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주일저녁]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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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65 마음속에 근심있는 사람
기도 이금옥집사
본문 출3:1-5 (구p.84)
예배후 당회 광고
[서론]
[서론]
성경 통독 열심히 하고 계시는가? 오늘 본문은 성경통독 순서 상 어제의 본문이기도 했고, 또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모세가 소명을 받는 내용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오감 이라고 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이 있다. 이를 통해 어떤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게 되고 그 정보들을 뇌로 전달하게 된다. 아마도 조금씩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주고 가장 강력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는 것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시각일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에 대해 경험할 때 그 사람의 냄새나 그 사람의 목소리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는 것보다 눈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는가. 이렇게 얻어진 시각적인 정보들은 머리속에 잔상으로 새겨져서 그 대상의 첫인상을 결정짓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만나실 때에도 이와 같은 감각적인 요소들을 종종 사용하셨다. 예를 들면 출19장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셨을 때에 이스라엘은 그들의 눈으로 시내산 꼭대기에 수많은 우레와 번개가 치는 광경과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충만하게 임한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천둥소리와 온 땅을 뒤흔들 정도의 큰 나팔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수집된 정보들은 시내산 위에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셨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사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현상 없이 그냥 강림하셨어도 상관없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인간의 감각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시며 강림하신 것에는, 이러한 것들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강렬한 메세지를 주시고자 함이었다. ‘이곳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강림하신 곳이니 너희는 무분별하게 이 위로 올라오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도 이런 요소들이 등장한다. ‘불타는 떨기나무' 왜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비한 요소들이 있으셨을텐데 하필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모세를 만나셨을까. 쉴세 없이 떨어지는 번개 속에서 만나시거나, 노아의 홍수를 연상시킬만한 강력한 폭우 중에 만나시지 않고 왜 하필 불타는 떨기나무였을까. 하나님께서는 이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모세에게, 그리고 모세의 말을 전해들을 이스라엘에게 무슨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셨을까? 오늘은 이에 대한 내용을 생각해 볼 것이다.
[왜 인생 가운데 고난이 임하는가?]
[왜 인생 가운데 고난이 임하는가?]
여러분, 왜 인생가운데 고난이 임하는가? 고난의 기원은 어떻게 되며, 이 땅을 살아가며 하나님께서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로서 온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거룩하심과 아름다우심을 드러내며 그분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서 죄를 선택했고,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생 가운데 고난이 찾아왔다. 그 고난은 때로 질병과 죽음으로, 아픔과 슬픔으로, 환란과 시련으로 찾아온다.
아담 이후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받은 신자라고 할지라도, 즉각 우리의 삶에서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더라도 때로 인생 가운데 찾아오는 고난의 잔을 마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어쩌면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대다수를 차지할런지도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때로는 의도적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도록 허용하신다. 감히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의 큰 뜻을 다 헤아릴 수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의 때를 지나가게 하시는 이유에 대해 다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해 분명히 가르치고자 하시는 바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는 성도들을 결코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의 백성들이 고난 가운데 알아서 견디도록, 알아서 살아남도록 결코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님은 고난 중에 있는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 주님은 신음하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또한 견디고 이길 수 있는 힘을 더하사, 마침내 승리의 기쁨에 동참하게 하신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볼 때 말씀을 통해 위로 받으시고, 우리와 여전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소망을 누리시는 모든 양문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한다.
