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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3:14-21
이사야 43:14-21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제목: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제목: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서론 –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서론 –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어떤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니
“나는 재벌 2세가 희망인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 하세요”
라고 하더랍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입니까?
자신은 가만히 있고, 아버지가 노력해서 ‘재벌’이 되면, 자연스럽게 자기는 ‘재벌 2세’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여나 우리 지묘교회 성도님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이 제 희망인데, 하나님이 노력을 안 하세요”
라고 말을 한다면, 그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민망한 모습일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십니까?
하나님은 기대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코로나가 언제 끝날 지 모릅니다.
계속 이어지는 코로나의 상황 앞에서 새로운 소망과 희망 그리고 기대를 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빨리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냥 되는 대로 살자’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것이 더 편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예배하고 섬기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전능하시고 인류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갈망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동생에게 이런 편지의 내용을 보냅니다.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난관에 맞서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간단히 말해, 그는 저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중에서)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암울하고 녹록치 않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1. 암울한 이스라엘의 상황
1. 암울한 이스라엘의 상황
오늘 읽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있는 이스라엘의 처한 상황은 지금의 우리 상황보다 더욱 암울했습니다.
앗수르 제국이 이미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이어서 무서운 갈대아 사람들, 바로 바벨론 제국이 일어나서 남 유다도 멸망시킬 예정입니다.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인데,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이사야 43:14-15을 읽어 봅시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지금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분이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구속자요, 창조자요, 왕이신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27:1을 보면, 다윗은 당당하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 27:1)
로마서 8:31을 보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바벨론 제국이 그 당시 어마어마한 기세를 가지고 달려들 때,
천지가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하것이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세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전세계가 벌벌 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할 것이다!”
제가 처음 지묘교회에서 설교를 했을 때,
‘믿음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믿음은 현실을 바라 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 그 너머,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여전히 힘들고 어렵고, 어떤 소망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막막한 현실 너머에서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2.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2.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함께 이사야 43:18-19을 읽어 봅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암울한 상황 속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18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든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때로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 과거의 시간들을 흐뭇하게 돌아보며 추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과거에 매여서 오늘을 허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왕년에 내가 어떠했는데… , 나 때에는 어떠했는데…” 라고 하면서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지묘교회가 어떠했는데, 내가 젊은 때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데…” 하면서
과거에 매여서 지금 오늘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흘러간 과거 때문에 과거에 매여서 오늘을 허비하면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이미 행하셨던 하나님입니다.
16절을 보면,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신’ 분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사 43:16)
출애굽기 14:21을 보면 홍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다 가운데 길을 내셨던 하나님이십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 14:21)
또한 여호수아 3:15-16을 보면,
강물이 둑을 넘치려고 하는 요단강을 마르게 하시고 지름길을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수 3:15-16)
바다 가운에 길을 내시고,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신 하나님께서(16절)
지금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9절).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
위닝 멘탈리티(Winning Mentality)
스포츠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로 ‘위닝 멘탈리티’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 말을 좀 쉽게 설명하면, “이겨 본 사람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승리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정말 힘든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닝 멘탈리티입니다.
우리가 볼 때, 홍해의 사건이나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그 일을 행하셨던 하나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해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도무지 불가능한 일을 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그런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2:9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준비해 두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새 일’은 어떤 것입니까?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4:5을 보십시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주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무엇이 ‘새 일’입니까?
예상이 가능한 일은 새 일이 아닙니다.
예상할 수 없는 일!
‘광야에 길을 내는 일, 사막에 강을 내는 일’
이 일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현실 속에서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도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갈릴리 바다로 가서 다시 물고기를 잡던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이제는 모든 것이 끝이 났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모두가 끝났다고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일’입니다.
결론
결론
사랑하는 지묘교회 온 가족 여러분!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마지막으로 세계2차 대전때, 영국의 처칠 수상이
영국의 국민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하여 만들었던 포스터입니다.
이 포스터의 의미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하라”라는 뜻입니다.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하라”라는 뜻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포스터의 글귀가 참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새로운 일로 말미암아
이사야 43:21 말씀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송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함께 결단의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