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사람,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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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술취하여 장막에서 벌거벗은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를 묵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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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18–29 (KRV)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땅의 사람, 노아
창9:18 -29
성경의 서론에 해당하는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기록하면서, 창세기 기자는 무려 노아의 이야기를 절반이나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노아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는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인간에 복을 주시길 원하셔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여 결국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노아 당시의 모든 사람들도 역시 타락하였습니다. 얼마나 타락했는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해서,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6:5),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창6:7). 물로 다 쓸어 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노아만 빼놓고요.
노아가 어느 정도였냐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자기에 명령하시는 말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준행했습니다(창6:22).
그래서 노아에게는 세 가지 호칭이 있습니다.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었습니다(창6:9). 물론 노아 이전에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에녹이 있었는데요.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행했다는 말은 있어도, 노아처럼 의인이고 당대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듣지는 못했습니다. 성경에서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예수님 빼고는, 노아 밖에 없습니다.
세상사람 다 타락하고 죄짓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창6:11).
그런 세상에서 유일하게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는 세가지 칭호를 한꺼번에 다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이 다 타락했으나,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고 기록합니다. 그렇지, 그래 적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당연히 노아정도 만큼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와 나같은 사람은 은혜는 커녕 벌이나 안받으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요. 지금 그 의인이고, 당대에 완전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노아가 뭐하고 있습니까? 자기 텐트 속에 들어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옷을 훌러덩 벗고 알몸이 되어 뒹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인이고,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한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그것도 취해서 알몸으로 땅위에 친 텐트속에서 뒹굴고 있으리라곤 상상이 안갑니다.
포도주 한 두 모금으로 취하진 않았겠지요. 슬슬 취기가 올라 아딸딸한 상태에서 홍수 때를 뒤돌아 보았지 않을까요?
가족들과 동물들을 이끌고 방주의 문을 닫고 일주일 지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없고 그 이후로도 없을 엄청난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땅에서 물이 올라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방주에 난 작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니, 거긴 엄청난 물결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바다였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자기 가족 빼놓고는 모든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세상이 이런 비극과 참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 가족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자기가 아는 모든 사람이 다 죽고, 오직 자기 가족만 살아남았습니다. 아마 노아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산 사람은 또 살아야 한다고 꽉찬 물결을 바라보며 언제 비가 그치고 땅이 드러날지 기다렸습니다. 일년 동안 방주생활을 했습니다. 출렁이는 방주속에서 온갖 동물들과 함께 일년을 살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땅이 그리워지지 않겠어요? 또한 노아 뿐만 아니라 모든 노아 가족의 간절한 소원은 땅이 언제나 드러날까 였습니다.
제가 날씨가 안 좋은 날 고기잡이 배를 타보았는데, 고기는 한 마리도 못잡고, 고기한테 밥만 주고, 누워있다가 왔어요. 배멀미가 나서요. 그 다음은 말안해도 알겠지요? 그러니 뭐 원양어선도 아니고 자그만치 일년을 배를 탔습니다. 냄새나고, 이제 먹을 것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 얼마나 땅을 밟고 싶었겠어요?
그래서 결국 일년이 지나서야 땅이 드러나고, 그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노아 가족은 모든 인류가 다 물에 죽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일가족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의인, 당대 완전한 사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노아와 그 후손을 통해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가려고 하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홍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어느날 갑자기 타락의 자리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목회자들 중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누구냐면, 나는 절대로 어떤 유혹이나 시험에도 안 빠질 자신이 있다는 사람입니다. 뭐 생명이라도 걸듯이 사실 걸었죠, 사명을 위해 미친듯이 살아갑니다. 그러니 어디 유혹에 빠질틈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단은 교묘하게도, 가장 충만하고, 가장 하나님 앞에서 사명자로서 잘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순간에 시험이 찾아옵니다. 사명에 전념하다보면, 어느새 탈진해 있는 것도 모른채 위험하게 길을 걸어갑니다.
나는 안식년을 수십년동안 한번도 안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선교사도 위험합니다. 탈진으로 가는 지금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노아는 가장 완전한 의인,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노아는요, 홍수 이후 방주에서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호와께 제단을 살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도더 경외하던 예배자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습니다. 노아가 뭐 실수로 포도주를 먹고 취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20절에 보면,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을 심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어 성경은 그냥 노아가…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원문에는 그냥 노아가 아닙니다. 이쉬 하다마(땅의 사람- a man of soil)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땅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땅의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땅의 것으로 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땅으로 부터 나와서, 땅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살다가 다시 땅으로 돌아가는 땅의 속한 존재라는 겁니다. 노아는 땅의 사람이었기에, 땅을 경작하고, 땅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 살 수 밖에 없던 그런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이게 인류의 첫 조상 아담하고도 너무 비슷합니다.
