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개선행렬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5 views
Notes
Transcript
수요예배 설교 / 2021.08.25
본문 : 시편 68편 19-35절
제목 : 하나님의 개선행렬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우리의 구원자되시는 예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의 개선행렬에 참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시편 68편을 반복해서 읽어보면 얼핏 내용이 머리로 그려지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각 구절들의 내용은 알겠는데, 구절들이 하나의 전체 그림으로 연상되어지지 않고, 꿰어지지 않는 것이죠.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숨겨져 있는 키워드를 찾아야 하겠습니다.
시편 68편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일어나시니 원수들은 흩어지며 주를 미워하는 자들은 주 앞에서 도망하리이다.”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언제 자리에서 일어나나요?
무엇을 하기 위해서, 설거지를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어납니다. 또는 어디로 가기 위해서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일어나신다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도 목적이 있고, 하나님이 향하시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과 하난미의 목적지는 무엇인지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 10장 35절을 찾아보겠습니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이 민수기 10장 35절과 시편 68편 1절을 비교해보면 어떠신가요? 거의 일치합니다. ‘여호와’에서 ‘하나님’으로만 바뀌었을 뿐, 뒤의 내용은 동일하고, 또 민수기에서는 누가 언제 이 말을 사용했는가를 알려줍니다.
‘궤가 떠날 때, 모세가 말하였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은 언약궤를 만들라 하시고, 언약궤와 함께 이동하십니다. 언약궤와 하나님께서 떠날 때, 모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즉, 시편 68편의 숨겨진 키워드는 언약궤이며, 다윗은 모세가 고백했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언약궤와 함께 일어나셔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 일어나신 하나님께서는 7절을 보면,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시며 광야에서 행진하셨고, 24절을 보면, 광야를 행진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시온산 성소로 행차하시며, 35절에서는 시온 성소에 위치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1, 2절의 가사가 있는 노래처럼
과거 시내산에서 내려와 광야에서 줄곧 부르던 언약궤 노래가
이제는 이스라엘의 시온산의 성소로 올라가는 노래로 연결되게 되었습니다.
이 시편이 가진 독특한 점은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의 승리의 행진이 ‘언약궤’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약궤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떻게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이끄셨고, 그들을 보존시키셨는지를 다윗은 기억하며, 이제 곧 성소에 도착하여 놓여질 언약궤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통치와 보호하심을 바라는 것이 이 시편입니다.
(1)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본문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19절입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오늘 표현되어지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왜 불안해하고 두려워할까요? 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할까요?
왜 우리에게는 쉼이 없으신가요?
휴일이 되면 몸은 쉬는 것 같지만, 머리는 계속 돌아가죠. 왜 우리는 이처럼 쉼이 없을까요?
내가 책임지려 하기 때문이고, 내가 다하려고 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고 버겁게 느껴지고, 두통 같은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점점 쌓여서 점점 지쳐가고, 교회조차도 어느새 무거운 짐이 되어서 우리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의 마음들이 내 안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거죠. 이처럼 두려움과 불안함, 쉼없음은 하나님께 짐을 맡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우리들의 어깨에는 이 세상이 주는 짐, 가정이 주는 짐, 내가 짊어진 짐이 갈수록 더해져가는 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내가 지려고 하기에 불안하고 쉴 수 없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요?
날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분이십니다.
또 7절에서 함께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함께 하시나요?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시며, 주의 백성 뒤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시며 광야를 행진하시는 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해가시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실 때가 있을 것이십니다.
내가 늘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변해야 할 것 같고, 또 내가 늘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애쓰고 수고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보다 항상 앞서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보고, 가정을 뒤돌아보고, 교회를 뒤돌아보았을때 어떤 고백을 할 수 밖에 없나요? ‘하나님께서 하셨구나. 하나님께서 다 하셨구나’라는 것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앞서가신다면, 누가 앞을 막아설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대적들도 도망하며, 심지어 땅이 진동하고 하늘은 굵은 빗줄기들을 쏟아낸다고 합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놀라운 특권은 이런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겨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우리의 짐을 맡겨두고 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못미덥고, 심지어 나 자신도 때로는 믿을 수 없어서 내 짐을 짊어매고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짐을 맏겨드릴 수 있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로 짐을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응답될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멍에를 벗겨가시고, 짐을 옮겨가실 때에 우리는 그 안에서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행진을 찬양하라
24절부터는 하나님께서 시온에 있는 주의 성소로 행차하시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한 가지 생각해보기를 원하는 것은
‘다윗은 왜 그토록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오는 것을 원했을까?’입니다.
언약궤에 무엇인가 신성한 영적인 기운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면 효험있는 부적과도 같이 지니고만 있어도 복을 받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언약궤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고, 단순한 복의 기원이 아닙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하나님의 영광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언약궤를 옮기는 일, 성 안으로 가져오는 일은 단순히 포장이사짐 센터를 불러서 패킹해서 오는 일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약궤에 매어계시고, 갇혀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언약궤에 속하여져서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언약궤를 통해 주권적으로 움직이시며, 주권적으로 행하시며,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더 잘 알 수 있을까요?
