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아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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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성경 말씀은 마가복음 10장 13절에서 16절까지 말씀입니다. 다같이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요즘 제가 사랑해서 결혼한 저희 아내보다 더 많은 관심과 생각을 하게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명이 아니고 두명이나 됩니다. 상당히 귀엽고 사랑스럽고, 거기다 아내에게는 없는 애교가 넘쳐납니다. 그리고 저를 매일 많은 웃음을 짓게합니다. 아내가 알면 큰일날 소리지만, 어떨때는 아내보다도 더 사랑스럽습니다. 바로 저의 두 딸들입니다. 요즘 저는 이 두 딸들과 24시간을 붙어있었습니다. 첫째는 방학을 했고, 둘째는 언니가 방학을 하니 본인도 가기 싫다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제 옆에 있고, 낮에도 제 옆에 있고, 저녁에도, 잘때도 제 옆에 있습니다. 처음 몇일은 나름 잘 지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종일하고 미술놀이, 물놀이 등등 많은 것을 함께 했습니다. 아빠가 있으니 티비보다는 아빠랑 놀아보자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밥도 잘 먹여서 방학동안 살도 좀 찌워주고, 키도 좀 크게 해주자,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점점 티비를 보여주는 시간이 늘어가고, 밥도 김에 밥을 싸주는 횟수가 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개학을 1주일 남겨두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번주부터 유치원을 등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제 마음이 어떨것 같습니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행복인가요?
저도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입니다. 저도 방학이었습니다. 방학동안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읽은 책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다음주에 개강을 합니다. 그렇게 저의 방학도 끝이 났습니다.
여름내내 아이들 생각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월동안 교육부서가 영상예배로 예배를 드리다보니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예배를 기쁨으로 드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니, 제 관심사는 오직 어린아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히려 이 아이들이 어른인 저보다 하나님을 더 진심으로 사랑할수도 있겠다 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세상에 물들고 사회에 적응하기전에는 어쩌면 이 아이들은 어른들이 그토록 찾고 있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구조 속에서 그것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됐습니다.
그리고나서 오늘 말씀을 봤더니, 그렇게 망가져가는 우리를 하나님은 포기 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는구나, 라는 작은 위로를 느꼈습니다.
요즘 제가 사랑하는 아내보다도 가장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상당히 귀엽고 사랑스럽고, 애교가 넘칩니다. 그리고 저에게 저를 웃게 해줍니다. 바로 저희 7살, 7살인 두 딸입니다. 그리고 저희 영유아교회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 아이들을 가장 많이 생각할까요? 두딸은 방학이라서 하루종일 저와 같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잠을 자면서도 24시간을 저와 붙어 있습니다. 참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영유아교회 아이들은 현장예배도 안드리는데 어떻게 된거냐 생각하신다면, 요즘 유초등교회와 영상예배를 함께 드립니다. 그래서 설교 본문에 해당되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내내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영유아교회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요즘 제 일상속에서는 아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그러다보니 아이들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저희 아이들도 그렇고, 영유아교회 아이들도 그렇고 대부분 10살 미만의 아이들입니다. 고학년의 청소년에 비하면 쉬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일이 알려주고 가르쳐줘야 하기 때문에 손이 참 많이 갑니다. 알려주고 알려줘도 계속 알려줘야 하고, 해주고 해줘도 계속 해줘야 합니다. 제 말을 알아듣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명감으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대할 때도 있습니다. 귀찮게 느껴질 때도 참 많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이들에게 배울만한 점 3가지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 -> 예수님께 올때 어떤 마음으로 오는가? 아이들이 부모님께 올때 어떤 마음으로 오는가? -> 기쁜마음으로 온다 -> 아프고 슬플때도 온다, 그떄는 부모에게 오면 그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고 온다. 슬픔이 기쁨이 된다. -> 우리도 하나님께 올때 기쁨으로 와야 한다. -> 삶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아픈 마음이 생겨 하나님께 오지만, 그것이 사라지고 기쁨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와야한다.
성경 문화배경 사전 (기쁨)
기쁨(joy) ‘마음이 평화, 만족, 희망으로 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에는 이십 여 종류의 원어들이 사용되고 있어 성경에는 기쁨과 관련된 다양한 표현들과 많은 교훈들이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쁨에는 육체적인 기쁨(전 9:7,9), 일시적인 기쁨(마 13:20), 어리석은 기쁨(잠 15:21) 등 유한한 기쁨도 있는 반면, 최후에 누릴 기쁨(행 20:24), 장래에 얻을 기쁨(마 25:21,23)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영적이며 영원한 기쁨도 있다. 전자의 기쁨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맛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후자의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속성이자(시 104:31),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23). 또한 이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시 1:2), 예배를 통해서(왕상 1:39), 기도하는 가운데(사 56:7), 성도의 교제를 통해(빌 1:25),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눅 13:17), 성령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벧전 1:6–8). 따라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넘치는 기쁨을 누린다(살전 1:6).또한 성도는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함으로써(골 3:20),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마음으로(히 12:28), 하나님을 찬송함으로(시 69:30–31), 의롭고 선한 말의 열매를 통해(잠 10:32), 선한 행실로(잠 16:7; 골 1:10) 가능하다.
