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하시는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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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네 반갑습니다. 9월 첫날 수요 기도회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풍성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평안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아직 4단계를 유지하고 있어 우리의 생활이 불편하고 어려운 중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도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묵상의 삶을 살고 함께 모여 예배하며 서로 교제하는 삶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방역 지침을 잘 준수하고 지키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 나누는 성도의 삶을 힘쓰는 데 더욱 마음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묵상과 교제, 예배와 섬김의 삶에 힘쓰셔서 올 해 가을 믿음의 풍성한 은혜 중에 거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S2. 본문의 주제
오늘은 시편 11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는 여호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시편 11편은 다윗의 시로 표제가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시편 11편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는 말은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부른 노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 시가 한 개인의 노래로 시작이 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공동체 전체의 고백과 찬양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는 교회 성도들이 함께 예배 시에 부른 찬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11편은 어떤 내용의 노래를 공동체가 함께 부른 것일까요? 본문을 보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3절까지는 다윗 왕이 겪고 있는 깊은 절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7절까지는 이런 절망 속에서도 여호와가 감찰하시고 자신을 돌보고 계시며 악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절망과 좌절의 형편 중에 있는 나를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여호와 구원의 주의 손길을 체험한 다윗 왕은 놀라운 소망과 기대를 가진 새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편은 이러한 개인적인 영적 체험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체험으로 승화되어 찬송으로 드려지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종종 절망과 좌절의 시간들이 찾아옵니다. 시편 11편은 다윗이 어떤 고난으로 인해 괴로움 속에 있었는지 분명한 역사적 배경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이때가 다윗 왕이 사울에게 쫓기며 다니던 때라고 전제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다윗이 들은 원수들의 조롱과 악의에 찬 도전들을 고려한 것입니다. 먼저 1절을 봅시다.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에게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찌함인가
다윗은 자신은 여호와께 피했는데 주변의 사람들은 그 산에서부터 도망하라고 말한다고 불평을 합니다. 여기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은 원어적으로 보면 그 산에서부터 도망하라는 뜻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여호와께 피하였더니 그의 주변의 사람들이 새와 같이 그 산에서부터 도망가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알고 이스라엘 땅에서 안전을 찾고 있는 다윗에게 사람들은 그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라는 절망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심지어 그 땅은 악인들이 숨어 화살을 겨누며 의로운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땅입니다. 2절을 볼까요?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화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원수는 마음이 바른 자를 향해 어두운 데서 활을 당기며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고 활을 시위에 당기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다윗에게 말합니다. 네가 의지한다는 여호와의 땅을 떠나 너를 안전하게 해줄 이방을 붙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형편을 보면서 다윗은 울부짖습니다. 3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이 말씀은 ‘터가 무너졌으니, 의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땅으로 피하여 다니는데, 악인들이 활을 겨루며 의로운 자를 죽이려고 하니 가장 믿어왔던 기초가 흔들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기초 혹은 터 위에서 의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온 땅의 기초가 무너지는 환경 속에서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사실 우리는 이런 절망의 상황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원망하거나 소리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뜻을 바라보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원수가 공격하는 세상을 허락하시는가 말입니다. 성도인 우리들도 지속적으로 세상이 주는 어려움 속에서 이러한 비통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고 말씀 가운데 살고자 몸부림치는 데, 이 악한 세상이 던지는 어둠 속의 활을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고난과 고통 속에 자기 자녀를 내버려 두십니까?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피난처 되신 여호와를 떠나라고 말하는 터가 무너진 땅에서 주의 의로운 백성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우리는 부르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여호와는 이러한 다윗의 절망을 모른 체 하고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는 다윗의 간절한, 절망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의 영의 눈을 열어 여호와의 성전, 특별히 하늘 위에 있는 보좌를 보여 주시고, 주의 눈이 인생을 바라보고 감찰하시는 은혜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 4절의 말씀을 봅시다.
4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우리 하나님은 성도들이 악인의 손과 그 폭력에 고통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여호와께서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신다는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5절을 봅시다.
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감찰하신다는 말은 ‘살펴본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을 살펴보시고, 악인을 미워하시는 여호와는 의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선과 악을 가름하는 기준이 되셔서 악인을 물리치시고 의인을 구원하십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으로 오셨기에 예수님은 온전한 구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죄인과 그 악을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되십니다. 다윗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그 성전에 계신 주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여호와는 악인을 심판하시고 악을 무너뜨리시는 참된 심판의 주가 되시는 줄 깨닫게 됩니다. 6절을 봅시다.
6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그들의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여호와는 불꽃같은 눈으로 악인을 쏘아 보시고는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을 그들 위에 비처럼 쏟아부으셔서 세상의 악이 결코 승리하지 못하도록 역사의 자리에 간섭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으로 오셔서 심판 받을 자리에 있는 모든 악인들을 철저히 불로써 심판하시는 참 하나님이 되십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J3. 사람이신 예수님
또한, 우리의 여호와가 되시는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성도의 모든 불의를 의로 변화시켜 주시는 놀라운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인인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전가시켜 주심으로 택함받은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칭의를 얻게 하시고, 성화를 통해 칭의를 성취하는 의로운 주의 자녀들에게 그 얼굴을 밝히 보여 주십니다. 7절을 봅시다.
