 물어봐줘도 제대로 대답하기 힘든 그런 때가 있다. 크나큰 곤경에 처한 자들은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자기가 지금 얼마나 힘든 상황 속에 있는지, 왜 나를 도와주어야만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필요하고, 어떤 위로가 필요한지 조리있게 호소를 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말로 크게 다친 자들은, 정말로 크게 넘어진 자들은 말도 하지 못한다. 다만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신음소리만을 겨우 낼 수 있을 뿐이다.
오늘 본문에서의 시인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나도 극심하고 괴로워 어떤 말도 나오지를 않는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아프고 괴로워서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을 뿐이다. 2절 말씀을 보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기서 ‘부르짖는 소리’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세와' 라는 단어는 단지 고함지르는 것,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는 ‘도움을 청하는 외침'이다. 위급한 상황에 놓였을 때,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의미의 단어이다.
여러분, 상상해보라. 등산을 하다가 실족을 하여 비탈길로 미끌어져 한참을 굴러내려왔다. 다리를 다쳐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곳은 인적도 드문 곳이었다. 그리고 곧 해가 저물 것 같다. 핸드폰도 터지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필사적으로 소리를 지를 것이다. 멀리서라도 내 도움의 외침을 듣고 도우러 올 수 있도록 악을 써가며 외칠 것이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하고 말이다. 지금 시인은 정말로 괴로운 상황 속에 놓였다. 자신의 힘으로 그 상황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고난이 주는 무게, 괴로움이 주는 압박에 완전히 짓눌려 그는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다. 그저 하나님께 신음하고, 흐느끼며, 울 뿐이다. 하나님께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조리있게 설명하고,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 주셔야 하는지 그 절박한 상황에 대해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지금의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고난의 무게가 너무나도 힘겹기 때문에, 지금 받는 압박이 상당히 중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 짓눌린 채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러져서 흐느낄 뿐이다. 그저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호소할 뿐이다.
일평생 함께 살아온 부부라도 속을 알수 없을 때가 있다고들 한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가? 내 사랑하는 배우자, 내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을 언제라도 다 간파하고 계시는가? 사람은 그렇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설득하지 않으면 넘어오질 않을 때가 있다.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해도 꺾이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 심지어 솔직하게 내 마음을 다드러내고 말해도 듣는 입장에서 오해하는 경우들도 더러 있더라.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한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전지하셔서 내가 미쳐 하나님 앞에 다 아뢰지 못할 때에도 우리의 모든 사정들을 알고 계시고, 하나님은 또한 전능하셔서 우리 마음 속 깊은 곳 감춰진 모든 비밀들까지도 다 알고 계시며,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택하신 자녀들을 능히 건지시고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처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시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인은 인생 속의 극한 고통 속에서 세상 다른 무언가를 찾거나 구하거나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찾았다. 오직 하나님께만, 오직 하나님만을 향하여 부르짖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어려 주소서'이러한 부르짖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 내 지금 답답한 심정을 주님 제발좀 헤아려 주십시요. 내 억울한 상황좀 헤아려 주십시요. 내 아프고 괴로운 이 상황을 주님 제발좀 알아 주십시요.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지금 부르짖고 있으니 들어주십시요. 내가 지금 주께 기도합니다. 오직 주님께만 부르짖습니다! 주님 내 외침을 들어주십시요!
내가 굳이 일목요연하게 내 상황을 다 말씀드리지 못해도, 고통 가운데 탄식하고 신음만 하여도,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며 울기만 하여도,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그 소리만을 들으셔도 능히 구원해 주실 것을 시인은 확신했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향해 귀 기울이셔서 아주 작은 신음소리라도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들으시고, 내가 나의 괴로움을 일일이 다 아뢰지 못하여도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모든 것들을 다 아셔서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이 어려움 가운데 능히 건져주실 것을 시인은 확신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러한 하늘 아버지에 대하여 증언한다. 시4:1 에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은혜를 베푸셔서 나의 탄식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기도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시인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는다. 그렇게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 나의 탄식을 들어 응답해 주시길 기다렸더니, 시40:1 말씀에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탄식을 들으셨다. 그렇게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건져내심,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시인은 시116:2 말씀처럼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라고 고백한다. 날마다 우리의 탄식을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평생에 하늘아버지께 기도하겠다는 다짐이다.
결론이다. 시인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며, 그 기도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한 백성들의 탄식과 신음소리, 울음, 그 외에도 모든 종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너무 아퍼서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때로 너무나도 괴로워 조목 조목 아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들을 다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지금 느끼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여러 믿음의 시련들로 인하여 고통 중에 있을 때에도,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풍파를 만났을 때에도, 심지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한 권속들의 탄식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오직 그분의 날개 아래로 피하는 모든 자들을 능히 품으시는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할렐루야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자. 우리는 일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는 코로나 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닥들였다. 매번 예배 가운데 만나며 교제하던 성도들을 더이상 만나기가 어렵다. 이로 인해 여러 대면 모임들도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견하는 것처럼, 이제 코로나 이전의 시대는 쉽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예측이 맞아떨어질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여러 풍파들을 만난다. 믿음의 시련들이 찾아온다. 삶의 여러 무거운 짐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때로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숨도 나오며, 먹먹하기도 하고, 괴롭기까지 하다. 이럴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본문의 시인처럼 간절하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너무 아프고 괴로워 일일이 조목조목 나의 필요를 다 아뢰지는 못하여도, 그저 하나님 앞에서 울고, 탄식하고 신음소리만을 내어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고 계시니,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니, 자비하신 아버지께 소리 높여 간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쏟아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에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자. 택하신 백성들을 돌아보시는 하나님, 그 작은 신음소리조차 들으시고 우리의 모든 탄식소리와 괴로움으로 인한 울부짖음까지 들으시는 하늘 아버지께 이 시간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 나좀 봐주세요. 하나님, 나좀 살려주세요. 하나님, 날좀 건져주세요. 하나님, 이 땅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이 땅을 긍휼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우리 한국 교회를 살려주세요’ 이 시간 간절한 마음으로 주여 한번 외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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