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7새벽] 속죄일의 염소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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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144
본문 레 16:7-10 (구p.171)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복된 아침을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를 누리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복된 하루가 될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중심을 주께서 붙들어 주시사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주의 모든 권속들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서론]

우리 나라에는 몇몇 ‘기념일’이 있다. 예를 들어서 1919년 3월 1일에 한국이 일본의 강제적 식민지 정책으로부터 자주독립할 목적으로 일으킨 민족 독립운동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로 이 날을 지속적으로 잊지 않고 이 날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년 3월 1일을 삼일절 기념일로 지킨다. 한글날 역시도 1446년 세종대왕이 세상에 한글을 반포하였던 사건을 기념하며 지키는 기념일이다. 따라서 뭔가를 기념하는 기념일 이라는 것은 축하하거나 어떤 사건을 기념할만한 일이 있을 때, 그 사건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7가지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일반적으로 어떤 일어났던 사건이 기념일이 되고 절기가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건이 절기가 된 것이 아니라 절기가 사건이 되었다. 저들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지키라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이 정하여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아서 가나안에 들어와서 지키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형성되게 된다.
이스라엘의 절기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속죄일이다. 유대력으로는 7월 10일이다. 이 날은 대제사장이 1년에 단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온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사함을 받는 날이다. 이 날이면 염소를 두 마리 선택하게 된다. 두 염소를 가지고 제비를 뽑게 되는데,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또 다른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로 정하게 된다. 이 두 마리 염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두 마리 염소는 어떤 교훈과 도전을 주는가?