타락하기전의 아담은 죄를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받은 완벽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나니까 하늘의 사람이 아니라 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담은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흙에서 와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사람입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인류의 첫 조상인 노아도 역시 땅의 사람일 수 밖에 없습니다. 방주에서도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게 바로 땅입니다.
그런데 아담처럼, 노아도 역시 똑같은 패턴으로 역시 타락합니다. 포도나무를 심었으니, 포도열매를 얻었고, 또 자연스럽게 포도를 저장했다가 포도가 발표되어 알콜 성분이 생겼을 겁니다. 그래서 그걸 마시면 기분이 아딸딸 해지고, 좋아지는 거죠.
20절에는,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 벗었다고 기록합니다. 포도주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을 취하게 한 음료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했다는 것은 아무리 당대에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노아라 할지라도 결국은 땅의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보여줍니다. 게다가 알몸이 되었다는 것은 습관성으로 마시지 않고는 쉽사리 모든 옷을 다 벗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게 알몸으로되어, 인간이 가릴 수 있는 수치를 덮은 옷을 다 벗어던지고, 하나님 앞에서 알몸이 된 것입니다.
흙에서 지음 받는 아담과 똑같은 패턴 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가장 먼저 느끼는게 수치심과 두려움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 이후에 역시 자신들이 옷을 벗고 있는 것에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뭇잎으로 하체를 가렸잖아요. 그리고 두려워서 수풀사이로 숨었잖아요? 지금 땅의 사람 노아도 역시 같은 패턴으로 갈 찰나입니다.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어서 벌거벗고 그 장막안에서(그의 장막안에서) 널부러져 있는 겁니다.
자, 그런데 이제부터가 좀 문제입니다. 이 타락의 현장을 또 노아의 아들 함이 우연치 않게 보게 된겁니다. 참 성경에서 난해한 구절로 뽑히는 사건이 나옵니다.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가서 알립니다(창9:22).
그런데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줍니다. 절대로 아버지 하체를 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집에서 해봤어요. 그 옛날에는 지금처럼 윗옷 아래옷 그렇게 나누어 입지 않았을테고, 긴 천을 몸에 감싸는 식으로 옷을 입었을꺼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집에서 한번 해봤어요. 긴 담요같은 걸 가져다가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 쳐서 고개를 안돌리고 뒤로 걸어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아무것도 안보여요. 아마도 노아 아버지가 발에 걸리는 걸 느끼고, 가만히 긴 옷을 덮어주었을 것입니다. 셈과 야벳은 절대 아버지 하체를 보지 않고 알몸이 된 아버지를 덮어 주겠다는 작정으로 들어간겁니다.
여기서 함은 뭐 우연히 아버지 장막에 들어갔다쳐도, 혹시 아버지가 알몸이 되었으면, 조용히 옷을 가져다가 덮어주면 될 일을 그냥 두고 나가서 형제들에게 알리러 갑니다. 아버지의 하체를 본다는게,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뭐 요즘에야 아버지와 아들이 목욕탕에 가서 아버지 하체를 쉽게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는 공중 목욕탕이 있던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하체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의 생식기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 새로운 인류의 시조잖아요. 족장이요 선지자잖아요. 큰 잘못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그걸 함이 봤어요.
여기서 함의 잘못이 드러납니다. 자기만 봤다간 어떤 저주를 받을 지 모르니, 자기 두 형제를 불렀습니다. 나만 보고 말지 않겠다는 겁니다. 만약 자기만 보고 말았다면, 조용히 아버지 하체를 덮어주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형제들을 불러요. 와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라고... 이게 꼭 하와가 범죄하여, 먼저 자기가 선악과를 먹고, 자기 남편 아담에게 먹으라고 했던 것과 똑 같아요. 함도 역시 셈과 야벳을 같이 물고 들어가는 거지요. 물귀신 작전 처럼요. 얼마나 인간의 간악함이 드러나고 있는지요.
그런데 문제는 노아가 술이 깨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24절에 보면,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함)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저주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누구를 저주하냐면, 함을 저주하는 게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25절,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의 형제의 종이 되기 원하노라만 해도 엄청난 저주인데,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길 원한다. 반드시 가장 최상급 표현의 종이 되는 저주 받을 꺼라는 겁니다.
