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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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views복음, 진리는 하나다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에게 의로운 핍박과 고난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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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1. 서론
나는 운전할 때 길에서 허비되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길이 밀릴 때만큼 마음이 초조해지고 힘든 일이 없다.
나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지름길을 매우 좋아한다. 지름길로 가면, 내가 알고 있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활용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강릉에 와서 참 좋았던 것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이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큰 길이 막힐 때, 생각보다 밀리는 길을 피해갈 수 있는 골목이 많았다.
그래서 모든 골목 골목이 결국 목적지로 향하게 해준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보면, 옆에서 그냥 길로 가라고 한다. 빨리가서 뭐하냐고, 얼마나 빨리 가냐고
아마 우리 아내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곘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우리 아내처럼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 인생의 길, 비전과 목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왜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는가?
특히 우리 자녀의 문제가 그렇겠지만, 우리 또한 그렇다.
지름길로 가면 위험하다고, 가봐야 얼마나 빨리 가냐고 하지만, 정작 인생의 길은 지름길로, 최대한 빠른 길로 가려고 몸부림치는 게 우리의 인생이 아니냐는 것이다.
2. 본론
#1.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쓸데 없고 의미없는 일은 없다.
종종 유튜브에서 자녀들의 학업에 대해 학부모들의 평소 생각을 볼 수 있는데, 대다수 부모님들은 자신이 겪은 세상에서의 결핍, 아쉬움, 그리고 어려움들을 자녀들은 겪지 않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빨리 가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치고 알려준다. 빨리 가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느리게 가고 뒤처지면 실패자라고 말이다.
그리고 느리게 가면 뒤처지면 빨리 가지 못하면 느리게 가는 만큼, 뒤처지는 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가르친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생에서 겪는 실패나 남들에 비해 늦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호의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늦게 가는 건 무의미한 걸까? 늦게 꿈을 이루는 건, 늦게 비전을 이루는 건 실패한 걸까?
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1장 전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느헤미야는 황폐화 된 유다의 상황에 대한 안부를 묻고, 그 땅의 상태를 전해 들은 후 수일 동안 울며 슬퍼하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지난 주 이것이 느헤미야의 관심이고, 비전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을 나누었다.
그런 가운데 느헤미야는 절절한 기도제목들, 하나님을 향해 그의 관심사인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다.
사실, 포로라는 자신의 형편과 여건 ,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기도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웃의 어려운 형편과, 민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만 하지 않을까? 아니, 가장 빠르게 응답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의 기도와는 다르게, 그의 간절한 바램과는 다르게,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오늘 본문 마지막은 이렇게 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느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하나님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내가 형통하여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때에 왕의 술 관원이 되었다.
빨리 가도 이루어질지 말지 확실하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간절한 느헤미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빨리 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꿈이나 관심사나 비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엉뚱한 일을 하게 되고 맡게 된 느헤미야는 실패자일까?
시간 낭비 중이고 헛된 일, 무의미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간절히 이루기를 바라는 비전의 응답이 이렇게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비전의 특징을 볼 수 있다.
비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회로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이지, 사실 우리 주변에 사소하게 지나치는 중요한 일들이 매우 많다.
때로는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해? 이런 과정까지 지나야 하는거야? 내가 이런 존재인거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지나가는 일들이 난 못해, 할 수 없어, 할 줄 몰라, 내 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일이
시간이 지난 후에 나에게 기회였음을 알게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그건 바로 기도 때문이다.
기도는 비전을 발전시키는 절대적 요소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까지 계속 보도록, 듣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또 우리 주변의 작은 변화까지 민감하게 알아차리게 해준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나의 주변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것,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꿈과 비전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꿈은, 꿈꾸는 사람은 주변이 달라질 것을 꿈꾸지만, 비전은, 비전의 사람은 스스로 달라지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
쉽게 말해 꿈꾸는 사람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지만,
비전을 가진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그러니 비전의 사람에게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다윗의 인생을 보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구원과 뜻을 이스라엘에 행하기 위해 세워진 다윗의 이전 삶, 목자의 삶이 무의미했던 삶인가?
그저 왕이 되는 것만 중요하다면, 왕이 인생의 비전이라면 말이다.
만약 목자로서, 양들을 치던 때의 삶이 무의미 했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를 향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창과 칼이 아닌 물매와 돌을 가지고 나가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난 설교 가운데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던 이유는, 내 인생의 삶 가운데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사실 나 자신은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해왔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칼빈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있다.
그 중 몇 가지 후회되는 일들이 있는데,
하나는 찬송가를 외워라!
다른 또 하나는 큐티를 해라!
지금은?
기타를 비롯한 악기를 배웠던 것도, 컴퓨터나 기계를 잘 다루는 것도,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도 어느 새 나의 일상 뿐만 아니라 나의 사역의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주님이 필요하실 때 꺼내 쓸 수 있는 도구,
그저 나에게 맡겨지는 일들은 언젠가 교회와 주의 영광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믿기에,
내가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조차도, 그 동안 나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그렇게 일을 해오셨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 분당우리교회 찬양축제 이야기 -
믿음으로 비전을 바라보면서, 주의 나라와 영광을 꿈꾸는 우리의 인생길에, 쓸데 없고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쓸데 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그 일이, 언젠가는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비전의 도구가 된다.
매일의 삶 가운데, 주어진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이런 일까지 해야 돼? 가 아니라 이런 일까지 해야 하지만,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 걸까? 기대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2. 기다림은 비전을 성숙하게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은 바로바로 응답해주시면 되지, 굳이 빙빙 돌려가시면서 일하시는 걸까?
왜 비전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삶이 때론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시는 걸까?
바로 비전은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자궁 속에 있는 태아에게 서둘러 해결해야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비전 역시 서두른다고 자라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궁 속의 태아나 우리들에게 주시는 비전 역시 그 시간 계획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비전을 너무 빨리 행동에 옮기려고 하는 것은 다 자라지 않는 아기를 출산하려는 일과 같다.
성숙하지 않은 비전은 취약하다. 거의 실현되기 어렵다. 조산된 아기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듯이 말이다.
그래서 비전이 살아 남으려면 매우 거친 환경에서 내던져지기 전에 성숙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거룩한 비전의 경우, 하나님은 마음 속에서 일하시며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시고 그것을 준비시키신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일이 그렇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비전은 단지 이루고 나면 끝나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비전은 가치다. 또 비전이 가치이기 때문에 비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비전이라는 가치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이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행하게 하신다는 헬라어가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 계속 ~하기, ~ 하는 것 즉, 지금도 계속된다는 의미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신다.
3. 결론
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 이런 가사의 찬양이 있다.
주님이 부르신 곳 주님이 말씀하신 곳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니라 생각되어도
주님이 부르신 곳 주님이 말씀하신 곳
내가 서 있는 자리 통해 영광 받으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