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꽃이 피어나리 (217-232문)
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
오늘 본문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서론
서론
우리는 봄이 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겨울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메말라 죽고, 모든 것이 찬 바람 앞에 무릎을 꿇고 죽은 듯 숨죽이고 있는 그 압제의 모습을 겪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그 봄의 소식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겨울을 바라보며 봄을 떠올립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며, 우리의 피부를 베어갈 듯 따가운 바람 속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싹이 피어나며, 모든 것들이 두꺼운 겉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속살을 드러내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그 봄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나 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고 말이죠.
이 말과 같이 우리의 인생도 우리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가?를 떠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언제 가장 힘들었고, 언제 가장 슬펐으며, 언제 가장 고통 스러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그 순간이 곧 우리가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론
본론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는 이유: 복음
율법을 통해서 우리가 회개하는 이유: 복음
2021년이 들어서고부터 우리는 사도신경을 시작으로 십계명에 이르렀고 드디어 십계명을 지난주에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2021년이 들어서면서부터 사도신경을 설교함에 있어서 완전하신 하나님과 부족한 나,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나,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과 최악의 악인 나를 비교하였고, 십게명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 하나님을 우리의 눈에 보이는 존재로 만들어 버림으로 인하여서 하나님을 살인하고, 하나님을 버린 채 간음하는 우리의 모습, 하나님의 이름을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고,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어 버림으로 거짓증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탐내는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가 참 쓸모없는 존재다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아주 최선을 다했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모습, 그러니까 처참히 짓밟히고 아주 쓸모 없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인하여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악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무지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를 위해 회개할 수 있는 기회들을 날마다 허락하시며, 우리 안에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우리로 죄를 깨닫게하시는 그 하나님의 신실하신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실 수 있는 그 능력과 힘을 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들여다 보아야 하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영광과 존귀를 버리시기까지 희생하신 그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이기적이고 늘 변해버리는 우리의 사랑을 들여다 보아야 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님의 모습이 바로 은혜요,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생명력이 넘치며, 가장 소중한 그 복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꼬이고 비틀어진, 흠 투성이인 여러분들과 저의 인생을 회복시킬, 어쩌면 회복시키신 그 복음 말입니다.
마치 한 송의 꽃이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아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입고, 치장을 하여 자신을 맘껏 꾸며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우리의 깨지고 일그러진 그 모습을 메우고 회복시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러낼 그 복음 말입니다.
복음의 꽃 = 성도의 삶
복음의 꽃 = 성도의 삶
사람들은 누구나 꽃이 되기를 원합니다. 특히 여자들은 자신의 모습이 꽃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떨까요? 남자들은 그 아름다운 꽃이 자신의 옆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남자들은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꽃을 자신의 옆에 두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치열한 전쟁에 임할 각오로 살아갑니다. 자신의 인생에 아름다움을 선사해줄 꽃과 같은 자매를 늘 만나고 싶어하고, 그런 자매를 찾아 헤매이는 꿀벌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복음을 항상 갈망함으로 살아간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켜서, 우리의 인생이 아름다운 꽃과 같이 만들어 줄 그 복음 말입니다.
본문해설
본문해설
그 복음에 대해서 오늘 본문은 아주 잘 보여줍니다.
본문배경
본문배경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복음을 들려주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듣기 이전에 그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빌립을 만난 예수님은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하신 후에 요한복음 1:45 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갔다라고 기록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그에게 확신에 차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라고 말입니다.
이는 마치 요한복음 1:35-42 에서 예수님을 따라갔던 요한의 두 제자 중 숨겨졌던 그러니까 밝혀지지 않았던 한 사람이 바로 빌립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식사하며, 함께 대화했던 안드레와 빌립은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낀 그 확신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메시야가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있구나!라는 그 기쁨에 벅찬 가슴을 움켜쥐고 자신들의 형제에게로, 자신들의 친구에게로 나아갔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빌립에게 나다나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말이죠.
나다나엘은 지금 빌립에게 찬물을 끼얹어 버렸습니다.
내가 드디어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사람을 안드레와 내가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였어!라고 기쁨에 벅차있는 빌립을 향해서 나다나엘은 그래서? 나사렛은 촌동네 중의 촌동네인데 거기에서 어떻게 학식있고, 격식있는 위대한 구원자가 나타날 수 있는가?라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은 포기 하지 않았고, “와서 보라"라는 확신에 찬 대답으로 나다나엘을 예수님 앞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서 한방에 자신을 알아보는 것을 보고 이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라는 놀라운 고백을 내뱉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자신이 부르신 그들에게 오늘 본문 요한복음 1:51 을 말씀하신다라는 것이죠.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본문의미
본문의미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비롯한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이 “복음"을 드러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핵심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라는 부분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입니다.
이 모습은 성경에서 딱 두군데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한 군데가 바로 요한복음 1:51 이고, 나머지 한 군데는 바로 창세기 28:12 입니다.
창세기 28: 12 은 야곱이 팥죽 한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산 뒤 아버지 이삭에게로 부터 모든 축복을 받은 뒤 야곱은 엄마 리브가의 말을 따라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난가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는 창세기 28:10-22 에 속해 있는 본문입니다.
간략히 스토리를 이야기 해드리면,
야곱은 가족을 등진채 삼촌 라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가는 도중 밤은 깊어졌고, 야곱은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큰 돌이 있었고, 그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누워 잠을 청합니다.
잠에 든 야곱은 꿈을 꾸게 되는데 그 꿈의 내용을 창세기 28:12-15 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꿈을 가지고 오셔서 말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는 나다나엘을 보셨을 때, 나다나엘이 이스라엘의 정통한 신학자로서 모든 율법에 있어 권위가 있는 자임을 아셨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앉아 있다라는 말은 바로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탁월한 자들이 행했던 관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나다나엘에게 야곱의 꿈, 그러니까 율법학자로서 율법에 능통한 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야곱의 꿈을 가지고 오셔서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적용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지금 예수님의 머리 위에 서서 예수님께서 차지하는 그 모든 땅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주겠다라는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가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 제자들로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항상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라는 것을 지금 예수님께서 야곱의 꿈을 통해서 나다나엘에게 선포하고 계신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통치하심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된 자들을 통해서 확장되어가고, 점점 넓혀져 간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은 우리가 거하는 모든 곳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로 인하여 모든 족속이 복을 받고,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함께 하신다라는 것, 그것이 바로 복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되는 것 그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이라 번역된 원어 유앙겔리온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결론
결론
예수님께서 야곱의 꿈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가 선포되는 나팔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져 가는 통로로, 매게체로 우리를 부르셨음을 우리는 보았고, 들었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그 복음을 붙잡고 그 복음을 위해서 달려가야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22-24 에 사도바울은 그토록 가고자 했던 예루살렘을 향해 전도여행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길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지 말것을 권면하며, 말림에도 불구하고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목숨보다 복음의 꽃을 피우는 일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강인하고 뚝심있는 자신의 고집이 아니라 연약하고 부족한 자신을 움직이도록 하는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복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자신의 추악하고 부족한 모습을 본 사도바울.
자신이 아무런 쓸모도 없고, 자신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는 그 모습 앞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 곧 복음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도바울은 그 복음의 힘으로 인하여,자신의 인생을 통해 복음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전심전력하는 자가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믿음의 삶을 따라 우리의 인생을 통해 복음의 꽃을 피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그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리는 귀한 인생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