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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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마태복음 25:1-13절
본문:마태복음 25:1-13절
제목: 깨어 있으라
사랑하는 일심비젼교회 성도 여러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참 어려운 시기를 살아 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주간도 열심히 사신다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세상이 참 빨리 변하는거 같습니다. 저보다는 성도님들이 더 잘 느끼실텐데요, 시대가 변했습니다. 저희 때는 생각도 못했던 인터넷 수업을 하고, 교회도 이전에는 고3때도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했었는데 교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변화가 늘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늘 좋은 것만 있는것도 아닙니다.
어르신들이 이런 말씀들을 하시는데요, 말세다 라는 말입니다. 혹시 들어 보셨나요? 요즘은 많이 하시지는 않는데, 말세라는 말이 부정적 의미입니다.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것을 일컫습니다.
성도 여러분, 동의 하십니까? 지금말세입니까? 말세라는 표현이 어감이 너무 강해서 신앙적 표현을 하자면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땅은 마지막이 있는 땅입니다.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세의 세상을 전부로 삼고 살아 가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말씀해 주고 있는데요, 우리 소망은 천국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기억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우리는 내일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잠언 27: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우리는 끝이 있는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 가는 사람들이 아닌, 영원한 소망을 향해 살아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세에 제일 중요한것은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깨어 있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인데요, 우리 주님께서 1절에 천국에 대해 알려 주십니다. 열처녀 비유를 들어 천국을 설명하십니다.
천국에 간다는 말은 “영생에 들어가는 것”(막 9:43)이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마 25:21)을 말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 5:2).
열처녀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뚜렷 했습니다. 신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적이고 이유 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신랑이 오기 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신랑”이라고 지칭 하셨습니다.(사 54:4-5;62:5) 그렇다면 신부는 그리스도인들, 즉 주님의 몸인 교회입니다. 그리고 혼인예식은 예수님과 교회와의 혼인으로 이해 하시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깨어 있어야 할 이유는 하늘의 소망에 있기에 그렇습니다. 베드로 후서 3: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아야 한다(벧후 3:13).
저와 여러분,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가끔식을 보면 그렇지 못한 분들이 있습니다. 천국이 아닌 세상의 것에 눈이 띄여 있습니다. 학점과 물질과 집과 주식등 세상의 것에 깨어있는 사람들이 있씁니다.
이분들의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겁니다. 세상의 것에 눈이 밝은 사람은 죄송하지만,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출수 없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시고. 깨어 있어야 할 것을 분명히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직접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서 죽으시고 부활 하시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앞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땅이 전부라면 굳이 깨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손에 있고 품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굳이 깨어 있을 필요도 없고,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천국을 품고 살아 가는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땅에서 나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결코 잠을 잘수 없습니다.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어떻게 깨어 있는가? 깨어 있어야 할 이유와 목적이 생겼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열처녀를 두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를 슬기로운 자로 한부류를 미련한 자로 규정을 지어 놓습니다.
열처녀는 동일하게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일한시간에 늦지 도 않고 동일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중에 열처녀 모두 5절에 보시면졸며 잠을 청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왜 슬기로움과 미련함으로 구분 지어 놓은 것일까요?
본문에서의 열 처녀의 비유는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 문화와 같습니다. 본문 1절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에서의 등은 헬라어 람파다스 인데요, 일종의 햇불을 말합니다. 당시 햇불은 오래가지 못해서 약 15분 마다 기름을 보충해 줘야 했습니다.
4절에 보시면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졌갔다라고 기록합니다.
반면에 미련한자들은 3절에 기름을 준비 하지 않았습니다.
왜 나뉘게 되었습니까? 기름을 준비 하고 못하게 따른 것입니다.
그 결과 신랑이 왔을때 미련한 자들은 기름이 없어서 다시 사러 가게 됩니다. 그 결과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깨어 있는다고 해서 깨어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학창시절 친구중의 한 명은 수업도 열심히 듣고,떠뜰지도 않는 모범생 처럼 보이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면 점수는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수업시간에 앉아 있는거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그냥 앉아 있습니다. 책 펴놓고 뭘까요? 몸은 학교에 있고, 책상위에 있지만 생각과 마음은 소위 말해 콩밭에 있었습니다.
미련한자들은 준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찌 않지만, 준비 할수 있었음에도 준비를 안 한것입니다. 자신들이 생각할때 이정도면 되었다라고 생각 했을수 있습니다. 아니면 8절 말씀에 기록한것 처럼 옆에 있는 사람들ㅇ게 나눠 달라고 하지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준비가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다시 이땅에 오십니다. 그런데 언제 오십니까? 5절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늦으실수 있씁니다.
그럼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럼 기름을 준비 할가요? 우리에게 있어서의 기름은 무엇일까요?
긴장입니다. 너무 심각한 긴장은 그렇지만. 적당한 긴장은 필요 합니다. 믿음의 긴장이 필요 합니다. 이 긴장을 가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 만은 제가 묵상하기로는 누가복음 21:36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어떻게 깨어 있습니까? 항상 기도함으로 깨어 있습니다. 긴장함으로 깨어 있을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ㅅ어도 여러분, 우리 조금은 신앙의 긴장감을 가지십다. 그럼으로 조금은더 기도 합시다. 기도 함으로 우리는 깨어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21년 표어가 1시간 기도 하기인데요 잘 지켜 주셔서 깨어 있는저 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걸음 더 나가서 우리는 무엇에 깨어 있어야 하는가? 슬기로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te 프로에도 슬리고운 무슨 생할이라고 있던데요, 그 프로를 빌려서 여러분 슬기로운 믿음 생할 하시기 바랍니다.
슬기로운 믿음 생활이 무엇입니까? 미련한자들의 모습과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미련한 자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는데여 특히 우리 중고등부 아이들이 필사하고 있는 잠언에 많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 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절입니다.
입니다.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습니다. 미련한 자는 누군가를 살리고 힘을 주는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해하려 합니다. 똫나 더 나가서 자신까지도 잔치에 들어 가지 못합니다.
그문 앞에서 주여 주여를 외쳐도 12절에 하나님께서 알지 못한 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슬기로운 믿음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흔들림 없이 예배와 기도와 말씀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내 판단에 이정도면 되겠직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입니까? 슬기로운 분들인줄 믿습니다. 그러나 , 혹 우리 주변에 미련한 자들이 있다면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믿음과 신앙을 힘들게 할 정도의 말과 행동을 한다면 멀리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