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수요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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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1:1-14
본문: 요한복음 1:1-14
제목: 나의 소망
사랑하는 일심비젼교회 성도 여러분, 분주한 가운데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소망입니다. 이 주제를 가지고 교회학교에서 지금 성경학교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중요한 주제이기에 수요 예배를 통해 온 교회가 같은 말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제주도를 여행 해보신적이 있으시죠? 제주도 가면 뭐가 제일 생각드십니까? 공항에 내리면 우리를 만지 하는 게 있습니다. 돌하르방입니다. 이 돌하르방에 사람들이 하는 행위가 있는데요 코를 만집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예전에는 코를 만지면 아들을 많는다는 설이 있어서 많이들 그렇게 했던거 같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고, 이렇게 만연히 알려져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아들을 낳는게 솜랑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지금 시대와는 잘 맞지 않지만, 30,40년 전만해도 아들을 낳아야지만 인정을 받는 시대가 있었기에 더 간절했던거 같습니다.
세상적 소망은 무엇입니까? 로또 혹은 돈이겠죠, 아들,딸, 자녀들입니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 덜 한거 같은데 학원 마칠시간이 되면 일대의 교통이 마비가 됩니다. 저도 한번 길을 잘못들었다가 고생을 한 일이 있는데요, 이들에게 있어서의 소망은 자녀들입니다. 한편으로 젊은 살마들은 소망 없이 박탈감에서 살아가고 있는거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위에 말씀드린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을 겁니다. 왜 차이가 없을까요? 세상에서 세상적 소망에 젖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소망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 존재가 본성적으로 바라는 희망으로 이해합니다. 헬라 문학에서는 인간의 기대나 갈망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보편적인 소망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로또가 되면 성공한 거처럼 보입니다. 자녀들이 대학을 잘가면 모든게 형통할 것처럼 보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글쎄요 정확한거 거기에서 만족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소망의 의미는 다릅니다.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에게 소망은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을 넘어서, 소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소유하는 것일까요? 꿈과 희망을 소유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생명을 소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들도 우리가 소유해야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뜬 구름을 소유하는 것이 아닌, 주님을 소유 하는 것입니다. 어감이 조금 그렇지만 소유 해야 합니다. 붙잡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시면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로 시작합니다. 어느 구절이 랑 비슷합니까?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요한복음에는 하나님 대신에 말씀(로고스)가 등장합니다. 계시니라는 창1:1 절에 “창조 하시니라”와 대비됩니다. 원어로 보면 창세기 1장 1절은 포이에이를 사용합니다. 뜻은 창조 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절에 계시니라 는 에이미 입니다. 다시 말하면 피조물들이 창조를 나타내지만, 말씀은 태초 부터 계셨던 영원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 주님을 설명하시는데요 창조주로 소개 합니다. 세상 전에 계셨고, 세상을 창조 하신 그분을 우리는 붙잡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안에 모든것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분안에 제일 중요한 것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절입니다.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안에 생명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인들에게 있어서의 소망은 이 세상의 평화와 안식과 행복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한걸음더 깊이 들어가 생명에 있습니다. 영생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없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변할 것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절대 변화지 않고 우리를 살리는 창조주 되신 삼위 하나님,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우리 주님을 우리의 유일한 소망으로 붙잡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가까?
그런데 우리는 때로는 예수님이 소망이 아닌, 다른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가는 삶의 모습들이 종종 보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 뿐임을 선포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주님뿐이라는것을 우리는 어떻게 나타낼수 있을까요?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주안에 있음을 분명히 선포 합니다. 우리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셨고, 지금은 이땅에 빛으로 오셨음을 말합니다.
둘째, 우리는 진리를 소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땅에서 살아 갑니다. 이 말은 이 땅의 소망을 두고 살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유 해야 하고, 자녀들도 다 잘되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다보면 처절하게 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의 소망은 하나가 이뤄 지면 끝이 아니라, 다른것이 나타납니다. 또 다른것을 이뤄여 합니다.우리의 소망은 이땅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는 변화지 않습니다. 진리는 그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것이 진리입니다. 진리를 선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6절입니다. 요한입니다.세례 요한 이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 합니다. 9절에 보시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진리는 무엇인가?참빛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진리이고, 예수님이 이땅에 육신으로 오셨음이 진리 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진리를 어떻게 합니까? 거부 합니다. 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세상이 우리 주님을 알지 못합니다. 경험했고, 말씀을 들었음에도 알지 못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에게 소망은 진리가 아닌 전통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자녀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 요 8:41–43).
그들의 주장에 우리 주님은 아니다라고 외면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의 진리 되심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럼 누가 진리를 소유한 자들인가? 본문 13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건 우리 인지적으로 아는 것과 지적 동의를 넘어 친밀함에 과 순종 이 포함됩니다.
이진리는 한걸음 더 나가서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말씀위에 서고 말씀 앞에 서며, 말씀의 인도 하심을 받으며 걸어 가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말씀을 붙잡고 살아 가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 진리 되신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은 진짜입니까? 워낙 가짜가 많은 세상입니다. 어떤게 진짜인지 알기도 어렵습니다. 어떤때는 만든 사람들도 자신의 것인지 헷갈려 하는 세상에 살아 갑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헷갈려 하지 않으십니다. 진짜 진리를 소유 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믿는다는 말뿐이 아니라, 우리의 말과 행동에 순종이 담겨져 있기를 바랍니다. 이럴때 우리는 내 자신이 아닌, 우리 주님을 들어내는 그리스도의 소망을 지닌 자로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영광을 소망으로 품고 살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요 1:14 절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거하시다는 표현은 “에스케노센” 이라는 단어르 본역한 것인데, 문자적으로 보자면 ‘창막을 치다’ 입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기 25:8-9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할 장막 건축 할 것을 명령하셨고,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있는 성막에 임할때를 암시 하게 합니다.
가운데 거하시면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영광입니다. 이 영광도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 하시는것을 암시 합니다. 출애굽기 40:34-35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그영광중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이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중 요한복음에서만 두번 등장하는데요 이 표현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 34:6-7
출애굽기 34:6–7 (NKRV)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지나시며 모세에게 선포 되었던 것이 우리에게 볼수 있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에 사용된 헤세드를 요한복음에서 은혜라는 단어로 사용한든데 세번 모두 14,16,17절에 사용되었습니다. 은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아 갑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바라보고 살아 가지 않습니다. 빛되신 주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누리며 살아 가는 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며 살아 가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