[본론]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라. 두 마리 염소 중 첫번째 염소, ‘여호와를 위한 염소란 문자 그대로 여호와 하나님께 드려지는 염소로서, 제단 위에서 속죄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다. 번제단 위에서 속죄제물로 드려지는 과정을 상상해보라. 먼저 짐승의 목을 따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짐승을 반으로 갈라 더러운 부분들은 제거한 후에 제단 위에 올려 불사르게 된다. 이 광경을 한번 상상해보라.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두려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앞서 수송아지와 숫양을 번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온통 여기저기 피가 튀겨 있을 것이고, 이제 잡아 목을 따게 될 염소도 제 운명을 아는지 연신 울어대고 있으며, 그렇게 목을 딴 염소 옆에서 피를 대야에 받고,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리며, 그 후에 염소를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 불사르게 되니, 이 얼마나 상상만 해도 두렵고 잔혹한 장면인가.
제가 지난 주일 저녁예배때 시각적인 메세지에 대해 잠시 말씀을 전했습니다만, 지금처럼 짐승을 잡아 제물로 드리는 이 광경, 이 시각적인 모습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분명 교훈하시는 메세지가 있었다. 이 잔혹하고도 끔찍한 광경을 통해서 예배자가 뭔가를 깨닫길 원하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눈앞에 비참하게 쪼개진 이 짐승처럼 그 누구라도 죄인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을 의미한다. 죄인들의 결국이 이와 같이 비참하고도 두려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의 참혹함을 눈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간구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염소에 안수함으로서 죄인이 마땅히 당해야 할 진노와 저주와 죽음을 그 안수받은 짐승이 대신 죽게 하심으로서 택하신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하도록 하셨다. 염소가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전가받아 철저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죽음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를 위한 염소는 곧 죄에 대한 심판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내지만 또 한편 죄인을 용서하시고 보존케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제비로 뽑힌 또 다른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이다. 아사셀을 위하여 선택된 염소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내보내지게 된다. ‘아사셀을 위하여’ 라는 문장에 대해 여러 성경 주석가들의 견해가 나뉘어 지지만, 일반적으로 ‘아사셀을 위하여’ 라는 문장은 ‘낭떠러지가 있는 광야 절벽’을 의미한다고 한다. 낭떠러지가 있는 절벽에서 염소를 그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참 잔인한 장면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 염소를 밀어 떨어뜨려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안다면 이내 납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염소라는 동물은 귀소본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수 십리 밖에서도 자신의 거처를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힌 염소는 절대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되돌아와서는 안 되었다. 간혹가다가 산책중에 잃어버린 강아지들이 여차저차해서 집을 찾아오는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애타게 기다리던 주인들은 강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에 너무나도 기뻐한다. 그러나 먼 길을 돌아서 자기 집을 찾아온 이 염소를 결코 기특하다고 칭찬하거나 환대해서는 안된다. 아예 돌아올 수 없을 정도의 먼 길에 내버려두어야 했고, 그래도 돌아오는 인솔자들의 뒤를 따라 집으로 따라오는 기미가 보이거늘 아예 그러지 못하도록 다리를 부러뜨려야만 했다.
왜 이토록 이 염소에게는 잔혹하게 대해야만 하는가? 왜 이 염소를 그냥 다시 맞아주면 안되는 것인가? 이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이기 때문이다.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출발할 때부터 온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짊어진 속죄제물로서 광야로 내보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사셀 염소를 속죄제물로 삼아 이스라엘 진영으로부터 멀리 보내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에게서 그 죄과를 멀리 옮겨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속죄제사를 받으셔서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 염소가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마도 처음에는 아사셀을 위하여 뽑힌 염소를 몇 시간 정도 거리로 던져두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염소가 인솔자를 졸졸 따라서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찾아오기 시작하니까 점점 더 멀리 나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게 점점 더 멀고 험한 지형으로 끌고 갔을 것이고, 결국 아사셀 염소를 위하여 몇일 길을 떠나기에 이르게 되었다. 한 유대 전승에 따르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를 광야로 내보내기 위하여 인솔자들을 선출하였고, 저들이 염소를 이끌고 몇일 광야길을 떠나서 먼 곳에 떨어뜨리고 돌아오려 했는데, 그럼에도 이 염소가 본래 진영으로 되돌아오려 하니까 결국 다시는 못돌아오도록 절벽 낭떠러지로 밀어떨어뜨려서 다리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속죄일의 염소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렇다면 속죄일에 사용된 두 마리 염소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오늘날 우리는 더이상 구약의 절기들을 지키지 않는데, 그렇다면 속죄일과 두 염소는 우리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인가? 그냥 참고용으로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주님께서는 요5:39 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46 에서도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라고 말씀하셨다. 율법과 성막도 그러하듯이 이스라엘의 절기 역시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따라서 속죄일 뿐만 아니라, 속죄일에 사용되는 두 염소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비추는 일종의 모형이다. 이 모형들은 모형들의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종의 도구인 셈이다.
‘속죄일의 염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모든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친히 당했어야 할 모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심판을 십자가 위에서 몸소 당하심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을 완성하셨다. 구약의 속죄일에 드리는 두 염소 제사는 매년 속죄일마다 하나님 앞에 드려야 했던, 임시적이고 유한한 제사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은 모든 택하신 백성들의 죄값을 단번에 지불할 정도로 영원하고 무한한 제사이다.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 것은 오직 속죄일의 염소가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함이다. 여러분 이 사실을 확신하시는가?
2천년 전 우리의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의 구원의 기초를 놓으셨고,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멀리 치우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 모든 은혜들이 실제가 되어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데도 믿음이 연약한 몇몇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여기에 뭔가 내 공로를 집어넣기 시작한다. 이왕이면 헌금도 좀 많이 하면 더 확실하게 구원받을 것 같고, 이왕이면 교회 봉사도 더 많이 하면 더더 확실하게 구원받을 것 같고, 이왕이면 이왕이면 이왕이면…하면서 우리의 구원에 뭔가를 첨가시킨다.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믿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라. 우리의 죄를 용서함을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업적이나 우리의 명예나 우리의 신분이나 공로가 전혀 포함되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필요하다. 그리고 오직 그분이면 충분하다. 오직 예수이고, 오직 은혜이다.

[결론]

성도 여러분,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도 수많은 짐승들을 잡아 희생제사를 드려야 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피비린내와 짐승들의 울부짖음으로 참혹한 제사의 광경을 바라보아야 했을 것이고, 또한 숨 쉬는 것만큼이나 수많은 죄를 양산해 내는 우리이기에 그 죄값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짐승들이 죽임 당해야 했을 것이다. 그 참혹한 현장들을 예배 때마다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오셨고, 바로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완전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셨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위하여 흘리신 보혈은 완전하고도 무한하여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함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하거나 모자라지 않고 오히려 차고 넘칠 만큼 넉넉하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는 무한하여 어떠한 죄인까지도 용납하시고,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 죄인을 맞아주시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지라도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다 영접하여 주신다. 바로 우리가 그러한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완전하고도 무한하신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구속하심에 감사하는 이 자리의 모든 양문교회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한다.

[기도]

함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 외에 다른 어느 조건들을 말씀하셨더라면 우리 중 그 누구도 구원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다. 속죄일의 염소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의 구원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하자.
우리의 평생에,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들게 하시고, 그 은혜에 온전히 사로잡혀 주님만을 높여드리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 외엔 다른 복음도 없고, 다른 구원의 길도 없음을 깨달아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구원의 뿔이신 주님만을 자랑하고 주님만을 높이며 주님만을 위해 헌신하기로 다짐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이러한 제목으로 간절하게 주여 한번 외치며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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