[본문의 배경]
[본문의 배경]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주일학교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본문이라 할 수 있다. 미디안으로 도피했던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에, 불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그곳에서 소명을 받게 되는 장면이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떨기나무가 무엇이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게 갈린다. 우리는 흔히 이 나무를 동네에서 쉽게 발견하는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린 기둥이 굵고 높이 솟은 나무들을 연상하게 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식물이 한글성경에는 나무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덤불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광야에서 서식하는 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가 알다시피 광야는 낮에는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고 물을 구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 악한 상황 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이 식물은 평소에는 덤불처럼 바짝 마른 채로 바람 따라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옛날 서부영화를 보면 바람 따라 바짝 마른 덤불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신 분들은 이해가 쉬우실 것이다. 그러다가 습기가 있거나 물가를 만나게 되면 바짝 마른 줄기에서 뿌리를 내려서 그곳에서 머물다가, 또 물이 마르게 되면 바짝 마른 상태가 되어 바람 따라 이리 저리 떠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짝 마른 장작은 열에 취약하다. 따라서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 쬘 때에 바짝 마른 덤불에 불이 쉽게 붙게 되고, 불쏘시개처럼 순식간에 불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른다. 따라서 광야에서 불이 붙은 가시덤불, 맹렬하게 타오르는 떨기 덤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피가 크지 않고 바짝 마른 덤불은 처음에는 맹렬하게 타오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사그라 든다. 본문 2절처럼, 모세는 길을 걷다가 불이 붙어 맹렬하게 타오르는 떨기덤불을 보았다. 이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 그래서 무심하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내곧 다시 그의 눈길을 끌었던 이유가 무엇인가? 맹렬한 불길 가운데 금방이라도 사그러 들 것 같았던, 아니 금방이라도 사그러들어야 할 떨기덤불의 불길이 사그러 들지 않는 것이다. 한참이 지나도 떨기 덤불이 계속해서 맹렬한 불을 뿜고 있었던 것이다.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하나님]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계신 하나님]
오늘 설교에서의 핵심 본문인 2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자.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여호와의 사자가 맹렬하게 타오르는 떨기나무의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결국 그곳에 계셔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4절을 보면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가운데서’ 라고 번역된 단어는 단어 그대로 ‘정 가운데, 정중앙’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 맹렬하게 불타오르는 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다. 또한 5절에서도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라고 기록되어 있다. 불 타는 떨기덤불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셨기에 그곳은 거룩하게 구별된 곳이었다.
하나님께서 불 타는 떨기덤불 가운데에 임재해 계셨다. 성경에서 ‘임재’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에는 보통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이 나타날 때나,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자신을 계시하실 때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실 때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하사 광야길을 안전하게 거닐게 하셨다. 또한 출40장에서 모세가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규격대로 성막을 건축하고 이를 봉헌하였을 때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임재하셔서, 하나님이 성전 안에 임재해 계심을 이스라엘이 보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불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로 그 자리에 임재해 계심을 모세에게 보여주셨다.
[이 그림이 주는 교훈]
[이 그림이 주는 교훈]
그런데 여러분, 왜 하필 하나님께서는 다른 많은 방법들이 있었음에도 하필 불타는 떨기덤불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을까? 지금 모세의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뭔가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택하신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성경을 몇 군대 살펴보자.
신4:20 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즉 애굽을 쇠풀무 불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왕상8:51 이다. ‘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여기서도 애굽을 가리켜 철풀무라고 지칭한다. 이어서 사48:10 이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여기서도 고난의 풀무 불인 애굽 가운대에 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렘11:4 이다.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처럼 성경의 곳곳에서 고난의 풀무불 가운데 빠진 이스라엘로 말씀하신다. 애굽은 곧 맹렬하게 타오르는 풀무불과 같았다.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정도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다. 그런데 이 맹렬한 풀무불 애굽 가운데에서도 이스라엘이 타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사그라들어야 마땅한 이스라엘이 사그러들지 않는다. 마치 바짝 마른 떨기덤불이 광야의 맹렬한 열기 속에서 맹렬하게 불타오르다가 곧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풀무불 가운데에 들어있는 이스라엘도 금방이라도 사그라들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금방이라도 불이 사그러들어야 할 바짝 마른 떨기나무에 불이 사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그 불 타는 떨기덤불 가운데에 하나님께서 좌정하셨기 때문이다. 애굽 안에서 온갖 고된 노역으로, 그리고 바로 왕의 온갖 악한 명령으로 바짝 말라버린 이스라엘이 풀무불 애굽 가운데에서 금방이라도 사그러들 것 같았지만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 가운데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함께 읽진 않았지만 2장 말미에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사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고난 받는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고난 받는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성경에서 이러한 내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맹렬한 불길 가운데에 놓인 교회를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 가운데에 함께 거하셨던 사건, 언제인가?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에 들어가게 된 사건이다. 여러분,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자들이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예배하던 자들이었기에 이 땅에서의 삶이 날마다 순탄하고 형통할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원죄의 결과로서, 인생의 비극, 고통과 괴로움들이 찾아왔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신실한 성도였으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이라 자부하던 그들의 나라가 망했다. 나라의 자도자들은 아주 비참하게 처형이 되거나 포로로 잡혀갔다. 한 때에 잘 나가던 귀족들이 이제는 속박된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다.