사실 노아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사람이 선지자 아닙니까? 그런 노아가 지금 예언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함을 저주하지 않고, 함의 작은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뭐 의견이 분분해요. 아니 왜 잘못한 함을 혼낼 것이지, 금쪽같은 손자를 저주하냐고요? 이걸가지고 논문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는 것 과는 반대로 셈과 야벳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에서 바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26절에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먼저 셈을 언급하며,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높입니다. 그리고 27절에는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는데,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축복의 우선성이 셈에게로 모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노아 이야기는 성경의 서론에 들어있는 내용입입니다. 이제 성경의 서론 중간에 있는 노아 이야기를 하면서, 본론이 시작하는 셈의 후손인 창12장의 아브라함으로부터 성경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구원자가 오시는 걸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거죠. 창세기 기록자는 완전히 의도성을 가진 겁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 아담의 후손이 저주를 받은 것 처럼, 노아도 그의 후손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게 함을 직접 저주한게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습니다. 죄악된 인간의 본성을 충실하게 보여준, 함의 잘못된 동기와 행동으로 말미암아 후손들이 저주를 받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저는 참 궁금했어요. 가나안이 저주 받는 건 그렇다 치고, 과연 이후에 노아가 어떻게 살았을까? 홍수 때에도 전 인류에서 오직 유일하게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가 술취하여 알몸이 되어 수치를 드러낸 이후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살았어요? 그런데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성경에 안나와요. 그냥 28절에, 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950세에 죽었다는 말만 있어요.
그래서 이 350년 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자식들이 계속 자식들을 낳고 번성해 가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포도나무를 심는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계속 그렇게 포도나무 농사를 짓고 죽을때까지 그렇게 살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가 이후 350년간 일생일대의 본인의 치명적인 실수를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포도주 때문에 취고, 벗은 몸, 수치를 완전히 보이고…완전히 적나라하게 죄가 드러난 이 사건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이 된 포도나무 농사를 짓는 겁니다. 와 이거 큰 일 났네요… 완전 홍수 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생긴거 아닙니까?
21절의 “포도주”에 눈길이 멈춰집니다. 베드로에겐 닭우는 소리가 평생의 트라우마 였듯이, 아마도 노아는 포도주가 평생의 트라우마 였을 것입니다.
비록 자기는 포도 농사를 짓기에 자연습럽게 또 포도주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와 치명적 과오를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포도를 수확하여 저장하면서, 또 포도주를 사람들이 먹는 것을 보면서….몸서리치게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묘하게 수천년 뒤에 교차되는 영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식후에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을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11:25). 그 노아가 먹고 취해서 온갖 추태를 부렸던, 그 포도주 잔을 들고 예수님께서 최고의 약속과 명령을 해주시는 거잖아요.
포도에서 난 그 포도주를 보고 마시면서,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게 하시며, 이 포도주를 마시는 성찬을 통해 이것을 마실 때마다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할렐루야!
제게는 노아가 최악의 실수로 치닫는 계기가 포도주라면, 실패하고 절망에 빠졌던 완전히 희망이 없던 죄인들을 살리시는 상징이 바로 포도주가 된다는 사실이 정말 은혜가 되었습니다.
수천년 뒤에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노아가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요? 예수님 생각은 꿈에도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노아의 350년 나머지 인생은 늘 자신의 곁에 있는 포도주를 보며,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했을 거라 믿습니다. 비록 노아는 땅의 사람이기에 땅에 나는 것으로 비록 이세상을 살아가지만, 결코 하늘을 바라보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노아를 한 줄로 이렇게 평가합니다. 그가 술취하고, 벌거벗었다는 이야기는한 글자도 안나와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이걸로 정리입니다.
아마 노아는 범죄 이후 남은 인생 350년을 믿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증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소개 되고 있습니다. 지금 노아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가운데 서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말세를 향하여, 우리 주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렇게 될거라고 하셨습니다. 홍수가 나서 이 세상를 다 멸하기까지 세상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자의 임함도 그렇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37-39).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영광을 나라가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의 사람 노아는 하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에게는 노아가 받지 못했던,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언약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온 몸의 혈관속에는 나를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도 역시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지만, 우리 눈은 하늘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비록 땅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위에 것을 찾고, 하늘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이번 한 주간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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