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5중고등]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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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4:23-24
제목 :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서론]

오늘부터 한 달동안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예배’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예배가 무엇이고, 예배의 대상은 누구시며, 우리는 예배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 볼 것이다. 말씀에 비추어 지난 날의 우리 예배들을 살펴보고, 또한 이 기회를 통해 바른 예배가 무엇인지를 배우며,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로 올려드릴 수 있는 양문교회 중고등부 친구들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여러분들이 자주 들어봤을 법한 성경 본문일 것이다. 어쩌면 교회예배에 충실히 참여했던 친구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이 많이 익숙할 거라고 생각한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에서 한 여인을 일부로 찾아가셨고, 그 여인에게 주님은 ‘예배’에 대해 아주 중요한 교훈을 전해주신다.
오늘은 특별히 이 본문 말씀 중에서 24절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라는 부분만을 놓고 말씀을 전할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들 중에서 그분께서 ‘영’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신다. 왜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예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영이신 하나님]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다. 딤전6:16 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 시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존재는 복잡하지 않다. 왜인가? 그분이 영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처럼 몸을 입고 계시지 않는다. 어떤 특정한 물질로 이루어진 분이 아니시다.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번 더 강조한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몸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로 구성된 분이 아니시므로 볼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러한 속성은 우리의 예배 행위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은 어떤 물질로 구성된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있어서도 어떤 물질이나 조각이나 형상을 가리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우리 처럼 몸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니시기에 어떤 마네킹을 갖다 놓고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혹은 힘이 쎈 송아지의 형상을 가져다 놓고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혹은 독이 강력한 뱀을 갖다 놓고는 이를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다. 하나님은 몸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수련회를 통해 살펴보았지만, 이미 죄로 부패한 우리 인간의 본성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마저 부패시켰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나무나 돌에 새기기 시작하고, 하나님을 지렁이나 온갖 벌레의 형상으로 새겨서 그 형상들을 숭배하기 시작한다. 사도 바울은 롬1:23 에서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라고 말씀함으로서, 죄인들의 타락한 본성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죄로 부패한 인간은 그 종교심까지도 부패하여서 온 우주만물의 유일한 신인 하나님 섬기길 선택하지 않고, 자신들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낸 거짓 우상들, 거짓 신들을 섬긴다. 그래서 영흠하다고 알려진 나무나 바위에 엎드려 절을 하고, 또 해괴하게 생긴 불상들 앞에 절하며 경배하며, 있지도 않은 조상신들을 섬겨야 한다며 제사를 드리지 않던가. 또한 굳이 이런 것들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섬기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가 편할대로,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아주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 하나님을 몸이 있는 분처럼 묘사하는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사59:1 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라고 말씀함으로서 하나님께 우리처럼 손이나 귀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또한 시8:3 처럼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 손가락이 있으신 것처럼 묘사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여러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눈도 있고, 손도 있으며, 팔도 있고 귀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들은 실제로 하나님께 몸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능력들을 더욱 부각시키는 일종의 표현법이다.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설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자기 백성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고, 함께 하시며, 보호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일까? 이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영원하신 하나님]

첫째로, 영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영원하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딤전6:16 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시90:2 에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말씀하시듯이, 영이신 하나님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셔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사시며, 영원 전부터 영원토록 모든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 그 자체가 되신다.
여러분, 어느날 여러분들이 정말 갖고 싶어하던 옷을 부모님이 사주셨다고 생각해보라. 너무 좋아하고 아끼며 입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며 옷이 점점 어떻게 될까? 낡는다. 구멍난 양말처럼 옷도 점점 해진다. 옷만 그러할까? 신발도 닳는다. 수련회때 볼펜을 선물로 나눠주었지만, 언젠가는 그 볼펜도 다 쓰게 될 것이다. 우리 몸도 그렇다. 늙어간다. 그렇게 늙고 약해지다 죽는다.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물질로 구성된 것은 결국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물질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고, 공간의 제한도 받지 않으시는 무한하신 분이시며, 보이는 세계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포함한 온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시다. 이러한 하나님께 어떠한 제약이 있겠는가? 그 무엇이 감히 하나님을 제한하겠는가. 영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변하지 않으시는, 언제나 한결같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

[신비로우신 하나님]

둘째로 영이신 하나님은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숨어계신다는 표현을 오해하지 않아야 하겠다. 일부로 마주치기 싫어서 숨어있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자신을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거듭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다. 흙으로 지어진 우리는 일평생 물질로 구성된 세상 가운데에서 살아간다. 그러다보니 보이는 세계에는 익숙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지하다. 하물며 이 모든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유한하여 언젠가는 죽는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 다 알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알려주시기 전에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다. 우리는 유한하지만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알려주시는 부분에 대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주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경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어떠한 일들을 베푸셨는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알기 원하신다면 성경을 읽으라. 마침 내일부터 양문교회 전교인이 구약성경통독을 시작한다. 사무실 책상에 신청서에 이름 쓸 수 있게 되어 있다. 함께 이 좋은 기회를 잘 활용해서 더욱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란다.

[감찰하시는 하나님]

여러분, ‘감찰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감독하여 살피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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