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회기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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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1. 도입
오늘은 제 76년 광복절입니다. 오늘 광복절 기념사에서
2.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뜻을 주장 하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 뜻을 주장 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은 기도할때, 우리가 이미 계획하고 원하는 것을 응답받기를 좋아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시는 것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우리는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자신의 계획과 맞지 않는하나님 뜻을 전한 선지자 예례미야을 향해 “거짓말 쟁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아사랴와 요하난은 바벨론으로 부터 공격을 받을 위협으로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이 통치하라고 세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살해 당함으로, 곧 바벨론 군대가 보복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된 이들이 최후로 찾는 것은 기도 입니다.
그들은 선지자 예례미야를 찾아가 기도를 부탁합니다.
42장 2절과 3절 말씀을 보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바벨론으로 부터 살길을 찾기 위해서 예례미야에게 기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례미야가 기도하고 응답받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례미야가 십일동안 기도하고 응답받은 것은 팔레스틴 땅에 머물러 있고, 절대로 애급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여기서 재난이란 바벨론 군대가 쳐 들어오는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왜 쳐 들어옵니까? 이스라엘이 반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반역을 해서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인 그다랴를 죽이고, 상주하던 바벨론 군인들도 죽였기 때문에 바벨론 대군이 보복하기 위해서 팔레스틴 땅으로 오는 것은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례미야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 대군이 쳐 들어와도 이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북쪽에서 반역을 진압하고자 뻔히 바벨론 군대가 쳐 들어오는 데, 아무런 군사력도 없는 이스라엘이 그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아니면, 남쪽의 바벨론을 대항하는 대국인 이집트로 피하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그런데, 전쟁을 피해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피하면,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전쟁과 기근으로 이스라엘을 죽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4절에서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선택은 이스라엘에게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비록 바벨론 군대가 보복하러 올 것을 뻔히 알지만 팔레스틴지역에 그냥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 순종해서, 이미 예정된 바벨론의 공격을 피해 안전해 보이는 이집트로 갈 것인가?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뻔히 보이고, 이미 계산이 끝난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전혀 이해 되지 않고 심지어 불 합리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시겠습니까?
남아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을 선택했습니다. 아니 그들은 이미 결정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과 뜻에 반한 기도 응답이 나오니까 예례미야를 거짓말쟁이라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기도를 하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니까? 아니면,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또 내가 좋아하는 성경말씀은 무엇입니까?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딱 맞는 구절을 만나면 아멘, 할렐루야 찬양을 하고, 내 귀에 거슬리는 내용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우리의 신앙의 연수가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취사 선택하고 과거로 회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두들 그러하듯이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 충만히 받을 때는 자신이 얼마나 잘 못 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오래 하면 할 수록 나도 모르게 회개 했던 그 잘 못된 나로 돌아갑니다.
3. 회개하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3. 회개하고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사실, 이집트는 하나님이 절대로 돌아가면 안된다고 경고 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종 되었던 이집트로 부터 탈출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신명기서 17장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종 되었던 그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을 강력히 경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천년이 지난 예례미야 시대에도 또 다시 하나님은 애급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사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이집트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기보다 늘 예전에 자신이 있었던 이집트로 돌아가려고 불평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 사람은 생명의 위협이 오자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살던 이집트가 안전해 보여 돌아가고 있습니다.
6절 7절 말씀입니다.
곧 남자와 여자와 유아와 왕의 딸들과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겨 둔 모든 사람과 선지자 예레미야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거느리고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결국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들은 회개하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더 안전하고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창 20대일때, 상담과 캠프라는 청소년상담실이 주관하는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상담공부를 하고 방학때는 상담캠프를 하는 그러한 동아리 였습니다. 그 곳에서 상담을 배우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서는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서라는 것은 한마디로 반응입니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내 앞에서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무덤덤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노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화가 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반응하는 정서가 다릅니다. 이러한 정서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20년을 살았으면, 20년동안 매일같이 꾸준히 노력해야 바뀝니다. 50년이면, 앞으로 50년을 노력해야 바뀝니다.
우리의 정서, 습관이란 이처럼 무섭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자신을 보십시오. 매번 똑 같은 걱정과 똑같은 문제로 씨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일한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다시 회개하고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면,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은 회개했으니 회개한 그 자리에 머무르라고 말하는 데, 우리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무엇이라 부릅니까?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돌아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는 이들을 향해 예례미야가 다시 예언을 합니다.
11절부터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와서 애굽 땅을 치고 죽일 자는 죽이고 사로잡을 자는 사로잡고 칼로 칠 자는 칼로 칠 것이라
내가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지르리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불사르며 그들을 사로잡을 것이요 목자가 그의 몸에 옷을 두름 같이 애굽 땅을 자기 몸에 두르고 평안히 그 곳을 떠날 것이며
그가 또 애굽 땅 벧세메스의 석상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신당들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 왕 즉 바벨론 왕을 시켜 애급으로 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바벨론이 이집트로 진격해서 쳐 들어왔었습니다. 예례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은 적군인 바벨론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이집트로 왔다가 하나님과 바벨론 둘 다 이스라엘을 치는 적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회개했으면, 회개한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비록 그 자리가 나한테 불리해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머물라고 하면 머무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이 머물라면 머무는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4. 결론
4.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얼마전 서세원이 SSO 코인이라 것을 만들어 무슨 잡 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 한마디로 스캠이지요. 많은 한국 코인이 그러하듯이 다단계로 사기 치려고 하는 것이지요. 모두다 알다시피 서세원은 전에 갑자기 목사가 되어서 교회도 개척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새벽마다 기도하던 서정희 집사님에게 심한 폭행을 하고 자신의 딸 마저도 서세원씨를 등지도 아내와도 이혼을 했지요.
예전에 이 서정희씨가 다니던 교회가 믿음의 집이라는 방배동에 있는 교회 였습니다. 그 교회는 저희 막내 동생이 다녔었습니다. 그 당시 서세원은 서정희씨를 교회에 데려다 주고 바깥 주차한 곳에서 예배가 끝날 때까지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목사가 된 것입니다. 저도 제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욕을 했었죠.
갑자기 사람이 바뀔리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목사에서 다시 다단계 사기꾼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집트로 돌아간 것이지요. 대도 조세형은 어떻습니까? 그도 목사가 되었지요. 그런데 또 도둑질을 하다가 잡혔습니다.
우리모두는 단 한번의 경험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회개를 단 한번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완벽하게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또한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해도 여전히 나의 계산과 이득을 따라 과거의 나로 돌아가려고 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지하고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완벽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이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도 자신에게 듣기 좋은 소리만 뽑아서 듣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원하는 것만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이 뜻대로 산다고 착각하며 신앙인인 척 사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자일 뿐입니다.
내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방식과 계산이 옳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