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 항상 힘쓰라! (233-252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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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오늘 본문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서론
서론
우리는 늘 기도합니다.
식사 할 때, 힘들 때, 어려울 때, 슬플 때, 기쁠 때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하나님 저 서울대 가게 해주세요.
하나님 저 이거 필요해요.
하나님 저 이거 가지고 싶어요.
하나님 저 좋은 배우자 주세요. 등등
나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만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기도 해보신적이 있나요?
하나님 무엇을 원하십니까?
하나님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제가 이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저의 욕심이라면, 그 욕심을 꺾어 주세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기준과 말씀에 따라 준비되고 또 준비되어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주세요.
하나님 제가 서울대는 아니더라도 좋은 직장은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 가운데 있게 해주세요.
말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의 내용들이 나를 위한 것에서 멈추어 있다면,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기도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본론
본론
본문 구조
본문 구조
먼저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큰 틀의 구조를 살펴보면
오늘 본문은 에베소서 6:10-20 이라는 한 덩어리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덩어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우리는 어둠의 영의 힘에 반대하여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에베소서 6:10-20 의 위에 기록되어 있는 표제와 같이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을 위해서 하나님의 군사로 부름 받았다라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6:10-20 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엡 6:10-12 의 내용으로 “우리의 진정한 적에 반대하여 군사로 부름 받은 우리들”이라는 내용이고, 둘째는 엡 6:13-20 의 내용으로 “싸움에 나가기 위한 우리의 갑옷과 무기, 그리고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18절은 “싸움에 나가기 위한 우리의 갑옷과 무기, 그리고 전략"에 대한 부분에 속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엡 6:13-20 은 다시 두 개의 구조로 나뉘며 세분화 됩니다.
먼저는 13-17로 전신갑주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고 이어서 오늘 본문이 등장한다라는 것이죠.
즉, 많은 사람들이 엡 6:18 을 앞에 등장하는 전신갑주와 연결하여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전신갑주의 한 부분으로서 기도를 언급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러나 사실 18절은 앞에 나오는 전신갑주를 입은 사람이 행하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18절을 행하는 사람이 전신갑주를 입게 된다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전신갑주를 입고나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전신갑주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로 허리에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라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나에게 주어졌으니 내가 기도하겠다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해설 : 단어설명
본문 해설 : 단어설명
오늘 본문을 원문에서 직역하면 이렇게 번역됩니다.
“모든 기도와 모든 간구를 통해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라 그리고 바로 그것(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을 향하여서 의인에 관하여 모든 인내로 또 모든 간구로 깨어 있어라" 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가지를 강조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단어인데요. 뭐가 있죠?
네, 기도, 간구 입니다.
단어 설명 : 사전적 의미
단어 설명 : 사전적 의미
기도
기도
먼저 기도로 번역된 단어는 “트필라"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기도, 간청, 애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심판하다, 간섭하다, 중재하다"라는 의미의 ‘pll’ 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의미가 “절대적 존재를 향한 간청, 애원”이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간구
간구
다음으로 간구로 번역된 단어는 “트힌나”라는 히브리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간구, 은혜, 탄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은혜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자비를 구하다"라는 의미의 ‘hnn’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의미가 “권위가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도움과 자비를 바라는 겸손한 요청”을 나타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단어설명: 성경적 의미
단어설명: 성경적 의미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통해서 살피지 않아도 오늘 본문은 스스로 기도와 간구에 대해서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을 새번역으로 보면,
18 온갖 기도와 간구로 언제나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시오.
라고 기록하면서, “언제나 성령 안에서”라는 말과 “기도”를 연결하고 있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라는 말과 “간구"를 연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라는 것을 오늘 본문은 항상 성령 안에서 행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반면, 간구라는 것은 “성도들을 위하여” 행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라는 부분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모든 경우에 성령의 도움을 받아 기도하십시오"라고 말이죠.
따라서 기도는 성령 안에서 그러니까 성령의 기준을 따라서,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서 해야하는 것이고, 간구는 우리의 이웃을 향해서 성도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죠.
정리:성경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정리:성경은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 두 단어를 마치 하나의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왕상 8:45, 49 이 잘 보여줍니다.
4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바로 기도라는 것은 곧 절대적 존재로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간섭하시며, 중재하시는 그 하나님을 향한 기도 혹은 간청, 애원과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부족함을 아뢰고, 도움을 구하며,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을 성경은 기도라고 정의한다는 것이죠.
즉, 기도는 심판하시고 간섭하시며 중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과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 기도의 모본
주기도문 : 기도의 모본
복잡하고, 어렵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기도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의 구조
주기도문의 구조
주기도문을 보면, 두 가지 구조로 드러납니다.
첫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고,
둘째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 속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본문해설 : 항상 깨어, 항상 힘써라!
본문해설 : 항상 깨어, 항상 힘써라!
그리고 계속해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와 이웃을 위한 간구를 항상 깨어 있음으로 항상 힘써라!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기도문의 내용과 같이 성령 안에서 항상 깨어있음으로 항상 힘써 기도하고 간구할 때, 우리는 앞에서 나열되고 있는 전신갑주를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을 수 없다는 것이죠.
겟세마네 동산의 동상이몽
겟세마네 동산의 동상이몽
막 14:32-42 을 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의 동상이몽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그 날이 가까이 다가 오자 예수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자신의 심정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말씀하시고 난 다음 혼자 앞으로 조금 더 나아가셔서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그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뜻을 구하였지만, 이내 자신의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에게로 돌아오신 예수님은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그 심정을 들었고, 부탁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신 사이에 잠이 들었고, 세번째 잠이 들었을 때, 기도하러 갔다가 돌아오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려와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바로, 우리가 항상 깨어서 있지 않는 다는 것은 곧, 우리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것이고, 이는 곧 마귀의 유혹에서 이길 수 있는 힘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 줍니다.
즉, 우리가 항상 깨어서 기도한다, 간구한다라는 것은 곧 전신갑주를 입기 위한 첫 걸음이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군사로서 중무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배경: 전쟁!
본문배경: 전쟁!
오늘 본문 엡 6:18 앞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엡 6:10-17 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엡 6:12 은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라고 말이죠.
따라서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서 무기를 챙기고, 그 무기들을 다루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서 기도해야 하고, 간구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전신갑주를 입기 위해서, 좋은 무기를 사용하고, 좋은 갑옷을 입고, 적시 적소에 사용될 아주 좋은 전략을 세우는 것은 바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함이고, 그러한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우리가 늘 날마다 매 순간 마다 기도하며, 우리의 동료들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고 간구할 때, 우리는 싸움에 참여할 준비를 갖추게 되고, 우리는 서로 서로 협동하여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오늘날 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승리하지 못할까요? 왜 우리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까요? 아니, 어쩌면,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세상 앞에 서지 못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가신 사이 잠들어 있었던 제자들의 눈과 같이 감기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생각을 깨우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기준을 따라 사고하며, 판단해야 할 자들이 지금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사고하지 않으며, 판단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이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삶일까?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민하지 않는 자에게 정답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결과는 주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 자들에게 전쟁에서의 승리와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하여 누리게 될 기쁨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죠.
주기도문을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시선은 어떻습니까?
그저 하나의 주문처럼, 하나의 습관처럼 외우는 것에서 끝나버리십니까?
이 시간 항상 깨어 항상 기도하고, 간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그 전신갑주를 입기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함께 전쟁에 나갈 우리의 동료들을 위해서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두가지를 회복할 때, 우리는 진정한 빛과 소금으로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향해 당당히 싸울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승리를 쟁취하며, 그 승리에 의해 주어지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