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의로우신 여호와 앞에서 칭의의 은혜를 얻은 성도야말로 성령님 안에서 정직하고 온전한 삶을 통해 여호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참된 의의 백성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W1. 예수 그리스도는 절망의 삶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W1. 예수 그리스도는 절망의 삶을 소망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에는 무수한 도전들과 그로 인한 영적인 무기력이 자주 찾아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성도는 하늘 보좌를 발견하고, 거룩한 성전에 앉으신 여호와를 만나게 되며 그로 인해 절망과 좌절이 소망과 기대로 변화되는 놀라운 새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두렵고 낙심케 하는 일들로 크고 세찬 힘으로 우리를 도전한다고 해도 주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저 영원의 나라, 저 소망의 나라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고 그 감찰하시는 눈으로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W2. 참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W2. 참된 소망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고 알게 된 성도들에게는 믿음의 놀라운 열매인 소망이 결실하게 됩니다.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터가 무너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좌절의 시간을 보낸 다윗에게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가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에서 감찰하시는 그리스도의 눈빛을 발견할 때 그는 소망을 붙잡게 되었고,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 2절을 봅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여기 히브리서 11장 1절 전반에 나오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된 말씀은 다르게 읽으면 ‘소망은 믿음의 특성’이라는 말이 됩니다. 곧 참 믿음의 사람은 소망을 열매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절망 속에서 하늘에 계신 오실 메시야를 만난 다윗에게는 믿음의 소망이 넘치게 되었고, 그는 소망 가운데서 의로우신 여호와 만나기를 기대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참 소망을 주십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에게 참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오직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보내심으로 우리를 새로운 소망의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성도를 절망과 좌절로부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는 악인을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으로 심판하시는 심판의 주가 되십니다. 이런 까닭에 터가 무너지고 악인이 득세하는 세상을 사는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의 심판주 되심을 통해 소망을 누리고 새로운 꿈을 얻게 됩니다.
T1. 누구보다 다윗 자신이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변화했습니다.
T1. 누구보다 다윗 자신이 소망을 노래하는 사람으로 변화했습니다.
시편 11편은 한 나라의 절대 권력인 왕 사울을 피해 들판을 돌아다니던 다윗의 절망에서 시작합니다. 그는 여호와께 피하려고 그 땅에서 하나님을 기대했으나 그의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그 땅을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터가 무너진 세상에서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그와 그의 주변의 모든 이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 패배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고, 하늘 성전에서 그 영광의 보좌 앉으신 여호와를 만나게 해주셨고, 무엇보다 그 하나님의 눈이 의로운 자기 백성을 지키시며, 악인과 폭력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재앙을 쏟으시는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그 절망과 고뇌의 자리에서 일어서서 새로운 소망의 메시야를 기대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T2. 오늘날 세상은 심판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고 하며 삽니다.
T2. 오늘날 세상은 심판주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고 하며 삽니다.
그 결과 세상은 더이상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 악에 심판의 불을 내리는 여호와를 만나지 못합니다. 세상은 오히려 자신이 심판주가 되어 여호와가 아닌 자기 손에 피를 묻히며 악에 악을 더하고 살아갑니다. 문명은 발전하고 삶에 부어진 문명의 이기들은 분명 풍성하게 우리 주변을 넘치게 채우고 있으나 세상은 더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이기는 것 같은데 모두가 지는 자이고, 승자가 독식하는 것 같으나 모두가 다 실패하는 세상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심판주 안에서 소망을 가집니다.
T3. 그러나 성도는 심판주 안에서 소망을 가집니다.
그리스도는 심판주로 오셔서 성도인 우리들에게 소망의 날을 주십니다. 어두운 자리에서 화살을 당기며 의인을 죽이려고 하는 모든 악은 하늘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의 심판의 불과 유황에 다 태워져 버려질 것입니다. 믿는 자의 영원한 구원자로 오시는 그리스도는 부릅뜬 눈으로 자기 백성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시며 재앙을 부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심판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누리게 됩니다. 참 믿음과 바른 삶을 향해 애쓰고 힘쓰는 자들은 그 정직한 삶으로 인해 의로우신 여화의 얼굴을 볼 것이며 영원한 천국에서 소망의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소망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소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악이 이기고 선이 지는 것 같은 상황들에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이렇게 교훈합니다. 13절을 봅시다.
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그렇지요. 성도는 선을 행하는 일에 낙심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알고 피한 우리를 향해 그 산을 떠나라고 말하는 모든 음성들에 우리는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는 악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심을 기억하고 내 삶에 영원한 소망과 안식을 주실 주님을 사랑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긴 코로나의 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계속해서 교회를 비난하고 성도의 삶을 압박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우리의 삶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의를 신뢰하며 세상에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의 삶에는 코로나가 아니라도 끝까지 거머리처럼 붙어서 우리를 고통 속에 몰아가는 악인들과 그로 인한 악한 상황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두운 숲에서 화살을 꺼내어 성도를 향해 겨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들도 세상의 터가 무너진 것 같은 땅을 바라보며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절망의 늪에 허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앉으시고 성전인 그리스도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성령님 안에서 우리를 지금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를 향한 그 모든 악인들을 향해 불과 유향과 태우는 바람을 준비하시고 그들의 머리 위에 그 심판의 재앙들을 비오듯 쏟아부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하늘의 여호와의 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의 날을 소망하며 인내하고 믿음 가운데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 한 주간의 남은 시간들도 소망의 주님을 마음에 깊이 붙들고 믿음 가운데 승리하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