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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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성령안에서 봉사한다!(예배한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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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
빌립보서 3장 1절~9절
교회를 어지럽히던 사람들과 세력은 시대를 막론하고 늘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없던 소문을 만들어내고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등등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말많고 복잡한 공동체중에 하나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어떡하다보니 사회고발프로그램인 PD수첩이나 추적60분에 교회가 단골로 등장하더라구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건강한 교회에서 건강한 훈련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깊은 감사를 올려드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그러나 이것에 자족하지 않고 늘 깨어 있어야 해요!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말씀과 기도로 붙들려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복된 교회가 되는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초대교회 당시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잘못된 교훈과 가르침을 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라는 것은 참 골치아픈 일이죠! 다름 아닌 그들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행위에 의해서 구원받는 다는 것은 율법주의 인 것이죠!(율법은 괜찮지만 율법주의로 가면 문제가 생기죠)
이런 사실을 접한 사도바울은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그들에 대해서 독설에 가까운 말을 퍼붓습니다.
다함께 2절~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잘못된 교훈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가리켜 사도바울은 개다! 행악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개라는 것은 저급한 욕설이잖아요! 소싯적 껌좀씹던 시절 하던 욕아니신가요? 그때 당시에도 개라는 것이 유대인들에게는 혐오스럽고 불결한 짐승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를 들먹이면서 욕을 할 때에는 보통 믿음의 공동체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향하여 “”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요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이 아니라 교회내에서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을 향해서 독설을 퍼붓고 있습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에서 ‘몸을 상해하는 일’이라는 것은 개역한글 성경을 보면 손할례당이라고 번역되었는데요! 개역개정으로 성경이 바뀌면서 사라진 단어중에 하나입니다. 손할례당은 할례의 참된 의미보다는 할례 그 자체를 자랑거리로 삼았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들은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했던 것이죠!
여러분! 할례가 무엇인가요? 그 단어의 의미는 ‘베어낸 것, 잘라낸 것, 절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할례란 남성의 생식기의 포피를 잘라내는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히 구별되었음을 보여주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할례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할례를 구원의 조건이라고 가르쳤다라는 거에요! 사도바울은 거기에 큰 잘못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할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했던 것이죠!
여러분! 진정한 할례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은 진정한 할례는 육체가 아닌 마음에 행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함께 로마서 2:28~29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할례를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할례인 것이죠! 그렇다면 질문하죠! 마음에 할례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마음에 할례라는 것은 표면적인 형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내 인격과 삶이 새롭게 변화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마음에 할례입니다. 옆 사람에게 권면합니다. 마음에 할례를 하자!
이러다보니 형식적으로 육체의 할례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사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격과 삶이 새롭게 변화된 자의 삶이 무엇인지 다음에서 사도바울은 설명합니다.
다함께 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성령안에서 봉사한다!
이 말은 번역을 보면 “성령안에서 예배한다”에 더 가깝습니다.
함께 말해보겠습니다. “성령안에서 예배한다”
여러분!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은 성령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로 인해서 변화받은 사람은 예배의 모습을 보면 알아볼 수 있어요! 예배자로서 하나님께 진실한 마음을 담아 예배하는지 보면 이 사람이 변화된 사람인지 아니면 여전히 세상에 양다리 걸치는 사람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맥락에서 여러분의 옆사람은 변화된 사람인가요? 제가 보니 우리교회에는 3사람정도 빼고 진실한 예배자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성령안에서 예배하기 위해서 방해받는 모든 것을 제거하셔야 합니다. 제가 예배중에 한번 돌때가 있어요! 그러면요! 예배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핸드폰! 졸음! 잡담! 초점없이 딴 생각!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며 한마디의 말씀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떤 사람이 성령안에서 예배하는 사람일까요?
사마리아여인과의 대화에서 우리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저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진실한 예배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성령안에서 뜨겁게 예배하시길 원합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에 할례를 받은자의 모습입니다. 옆사람에게 권면합니다.
“성령안에서 예배합시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예수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사는 사람은 그 말과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몇마디 나눠보면 이 사람안에 진짜 예수님이 계시는지 아니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로 인해 변화된 사람은 그 입술에서 세상의 자랑만 늘어놓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안에서 잘된 것~ 예수 안에 있는 그 자체를 자랑하는 것이죠!
사도바울의 서신을 모두 읽어보신 분들은 사도바울이 “자랑한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그는 “자랑한다”라는 말을 잘 사용하는데요~ 통계를 보면 그는 그의 서신에서 30회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내용을 모른 채 그가 자랑을 많이 한다고 하니깐 그가 우쭐해하는 건 아닌지? 오해할 수 있지만 내용을 알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바울은 무엇을 자랑하는 건가요? 무엇을 그토록 자랑하고 싶어하고 성도들에게 그것을 자랑하라고 말하고 있나요?
“예수 그리스도”인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있다면 이런 것이죠!
그는 평생에 살면서 예수만 자랑하다가 살아간 사람입니다.
다함께 5절~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대단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은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이죠! 이 것은 자신이 나중에서야 유대교로 개종한 후에 할례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순수한 유대인 혈통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족속이고! 베냐민 지파이며~히브리인중의 히브리인이요 그리고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다~ 6절에서 마무리를 하죠~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나는 이스라엘 안에서 흠이 없는 자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죠~ 그때당시 3대 랍비중(에스라,힐렐,가말리엘) 한 사람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습니다. 학벌도 대단했어요~ 또한 로마시민권까지 가진사람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사도바울의 배경을 무시할 수 없었죠!
그런 배경을 가진 바울이 자랑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요? 자신의 스펙이나 배경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7~8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스펙과 배경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할례를 받은 성숙한 사람은 세상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헛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한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오히려 신앙을 저버리는 사람이 더러 있어요! 가방끈이 길어지면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에서 얼굴 보기 힘든 사람들이 있어요~ 소위 세상에서 잘나가면 세상에 푹빠져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다는 거에요! 여러분! 마음에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거에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여러분! 사도바울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진실된 믿음의 고백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드립니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육체라는 것은 헬라어로 “사르크스” 통상적으로 영의 반대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요~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말해, 내 능력과 업적! 내 수고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죠!
먼저는 우리가 육신에 할례를 행하였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것이죠! 여러분!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리곤 그들이 말합니다.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왔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돌로 치는게 맞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을 궁지로 몰기위한 질문이었죠! 돌로 치라고 말하면 사람들을 선동한 게 될 것이고 돌로 치지 말라고 말하면 율법을 부정하는 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진퇴양난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죄 없는자가 돌로치라”고 말씀하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죠!
이때 예수를 죽이려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둘 다 그 자리를 떠나가기 시작했어요! 결국은 그곳에 예수님만 남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혹시 생각해보셨나요? 정말 그곳엔 더러운 죄인들만 모였을까요? 선한 양심을 가진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일까요? 모두가 양심의 가책을 느낄만한 죄를 계속해서 짓고 있었던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요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어떤 의로운 행위와 선한 행위를 했다할지라도 하나님앞에선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거에요! 온 우주의 하나님앞에서 그 일들은 차마 입밖으로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일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으로 하는 모든 행위를 내세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곤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우리에겐 그것밖에 없습니다. 은
9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결국 믿음밖에 없다! 이것이야 말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의를 얻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죄인 된자가 의인이 됩니다.
누구의 노력이 아닌 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본문에서는 마음에 할례를 받은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격과 삶이 새롭게 변화된 자의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성령안에서 봉사한다!(예배한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한다!
셋째,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저와 여러분 가운데 이러한 결단을 통해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귀한 복이 있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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