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에게서 배우는 삶의 모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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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표기도

3. 성경봉독

John 1:43–51 NKRV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4.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를 살피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창세기 28 에 기록되어 있는 야곱의 꿈 이야기 입니다.

야곱의 꿈 이야기

창세기 28 에 등장하는 야곱의 꿈 이야기는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사서,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에게 물려주는 축복과 모든 권한을 받게 된 야곱이 에서의 위협으로부터 도망하여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에 생긴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면서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었을까요?
가족을 등지고, 생이별을 한 채,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어머니 리브가의 권면에 등떠밀려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야곱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걸어갔던 그 길은 그야말로 가장 끔찍한 길이 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터전을 뒤로하고, 모든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다른 터전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라 할 수 있는 집을 떠나야 했던 야곱,
야곱은 그렇게 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길에 금방 지쳐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집도 아니고, 삼촌 라반의 집도 아닌 그야말로 광야와 같은 곳에서 밤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는 큰 돌을 구해다가 잠을 청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기후적 특성: 광야!

사실 이스라엘이 있는 곳의 특성은 광야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곧 광야가 시작되고, 광야 가운데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광야와 같은 특성을 가진 곳이 바로 이스라엘 지역입니다.
광야의 저녁은 낮에 만나는 광야와는 또 다른 모습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 쬐며 모든 생명을 말려 죽이는 무서운 모습이라면, 광야의 밤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며 모든 생명을 얼려 죽일만큼 춥고 위험한 곳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런 곳에서 야곱은 지금 돌을 배개로 삼아 잠을 청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야곱이 자신의 인생에 벌어진 일들로 인하여 한탄하며, 자신의 생명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야곱의 꿈을 통해서 야곱에게 약속하시는 하나님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야곱, 자신의 존재가 마치 잘 못 태어난 듯 후회하며, 될 데로 되라며 추운 광야의 날씨 속에 돌 배게를 배고 잠을 청하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에 나타나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의 인생의 가장 좋은 복을 허락하십니다.
그 복이 바로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즉, 창세기 28장에 기록된 야곱의 꿈 이야기는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본론

예수님을 따랐던 요한의 두 제자

요한복음 1:35-37 에 보면,
John 1:35–37 NKRV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요한의 제가두 사람이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 갔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에 대해서는 요한복음 1:40 에서 안드레라는 사실을 밝혀 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나머지 한 사람에 대해서는 밝혀주지 않는데, 그 한 명이 빌립이었음을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43절은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라고 기록하면서 앞에서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시다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진 안드레는 곧장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에게 달려가 베드로에게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만나볼 것을 강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이 지금 오늘 본문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 그에게 진정한 메시야를 만났음을 말하고, 나다나엘은 빌립의 확신에 의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며, 나다나엘도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려고 하시는 그 찰나를 기점으로 앞과 뒤의 이야기가 평행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요한의 두 제자중 한 사람은 안드레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빌립인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빌립은 예수님께서 머물고 계시는 곳에서 안드레와 같이 예수님과 오랜시간을 함께 머물렀고, 그 후의 빌립의 고백은 마치 아주 오랜 시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지냈던 사람처럼 강한 확신을 가지고 나다나엘을 향해서 증언합니다.
도대체 예수님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기에 빌립과 안드레는 아주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요 1:45 은 빌립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John 1:45 NKRV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라고 말입니다.

나다나엘의 대답의 의미

그러자 나다나엘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John 1:46 NKRV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이 말의 의미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적합한 의미는 바로 오늘 본문이 제시하는 나다나엘의 모습에서 발견되어지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다가올 때 나다나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hn 1:47 NKRV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향해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에 대해서 48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John 1:48 NKRV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라고 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47절에서 나다나엘을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라 말씀하신 이유는 바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던 나다나엘의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당시 무화과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는 것은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율법에 정통한 율법학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나다나엘은 구약에 능통한 신학자였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는 나다나엘이 했던 대답의 의미는 바로 성경의 그 어디에도 메시야가 나사렛에서 나올 것이라는 말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자신에게 와서 내가 모세가 기록한 율법과,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사람을 내가 보았다라고 하며 그 사람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다나엘은 의심했다 라는 것입니다. 그가 알고 있는 구약 성경에 의하면 성경의 그 어디에도 나사렛 사람이 메시야로 나올 것을 기록하고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많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했기에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메시야를 제대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단지 나다나엘은 성경의 문자적인 기록들만을 생각했고, 그 생각들은 성경이 예언을 통해서 가리키고 있는 참된 메시야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그러니까 빌립이 “와서 보라"라는 강한 확신에 의해 이끌려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나다나엘의 편견은 깨어졌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이전까지 나다나엘은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는 고전 13:12 의 말씀과 같이 구약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나다나엘은 모든 구약 성경이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을 비롯한 제자들을 확신에 차게 한 힘! : 천국 소망

어떻게요?
바로 오늘본문 요 1:50-51 때문입니다.
John 1:50–51 NKRV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50절이 말하는 더 큰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51절입니다.
John 1:51 NKRV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51절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아시겠나요? 바로 우리가 제일 처음 시작하며 다루었던 야곱의 꿈 이야기가 51절 속에 함축되고 압축되어 기록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다시 야곱의 꿈 이야기

다시 야곱이 광야에서 돌 베게를 배고 잠을 청하였던 그 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야곱이 광야에서 돌 베게를 배고 잠에 들었을 때 꾸었던 꿈은 창 28:12-15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Genesis 28:12–15 NKRV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의 꿈을 요약하자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향해 약속하시는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야곱이 누워 있는 땅을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 줄 것이다라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과 야곱의 자손으로 인하여서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있어서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야곱을 지키며,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는 야곱을 다시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넷째는 이 모든 것을 이루기까지 하나님께서 야곱을 떠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바로, 51절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바로 이 야곱과 하나님이 맺으셨던 그 약속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안드레와 베드로, 빌립과 나다나엘에게도 적용시키신다라는 것입니다.
안드레와 빌립이 어떻게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와 자신의 지인인 나다나엘을 향해서 강권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님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천국 소망,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그 언약이 예수님을 통하여서 안드레와 빌립에게 전해졌고, 그 언약을 받은 안드레와 빌립은 그들의 형제와 친구를 향하여 강한 확신을 가지고 외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삶

다르게 이야기하면, 예수님께서 야곱의 꿈을 이야기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고자 하셨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곧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이어 받는 자가 된다는 것임을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셨던 그 약속을 이어받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토록 꿈꾸는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 천국의 모습에 대해서 이사야 11:6-9 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Isaiah 11:6–9 NKRV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여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역할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천국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삶이 마가복음 1:12-13 을 통해서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Mark 1:12–13 NKRV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너희가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야곱의 꿈을 자신에게 적용하시면서 보여주신 그 천국의 소망은 빌립과 안드레를 강한 확신에 사로잡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강한 확신은 그들의 친구를 향하여 그들의 형제를 향하여 강권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 우리가 요한복음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모습은 바로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 저와 여러분이다라는 것이고, 천국의 소망을 가진 자들의 삶은 바로 안드레와 빌립과 같이 예수님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구원자가 되시며,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가지도록 우리를 초청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고백하며 담대히 나아갔던 사도바울과 같이 우리도 고백하며, 천국을 누리는 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로 부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5. 통성기도

들은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6. 마무리기도

7. 찬송가: 사망의 그늘에 앉아 다함께 찬송 하시겠습니다.

8. 기도회

코로나19 가운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개인의 기도제목을 두고

9.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10.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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