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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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진리는 하나다 타협이 있을 수 없고, 그로 인해 그리스도인에게 의로운 핍박과 고난이 따른다.

Notes
Transcript

1.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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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운전할 때 길에서 허비되는 것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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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길이 밀릴 때만큼 마음이 초조해지고 힘든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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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사람들은 그래서 지름길을 매우 좋아한다. 지름길로 가면, 내가 알고 있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활용하면 목적지에 빨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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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 와서 참 좋았던 것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이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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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이 막힐 때, 생각보다 밀리는 길을 피해갈 수 있는 골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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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모든 골목 골목이 결국 목적지로 향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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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보면, 옆에서 그냥 길로 가라고 한다. 빨리가서 뭐하냐고, 얼마나 빨리 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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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 아내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곘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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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내처럼 생각하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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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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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길, 비전과 목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왜 그리 조급하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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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 자녀의 문제가 그렇겠지만, 우리 또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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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로 가면 위험하다고, 가봐야 얼마나 빨리 가냐고 하지만, 정작 인생의 길은 지름길로, 최대한 빠른 길로 가려고 몸부림치는 게 우리의 인생이 아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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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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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전을 이루어 가는데 쓸데 없고 의미없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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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유튜브에서 자녀들의 학업에 대해 학부모들의 평소 생각을 볼 수 있는데, 대다수 부모님들은 자신이 겪은 세상에서의 결핍, 아쉬움, 그리고 어려움들을 자녀들은 겪지 않으면 한다는 마음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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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빨리 가는 것이 더 좋다고 가르치고 알려준다. 빨리 가지 않으면 패배자라고, 느리게 가고 뒤처지면 실패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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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느리게 가면 뒤처지면 빨리 가지 못하면 느리게 가는 만큼, 뒤처지는 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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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생에서 겪는 실패나 남들에 비해 늦는 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호의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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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늦게 가는 건 무의미한 걸까? 늦게 꿈을 이루는 건, 늦게 비전을 이루는 건 실패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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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오늘은 1장 전체 말씀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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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는 황폐화 된 유다의 상황에 대한 안부를 묻고, 그 땅의 상태를 전해 들은 후 수일 동안 울며 슬퍼하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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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이것이 느헤미야의 관심이고, 비전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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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느헤미야는 절절한 기도제목들, 하나님을 향해 그의 관심사인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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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포로라는 자신의 형편과 여건 ,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정도로 관심을 보이고 기도하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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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웃의 어려운 형편과, 민족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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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만 하지 않을까? 아니, 가장 빠르게 응답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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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기도와는 다르게, 그의 간절한 바램과는 다르게,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오늘 본문 마지막은 이렇게 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이루시는 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느 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 관원이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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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내가 형통하여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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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왕의 술 관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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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가도 이루어질지 말지 확실하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간절한 느헤미야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가 빨리 갈 수 있도록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고 가시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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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이나 관심사나 비전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엉뚱한 일을 하게 되고 맡게 된 느헤미야는 실패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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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낭비 중이고 헛된 일, 무의미한 일을 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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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이루기를 바라는 비전의 응답이 이렇게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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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비전의 특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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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회로 볼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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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이지, 사실 우리 주변에 사소하게 지나치는 중요한 일들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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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해? 이런 과정까지 지나야 하는거야? 내가 이런 존재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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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생각하며 지나가는 일들이 난 못해, 할 수 없어, 할 줄 몰라, 내 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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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난 후에 나에게 기회였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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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그건 바로 기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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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비전을 발전시키는 절대적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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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기도는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것까지 계속 보도록, 듣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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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 주변의 작은 변화까지 민감하게 알아차리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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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하나님께서 나의 주변에서 일하시고 계시는 것,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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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비전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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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꿈꾸는 사람은 주변이 달라질 것을 꿈꾸지만, 비전은, 비전의 사람은 스스로 달라지게 되는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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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꿈꾸는 사람은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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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가진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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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비전의 사람에게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할 여유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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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인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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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하나님의 구원과 뜻을 이스라엘에 행하기 위해 세워진 다윗의 이전 삶, 목자의 삶이 무의미했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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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왕이 되는 것만 중요하다면, 왕이 인생의 비전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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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목자로서, 양들을 치던 때의 삶이 무의미 했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자를 향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창과 칼이 아닌 물매와 돌을 가지고 나가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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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설교 가운데 나의 이야기를 많이 했던 이유는, 내 인생의 삶 가운데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사실 나 자신은 굳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해왔던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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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칼빈대학교 신학과에 진학했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해주셨던 이야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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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몇 가지 후회되는 일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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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찬송가를 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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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또 하나는 큐티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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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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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비롯한 악기를 배웠던 것도, 컴퓨터나 기계를 잘 다루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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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했던 그 어떤 일도 어느 새 나의 일상 뿐만 아니라 나의 사역의 영역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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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필요하실 때 꺼내 쓸 수 있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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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에게 맡겨지는 일들은 언젠가 교회와 주의 영광을 위해 쓰일 수 있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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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조차도, 그 동안 나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그렇게 일을 해오셨기에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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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우리교회 찬양축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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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비전을 바라보면서, 주의 나라와 영광을 꿈꾸는 우리의 인생길에, 쓸데 없고 의미 없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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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 없고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그 일이, 언젠가는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비전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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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가운데, 주어진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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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까지 해야 돼? 가 아니라 이런 일까지 해야 하지만,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그림을 그리시는 걸까? 기대하며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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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다림은 비전을 성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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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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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은 바로바로 응답해주시면 되지, 굳이 빙빙 돌려가시면서 일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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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전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삶이 때론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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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비전은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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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속에 있는 태아에게 서둘러 해결해야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비전 역시 서두른다고 자라거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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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속의 태아나 우리들에게 주시는 비전 역시 그 시간 계획은 하나님의 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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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너무 빨리 행동에 옮기려고 하는 것은 다 자라지 않는 아기를 출산하려는 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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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하지 않은 비전은 취약하다. 거의 실현되기 어렵다. 조산된 아기가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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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비전이 살아 남으려면 매우 거친 환경에서 내던져지기 전에 성숙하고 건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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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비전의 경우, 하나님은 마음 속에서 일하시며 앞길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아시고 그것을 준비시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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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하나님의 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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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비전은 단지 이루고 나면 끝나는 목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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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비전은 가치다. 또 비전이 가치이기 때문에 비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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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이라는 가치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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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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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하게 하신다는 헬라어가 현재, 능동태, 부정사로 계속 ~하기, ~ 하는 것 즉, 지금도 계속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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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우리를 통해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시고, 우리의 삶을 이끌고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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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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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찬양 중 이런 가사의 찬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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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부르신 곳 주님이 말씀하신 곳
내가 서 있는 곳이 아니라 생각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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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부르신 곳 주님이 말씀하신 곳
내가 서 있는 자리 통해 영광 받으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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