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비참함을 해결하시는 예수님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예수님 안에서 평안하세요’하고 인사 나눕시다.
네 감사합니다. 이제 9월 첫 주일입니다. 추석이 있는 달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분위기가 다소 소강상태일듯 합니다. 그러나 이제 2021년 가을 학기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모두가 다 한 마음으로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내면 좋겠습니다. 오늘 주보에 보시면 2학기 말씀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제자 훈련이 있고, 가정사역, 그리고 교사대학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추석을 지나서는 성경 통독과 본문 공부, 또 찬송가 학교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교사들이나 교사로 봉사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교사 대학에 지원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자 훈련 프로그램 중에는 세 과목이 있는데, QT, 대교리 문답, 그리고 바이블 세미나가 있습니다. 우리 구역장님들이나 안수집사님들은 대교리 문답이나 바이블 세미나에 지원을 해 주시면 좋겠구요, 성경을 묵상하고 나눔을 가지는데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은 QT반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정 세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가정사역 세미나의 프로그램들을 지원해 주셔서 영적인 유익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지원을 하실 때는 잘 모르시겠으면 교구 목사님들에게 물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들을 통해 각 과목에 대한 안내도 받으시고 지원도 하셔서 함께 2학기를 풍성하게 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2. 주제 제시
S2. 주제 제시
오늘은 사도신경 강의의 서론격으로 사도신경의 필요성에 대해 함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왜 사도신경이 필요한가? 하는 것은 사도신경이 무엇에 대한 것인가를 알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사도신경은 믿음의 항목들, 즉 믿음의 대상과 내용에 대한 교회의 공적인 신앙고백이라고 확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믿음의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할까요? 그것은 세상에 자연적인 출생법을 통해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에 의해 죽음의 심판을 받는 비참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이 죄와 비참함을 벗어나지 않으면 죽음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죄와 비참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갖게 됩니다. 아니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가 되었는데 어떻게 죄인이 되고 그 결과 비참한 형편에 처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지금도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어 동물이나 식물과는 구별되는 탁월한 존재이며, 실제로 현대 과학과 기술은 인간이 동물과는 경쟁이 안되는 놀라운 우주에 대한 지식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우리의 처지가 비참한 자리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죄인이 아니고 설령 죄가 좀 있다고 해도 스스로 노력해서 그 죄를 다 없앨 수 있는데 왜 믿음이 필요합니까? 하고 사람들은 묻기도 합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그러나 이것은 너무 공교한 말입니다. 물론 인류의 장점만을 보면 그런 낙관적인 기대와 소망을 가질 수 있겠지만, 실제로 우리 인류의 현실을 보면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술과 문명이 발생하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에서 오는 인간의 삶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인간의 사회는 분명 짐승과는 차원이 다른 공동체지만, 그 내면을 보면 짐승의 세계와 다를 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날 소수자의 인권을 외치는 분들이 계시긴 하지만, 많은 분들이 참된 인권을 존중받고 살지 못하는 것이 또한 지구촌의 현실입니다. 어젠가 유투브 방송을 보니까 탈레반을 피해 아프간을 떠나 7,000km나 떨어진 파리로 겨우 탈출한 청년들에게는 아무런 일자리도, 소망도 없는 노숙자의 삶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자유와 인권 같은 것도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 누리는 특권이 되어 버린 듯 해 보입니다.
사실 이 모든 인재들은 결국은 인간이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아무리 인간을 존중하고, 장점들과 기술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창의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뭔가 잘못된 인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 성경 계시를 통해 분명히 자신의 길을 떠난 잘못된 인간을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지음을 받고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다스리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도록 지음받은 인간의 실패를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삶의 길이 아니라 사탄이 준 거짓의 길,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에게 주신 삶의 자리를 떠난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창세기 3장 4, 5절을 봅시다.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처럼 뱀이 여자를 유혹하여 하나님의 계명이 거짓말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명하신 금지 계명을 하나님의 속임수라며 부정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 17절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에는 금지명령과 그 결과에 대한 분명한 정죄와 심판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뱀은 이 말을 부정한 것입니다. 앞에서 뱀이 ‘결코 죽지 않으리라’ 한 말은 ‘반드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부정어 ‘로’ 영어로는 ‘not’를 붙여 사용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자와 남자는 이 뱀의 말을 따릅니다. 창세기 3장 6절입니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뱀의 거짓과 불의에 찬 확신에 여자와 남자는 크게 영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명령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금하신 행위를 스스로 자행하게 됩니다. 이 결과는 아담과 하와가 당장 죽음을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죽음의 심판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먼저는 이들은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어 세상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어 사람이 땀을 흘려야 겨우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하여 일정한 때가 되면 결국 죽음을 만나야 했던 것입니다. 에덴의 영광과 그 놀라운 평강은 떠나갔고, 인간의 삶은 죽음의 모든 비참한 현실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이러한 실패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더군다나 가인이 시기하는 마음으로 아벨을 죽이는 비참함의 확대를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실패한 인간의 시기와 다툼, 그리고 살인과 생명 파괴를 기뻐하지 않으신 하나님은 인간을 유혹한 뱀을 심판하시면서 뱀과 그의 권세와 영향력을 파괴하고 인생을 회복하실 메시야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창세기 3장 15절을 봅시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모든 인간이 처음 조상 아담 안에서 죄에 참여하여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인류는 고장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장 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 24절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두 번째 위격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 은혜로 값없이 의로운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죄로 인해 비참하고 고장 난 인생을 사는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 그 어떤 인간의 부모가 가질 수 없는 그 자비하심의 마음으로 우리의 구원자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J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J3.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
이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로 인한 형벌을 대신 지시는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창조주는 구속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피의 제물 되심을 통해 이전에 지은 인간의 모든 죄를 간과해 주십니다. 로마서 3장 25절 말씀을 봅시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놀라운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피의 구원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타락한 나의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전에 아담 안에서 나의 고장 났던 모든 삶의 결과들, 저지른 모든 죄를 없는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성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아들의 사람 되심과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모든 형벌이 면해지는 은혜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큰 고장이 난 존재이지만, 고장난 책임과 그 모든 죄값을 주님이 대신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를 구원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을 가질 때 바로 이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W1.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고장 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W1.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고장 난 우리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고장이 났지만, 참된 믿음은 우리를 살리는 힘입니다. 믿음으로써 화목제물이 되시는 예수님은 고장으로 인해 생겨난 우리의 모든 죄와 비참함을 믿음을 주셔서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은 참된 믿음을 알려줍니다. 21문을 봅시다.