더욱이 이젠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궈진 풀무불이 다니엘과 세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달궈진 풀무불은 주변에 그들을 인솔한 병사들까지도 불살라 버릴정도로 맹렬하게 타올랐지만, 정작 당사자인 다니엘과 세 친구의 옷자락 하나조차도 사르지 못했다. 주의 택한 백성들, 주의 몸된 교회가 고난 가운데 놓였고, 그 고난은 맹렬히 타올라 교회를 불사를 것 같이 다가왔지만 조금의 해도 가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고난 받는 교회와, 고난 받는 성도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 언약백성들과, 주의 교회와 함께 하고 계심을 가시적으로 목격하기까지 하게 하셨다.
그리고 정하신 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독생하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시며 다시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상기시켜 주신다. 마1:23 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건인가? 주께서 택하신 백성들, 언약공동체, 새로운 이스라엘, 교회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그 약속을 기억하사 신실하게 그들을 붙들고 가시며, 고난 가운대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교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이제는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사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신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시사 임마누엘의 약속을 이루어가신다. 그리고 세상의 마지막 그 날 마침내 그 백성들을 위하여 우리의 신랑되시는 주님, 반드시 다시 오셔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완전히 성취하실 것이다. 우리는 삼위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누리며 그분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양하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설교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었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여 원죄의 결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죄의 열매로 나타난 질병이나 시련, 고난과 기근의 시기를 인생 가운데 만날 수 있다. 견디기 힘들 정도의 고통과 괴로움을 마주하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수도 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한 것 같은 막막함과 절망에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앞날이 도무지 보이지 않아 큰 두려움이 엄습할 때도 있을 것이다. 너무나도 큰 아픔과 비통함에 입밖으로 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지금 모세가 마주하고 있는 광경처럼, 불 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좌정해 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세상의 모진 풍파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와도, 평소보다 칠배나 더 달궈진 세상의 풀무불이 주의 몸된 교회를 집어삼킬 것처럼 몰려와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중에 계신 권능과 능력과 위엄의 주님을 바라보시길 축복한다. 그 하나님은 힘겨워하는 교회를 버리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다. 그 하나님은 고난받는 백성들을 외면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하나님은 고통 중의 백성들을 말로만 위로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 하나님은 고난받는 교회와 함께 하신다. 그 하나님은 괴로운 시기를 지나가는 주의 백성들 가운데에 임재해 계신다. 그 하나님은 언약백성들이 힘겨워하는 순간에 단 한순간도 곁을 떠난 적 없이 그 백성들 가운데 좌정해 계신다. 우리는 그분의 동행을 때로 잊어버리고 알아채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단 한순간도, 단 한차례도 우리를 외면하거나 버리거나 떠난 적이 없으시다.
[결론]
[결론]
결론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양문교회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늘 푸른 초장으로만 거닌다면 참 행복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아픔을 마주하기도 하고, 괴로운 시기를 지날 때가 있으며,
때로는 풀무불 같은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혹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그런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은 고난받는 교회와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사신 교회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교회 가운데 좌정해 계실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교회의 지체이신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 하신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바 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내가 평안할 때는 물론이고, 고난 중에도 항상 함께 하시는 삼위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드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찬송가]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찬송가]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다짐의 기도]
[다짐의 기도]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단 한순간도 우릴 버리신 적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변함없이 우리를 강한 손으로 붙들고 가시고, 우리 중에 함께 계신다. 때로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거센 풍랑이 밀려온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변함없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길 기도하자. 평소보다 칠배나 더 달궈진 풀무불이 우리를 위협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음을 확신케 하여 주시길 기도하자. 또한 우리 중 혹 이러한 믿음의 시련을 만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임마누엘 하나님을 신뢰하며, 확신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기를, 이 시간 주여 한번 외치며 함께 기도하자.
[축도]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