2.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드는 것 -> 영접하는 것, 예수님이 내 맘에 들어오시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허락하는것, 인정하는것, ->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허락한다 -> 자신들이 연약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개입하는 부모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 우리는 어떤가?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는가?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기꺼이 환영하는가? -> 아이들은 다르다. 기꺼이 어른들의 개입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 그런데 그 아이들이 자라면서 좀 더 배우고 세상을 경험하게 되면 그때는 부모의 개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개입에 대해서 인정하는가? ->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한다. ->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어야 한다. -> 오히려 환영하며 우리의 삶에 적극 개입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Lexham 헬라어 성경 어휘사전 (δέχομαι)
δέχομαι (dechomai), 동사. 영접하다, 받다, 맞이하다. 부정과거 능동태. ἐδέχθην; 완료 중간태. δέδεγμαι. 히브리어 등가: לקח (11), רצה 1 (3).동사 용법1. 취하다 (물리적으로) — 자신의 손에 들어가거나 물리적으로 취하다.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λαμβάνω.눅 16:6 Δέξαι σου τὰ γράμματα눅 16:7 Δέξαι σου τὰ γράμματα καὶ γράψον ὀγδοήκοντα.눅 22:17 δεξάμενος ποτήριον εὐχαριστήσας엡 6:17 καὶ τὴν περικεφαλαίαν τοῦ σωτηρίου δέξασθε, καὶ2. 받다 — 어떤 것을 얻거나 소유로 하기 위해서. 육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λαμβάνω.눅 2:28 καὶ αὐτὸς ἐδέξατο αὐτὸ눅 18:17 ὃς ἂν μὴ δέξηται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행 3:21 ὃν δεῖ οὐρανὸν μὲν δέξασθαι ἄχρι χρόνων행 7:59 Κύριε Ἰησοῦ, δέξαι τὸ πνεῦμά μου·고후 6:1 τοῦ θεοῦ δέξασθαι ὑμᾶς·3. 영접하다 (사람) — 자신의 집단에 들어오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다.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λαμβάνω, παραδέχομαι, προσδέχομαι. 관련 주제: 수신하다.마 10:40 Ὁ δεχόμενος ὑμᾶς막 9:37 Ὃς ἂν ἓν τῶν τοιούτων παιδίων δέξηται눅 9:48 μου ἐμὲ δέχεται, καὶ눅 16:4 ἵνα ὅταν μετασταθῶ ἐκ τῆς οἰκονομίας δέξωνταί골 4:10 ἐὰν ἔλθῃ πρὸς ὑμᾶς δέξασθε αὐτόν), καὶ4. 취하다 (수락) — 주어지거나 제공받은 어떤 것을 기꺼이 받다; 실제적으로나 추상적으로.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παραλαμβάνω, προσδέχομαι. 관련 주제: 수락; 동의하다.행 17:11 οἵτινες ἐδέξαντο τὸν λόγον μετὰ πάσης προθυμίας,5. 받아들이다 — 어떤 대상에게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그래서 바로 혹은 합당하게 여기는. 의미상 반의어: 동의하지 않다.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παραδέχομαι. 관련 주제: 수락; 동의하다.막 10:15 ὃς ἂν μὴ δέξηται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οῦ고후 11:4 ὃ οὐκ ἐδέξασθε,살전 1:6 δεξάμενοι τὸν λόγον ἐν θλίψει πολλῇ μετὰ살전 2:13 τοῦ θεοῦ ἐδέξασθε οὐ약 1:21 ἐν πραΰτητι δέξασθε τὸν6. 받아들이다 (지식) — 사실로 여기거나 생각하는. 의미상 반의어: 거부하다.마 11:14 εἰ θέλετε δέξασθαι,고전 2:14 Ψυχικὸς δὲ ἄνθρωπος οὐ δέχεται τὰ τοῦ
3.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 예수님이 부어주시는 축복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 아이들은 부모의 칭찬을 먹고 산다. ->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들이 말하는 것을 기대한다. -> 천원짜리 작은 물건을 사준다고 할때도 기대한다. -> 그리고 그것이 이뤄질 때까지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 본문의 아이들도 예수님이 하시는 안수와 축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 축복의 메시지를 기대하며 받아들였다. -> 우리는 어떠한가? ->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말씀을 정말 기대하며 받아들이는가? ->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축복의 말씀을 듣고 있지 않는가?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기를 원하신다. -> 때로는 아이들도 부모가 한 약속을 믿다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을 한다. -> 이뤄지지 않았다해도 다음번에는 또다시 믿고 기다린다. -> 하물며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신데, 믿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