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와 권력욕을 넘지 못한 불완전한 지도자

기드온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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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흐름

기드온의 군대가 세나와 살문나를 쫓아 갈 때에 숙곳과 브누엘(8:6,8)에 음식을 요청했지만 그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부했다.
왜 그들은 기드온의 요청을 거부했을까?
철저히 실리 위주로 이루어지는 세상의 정치
그러한 그들에게 기드온은 복수를 다짐한다(8:8.9)
이에는 이의 반응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기드온의 복수

10: 겨우 15000명의 군대를 거느린 세바와 살문나. 12만의 사람들이 죽긴 했으나… 이러한 군대의 숫자가 중요한가? 이미 7장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단 300명의 병사로 12만을 죽였다는 사실
11: 방심하고 있던 적들.
이 정도면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이정도 노력하면 내가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방심이 그들을 죽음으로.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문제이지만
12: 결국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나와 살문나를 잡았다. 그리고 온 군대를 전멸시켰다.
13, 14: 숙곳의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기드온은 77명의 장로들과 리더의 명단을 입수했다.
15: 기드온의 약함과 그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알아서일까? 이러한 일들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전쟁이었지만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기에 복수를 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일까?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은 협조하진 않았지만 같은 민족이었다. 미디안 군대에게 죽음을 당했던 기드온의 가족들과 같은 민족이었다는 사실.
하나님의 뜻을 숙곳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성경 본문에서는 그러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영에 대한 문제로 다가가기도 어렵지 않을까?
오히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이번 전투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자비하심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16,17: 결국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을 죽인다.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군대가 사람들을 죽인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18,19: 세바 와 살문나를 죽이기로 한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당시의 문화와 정황으로 볼 때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20,21: 하지만 그가 직접 죽이지 않고 그의 아들에게 그들을 죽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겁장이였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한 것인지 그의 아들인 여델도 그들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경의 인물 중에 이토록 겁이 많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사사로 세워진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직접 움직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드온은 용맹한 이름의 대명사로 보이지만 실제로 항상 갈등했고 두려워했다. 이것이 오히려 컴플렉스였을까? 아직 칼을 뺴들지 못하는 아들에게 사람을 죽이게 시킨 것이다.
모욕일 수도 있겠다. 칼도 못빼는 어린 아이에게 죽게되는 처참한 광경을 세바와 살문나에게 선사하려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그런데 좀 과해 보인다.
그리고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가 가지고 있던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자신이 가져갔는데, 이 장식은 미디안이 섬기고 있던 우상을 형상화 한 것이다. 분명 그것은 없애 버려야 했지만 자신이 갖았다.
대체 왜 그는 그 장식을 가졌을까? 그가 그것을 가질만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가졌을 것이다. 그가 세바와 살문나를 죽였기에 그들보다 나은 존재, 즉 자신이 왕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것. 실재로 22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그들을 다스릴 것을 요청한다.
겁쟁이에서 교만한 자로. 뭔가에 홀린 것이 분명하다. 자기 자신에게 홀렸다. 승리의 순간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든다. 이 전쟁의 모든 승패가 하나님께 있었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나의 지분도 있었다고 생각한 것. 승리의 순간은 너무도 달콤하고 넘어지기 쉽다. 그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어려울 때에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승리의 순간, 잘 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우리의 진짜 전쟁이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가가 우리의 진짜 전쟁이다. 이러한 연약함을 아시기에 이스라엘에게 왕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하나님께서는 주장하셨고, 사울과 같은 왕을 원한 이스라엘에게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다윗의 영광이 과연 옳은 일인가? 결국 망했다. 그 끝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로 인해 망해버렸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이 지속되었다면? 아마도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예수님께서 희생하시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는 죄로 인해 그럴 수 없는 존재였다. 예수님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러하기에… 우리 중 그 누구도 기드온을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우리의 부족함은 저 깊은 곳에 숨겨두고 마치 나는 깨끗한 사람인 척, 하나님과 같은 자인 것처럼 생각하는 그 오만과 교만. 그것이 나다.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하는 오만 덩어리. 죄악의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실.
기드온의 전쟁과 상황의 진행 중에서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 엄청난 겁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뜻으로 전쟁에 임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기다렸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확신이 섰을 때 무리한 상황이며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순종했다는 것.
그런데 이러한 순종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내셨다는 생각이 든다.
21절: 사람이 생긴대로 힘이 나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조롱하지 말고 죽여라 정도가 아닐까?
죽는다는 것. 그게 더 쉬울 수도 있는 일인가? 나의 기준으로는 죽는 것이 더 쉬워보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은 더 용감한가? 나는 더 비겁한가? 나는 아직 삶의 제대로 된 고통을 느낀 적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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