다윗이 이미 언약궤를 옮기는 일에 한 번 실패한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주권성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처음 언약궤를 옮기기를 원했을 때, 다윗은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과 수단들을 동원했습니다. 온갖 악기들과 연주자들, 각 가문 사람을 상징하는 장정 3만명을 동원했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의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여서 찬양하도록 하고, 소 수레에 싣어왔습니다. 그러나 다 아시다시피 그는 실패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인간적인 방법이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의지가 있다고해서, 다윗이 수단이 있다고 해서 끌려오시는 분이 아니시라 하나님은 주권자이시며, 자신의 의지와 방법으로 그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마침내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의 의지와 방법을 맞추었을 때, 하나님은 언약궤와 함께 다윗성으로 행하셨고, 하나님께서 언약궤와 함께 들어오시는 놀라운 장면, 개선행렬과도 같은 모습을 보면서 모든 이들이 감격하고 찬양하고 승리의 기쁨을 누렸던 것이 오늘의 시편의 고백입니다.
그 개선행렬을 다윗은 24-26절에서 고백합니다.
“하나님이여 그들이 주께서 행차하심을 보았으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 성소로 행차하는 것이라
소고 치는 처녀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자들은 앞서고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은 뒤따르나이다 이스라엘의 근원에서 나온 너희여 대회 중에 하나님 곧 주를 송축할지어다”
32-35절입니다.
“땅의 왕국들아 하나님께 노래하고 주께 찬송할지어다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내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너희는 하나님께 능력을 돌릴지어다 그의 위엄이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의 능력이 구름 속에 있도다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의 개선행렬의 찬양 가운데 온 열방이 무릎을 꿇고 엎드릴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자신의 거처를 정하셨고, 이스라엘의 성소에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내시며, 주의 백성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온 열방 가운데 독특한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일, 하나님의 존재를 노래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계실까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옴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 돌리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을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고 게십니다.
우리의 찬양과 예배는 승리의 행진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이미 승리하신 그 분의 뒤를 따르며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가요?
그래서 예배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에는 승리의 감격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변화됩니다.
우리의 좌절되었던 마음, 고난 속에서 상처받은 마음들이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승화되어집니다.
신약성경에도 이와 같은 개선행렬에 대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신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기게 한다’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흔히 우리가 말하잖아요.
‘주님 안에서 승리하십시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이야기하는데
여기서 승리는 무엇일까요?
쉽게 생각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게 되는 것이 승리일까요?
사업도 잘되고, 가족들도 건강하고, 모든 일들이 잘 되고,
항상 흥하게 되는 것이 내가 언제나 흥하게 되는 것이 주님 안에서의 승리일까요?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주시는 특별한 복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에서 승리하게 하신다라는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이기게 하신다’라는 표현을 원문의 의미를 잘 살려서 표현한 것이 새번역인대요.
새번역으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시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어디에서나 우리를 통하여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한다’라는 표현을 ‘언제나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참여시켜주신다’라고 표현합니다.
아마 바울은 편지를 쓰면서, 로마군의 개선행렬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 장군과 병사들, 그리고 그들이 획득한 포로들과 노획물들과 함께
군대가 엄청난 규모로 행진을 하면, 로마 시민들 전체가 몰려나와서 환호하는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바울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나의 승리에 하나님께서 참여하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승리하심에 내가 동참하는 것이였습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하십시오’라는 말은
주님의 승리의 행렬에 참여하십시오.
그리고 그 주님의 승리를 함께 기뻐하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찬양의 근거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의 근거를 나로부터 찾는다면, 세상으로부터 찾는다면 우리의 찬양은 널뛰기와 같을 것입니다. 어느 날에는 세상이 다 덤벼도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다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함으로 찬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 힘듬이 찾아온다면, 내가 작아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속에서 찬양할 수도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뀌고 변화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마치 구름 한 점없이 맑았다가 어느 순간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지는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우리의 상황과 모습은 끊임없이 바뀌어집니다.
따라서 내 기준을 따라서 찬양한다고 하면, 365일 중에 며칠이나 찬양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진정한 찬양의 근거, 찬양의 토대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 첫번째 질문과 답에 있습니다.
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죄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성령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찬양의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의 찬양의 근거, 우리의 위로가 되시는 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확신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하여 살고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가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로 데려가 참여시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위대한 선포, 하나님의 놀라우신 승리의 기적, 승리의 함성, 승리의 함성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가시고 세상 속에서 찬양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주님의 승리의 행렬 앞에 기뻐하시며 찬양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내 삶이 조금 부족해보이고, 어려운 현실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승리의 행렬을 함께 찬양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시편 68편을 통해서 시내산에서 언약궤와 함께 일어나셨고,
광야에서 주님의 백성을 앞서 가시며 행진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또 광야를 지나 다윗의 성소로 행차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성소에 위치하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모습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승리의 행렬은 시온의 성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의 행렬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계속되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사 십자가로 발걸음을 옮기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다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로 행차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이전에는 이스라엘 시온의 성소에 계셨다면, 지금은 하나님 나라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온 만물의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서 온 세계의 열방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에 우리의 각 심령과 교회와 가정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각개인의 심령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승리를 바라보게 하시고 찬양하게 하십니다.
오늘 나의 찬양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제도 승리하셨고, 오늘도 승리하시고 내일도 승리하실, 이미 완벽한 승리를 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 안에서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그 하나님 안에서 찬양하며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는 세상 가운데 찬양하여라’
‘너희는 세상 가운데 전심으로 찬양하여라’
3절을 보면 그렇게 이야기하죠.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니라”
다윗이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옷이 벗겨지는 것도 모른체 아이처럼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듯이
너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이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승리의 행렬에 동참하실 준비가 되셨습니까?
장차 천국에서 불리어질 찬양과 고백을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부르고 고백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승리하신 자이십니다.
여러분은 주 안에서 항상 승리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감격과 기쁨을 항상 노래할 수 있기를,
하나님의 승리의 행렬을 다시 되새기면서 찬양할 수 있기를,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