21문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확실한 지식이며, 동시에 성령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에 계시한 모든 진리에 대한 확실한 지식과 굳은 신뢰를 말합니다.
W2.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하는 굳은 신뢰와 확실한 지식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W2. 우리 성도가 가져야 하는 굳은 신뢰와 확실한 지식은 바로 사도신경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신조 22문은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22문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 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 줍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사도신경을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의 조항들로 여겼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얻는 은혜의 구원은 사도신경이 고백하고 요약하고 있는 그 내용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사도신경의 믿음을 주심으로 죄인을 참 백성으로 회복하십니다.
W3. 하나님은 사도신경의 믿음을 주심으로 죄인을 참 백성으로 회복하십니다.
사도신경 안에 나타난 믿음은 고장 난 우리의 삶이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서만 회복된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구속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신 창조주의 섭리에 의한 약속이며, 성도를 교회로 불러 믿음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 생명을 회복하고, 성화주이신 성령님의 능력으로 고장을 회복한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도신경의 믿음의 고백 안에서 죄와 비참을 이기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T1. 사도들은 그 자신들이 이 큰 은혜를 누린 사람들입니다.
T1. 사도들은 그 자신들이 이 큰 은혜를 누린 사람들입니다.
사도신경을 사도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4, 5세기 경에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사도신경 자체는 150년 경에 초대로마교회의 세례식에 사용한 고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5, 6세기를 지나면서 지금의 형태로 완성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기록해서 사도신경이 아니라 이 고백이 사도들이 가르쳐 준 믿음을 우리에게 전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12사도가 본격적으로 세계 선교를 떠나기 전에 모여 하나씩 고백하여 12개의 조항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분명 이 열두 조항의 고백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분들이었고, 그 믿음이 교회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고백이라서라기보다는 그것이 가장 성경적이기 때문에 수용하는 것입니다. 역사성만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이 고백이야말로 사도 자신들을 구원했고, 우리를 구원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T2.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고백의 유산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T2.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고백의 유산을 잃어버리고 삽니다.
사실 교회 안에도 사도신경과 같은 고백서들은 그 시대의 고백들이기 때문에 우리 시대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는 고백서들을 개인의 경건에서 멀리하고 고백서 없는 성경 공부에만 열심을 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결국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오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체계성 있게 요약하고 정리한 신경을 통해 성경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지에 있는 온갖 이상한 신관들과 세속적 삶들이 교회 속으로 들어와 교회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오용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들이 신앙의 선진들을 통해 전해 준 복음을 믿고 그것으로 구원의 길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역사성을 성경의 가르침 안에서 잘 붙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T3. 성도는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참된 믿음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T3. 성도는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참된 믿음 안에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확실한 지식이고, 굳은 신뢰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식은 앎을 말하는 이성적인 기능에서 연유하는 것이고, 신뢰는 의지와 감정적인 부분에서 오는 기능을 말합니다. 성도는 사도신경 안에서 참된 앎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앎은 교제를 통한 앎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믿음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 되신 창조의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구속의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또한, 이제 고장에서 벗어난 새 삶을 살게 하시는 성화주이신 성령님을 체험하는 지식을 가지게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심정에서 자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아들 예수님을 섬기게 됩니다. 또한 성령님을 경배하는 온전한 신뢰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사도신경을 생각할 때 먼저 왜 이 믿음이 필요한 지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인 우리도 주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로마서 3장 9절을 봅시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사도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과연 나으냐? 과연 우리는 율법과 양심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때 구원받지 못한 그들과 다르냐 하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은혜로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알게 해주시고, 그것을 확신하게 해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말씀을 보며, 믿음의 항목들을 통해 구원의 길에 이르게 됩니다. 내 힘과 내 능력이 아닌 오직 은혜로 주신 믿음 안에서 나를 발견하고 주신 회복의 놀라운 능력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믿음을 요약하고 정리한 사도신경의 고백을 아는 것과 확신하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까닭에 오늘부터 우리는 사도신경을 공부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성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온전한 앎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들도 앎을 믿음이요 영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물론 안다는 것은 교제적인 앎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의 범위를 초월하시는 분이심으로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그 모든 것을 알고,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령님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고백을 깊이 배우고 확실하게 아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앎을 통해 주시는 굳건한 확신을 통해 오늘 이 혼란의 시대에 구원자되신 우리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시고 더 깊이
교제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찬송가 85장
찬송가 85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